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이게 무슨 일인가요!』
당황한 캐스터의 외침.
이에 옆에 있던 해설자도 한마디 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요? 지금 경기 내용도 그렇고, 스코어도 그렇고 거의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네요.』
해설자의 말대로 경기 내용과 결과가 어느 한쪽 팀으로 완벽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후반 41분】
서울 0:5 포항
서울의 홈에서 펼쳐진 이 경기는, 일찌감치 터져버린 포항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일방적인 경기로 진행됐다.
그 누구도 서울이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운 차이가 컸다.
서울에게 너무할 정도로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과 달리, 포항은 때리면 골이 나올 정도로 운이 따랐다.
서울의 히카르두 실바 감독도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다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필드에서 뛰고 있는 서울 선수들과 응원하던 홈팬들의 충격도 배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서울과 포항의 경기뿐만이 아니었다.
리그 랭킹 6위를 기록하고 있는 포항이 선전하고 있는 사이, 5위를 기록하고 있는 수원 블루와 7위 인천도 각각 울산과 전북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후반 43분】
수원 블루 3:1 울산
전북 2:4 인천
상위 스플릿 진출을 위해 매 경기 결승전처럼 싸우고 있는 포항, 수원 블루, 인천은 공교롭게도 이번 라운드에서 각 2~4위 팀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세 팀 모두 주도권을 쥐고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저희가 다른 팀 경기 소식도 지금 듣고 있는데요. 오늘 정말 예상외의 결과들이 속출하고 있네요. 이렇게 되면 포항, 수원 블루, 인천 모두 상위 스플릿 진출 확정은 다음 경기에서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세 팀 모두 승점이 얼마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다음 경기 결과에 따라 상위 스플릿 진출이 확정됩니다.』
포항과 수원 블루의 승점은 1점. 수원과 인천도 1점.
정리하면, 리그 5위 포항과 7위 인천의 승점은 겨우 2점 차이에 불과 했다.
『어, 지금 일정을 보면 포항하고 인천이 다음 경기에서 붙네요?』
『다음 경기 상당히 피 말리는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3팀이 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는 사이, 리그 1위 고양 유나이티드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후반 45분】
대구 1:4 고양
8위 대구 원정을 떠난 고양은 전반전에 선제 실점을 당했지만, 후반전에 무려 4골을 터트리며 경기를 완벽하게 뒤집었다.
일전에 대구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박형우가 또 한 번 대구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하며, 전북 킬러에 이어 대구 킬러로 이름을 높였다.
호프만은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호박라인의 건재함을 알렸다.
『경기 끝났습니다!』
그렇게 주말 리그 경기는 1위 고양 유나이티드를 제외한 나머지 2~4위 팀들의 패배로 끝났다.
고양에게 있어 행운이라고 볼 수 있었다.
* * *
최근 전북에서 고양으로 이적한 황진용.
감독과의 불화를 이겨내지 못한 황진용은 결국 이번 여름 이적 시장 때 고양의 제안을 받고 이적했다.
이후 그는 나름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다.
‘조금은 다행이야. 동료들도 친절하고, 구단과 팬들도 나에 대해 호의적이고.’
이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 만족했다.
‘경쟁이 치열하기는 해도, 어차피 전북에 있었을 때도 진득하게 경험했던 일이니 문제없어.’
우승을 노리는 팀답게 단단한 스쿼드를 갖춘 고양 유나이티드의 내부 경쟁은 상당히 치열했다.
황진용은 수년간 전북에서 경쟁을 해왔었다. 그래서 경쟁 자체는 문제없었다.
하지만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자신이 떠나기 전만 해도 거의 만년 꼴찌 팀이나 다름없었던 친정팀이 지금은 전혀 다른 팀이 되었다는 점이다.
‘5년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거의 내쫓기듯 하며 팀을 떠났다가 돌아온 황진용은 확 달라진 팀 분위기를 보고 묘한 기분을 느꼈다.
‘감독님도 나를 존중해줘서 좋아.’
고양에 이적했어도 그는 선발보다 교체로 더 많이 뛰고 있었다.
전북에 있을 때와 별반 차이 없는 상황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진용아. 이번에 내가 너를 선발에서 제외한 이유는 말이다.”
곽찬구 감독은 자신을 선발에서 제외할 때 따로 호출해서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감독이 선수에게 이렇게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황진용이 어떤 이유로 전북을 떠나 다시 고양으로 돌아왔는지 알고 있던 곽찬구 감독은, 심적으로 지친 그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행동했다.
황진용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마운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비록 선발보다 교체로 많이 뛰어도 큰 불만 없이 있을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구단은 ‘돌아온 레전드’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친정팀에 복귀한 황진용을 크게 예우했다.
특히 이 프로모션에서 그를 위한 전용 유니폼을 기획하여 팬들에게 판매했는데, 여기서 발생한 판매 수익은 일부 제작비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황진용 이름으로 기부했다.
황진용은 크게 감격하였다.
전북에 있을 때도 받아보지 못한 예우였다.
‘앞으로 내가 필요할 때마다 무엇이든 하겠어.’
팀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먹은 황진용의 각오는 남달랐다.
* * *
나는 지금 학생들 앞에 서 있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학생의 시선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준비한 말들을 꺼냈다.
