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K리그의 여름을 뒤흔들 소식이 전해졌다.
【속보】유벤투스 카초, 고양 유나티드 간다. BBC 포함 다수의 유럽 매체 긴급 보도.
【속보】고양 유나이티드, 유벤투스와 카초 이적 합의 마쳐. 곧 메디컬테스트 진행 예정.
-뭐? 진짜 카초가 온다고?
-세상에, 호프만이 온 것도 놀라운데 누가 온다고? 카초?
-유벤투스 레전드가 K리그에서 뛴다고? 말이 돼?
카초는 호프만보다 더 명성을 떨친 월드클래스 선수였다.
유벤투스에서만 8년을 뛰며, 세리에A 300경기 이상을 뛰었다.
여기에 폴란드 국가대표에서 96경기를 소화하며 센츄리클럽 가입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국가대표로 뛰면서 유로 대회와 월드컵 등 주요 대회에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런 대단한 선수가 K리그로 온다고 하니 국내 축구를 넘어 아시아 전체가 들썩였다.
【차이나스포츠】무섭게 성장하는 K리그. 유벤투스 카초도 K리그로 향한다.
【산카이】챔피언 노리는 고양의 광폭 행보. 카초 영입도 성사 앞둬.
중국과 일본 언론에서도 속보로 다룰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안 그래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K리그가 더 위협적으로 성장한다며 불만 어린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대표님. 유벤투스 설득도 끝났습니다.”
선수가 이적에 동의하면서 이적은 급물살을 탔다. 여기에 슈퍼에이전트 베르나르와 로치오 단장까지 나서면서 유벤투스도 카초의 이적을 막을 수 없었다.
“사인하시죠.”
결국 여름 이적시장에서 ‘빅 사이닝(big signing)’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카초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한 카초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들로 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불과 반년 전에 필립 호프만이 인천국제공항에 왔을 때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카초! 카초! 카초!”
“사인해 주세요!”
카초는 자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을 위해 웃으며 사인을 해주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경호원들이 카초를 경호하면서 안전하게 팬 서비스를 진행한 카초는 언론과 짧게 인터뷰를 가졌다.
“K리그로 이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국은 대단한 국가입니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이 증명하고 있죠. 저는 고양의 적극적인 제안을 받았고, 특별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축구를 이곳에서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을요.”
“일각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생각으로 이적했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계속 축구 선수로 뛸 겁니다. 소속팀이 고양으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앞으로도 저는 선수로 뛸 겁니다.”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가요?”
“K-POP 노래를 종종 듣습니다. 앞으로 하나씩 알아갈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끝낸 그는 메디컬테스트를 위해 고양 유나이티드로 향했다.
그리고 이틀 후, 마침내 오피셜이 떴다.
【오피셜】K리그 등록명 ‘카초’, 고양 유나이티드 공식 입단. 등번호 41번.
【오피셜】양측 합의로 카초 이적료 비공개 …… 3,000만 유로 추정.
고양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카초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찍은 오피셜 사진이 기사와 함께 나왔다.
마침내 카초를 영입한 고양 유나이티드.
이적료는 양측이 합의하여 비공개로 했으나, 약 3,500만 유로에 합의를 했다.
유벤투스는 그간 팀을 위해 헌신한 카초를 배려해 이적료를 최소한으로 받았다.
고양은 이적료를 낮춘 대신 카초에게 높은 입단 보너스를 제공했다.
연봉 또한 K리그 최고 수준으로 보장했다.
그렇게 카초의 이적이 마무리되었다.
* * *
카초의 영입에 고양 선수들도 상당히 놀라워했다.
특히 그 누구보다 놀라워하는 인물이 바로 호프만이었다.
“호프만. 너 카초 알아?”
동료들의 물음에 호프만이 이렇게 대답했다.
“무서울 정도로 축구 잘하는 놈.”
“오.”
사실 호프만은 이미 카초와 한 번 붙어본 기억이 있었다.
과거 도르트문트에서 뛰던 당시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유벤투스와 맞붙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둘이 처음 만났다.
유벤투스는 도르트문트의 에이스 호프만을 막기 위해 카초를 원 포지션인 중앙 수비수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렸다.
카초는 호프만을 전담 마크하면서 그야말로 꽁꽁 묶었다.
결국 호프만이 묶인 도르트문트는 유벤투스에게 패배했다.
그렇기에 호프만은 그 누구보다 카초에 대해 잘 알았다.
‘설마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호프만은 지금도 카초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마침내 같은 팀 동료로서 만나게 됐다.
“자, 새롭게 합류한 동료를 소개하겠다.”
새롭게 입단한 동료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황진용과 카초가 팀 동료들과 첫인사를 나누었다.
“반가워. 황진용이야.”
황진용이 먼저 인사를 하자 선수들은 반갑게 환호했다.
이어서 카초의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다. 카초다.”
어설픈 한국어.
그래도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급하게 통역사에게 배웠다.
1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 후, 선수들이 탄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우와아아!”
짝짝짝-.
황진용과 전혀 다른 뜨거운 환호였다.
