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212화 (212/272)

212

일전에 지태선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정치권에서 너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어.”

“저를요?”

“고양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이지.”

“…….”

그렇게 말한 그는 나에게 고양특례시의 정치적 상황을 알려주었다.

“고양은 다른 지역구보다 상당히 균등하게 나누어져 있어. 그래서 그곳 지역구 의원들은 어떻게든 이 균형을 깨고 싶어하지.”

고양시는 2022년 108만에 달성하고, 2026년 110만을 넘겼다.

110만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도시가 이토록 균등하게 표를 나눠 갖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 균형을 깨버릴 수 있는 일이 나타난 거야.”

“설마 그게 저입니까?”

“맞아.”

지태선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고양을 연고로 둔 고양 유나이티드와 영신그룹. 그 2개의 거대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 이제 겨우 30대에 불과한 젊은 회장의 등장은 도시 전체를 흔드는 파격적인 일이지.”

“저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만.”

“이건 자네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야. 그만큼 자네의 파급력은 대단하거든.”

“…….”

“만약 자네가 특정 누군가를 지지하거나 저격한다면, 대상은 엄청난 영향을 받게 돼.”

나는 문득 한 인물이 떠올랐다.

“이건 마치 제가 지태완처럼 됐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부정하지 않겠네. 허나, 자네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

그러면서 지태선은 나에게 충고를 했다.

“제1여당인 시민당, 제1야당 대한당, 소수 진보정당인 청년당까지. 자네를 노릴 거야.”

“…….”

“이건 기회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어. 정치권의 관심은 양날의 칼과도 같은 일이니까.”

그 말에 나도 동의했다.

예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나에게 해줬던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재계는 언제든 연결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요.”

“그렇지. 돌아가신 회장님께서도 정치와 재벌가의 관계를 늘 경계하셨지. 서로가 필요에 의해 거래를 하긴 했어도, 그것이 국익에 피해를 끼치지 않은 선에서 거래하셨고.”

“그랬군요.”

“너도 회장님처럼 정치를 이용해. 국익에 피해가 가지 않은 선에서 말이야.”

“그럼 제가 의원님을 이용해도 된다는 뜻인가요?”

내 물음에 지태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얼마든지.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너를 잘 부탁한다고 부탁까지 하셨으니 말이야.”

“…….”

“혹시나 지역구 의원들이 자네를 피곤하게 만든다면 나에게 연락하게. 시민당 소속 의원들에게는 내가 어느 정도 언질은 했으니 크게 귀찮게 굴지는 않을 거야.”

“감사합니다.”

* * *

“반갑습니다. 박정민입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일전에 시축 행사 때 오셨죠?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하. 기억하고 계셨군요.”

대한당 소속 박정민 의원이 고양 유나이티드를 방문했다.

50대 초반에 시의원에 당선된 그는 원래 고양시에서 사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듣자하니 사업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드라마 제작 관련 사업을 했었죠.”

고양에는 드라마 제작 센터부터 다양한 미디어 업체들이 즐비했다.

시 차원에서도 오랜 시간 미디어 관련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빛마루를 비롯하여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

박정민도 그런 시의 지원을 받아 드라마 제작 스튜디오를 운영해 왔던 것이다.

“드라마 스튜디오에서 시의원이라니. 대단하십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저보다 지태훈 대표가 더 대단하지요. 30대에 이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저야 가문의 후광이 있었으니까요.”

내 말에 박정민이 묘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건 그렇고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무슨 의도로 나를 만나자고 하는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물어봤다.

그러자 박정민이 내 안색을 살피며 대답했다.

“지역에 대단한 헌신을 하는 유지와 지역 발전을 위해 움직이는 시의원이 만난다면 무언가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대표님께선 이 지역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나한테 뜬금없이 지역 미래를 물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물음이기도 했다.

“그 어느 곳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도시죠.”

“호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고양시는 그 어떤 도시보다 빠르게 성장해 왔습니다. 110만이 넘는 특례시가 된 지금도 개발이 진행 중이고요.”

“그렇군요.”

박정민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물론, 이건 겉으로 보이는 것뿐이죠. 속은 다릅니다.”

“음?”

박정민이 의아한 표정을 드러냈다.

“급속 성장으로 인해 여전히 지역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고, 행정력은 110만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죠. 여기에 재정자립도 또한 타 대도시에 비하면 현저히 낮고요.”

