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주말 리그 경기가 끝난 후, 고양의 훈련장에는 때아닌 소동이 벌어졌다.
“뭐야? 종호 어디 갔어?”
“어라? 종호 아직 안 왔어?”
석종호가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누구 연락되는 사람 없어?”
훈련 시간이 되었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석종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전화 안 받는데요?”
“뭐?”
석종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선수들과 코치들이 돌아가며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감독님, 이거 구단에도 연락해 봐야겠는데요?”
석종호는 성실한 선수였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다면 먼저 연락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없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곽찬구 감독이 다급하게 구단에 연락했다.
“종호가 훈련장에 안 나왔습니다!”
곽찬구 감독은 코치들에게 선수들의 훈련을 맡겼다.
“무슨 일입니까? 석종호 선수가 안 나왔다니!”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낸 천지원 이사에게 곽찬구 감독이 상황을 설명했다. 심각함을 느낀 천지원이 말했다.
“제 차로 이동하시죠!”
그렇게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석종호가 사는 집으로 향했다.
띵동.
여러 번 초인종을 눌러도 안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어떻게 하죠?”
“오는 길에 종호네 부모님에게도 연락을 했는데, 본가에는 가지 않았다고 하네요.”
구단 직원들이 석종호가 갈만한 곳을 수소문해서 연락을 했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집에 있을 확률이 큰데…….”
“강제로 문이라도 열어야 할까요?”
“일단 그건 최후의 수단이고, 해볼 수 있을 만큼 해보죠.”
곽찬구와 천지원은 문을 여러 번 두드리고 기다려봤다.
하지만 석종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거 느낌이 너무 안 좋습니다.”
“안 되겠습니다. 강제로 열고 들어가죠!”
천지원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119에 연락했다.
10분도 안 걸려서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강제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간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종호야!”
“이럴 수가!”
석종호가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 * *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업무 때문에 출장을 다녀왔던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석종호 선수가 약을 먹고 쓰러졌다뇨!”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거실에 쓰러진 석종호를 구급대원이 급히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선수는, 석종호 선수는 어떻게 됐습니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한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허.”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에 나는 어떤 업무도 할 수 없었다.
“김 비서. 오늘 예정된 일정 모두 취소시켜.”
“네.”
“병원으로 가야겠어.”
병원에 도착한 나는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석종호와 충격에 빠진 그의 부모님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선수의 부모님을 짧게 위로하고, 뒤늦게 천지원 이사로부터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석종호 선수가 최근 코인에 빠져 상당한 돈을 잃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코인이요?”
“네, 며칠 전에 터진 레드 코인 쇼크 사태를 아십니까?”
“아, 그 99% 폭락했다던 그거 말입니까? 듣기는 했습니다. 설마…….”
“그렇습니다. 석종호 선수가 투자했던 코인이 바로 그 레드 코인이었습니다.”
“…….”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어쩌다 코인을 했답니까?”
“주변 사람들 증언에 의하면 친구로부터 권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권유한 친구가 이번에 잠적한 레드 코인 대표와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는 어디에 있답니까?”
“대표와 함께 잠적했다고 합니다. 살고 있는 곳도 정리하고, 각종 SNS도 접었더군요. 운영하던 사무실도 싹 정리했고요.”
“이런 개XX 놈들을 봤나!”
상황을 보니, 석종호가 제대로 당했다.
애초에 놈들은 의도적으로 석종호에게 접근했고, 그를 비롯해 돈 있는 사람들을 여럿 유혹해서 작정하고 먹튀했던 것이다.
사기에 당한 석종호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보다 가만히 축구하고 있던 그를 유혹한 놈들이 더 문제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
나는 박준후 팀장을 불렀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박 팀장님. 석종호 선수와 관련된 일은 외부로 흘러가지 않게 미디어 단속 철저히 해주세요.”
“네. 이미 조치를 취해 뒀습니다.”
“그리고 TH투자회사, 영신그룹의 모든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서 레드 코인 대표하고 그 일당 전부 추적해서 잡아 오세요.”
“알겠습니다.”
“놈들에게 회장님이 휘두르는 회초리가 무섭다는 것을 보여줘야겠어.”
참교육의 시간이다.
* * *
레드 코인 대표 허남식.
그리고 그런 그의 왼팔이자 석종호를 파멸로 이끌었던 전희철.
안전가옥에서 잠시 몸을 숨기고 있던 허남식이 모니터에 뜬 계좌에 찍힌 금액을 보고 크게 웃었다.
“으하하! 희철아! 이거 봐! 다들 정말 멍청하다니까! 짧은 시간 내에 몇 배로 돈 불려준다는 말에 그냥 앞뒤 생각 없이 돈을 주잖아!”
“허 대표. 배 준비됐다.”
“아아. 희철아, 고생 많았다. 이제 배 타고 라오스로 가면 서로 각자 살길 찾아서 가자.”
이번에 레드 코인 쇼크로 무려 1,000억이 넘는 금액을 삼킨 두 사람은, 사전에 매수한 배를 타고 라오스로 향한 뒤 그곳에서 갈라지기로 약속했다.
“자, 그럼 슬슬 떠나 보실까.”
허남식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으악!
악!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심각함을 느낀 허남식과 전희철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지?”
“일단 도망가야…….”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박준후 팀장을 포함한 경호팀이 우르르 들어왔다.
