224화
“영상 잘 뽑혔네요.”
이벤트로 진행했던 일일 선수 생활 프로젝트의 편집 영상을 본 나는 흡족한 미소를 드러냈다.
내 말에 영상을 찍은 담당PD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번 이벤트는 기획도 좋았고, 참여한 팬들도 적극적이어서 건질 게 많았습니다.”
“오세진 선수하고 최윤이라는 분하고 뭔가 느낌 있는데요?”
“네. 안 그래도 그 부분을 좀 더 부각하는 방향으로 편집을 했습니다.”
미니게임 이후, 오세진과 최윤이 계속 서로의 파트너가 되어 어울리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상황에 따라 괜스레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나는 담당PD 옆에 있는 강시윤PD에게 말했다.
“앞으로 이런 컨텐츠들이 더 있는 거죠?”
“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우리는 고양이다.]도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양이다.]
OTT 플랫폼 서비스를 앞두고 기획한 우리 팀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처음에는 마땅한 제목이 없어서 임시 가제로 두었는데, 최근 ‘우리는 고양이다.’라는 제목으로 정해졌다.
이 프로그램은 강시윤PD가 총괄로 참여해서 진행하고 있었다.
“이 외에 선수들의 개별 일상을 담은 영상도 촬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컨셉이 둘로 나누어진다고요?”
“네. 싱글 선수하고 결혼한 선수들도 나누어서 프로그램을 다르게 기획했습니다.”
“영상 볼륨은 어느 정도 되죠?”
“볼륨은 매 화 1시간 이내로 편성이 될 겁니다. ‘우리는 고양이다.’의 마지막 편만 1시간 20분 정도됩니다.”
“왜 마지막만 길죠?”
“마지막에 시청자들을 위한 보너스 컷 같은 것들을 넣을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여러모로 기대가 크다.
준비하고 있는 컨텐츠들도 순조롭게 제작되고 있었고, OTT 플랫폼도 잘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가 영신그룹의 회장이 확정되면서, 그룹 차원에서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내가 추진하던 사업의 속도가 불이 붙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립니다.”
“네.”
* * *
명실상부 고양 유나이티드의 에이스인 박형우.
그는 최근 지도자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곧 시험이네.”
하반기에 KFA에서 주관하는 지도자 라이선스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워낙 특급 스타플레이어다 보니, 주변에서 다들 어렵지 않게 통과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박형우는 겸손한 자세로 공부하며 시험을 준비했다.
“방심하다가 쪽팔린 짓을 경험할 수는 없어.”
그렇게 지도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박형우에게 말했다.
“형우야.”
“네, 아버지.”
“네가 열심히 축구도 하고, 새로운 미래 계획도 하는 것은 좋지만, 그래서 나는 언제쯤 손주 구경해 볼 수 있겠니?”
“…….”
“이 애비도 그렇고, 네 엄마도 그렇고 너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다. 네가 안정적인 가정으로 꾸리는 것. 그거 하나뿐이다.”
“아버지.”
박형우는 난감한 표정을 드러냈다.
예전에 외국에서 지냈을 때만 해도 결혼에 대한 압박은 받지 않았었다.
부모님도 그저 아들이 축구선수로서 최대한 삶을 즐기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 요즘 들어 아버지가 은근히 결혼을 종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가 점점 강해졌다.
결국 박형우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저, 사귀는 여자 있어요.”
“뭐? 정말이냐!?”
“예. 나중에 소개해 드릴게요.”
“오오오오! 꼭 소개해 줘야 한다!”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박형우는 순간 뜨끔하고 말았다.
‘아, 큰일이다.’
사귀는 사람은커녕 애초에 여자를 만날 일이 없던 그였다.
그렇다고 그가 게이라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축구에만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동료들도 요즘 세상에 결혼 빨리해서 뭐가 좋냐는 반응도 한몫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 * *
“태훈 씨! 이것 좀 보세요!”
“으음?”
갑자기 김 비서가 나에게 기사 하나를 보였다.
【단독】국가대표 출신 축구선수 A씨 최근 열애 중인 것으로 밝혀져.
“……?”
그냥 열애설 관련 루머 기사잖아?
흔한 기사 하나 가지고 뭐 이렇게 난리지?
그런데 이어지는 김 비서의 말에 나는 몸을 움찔했다.
“여기 기사에 나온 선수가 박형우 선수라는데요!?”
“뭐? 진짜야?”
“사실 파악 중인데, 지금 각종 SNS나 커뮤니티 통해서 이 열애설의 주인공이 박형우 선수라는 이야기로 가득해요!”
“허?”
황당해진 나는 급히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정말 김 비서의 말대로 박형우와 관련된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박형우는 우리 팀 소속이지만 월드컵 스타로도 명성이 높은 선수였다.
그렇기에 대중의 반응이 상당히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박형우 누구랑 사귀는 거임?
-진짜 우리 오빠 열애 중인 거임?ㅠㅠ
-듣기로는 연예인라는데?
-아니야. 국회의원 딸이래.
-저는 중립기어 박습니다.
“당장 박형우 선수를 만나야겠어!”
그렇게 나는 박형우를 만나기 위해 훈련장으로 향했다.
웅성웅성.
훈련장 앞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미 소식을 듣고 찾아온 기자들이 뭐라도 하나 물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자차를 타고 온 박형우가 차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박형우 선수! 열애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누구하고 열애 중이십니까?”
당황한 박형우가 허우적대고 있을 때, 김 비서에게 말했다.
