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1차전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대한민국 대표팀을 격려하기 위해 나는 대표팀과 만났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정훈 감독과 인사를 나눈 뒤, 김한국과도 만났다.
“네가 한국이구나. 반갑다.”
“안녕하십니까!”
김한국은 마치 군기 잡힌 이등병처럼 긴장한 모습으로 나와 악수를 나눴다.
“결승골 축하한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 기대할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김한국을 비롯하여 선수들을 격려한 뒤, 마지막으로 이태수 코치를 만났다.
“이태수 코치님.”
“멀리서 여기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태수에게서 더 이상 사고 후유증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목발이나 휠체어가 없어도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정도로 일상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다.
내 생각을 눈치챈 그가 말했다.
“쪼그려 앉는 자세나 오랜 시간 서 있기는 조금 힘듭니다.”
“그렇군요.”
나는 그와 근황을 이야기했다.
“곧 회장 자리에 오르신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고맙습니다. 코치님의 활약도 매번 듣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나는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을 슬쩍 본 다음에 말했다.
“이번 대표팀을 두고 골짜기 세대라는 평가가 있더군요.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혹은 누가 부정적인 시선으로 우리를 평가할지 몰라도, 저는 이 선수들에게서 높은 가능성을 봤습니다.”
“코치님의 안목이라면 믿을 만하겠죠.”
내 말에 그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더니 곧 굳은 얼굴로 말했다.
“늘 궁금했습니다.”
“네?”
“대표님께서는 어째서 저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으시는 거죠?”
“그건…….”
나는 잠깐 대답을 머뭇거렸다.
“코치님을 믿으니까요.”
“…….”
나는 조금 분위기를 살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코치님께서는 감독이 되실 거죠?”
“네. 생각보다 이 일이 적성에 맞더군요.”
“다행입니다.”
다행히 이태수 코치는 예정된 미래로 나아가고 있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 나올 수 있게 만들어보겠습니다.”
이태수 코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나는 작게 웃었다.
“대표님께서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네. 곧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일정이 있어서요. 돌아가 봐야죠.”
“고양 유나이티드의 건승을 빕니다.”
나는 그렇게 모로코 일정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 U-17 대표팀은 조별리그를 통과하고 4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준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하면서 우승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골짜기 세대’라고 평가받던 대표팀은 훗날 U-20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한다.
그리고 그때 주축으로 나섰던 U-20 대표팀은 대한민국 역사상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대표팀의 중심에는 이태수가 존재했다.
* * *
AFC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울산과의 경기는 고양 더블은행파크에서 진행했다.
“홈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2차전 원정은 부담이 될 수 있어.”
곽찬구 감독의 말에 선수들도 굳은 얼굴로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같은 리그에서 뛰는 경쟁 팀이야. 누구보다 우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봐야지. 그리고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도 상대를 잘 알고 있고.”
“…….”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실수 하나가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경기는 가능한 실수가 없어야 해.”
같은 리그 팀을 만나 원정 거리나 시차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은 이득이었다.
허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안다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울산이 이번 시즌 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어도, 여전히 4위 안에 있는 강팀이다. 게다가 처음 출전하는 우리와 달리 상대는 3회 우승을 한 팀이고. 경험치 차이가 확실하게 존재해.”
실제로 울산은 리그에서는 조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AFC챔피언스리그에서는 선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지난 리그 경기에서 로테이션까지 가동했다.”
고양이 리그 2위인 서울과 일전을 벌이던 사이, 4위 울산은 10위 파주를 맞이해 로테이션을 가동하고 1:0 승리까지 거두었다.
“우리가 비록 지난 경기에서 패배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우리는 리그 1위를 유지하고 있어. 그리고 중요한 건 지난번 패배가 올해 유일한 패배라는 점이야. 한 번 졌다고 우리가 무너질 정도로 약한 팀이 아니라는 것은 더욱 분명한 사실이고.”
곽찬구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선수들도 감독의 진심 어린 말에 교감하고 있었다.
“울산을 잡고 4강으로 간다. 우리는 이것 하나만 생각하고 뛴다. 알겠나?”
“네!”
“좋아. 그럼 오늘도 훈련 열심히 하자!”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고양 더블은행파크입니다. 2028AFC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고양 유나이티드 대 울산 모터스의 경기를 생중계합니다.』
마침내 열린 AFC챔피언스리그 8강전.
경기장은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
올해 평균 관중 3만 명을 기록하고 있는 고양 유나이티드는, 이번 경기에서도 무려 3만 7천 명이 모였다.