“…….”

“그래서 여전히 서울의 위성 도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죠. 이곳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삶의 질은 높지만, 이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울이 없으면 안 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죠.”

내 말을 들은 박정민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들어보니 의아한 부분이 있군요. 그런데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 보시는 이유가 뭡니까?”

“이 도시는 주인이 없습니다.”

“…….”

“제가 정치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이곳은 겉으로는 균등하게 보일지언정,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지역 불균형을 유발하고 있죠.”

“지역 불균형을 유발한다?”

“그 누구도 주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세력이 어떤 정책을 내놓았을 때 다른 세력이 비슷하게 견제구를 던지니, 원활한 결과가 나오지 못하죠.”

“…….”

“지역 공무원들은 그들의 알력 싸움에 눈치만 보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기도 하죠.”

급성장한 1기 신도시가 만들어 낸 적폐였다.

하지만 이 적폐만 걷어낼 수 있다면, 이 도시는 여전히 성장 가능한 도시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리더가 필요합니다. 혁신적이면서도 가치관이 뚜렷한 리더가 필요하죠. 이런 리더가 도시를 이끈다면 고양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높은 도시가 될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을까?

박정민이 조금은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허. 대표님이 저보다 더 잘 보시는 것 같습니다.”

“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설마 이 정도로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어쩌면 제가 대표님을 잘 찾아온 것 같군요.”

“그런가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나에게 박정민이 마침내 속내를 드러냈다.

“대표님. 저의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제 목표는 고양특례시장입니다.”

“…….”

“시장이 되어 이 지역을 바꿔보고 싶죠. 방금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전히 가능성이 있는 도시로 말이죠.”

박정민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와 함께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시장이 될 수 있게 도와준다면, 저도 대표님의 사업을 도와드리죠.”

시장이 목표였던 건가.

그의 속내를 알게 된 나는 일부러 한 발 뺐다.

“저는 누구의 편에 설 생각도 없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기업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누구의 편에 서게 된다면, 저는 큰형과 똑같은 사람이 될 겁니다.”

박정민은 손가락으로 무릎을 살살 두드렸다.

“……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지태선 청와대 비서실장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친인척일 뿐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죠.”

“그렇군요.”

대답을 들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저야말로.”

박정민이 자리를 떠나고 김 비서가 나에게 다가왔다.

“태훈씨.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응? 어떻게 하긴. 저 양반 또 찾아올 거야.”

“네?”

“야망이 큰 사람이야. 오늘은 그냥 서로 안면 정도 튼 거고.”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함께 할 생각인가요?”

“아니.”

함께 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나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말판으로 사용할 생각이다.

* * *

평소처럼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는데, 천지원 이사가 나를 찾아왔다.

“대표님. 대한축구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9월 A매치 때 저희 홈 경기장을 사용하고 싶다는군요.”

“비용은 어느 정도 준다던가요?”

“평균 정도 금액을 제시했습니다.”

나는 조금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승인해 주세요.”

“하지만…… 시즌 중에 잔디 관리 문제나 관중석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굳이 대한축구협회와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꿀리게 나갈 것도 없지만 말이다.

“잔디 관리 비용 부담금을 청구하세요.”

“네.”

이 정도면 서로 충분히 조건이 맞겠지.

이렇게 업무 하나를 해결한 뒤, 나는 조금 일찍 퇴근했다.

“먼저 갈게.”

“경호원 호출할게요.”

김 비서가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을 불렀다.

영신그룹 회장에 오르는 것이 확정된 이후, 그룹 차원에서 나에게 회장 경호 인력을 붙여 주었다.

“김 비서는 일 마치면 퇴근해.”

“제가 같이 안 가도 괜찮으시겠어요?”

“응. 괜찮아. 어차피 아버님도 계시고, 다 아는 얼굴들이니까.”

“알겠어요. 혹시나 제가 필요하면 바로 연락주세요.”

“응.”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기하고 있던 차량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 박준후 팀장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 제가 너무 기다리게 했나요?”

“아닙니다. 타시지요.”

박준후 팀장은 회장단 비서팀으로 다시 복귀했다.

그는 내 경호와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

“출발하죠.”

“네.”

차가 출발했다.

