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어어! 퇴장입니다!』
캐스터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동시에 경기장이 술렁거렸다.
홈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양 팀 선수들의 분위기는 상반되었다.
하늘 높이 빨간색 카드를 들고 있는 주심과 그 앞에 서 있는 김지우는 당황했다.
『주장인 김지우가 주심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고양 선수들은 혼란스러웠다.
사건은 이랬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양 팀은 속공을 펼쳤다.
그러던 중, 페리시치가 라시모프를 제치고 순식간에 찬스를 만들었다.
위기를 느낀 김지우가 발을 길게 뻗으며 태클을 시도했다.
문제는 태클 과정에서 스터드가 너무 높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김지우의 스터드는 페리시치의 무릎에 닿았고, 페리시치는 비명과 함께 넘어졌다.
고통스러워하는 페리시치를 본 주심은 빠르게 의무팀을 투입했다.
김지우는 의도적으로 올린 것이 아니라고 외쳤지만, 스터드가 올라간 상태에서 벌어진 태클은 의도와 상관없이 카드가 나왔다.
그리고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한 주심은 가차없이 레드카드를 꺼냈다.
『아! 의무팀에서 페리시치가 뛸 수 없다는 사인이 들어왔네요!』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양은 김지우가 퇴장당하고, 서울은 페리시치가 부상으로 이탈합니다!』
양측 모두 주요 선수가 이탈했다.
여기서 더 불리한 팀은 고양이었다.
수적 열세에 놓인 고양은 남은 시간을 위태롭게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우우-
야유로 가득 찬 경기장은 한동안 소란으로 시끄러웠다.
그사이, 김지우는 쉽사리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주장으로서 중요한 경기에서 퇴장을 당한 충격이 너무 컸다.
그때였다.
“아! 좀 빨리 나가요!”
오늘 서울의 수비수로 선발 출전했던 한동수가 김지우의 등을 강하게 쳤다.
순간적으로 김지우의 몸이 앞으로 살짝 밀렸다.
그걸 가까이에 지켜본 스즈키가 한동수의 어깨를 밀치며 외쳤다.
“코노야로오(この野郎)!”
“이 일본놈이 뭐라는 거야!”
“버르장머리 없는 놈!”
“이 개새끼가!”
스즈키가 한국어로 버르장머리 없다고 외치자 한동수가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양 팀 선수들이 뒤엉켰다.
“야! 뭐 하는 거야!”
“말려! 빨리!”
“하지 마! 그만해!”
선수들이 충돌한 두 선수를 뜯어말렸다.
마침 주심은 고양 벤치로 가서 곽찬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라서 다시 필드로 뛰어갔다.
부심까지 뛰어 올라와 빠르게 두 선수를 말린 뒤, 주심이 상황을 진정시키고 두 선수를 불렀다.
“이 자식이 팔로 쳤음. 우리 주장.”
“아놔. 시간 없는데 퇴장당한 선수가 안 나가니까 빨리 나가라고 한 겁니다.”
“둘 다 진정해. 그리고 한동수. 아무리 그래도 밀치면 안 돼. 스즈키. 그쪽도 너무 격하게 반응하지 말고.”
주심은 카드를 꺼내려다가 참았다.
경기 분위기가 너무 격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 자칫 분위기가 더 격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 구두로 경고 준다. 두 사람 다 다음번에는 바로 카드야. 알겠지?”
“알겠습니다.”
“료카이.”
그렇게 상황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큰일이야.’
김지우의 퇴장으로 곽찬구 감독은 고민이 많아졌다.
“이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나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감독님.”
수석코치와 미하엘 코치가 다가와 곽찬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포백으로 바꾸고, 역습 위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어. 지금 선수를 교체하기도 애매하고.”
곽찬구 감독은 직접 선수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전술에 변화를 주었다.
“석원아, 네가 올라가 있어라! 나머지는 다 밑으로 내려와!”
고양이 주저앉은 플레이를 하자, 반대로 서울은 라인을 적극적으로 올렸다.