『두 팀 모두에게 중요한 일전이 될 승부인데요. 오늘 경기 이전까지 두 팀의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이었죠? 고양은 서울에게 패배하면서 승점 2점 차이로 선두 추격을 받게 되었고요. 울산은 파주를 상대로 로테이션을 통해 승리를 거두면서 3위 전북과 승점을 3점 차이로 좁혔습니다.』
『고양은 패배의 후유증이 남아 있을 수 있고요. 울산은 최근 3연승으로 분위기가 좋습니다.』
곧이어 고양의 선발 명단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오늘 고양은 지난 리그 경기에서 퇴장당했던 김지우 선수를 포함해서 베스트일레븐이 모두 나왔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오늘 카초 선수가 이진수 선수 대신 왼쪽 측면 수비수로 선발 출전했습니다.』
『체력 안배 차원에서 지난 주말에 경기를 쉬었던 카초가 나왔는데요. 이렇게 되면 카초 선수는 오늘 AFC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됩니다.』
고양은 포백을 기반으로 4-1-3-2를 구성했다.
『오늘 상당히 공격적인 전술로 나온 고양인데요. 홈에서만큼 확실하게 승리를 가져가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자, 말씀드리는 순간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 시작합니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양 팀 선수들이 격돌했다.
와아아아!
동시에 경기장은 뜨거운 환호에 휩싸였다.
* * *
나는 VIP석에서 오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될까요?”
“글쎄.”
내가 신이 아닌 이상 경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어려웠다.
그래도 부정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
경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를 맞이한 우리 팀의 모습을 본 나와 김 비서 모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아쉽게 찬스를 날리는 광경을 보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도 고스란히 나왔다.
『오늘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지태훈 대표인데요. 한석원의 슈팅이 아깝게 위로 벗어난 광경을 보고 상당히 아쉬워합니다.』
“출발은 좋은데?”
울산을 상대로 초반에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진행하는 우리 팀을 보고 조금은 안도했다.
이후 몇 차례 좋은 기회들이 왔지만 아쉽게 득점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태훈 씨, 전화 왔어요.”
“전화?”
“그, 아빠요.”
“어? 김 이사님?”
갑작스러운 김진철 이사의 전화에 나는 잠시 자리를 이탈했다.
“네. 그건 그렇게 처리해주시면 됩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전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아-
갑자기 경기장 안쪽에서 홈팬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순간 불길한 느낌을 받은 나는 빠르게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스코어를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고양 유나이티드 0:1 울산 모터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 태훈 씨가 잠깐 전화 받으러 나갔다 온 사이에 울산이 한 골 넣었어요.”
세상에, 그 잠깐 사이에 실점을?
분명 전화 받기 전까지 잘하고 있었는데?
“젠장.”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저 멀리 벤치에서 곽찬구 감독이 선수들에게 무어라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선수들은 잔뜩 굳어진 얼굴로 경기장을 뛰어다녔다.
『단 한 번의 실수가 고양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는데요. 스즈키 선수와 라시모프 선수 사이에 나온 패스 미스를 울산의 제레미 선수가 바로 득점으로 만들었습니다.』
한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었다가 이번 시즌 처음으로 K리그와 아시아 무대를 경험하는 제레미.
시즌 초반과 달리 현재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제레미가 모처럼 득점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솔직히 저놈은 볼 때마다 재수 없어.”
“네?”
김 비서가 내 말을 듣고 움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실실 웃고 있는 제레미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오래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친선경기를 치르다가 이진수의 뒤통수를 때렸을 때부터 비호감이었다.
그런데 우리 팀을 상대로 득점까지 하니 더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제레미가 공을 잡을 때마다 홈팬들의 거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우우우우-
거친 야유에도 제레미는 본인의 플레이에 집중했다.
울산은 득점 이후 한동안 주도권을 갖고 우리 팀을 몰아붙였다.
몇 번 위험한 상황이 나오기도 했지만, 골키퍼와 수비수들의 활약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반전이 끝났다.
“이런.”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반전을 마친 모습을 본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좀 아닌데.”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잠깐 자리를 이탈했다가 돌아온 김 비서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태훈 씨. 아무래도 영신전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무슨 일인데?”
“인수위에서 회장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 생겼데요. 그런데 자필 사인을 해야 한다고 해서요.”
“당장 해야 하나?”
“……네.”
“끄응.”
갑자기 일까지 터졌다.
경기 보기 전에 보통 관람에 집중할 수 있게 어지간한 일들은 다 처리하고 오는 편인데,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질 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가지.”
“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경기장을 벗어난 나는 영신전자로 향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급한 일을 마치고 나온 나는 뒤늦게 시간을 확인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잖아?”
시간은 어느덧 오후 10시를 넘기고 있었다.
“경기는 끝났겠네.”
오후 8시에 시작했던 경기는 이미 종료된 상태.
서둘러 경기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포털사이트로 들어간 나는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고양 유나이티드 3:3 울산 모터스]
경기는 난타전을 펼친 채 무승부로 마무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