그렇게 일산을 벗어난 차량은 한참을 달려 청담동의 한 고급 한식당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다수의 인원이 먼저 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닙니다.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김진철, 용준형, 강민수 등,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조촐하지만 이렇게라도 대접하기 위해 오늘 모이게 됐습니다.”

“하하. 저희는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상태에서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회장님의 새 시대를 위해 건배합시다! 다 같이 위하여!”

“위하여!”

우리 모두 잔을 하늘 높이 올리며 건배했다. 그러고는 금방 잔을 비운 다음 말했다.

“이렇게 저를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강민수 사장의 말이 믿음직하게 들려왔다.

강민수를 포함해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믿음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새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꿈과 미래, 함께 펼쳐나가 봅시다.”

* * *

시간은 7월을 지나 8월로 넘어가고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후반기에도 커다란 돌풍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어, 조금은 믿을 수 없는 상황인데요. 그토록 단단했던 고양이 오늘 무너지고 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는 홈팬들도 상당히 당황한 모습입니다.』

【고양 0:4 포항】

홈에서 포항과 맞붙게 된 고양.

포항은 현재 리그 7위에 있고, 고양은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객관적으로 고양이 우세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 예상과 달리 고양은 전반에 3골을 실점하고, 후반 시작과 동시에 1골을 추가로 실점하고 말았다.

이번 시즌 평균 1.58로 최소 실점을 자랑했던 고양이 포항의 화력에 무너져 내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수비의 핵심이었던 라시모프가 전반 초반 상대 공격수와 경합 과정에서 쓰러졌다.

부상으로 교체아웃 된 뒤, 포항에게 연달아 실점을 허용해 버린 것이다.

무려 4골이나 실점하게 된 고양은 홈팬들 앞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경험하게 놓이게 생겼다.

『여전히 무패 행진 중이었던 고양인데요. 오늘 경기에서 그 무패 기록이 깨지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필드를 누비는 고양 선수들의 멘탈이 흔들렸다.

그런 상황에서 주장인 김지우가 외쳤다.

“너희 이대로 경기 끝낼 거야!?”

“……!”

“잊었어? 우리는 지금 고양 유니폼을 입고 뛰는 선수들이라고! 팬들이 지켜보고 있어! 가족이 지켜보고 있다고! 여기서 포기할 거냐고!”

주장의 간절한 외침에 선수들이 흔들렸던 멘탈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양의 코너킥인데요! 호프만 올립니다! 박형우 헤디이잉! 들어갑니다!』

박형우의 헤딩 득점을 시작으로,

『자, 카초 선수가 교체로 들어갑니다. 이진수 대신 들어가는데요. 곽찬구 감독이 전술적인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자, 카초 들어가자마자 크로스 올립니다! 박요한이 받는데요! 박요한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박요한의 득점이 나왔다.

이제 스코어 2:4가 되었다.

고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카초, 공을 몰고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가는데요! 태클에 넘어집니다!』

『주심이 찍었습니다!』

상대 반칙으로 얻어낸 PK.

『카초 선수가 찰 준비를 하는군요. 본인이 얻어낸 PK를 본인이 준비합니다.』

『카초, 차는데요! 들어갑니다!』

PK를 성공한 카초가 환호했다. 입단 후 K리그 데뷔골을 신고한 카초에게 몰려든 동료들이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3:4까지 치고 올라온 스코어.

하지만 한 번 불을 뿜기 시작한 고양의 화력쇼는 멈추지 않았다.

『스즈키가 호프만에게, 호프만 패스하는데요! 박요한인데요! 박요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립니다! 박요한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박요한의 득점이 터지면서 기어코 스코어는 4:4가 되었다.

불과 30분 만에 4골을 몰아친 고양은 결국 기적을 만들어냈다.

『다시 코너킥인데요! 이번에도 호프만이 올려줍니다! 들어갑니다!』

『오우~ 백종수의 골이에요!』

『이야아아아!』

『이게 말이 되나요! 0:4에서 5:4가 됩니다!』

『이게 고양이죠! 바로 고양입니다!』

기어코 역전골까지 만든 고양이었다.

역전골의 주인공인 백종수가 고양 벤치로 뛰어갔다.

그러자 벤치에 있던 감독과 코칭스태프, 대기 선수들, 그리고 필드에 있던 모든 선수가 뛰어와서 백종수를 끌어안고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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