“김 비서. 경호 팀 투입해서 박형우 선수하고 기자들 사이 갈라 놔.”
“네.”
잠시 뒤, 경호원들이 박형우를 호위하며 기자들과 떨어뜨려 났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 그게…….”
박형우는 나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부모님의 결혼 압박을 못 견뎌 거짓말을 했는데, 신이 난 부모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연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일파만파 퍼져서 작금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타플레이어도 이건 어쩔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실 거죠?”
“으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겠죠.”
“그럼 부모님께서 많이 실망하시겠네요.”
“그, 그렇겠죠.”
박형우는 난감해했다.
그래도 본인이 저지른 일이니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지켜만 보기에는 마음이 좀 걸렸다.
“당장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네?”
“기자들은 저희 쪽에서 상대해서 처리하죠. 박 선수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때 부모님한테 말씀드리시고요.”
“……!”
박형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대신 앞으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네!”
그렇게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 * *
이제 정규 시즌도 약 2달 정도 남았다. 그 말은 K리그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고양은 A매치 이후 FA컵 준결승전 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아쉽게도 준결승전에서 석패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지난 시즌 디팬딩챔피언이었던 고양으로선 쓴맛을 본 것이다.
“괜찮아! 우리에게는 리그와 아챔이 있다!”
곽찬구 감독은 리그와 아챔에서 최선을 다하자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이후 스플릿 라운드를 앞둔 정규 리그 마지막 경기가 진행됐다.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 상위 스플릿과 하위 스플릿의 경계선이 나누어지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경기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인데요. 1위 고양부터 4위 전북까지는 상위 스플릿이 확정된 가운데, 5위 수원 블루부터 6위 포항, 7위 인천, 그리고 8위 대구까지 이번 경기에 따라 상위 스플릿을 가느냐, 못 가느냐가 결정됩니다!』
수원 블루의 홈 경기장.
빅버드.
이곳은 푸른 물결로 요동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승리뿐이다!”
“워~ 워~ 워~ 나의 사랑 인천~”
리그 5위와 7위 인천의 맞대결이 이곳에서 펼쳐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두 팀 모두 팀컬러가 푸른색이었다.
게다가 이 두 팀의 서포터스들은 K리그에서 내로라하는 결집력이 있었다.
두 팀 서포터스들은 거의 결승전 경기처럼 응원했다.
양 팀 선수들도 그런 서포터스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반드시 이겨서 상위 스플릿 진출한다!”
“오!”
수원은 설령 패배하더라도, 다른 팀들의 상황에 따라 상위 스플릿 확정이 가능한 상태였다.
허나, 홈팬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패배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인천도 마찬가지였다.
“수원 놈들 잡고, 당당하게 상위 스플릿 간다! 알았지?”
“오!”
같은 시각.
포항의 홈구장에서도 포항 팬들의 응원가가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 함께 포항~ 우리를 위한 너의 골을 보여줘!”
공교롭게도 포항의 이번 상대는 울산이었다.
K리그 최고의 더비 매치 중 하나인 ‘동해안 더비’가 펼쳐짐과 동시에 포항의 상위 스플릿 라운드 진출 여부가 걸려 있었다.
“영원하리라~ 울산~ 승리의 푸른 깃발을 높이 올려~”
울산도 우승 경쟁의 불씨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이번 경기 승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포항 쉐끼들이 주제넘게 상위 스플릿 올라가려 하는데, 우리가 참교육 좀 해주자!”
“오!”
울산 선수들이 힘차게 각오를 다졌다. 그것은 포항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뭐다? 울산은 이긴다! 알지?”
“오!”
“오늘 이겨서 상위에 간 다음, 저놈들한테 고춧가루 한 번 더 뿌려주자!”
“오!”
그리고 또 다른 곳, 대구 파크 경기장.
“대구 없이는 못 살아~ 대구 없이는 못 살아~”
대구는 지난 경기 패배로, 오늘 경기에서 무조건 승리를 거둔 다음 다른 팀들의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오늘 무조건 이겨야 한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긴다!”
“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승리가 간절한 상황이었다.
그런 대구의 상대는 바로,
“모두 일어나! 크게 외쳐라! 서울이 왔다!”
지난 경기에서 포항에게 0:5로 대패당했던 서울이었다.
히카르두 실바 감독을 비롯하여 선수단 전체가 오늘 경기를 이기기 위해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지난 경기 같은 경기는 없다!”
“무조건 이길 생각만 한다!”
“지면 걸어간다!”
서울의 독기는 강했다.
그리고 그 시각, 전북의 홈경기장 전주월드컵 경기장.
“스플릿 가기 전에 화려하게 장식해야지? 안 그러냐?”
“당연하죠.”
녹색 물결이 출렁이는 가운데, 고양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매 시즌 스플릿 라운드를 앞둔 마지막 경기가 치열했지만, 이번 시즌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합니다!』
『그렇습니다. 빅매치들이 대거 예정된 가운데, 오늘 경기의 승자가 상위 스플릿으로 올라갑니다!』
방송사들은 오늘 경기를 모두 Live 중계했고, OTT 플랫폼을 통한 동시 송출도 진행했다.
K리그의 모든 팬들이 같은 시간에 경기를 지켜보는 가운데, 각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주심들이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입에 휘슬을 물었다.
모든 경기장이 일순간 고요했다.
그리고 경기장에 있는 주심들의 시간이 모두 정각에 맞춰지는 순간, 동시에 힘차게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TH투자회사 2028 K리그 30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우와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