“살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도 그렇고, 지금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학생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팀과 유소년 협약을 맺고 있는 백송고등학교.
그리고 내가 졸업한 모교의 선생님들로부터 부탁을 받아서 ‘진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소위 대중들로부터 인정받은, 성공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진로 강의를 나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망나니였던 주제에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말인가.
하지만 백송고등학교 선생님들의 거듭되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고양 유나이티드 직원들이나 영신 그룹 이사들도 어지간하면 하라고 압박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됐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이야기들을 조금 해보자면, 여러분은 매 순간 선택의 길에 놓인다는 겁니다.”
학생들은 딴짓하지 않고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하며 듣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도 힘이 나서 말할 수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그 선택이 나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감당 못 할 후회가 되기도 하죠.”
말을 하다 보니 옛날에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만약 회귀하지 않았다면?
아마 내 인생은 거기서 끝났겠지.
하지만 회귀 이후에 벌어진 다양한 선택지에서 나는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지라고 판단된 길을 선택하며 달려왔다.
물론 그 선택이 매번 올바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회귀했는데도 아쉬움은 존재했다.
그래도.
“그러한 선택들이 누적되면, 언젠가는 여러분이 내면적으로 성장해 있을 겁니다. 선택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나이에서는 무엇을 하든 불확실하기에, 그래서 더 과감하게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삶은 불확실함의 연속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책임질 수 있는 폭이 점차 줄어든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이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는 여러분이 겪은 과정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본 자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말 일생이 바뀔 정도로 대위기를 겪지 않은 이상, 근본은 유지된다.
그렇기에 삶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나는 다양한 실패와 어려움을 겪고, 후회할 만한 선택들을 제법 많이 해왔다.
하지만 위기를 잘 극복해 왔으며, 그 과정 속에서 좋은 일들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여러분의 삶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와아아아!
학생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그런 학생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 * *
강연을 마치고 나는 백송고등학교 축구부에 들렸다.
이전과 달리 적폐 청산을 이룬 백송고등학교 축구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설 관리는 잘 되고 있네요.”
“네,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있고, 구단 내에서도 정기적으로 점검을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 사건이 있는 다음부터 나의 통 큰 지원으로, 백송고등학교 축구부를 위한 건물을 새로 지었다.
새롭게 지은 건물은 최신식 냉난방은 물론, 선수들이 편하게 숙식할 수 있는 생활관 그리고 24시간 개별 운동이 가능한 헬스장과 몸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까지 모두 갖추었다.
아마 대한민국 내에 이 정도로 갖춘 축구부는 없을 것이다.
물론 백송고등학교뿐만이 아니다.
우리 팀 산하로 있는 백송초등학교와 백송중학교 모두 똑같은 지원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축구부에 속한 아이들이 편하게 훈련할 수 있는 전용 연습장도 따로 만들었다.
하이브리드 잔디가 적용된 축구장에는 실제 프로팀이 와서 경기를 치러도 될 정도로 조명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약 100명 정도 관람할 수 있는 관중석은 덤이다.
“버스도 있지 않나요?”
“네. 지금 선수들을 태우고 떠난 상태입니다.”
학생들이 편하게 장거리 이동할 수 있게 구단 버스도 지원하고 있었다.
이 버스는 실제 프로 선수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이기도 했다.
선수들은 프로 선수들이 타는 버스를 타며, 프로의 꿈을 키울 수 있게 했다.
“훌륭하군요.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부탁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를 안내하던 학교 선생님의 힘찬 대답을 들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는 다음 일정 때문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석종호.
고양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그는 주로 선발보다 교체로 많이 뛰었다.
한때 이적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구단의 권유와 주변 동료들의 만류로 잔류를 택했다.
그런 그는 지금 자신이 처한 처지를 인정하고, 특별히 큰 불만 없이 팀을 위해 뛰었다.
그렇게 고양에서 뛰면서 꽤 높은 연봉과 다양한 수당들을 받으며 많은 돈을 벌게 된 석종호.
그는 애인도 없고, 딱히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받은 연봉과 수당을 고스란히 모아 자그마한 아파트도 샀고, 고양과 스폰서를 맺고 있는 라세라티의 선수할인 찬스로 고급 승용차도 구매했다.
애인도 없이 혼자 사는 그의 수중에는 여윳돈이 많았다.
그러다 최근 친구의 권유로 코인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게 요즘 뜨는 ‘레드’ 코인인데, 잘만 하면 네 돈도 몇 배는 불릴 수 있어.”
“정말?”
“어! 나 여기에 1억 넣어서 이번에 5억 벌었잖아. 덕분에 빚도 다 갚고 집도 샀다.”
“진짜냐?”
“어, 이거 봐.”
“헉.”
친구가 보여준 자료는 진짜였다.
그렇게 손을 댄 코인.
처음에 꽤 이득도 봤었다.
그리고 이때 석종호는 멈췄어야 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그는 조금씩 조금씩 돈을 추가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밀어 넣은 돈이 무려 억대였다.
그러다가 그는 몇 달이 지나서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었다.
『레드 코인 쇼크! -99% 대폭락!…… 레드 코인 대표는 잠적.』
그가 투자했던 코인이 대폭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