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해진 나는 바로 포털사이트로 들어가서 하이라이트 영상을 봤다.
“후반전부터 보면 되겠지?”
전반전은 풀로 봤으니, 후반전 경기 영상만 보면 될 터.
나는 영상을 뒤로 돌려 후반전 하이라이트부터 봤다.
『울산이 한 점 앞선 채로 후반전을 시작하고 있는데요. 울산 입장에서는 조금은 유리한 지점에서…… 자, 고양이 빠르게 치고 들어가는데요! 카초가 측면에서 올려줍니다! 호프만인데요! 호프만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이야아아!』
『후반 시작과 동시에 골을 만들어내는 고양입니다!』
후반 1분 만에 카초의 어시스트를 통해 호프만이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되면 승부의 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데요! 울산이 반격합니다!』
『박창진 슈웃! 박지원이 막아냅니다!』
『이번에는 고양이 반격합니다! 상당히 빠른 패스워킹을 보여 주는데요! 상당히 밑에까지 내려온 박형우가 측면으로 공을 올려보냅니다!』
『아~ 좋아요! 한석원입니다!』
『한석원이 드리블 돌파! 한석원을 따라 들어가는 정성진입니다! 정성진이 공을 잡는데요! 정성진 슈우웃! 하지만 김광석 골키퍼에게 막힙니다!』
『아~ 상당히 좋은 연계였는데요. 지금도 보세요. 박형우 선수가 넓게 보고 정확한 전방 크로스 연결에 이은 한석원 선수의 드리블 돌파에 동료를 활용한 연계. 그리고 정성진의 마무리 슈팅까지. 이게 고양이 원래 보여 줬던 연계 중 하나였거든요!』
『동점골 이후 공격이 살아나고 있는 고양입니다!』
비록 득점까지 만들지는 못했지만 좋은 연계로 찬스까지 만들어 내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울산이 코너킥을 만드는데요. 원종우 선수가 키커로 나섭니다. 올리는데요! 아! 골입니다! 이번에도 제레미입니다!』
간헐적으로 찾아온 기회를 득점으로 만들어낸 울산.
경기를 잘 풀어나가던 고양은 울산에게 한 방 얻어맞은 셈이 되었다.
하지만 고양은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울산이 반칙을 범합니다!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는 고양입니다!』
『자, 키커로 누가 나설까요? 김지우 선수 대신 교체로 들어간 오세진 선수가 찰 준비를 합니다. 오세진 슈우웃!』
『들어갔어요! 오세진이에요!』
『옛 친정팀을 상대로 프리킥 득점에 성공하는 오세진입니다!』
『이적 이후 울산을 상대로 첫 득점을 하는 오세진인데요. 그래서일까요? 세리머니는 하지 않습니다.』
인간 벽 사이를 교묘하게 뚫고 시원하게 골망을 흔드는 환상적인 프리킥이었다.
오세진의 프리킥 득점으로 동점을 만든 고양.
『박형우!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이야아아!』
동점골 이후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때린 박형우의 벼락같은 슈팅이 그대로 울산의 골망을 흔들었다.
엄청난 득점에 울산 선수들도 순간적으로 넋이 나갔다.
『고양이 역전에 성공하는데요! 자,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정규시간도 끝나고 추가시간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고양은 거의 승리를 확정 짓기 직전까지 갔다.
마지막 반격을 시도하는 울산.
『교체로 들어온 권태훈. 슈우우웃! 아! 수비 맞고 굴절되는데요! 어! 주심이 휘슬을 불었습니다!』
『찍었습니다!』
경기 막판, 권태훈이 때린 슈팅이 라시모프의 손에 맞았다.
VAR까지 한 끝에, 주심은 PK 판정을 내렸다.
그렇게 제레미가 또 한 번 찰 준비를 했다.
『제레미가 준비하는데요! 슈우웃! 들어갑니다!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제레미입니다!』
『이야, 오늘 경기 정말 알 수 없네요.』
『자, 경기 끝났습니다! 2028 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고양 대 울산의 경기는 우열을 가리지 못한 채 3:3 무승부로 마무리됩니다!』
“아깝네.”
하이라이트 영상을 모두 본 나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드러냈다.
비록 무승부로 끝나기는 했어도 경기 자체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하이라이트만 봐도 이 정도였는데, 만약 풀로 봤다면 더 뜨거웠을지도 모른다.
“전반전만 보고 갔던 게 너무 아쉽네.”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후반전 경기를 보지 못한 상황이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다음 날, 구단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아,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이상했다.
왠지 나를 불편해하거나 무서워했다.
“뭐지?”
대표실에 들어온 나는 뒤늦게 따라 들어온 김 비서를 통해 상황을 알게 됐다.
“태훈 씨! 이것 좀 보세요! 어서요!”
“음?”
김 비서가 스마트폰을 통해 기사 하나를 보여줬다.
기사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현장리뷰】분노한 지태훈? 전반전 경기만 보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
“이, 이게 뭐야?”
“아무래도 직원들 반응이 이상했던 것도 이 기사 때문인 것 같아요.”
“아오!”
기사 내용을 보니 전반전에 실망스러운 경기를 본 내가 화가 나서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고 적혀 있었다.
“마지막 밑줄이 가관이네.”
『지태훈 대표는 2025년 부임 이후 중동의 오일머니를 끌어들여 막대한 투자를 진행해 왔다. 이번 시즌에는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목표로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자칫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지 씨의 분노도 이해가 된다.』
“소설을 쓰네. 소설을 써.”
이러니 기자들이 욕을 먹는 게 아닌가.
“비서팀에 전달해서 대응 기사 쓰라고 해.”
“네. 이미 연락해 뒀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다.