“밀어붙여!”
히카르두 실바 감독의 적극적인 지휘 아래, 서울이 고양을 밀어붙였다.
고양은 몸을 사리지 않은 플레이로 서울의 파상공세를 막아냈다.
『정말 양 팀 선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뛰고 있습니다! 한쪽은 일방적인 공격을 하고, 한쪽은 계속해서 방어하고 있는데요! 아직까지 고양은 뚫리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고양의 홈팬들은 두 손을 꽉 쥐고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하지만 서울은 기어코 고양의 육탄 수비를 뚫어내고 말았다.
『득점입니다! 강유찬의 중거리 득점입니다!』
아크 정면에서 때린 슈팅이 그대로 밀집 수비마저 뚫고 고양의 골망까지 흔들어버렸다.
역전골을 만든 강유찬이 카메라가 있는 코너킥 방향으로 뛰어가 셀레브레이션을 펼쳤다.
서울 선수들이 강유찬을 끌어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고양 선수들은 참담한 표정을 드러내었다.
“괜찮아! 아직 할 수 있어!”
“그래! 아직 시간 있어! 괜찮아!”
박형우를 포함한 베테랑 선수들이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서울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팀이었다.
결국,
삑! 삐익! 삑!
『네, 경기 끝났습니다! 고양과 서울의 두 번째 맞대결에서 서울이 고양을 3:2 제압하며 승리를 가져갑니다!』
『후반전에 김지우 선수의 퇴장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이렇게 되면 서울은 고양을 승점 2점 차로 좁히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고양은 오늘 경기 이전까지 리그 무패를 달려오다가, 오늘 그 기록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고양이 오늘 패배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한 팀이고요. 언제든지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합니다.』
『네, 그럼 저희 중계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 * *
“깨져 버렸군.”
눈앞에서 무패 기록이 깨진 것을 본 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도 만만치 않네.”
전통의 강호였던 전북과 울산이 이번 시즌에는 스스로 미끄러지면서 3, 4위로 밀렸다.
그 틈에 서울이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은 공식경기 12경기 전승행진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몇 번 무승부를 기록하는 동안 전승을 거둔 서울은 승점을 2점 차까지 좁혔다.
“실바 감독이 대단하네. 시즌 초반에 봤던 서울하고 지금의 서울은 완전히 달라.”
이번 경기를 통해 외국인 감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외국인 감독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물론 감독을 당장 교체할 생각은 없었다.
곽찬구 감독도 지금 충분히 잘해주고 있었으니까.
“아쉽지만 남은 경기를 잘 치러야지.”
9월 말까지 정규리그가 진행되고, 10월 초부터 스플릿 라운드가 진행된다.
이미 우리 팀은 상위 스플릿라운드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상위 스플릿 마지노선인 6위와 승점 차이가 있었다.
“이제 챔피언스리그인가.”
오늘 경기 이후 우리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른다.
이번 시즌 우리의 목표는 최소 2개 이상의 우승트로피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중 아시아챔피언스리그는 리그 우승 못지않게 중요했다.
“지켜봐야겠군.”
내 시선은 경기장을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선수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 * *
고양의 무패 기록이 깨지면서, 우승경쟁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런 것과 별개로 고양은 다가올 아시아챔피언스리그 8강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훈련하던 선수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야, 새벽에 경기 봤냐?”
“어. 요한이 잘 뛰더라.”
시즌을 시작한 스코틀랜드리그.
셀틱 이적 후, 프리시즌을 통해 경기력을 점검했던 박요한은 2라운드 마더웰과의 경기에서 마침내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그 골 장면 봤냐? 야, 요한이 걔는 무슨 적응 기간도 없는 것 같아.”
“그 라인 깨고 들어가는 거? 역시 그거 하나는 잘하더라.”
박요한은 데뷔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2골 모두 자신의 전매특허인 라인브레이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면서 득점까지 만들었다.
이러한 박요한의 활약은 기사로까지 나왔다.