“너희들 뭐 하는 새끼들이야!”
당황한 허남식이 박준후를 보며 외쳤다.
박준후는 그런 그를 차갑게 노려보며 명령을 내렸다.
“잡아.”
허남식과 전희철은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이, 이거 놔!”
“크윽!”
그들이 제압당한 사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회장 자리가 이토록 좋았구나? 어떻게 경찰도 제대로 못 잡는 새끼들을 하루도 안 걸려서 잡네?”
“누, 누구…… 헉!”
“안녕, 친구들?”
활짝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는 지태훈의 얼굴을 본 두 사람은 잔뜩 얼어붙었다.
* * *
“종호를 위해서라도 오늘 우리는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 알았지?”
“네!”
석종호의 일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선수단을 곽찬구 감독은 어떻게든 추스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사이 시간이 흘러 AFC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경기가 다가왔다.
이번에는 원정에서 치러지는 만큼, 앞선 1차전보다 더 큰 집중력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석종호의 일로 선수들의 집중력이 흔들렸다.
“우리의 목표를 잃지 마라!”
곽찬구 감독의 말에도 일부 선수들은 집중하지 못했다.
감독 입장에서 고민스러운데,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섰다.
“여러분.”
주장 김지우였다.
“종호의 일로 우리가 지금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은 알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곽찬구 감독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두 눈을 부릅떴다.
다른 선수들은 어리둥절했다.
그 상황에서 김지우가 충격적인 발언을 꺼냈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나는 은퇴한다.”
“……!”
곽찬구 감독은 입을 떡하고 벌렸고, 선수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주장, 아니, 지우 형? 지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은퇴라니?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이진수가 다급하게 김지우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김지우의 태도는 분명했다.
“아니. 잘못 들은 거 아니야. 감독님하고 대표님하고도 다 이야기된 부분이었어. 이번 시즌이 끝나면 나는 은퇴할 예정이야.”
“형!”
현재 고양 선수들의 가장 큰 정신적 지주는 김지우였다.
그런 김지우의 은퇴 발언에 동료 선수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런 동료들을 훑듯이 쳐다본 김지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시즌이 끝나는 나의 목표는,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이 목표야!”
“……!”
“적어도 나는 은퇴하기 전에 너희들과 우리 팀에 AFC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고 은퇴하고 싶어!”
그는 진심을 담아 목소리를 높였다. 충격받았던 동료들도 그의 진심 어린 말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수석코치가 중간에 끼어들려는 것을 곽찬구 감독이 막았다.
김지우는 그런 곽찬구 감독에게 살짝 감사를 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종호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이럴수록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해! 함께 힘내서 나와 함께 목표를 이루자!”
김지우의 말은 그것으로 끝났다.
잠깐이지만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박형우가 깨뜨렸다.
“지우 형의 말대로 이럴수록 우리가 집중해야 해. 그리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주장에게 우리가 AFC챔피언스리그 트로피 정도는 선물로 줘야 하지 않겠어?”
“당연하지!”
조용히 있던 박지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내가 저번에 3골 먹히긴 했는데, 이번 2차전은 다를 거다! 내가 최대한 선방해 볼게!”
그러자 이진수도 끼어들었다.
“저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이후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라커룸에 있던 선수들이 한 마디씩 돌아가며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라커룸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
곽찬구 감독은 달라진 라커룸 분위기를 보고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그러고는 김지우와 눈이 마주쳤다.
‘고맙다.’
‘아닙니다.’
두 사람은 서로 눈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고양 유나이티드는 2차전 경기를 치르기 위해 필드로 향했다.
* * *
얼마 후, 석종호는 가장 마주치기 두려운 인물과 만나야 했다.
그 인물은 바로 지태훈이었다.
“대, 대표님!?”
“석종호 선수.”
무섭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석종호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어째서 그런 짓을 벌인 겁니까?”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석종호는 대역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다.
덩치는 선수로 단련된 석종호가 훨씬 컸지만, 지태훈의 엄청난 카리스마 앞에서 두 눈을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세요.”
“……예.”
그는 코인을 한 행위에 혼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이 코인을 하든 뭘 하든 내 알 바 아닙니다. 그런데 그깟 일로 죽으려고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세상에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천지인데! 고작 그깟 일로 죽으려고 하다뇨!”
“……!”
“만약 또 죽으려고 한다면, 그때는 내 손에 죽습니다. 알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석종호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던 지태훈은 표정을 풀고 이야기했다.
“석종호 선수.”
“예?”
“도망쳤던 레드 코인 대표놈과 당신 친구라고 했던 인물을 잡았습니다.”
“네!?”
석종호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경찰도 쉽게 못 잡았던 사람들을 잡았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 능력입니다.”
“…….”
“그리고 석종호 선수가 잃었던 돈도 돌려받았습니다. 돌려받은 돈은 조만간 석종호 선수 계좌로 재입금될 겁니다.”
“대, 대표님 그,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뭣 하러 거짓말을 합니까.”
“아!”
석종호의 눈에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앞으로 절대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외치는 석종호를 지태훈이 말없이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면, 앞으로 팀을 위해 헌신하세요.”
지태훈은 그렇게 말하면서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삑.
그의 눈이 자연스럽게 TV로 향했다. 그리고 TV에서는 경기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 시작됐습니다! AFC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울산 모터스 대 고양 유나이티드의 전반전 경기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