일 때문에 빠져나간 사람한테 화가 나서 빠져나갔다니.
그때였다.
똑똑.
“대표님, 저 곽찬구입니다.”
“예. 어서 오세요.”
갑자기 이른 아침부터 대표실을 찾아온 곽찬구 감독.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허리를 숙이고 큰 목소리로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
“제 실수입니다! 제가 잘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선수들은 잘못 없습니다! 화가 나셨다면 제가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
아.
나는 이마에 손을 올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오해가 크게 퍼진 것 같았다.
“오해입니다.”
“네?”
나는 어제 일에 대해 간략적으로 설명해 줬다. 그러자 곽찬구 감독이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럼 정말 화나신 게 아닙니까?”
“네. 아니, 제가 뭐 화날 게 뭐가 있습니까? 경기야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건데.”
우리의 목표가 우승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당장 AFC챔피언스리그 우승 못 해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다음을 또 노리면 되니까.
어차피 경기라는 것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 팀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지금처럼 쭉 해주시면 됩니다.”
“아!”
곽찬구 감독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대표님께서 엄청 화나신 줄 알고…… 안 그래도 목표하신 바가 있는데 괜히 제가 재 뿌린 게 아닌가 싶어서 그만…….”
그 천하의 곽찬구 감독이 눈에 눈물이 핑 돌며 말하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휴지를 내밀었다.
눈물을 닦는 곽찬구 감독을 위로해준 뒤, 돌려보냈다.
의자에 앉은 나는 살짝 한숨 내쉬었다.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자조 섞인 혼잣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김 비서가 시원한 아이스 커피 한 잔을 내 앞에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원래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무서운 법이에요.”
“김 비서도 내가 무서워?”
“무섭죠.”
“…….”
“무리할까 봐. 무서워요.”
그게 무슨 말이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보이는 것만큼, 보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대중들은 당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보고 판단하겠지만, 저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알잖아요. 그래서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유리야.”
아, 내 안에 뜨거운 뭔가가 올라왔다. 울컥할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획 돌렸다.
* * *
오세진은 특별히 표현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
‘참 신기해. 주전으로 도약하고 싶어서 이적한 건데, 그때나 지금이나 비주전이기는 한데…….’
더 많은 경기를 뛰고 싶어서 과감하게 이적을 택했던 오세진.
그런데 현실은 완벽한 주전이 아닌 선발과 교체를 오가는 신세였다.
울산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기에 어쩌면 더 힘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즐겁다.’
왜일까?
그토록 주전이 되고 싶어 갈망하던 자신이, 지금은 즐거웠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동료들 때문인가?’
울산에서 뛸 때만 해도, 그곳은 매 시즌 우승을 위해 뛰어야만 했다.
함께 뛰는 동료들은, 동료보다는 경쟁자였다.
적어도 오세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있는 이곳은 달랐다.
분명 여기도 우승 경쟁을 하고 있지만, 동료들은 경쟁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야, 세진아! 너 지난번에 골 멋지더라!”
이진수가 오세진의 등을 두드리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나도 세진이한테 프리킥 배워야겠더라.”
“그래, 짜샤. 가서 세진이한테 프리킥 알려달라고 해라.”
박형우와 김지우의 대화를 듣던 오세진이 피식 웃었다.
이전 같으면 자신에게 꼽주는 말로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들의 진심을 알기에.
오세진은 경쟁을 넘어 축구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럼 저하고 같이 프리킥 연습할까요?”
“오케이! 훈련 끝나고 밥은 형우가 사자!”
“뭐? 갑자기?”
“아하하하하!”
오늘도 훈련장은 즐겁다.
* * *
이번 시즌 K리그는 상위 팀들의 경쟁도 치열했지만, 중하위권 경쟁도 만만치 않게 치열했다.
올해부터 1위부터 꼴찌팀까지 상금분배가 이루어지는데, 중위권과 하위권의 상금 격차가 제법 컸다.
그래서 시즌 전부터 각 팀마다 제법 보강을 많이 한 상태였고, 이는 치열한 경쟁으로 나타났다.
“진짜 역대급 경쟁이다. 1~4위까지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보면 되는데, 5위부터 10위 사이에 있는 팀들은 한 경기 끝나면 순위가 달라지네.”
물고 물리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응원하는 팬들과 선수단은 속이 타고, 지켜보는 이들은 흥미진진했다.
“5위가 30억, 6위가 20억, 7~12위가 10억. 5위와 7위 사이의 금액 차이가 무려 20억이야.”
K리그 재정 여건상, 20억 차이는 상당했다.
일반 시도민구단 팀의 평균 운영비가 70억에서 120억 사이 정도 되는데, 20억이면 최소 20% 이상의 운영비를 확보하는 셈이다.
그래서 각 팀은 어떻게든 높은 순위로 올라가기 위해 애썼다.
“이제 스플릿 라운드까지 얼마 안 남았어. 마지막 경기까지 모든 걸 걸어야 해!”
스플릿 라운드 결정전까지 2경기 정도가 남은 상황에서 각 팀은 모든 것을 걸 각오로 경기를 준비했다.
* * *
고양과 울산의 아챔 8강 2차전 경기를 앞두고, 주말 리그 경기가 치러졌다.
『스플릿 라운드까지 오늘 경기를 포함해서 2경기 정도가 남았는데요! 이제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 각 팀들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올해는 모든 팀이 상금이 배분되는데요. 상위 스플릿에 들 경우 받을 수 있는 상금이 최소 20억입니다.』
『그렇습니다. 작지 않은 금액인데요. 이로 인해 조금은 안일해질 수 있는 중위권 팀들도 방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치러진 경기는 사활을 건 중위권 팀들의 반격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