“야, 오늘 U17 월드컵 시작한다며?”
“그 우리 팀 유스도 갔다던데.”
“그래? 누구?”
“김한국.”
“엥? 이름이 한국이야?”
“어. 특이하지? 그래서 기억한다.”
“포지션이 뭔데?”
“뭐더라. 공격수인가? 그러던데.”
고양 유나이티드의 산하 유소년 팀인 백송고등학교 축구부에서 활약하는 김한국.
그가 이번에 U-17 월드컵 본선 팀에 합류했다.
지역 예선을 거치면서 몇 차례 득점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냐?”
“아마 이번에 차출된 애들이 골짜기 세대라서 그럴 거야.”
“아아.”
골짜기 세대.
축구에서 골짜기 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특출난 부분이 없으면 지칭하는 단어였다.
보통 스타플레이어의 유무를 두고 이 같은 말을 쓰기도 했다.
이번 U17 월드컵 멤버들은 스타플레이어로서 가능성 높은 모습을 보인 선수는 없었다.
“한국이 파이팅이다.”
“형들이 응원한다.”
선수들은 멀리 모로코까지 떠난 유망주의 선전을 기대했다.
그리고…….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반갑습니다.”
지태훈 차기 회장과 김유리 비서가 모로코에 도착했다.
* * *
내가 모로코까지 날아온 이유가 있었다.
협회의 메인스폰서로 선정되고 처음으로 치르는 국제대회였다.
대한축구협회는 나를 위해 일부러 비행기표와 경기장 티켓을 함께 보내며 초대했다.
여기에 우리 유소년팀에 속해 있는 김한국과 이태수 코치가 있었다.
이태수 코치의 첫 국제무대 데뷔전이었다.
아직 감독은 아니었지만, 이태수는 대표팀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현 U17 대표팀 감독인 성정훈은 그런 이태수 코치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많은 부분을 의지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기에 더욱 기대가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경기 날이 다가왔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모로코에서 열리는 U-17월드컵 1라운드 대한민국 대 카메룬의 경기를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상대 팀은 바로 카메룬.
카메룬은 아프리카 U-17 네이션스리그컵 준우승 자격으로 이번 대회 본선에 올라오게 되었다.
아프리카 팀답게 카메룬은 개인 기술이 능했다.
실제로 카메룬에는 ‘부캄비’라는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의 활약으로 준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선발로 출전했다.
그런 카메룬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쉽지 않은 경기를 치를 거라고 전문가들이 예상했다.
그런데…….
『기횝니다! 측면에서 빠르게 뛰어가는 이제후! 김한국도 같이 뛰는데요! 이제후 패스합니다! 김한국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시작부터 경기 주도권을 잡은 대한민국이 김한국의 득점으로 앞서나갔다.
“좋았어!”
“꺄! 골이에요!”
김한국의 득점을 본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옆에 있던 김 비서도 환호했다.
마침 경기장에는 모로코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있었다.
경기장을 찾은 한인들은 득점 장면을 보고 손에 쥔 태극기를 흔들면서 환호했다.
『우리 현지 교민분들도 신나서 환호하고 있습니다!』
김한국의 득점 이후 대한민국은 시종일관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되게 팀이 단단해 보이네.”
전술적으로 무언가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팀이 단단하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들이 각자 위치에서 편하게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태훈 씨. 제가 듣기로는 이태수 코치가 선수들의 포지션을 정확히 알고 기용했다고 해요.”
“그래? 그건 어떻게 알게 됐어?”
“김한국 선수 있잖아요. 저 선수 원래 측면에서 뛰던 미드필더였데요. 그런데 이태수 코치가 권유해서 중앙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오.”
확실히 이태수 코치는 예사롭지 않다. 미래의 세계 최고의 감독답다.
『주심이 휘슬을 붑니다! 대한민국이 카메룬을 2:0으로 꺾고 1라운드를 승리로 장식합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예상과 달리 카메룬을 상대로 선전하며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