“잘 부탁한다.”
카초는 그렇게 말하고 호프만과 눈이 마주쳤다.
그를 본 카초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올라간 입꼬리를 본 호프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고 훈련을 진행했다.
훈련하는 동안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이 카초를 집중적으로 찍었다.
“우와.”
카초가 골을 터치할 때마다 기자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걸 본 일부 선수들이 속닥였다.
“슈퍼스타는 다르구나.”
“우리 팀에 뭔가 스타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선수들은 시기나 질투보다 앞으로 있을 치열한 경쟁을 걱정하면서도 투지를 함께 드러냈다.
축구선수로서 본능이었다.
그렇게 훈련이 끝나고 선수들이 훈련장을 벗어나는 와중에, 카초가 호프만에게 다가갔다.
“안녕?”
“…….”
“나 기억하지?”
정겹게 말을 거는 카초와 달리 호프만은 어색해했다.
“기억하지.”
“다행이다. 사실 조금 걱정하기는 했거든, 낯선 땅에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아는 사람 만나니까 기쁘다.”
“그런가?”
“어. 혹시 너는 별로야?”
“아니. 그냥 뭐랄까…… 아니다. 됐다.”
호프만은 손을 내밀었다.
“같은 팀으로서 잘 부탁해.”
“어. 나야말로.”
카초가 호프만의 손을 맞잡으며 악수했다.
그런 두 사람 사이를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여, 우리 새 친구들이 왔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지?”
“……형우 형.”
“자고로 한국은 같이 밥 먹으면서 친해진다고. 가자. 밥 사줄게.”
“……!”
어리둥절해하는 카초를 향해 박형우가 웃으며 어깨동무했다.
그렇게 그날 세 사람은 함께 식사를 하며 친분을 다졌다.
* * *
카초의 영입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다.
“팀을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평균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흐음, 그게 무슨 말씀이죠?”
로치오 단장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유럽에 있는 주요 팀들은 자기 팀에 대해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분석합니다. 실시간으로요.”
“흐음.”
“우리도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팀을 발전하려면, 실시간으로 우리 팀을 분석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방법이 있을까요?”
“구단에서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죠. 그렇다면 일을 맡기면 됩니다.”
“오호.”
로치오 단장은 나에게 괜찮은 회사들을 소개했다.
“영국 런던에 있는 풋볼지니어스, 독일 뮌헨에 있는 스포르트위센샤프트. 이 두 곳이 분석을 꽤 잘합니다.”
그는 나에게 서류를 건넸다.
서류를 읽어본 나는 짧게 감탄했다. 그런 나에게 로치오 단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두 곳 모두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해, 선수 개개인과 선수단 전체를 수치화해서 통계를 내는 곳입니다. 파트너쉽 가격은 제법 쌔긴 해도, 레알 마드리드, 리버풀, 맨체스터시티 등 규모가 있는 클럽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죠.”
“두 곳 중에 하나만 선택하면 되나요?”
“네. 하나만 선택하셔도 되고, 두 곳 모두 이용해 보셔도 됩니다. 어느 한 곳의 정보보단 선택지를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렇군요.”
로치오 단장이 사업적으로 제안한 부분은 우리 팀에게 있어 정말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거라면 곽찬구 감독에게도 엄청나게 도움이 되겠군요.”
“네. 유럽의 빅클럽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적으로 전술을 짭니다.”
“우선 샘플 파일이라도 받아보고 싶은데, 일을 진행시켜 보죠.”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 * *
아무리 일에 치여 살아도, 내가 꼭 지키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자친구와의 데이트였다.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 내지 열흘에 한 번은 어떻게든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오늘, 나는 김 비서와 오붓하게 둘이서 시간을 보냈다.
“정말 이 정도면 돼?”
“네. 괜찮아요.”
“나는 김 비서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은데. 말만 해. 뭐든 해줄게.”
“정말요?”
“근데 일단 밥은 먹고. 이 집 분식 정말 맛있네.”
김 비서와 나는 백석역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분식집에 와 있었다.
김밥과 떡볶이 등 세트 메뉴를 시키고 맛을 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맛있죠?”
“응. 대박 맛있어.”
“여기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에요. 학생일 때 여기 종종 와서 사 먹고 그랬죠.”
“그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생각해 보면 나는 김 비서와 오랜 시간 함께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와! 지태훈이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데, 분식집에 몰려온 여학생들이 나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세상에 지태훈이야!”
“와, 태훈 오빠! 팬이에요! 사인해 주세요!”
여학생들의 공세에 순간 당황했다.
슬쩍 김 비서를 쳐다봤다.
“얼른 해주세요.”
“어? 어어.”
얼떨결에 연예인처럼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줬다.
그러다가 한 여고생이 김 비서를 보고 반응했다.
“어! 비서 언니 맞죠?”
“…어?”
“맞네! 와! 비서 언니! 저 비서 언니 팬이에요!”
“…….”
이번에는 김 비서가 당황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사인을 보냈다.
“뭐해? 얼른 해.”
“……아, 네.”
김 비서는 어색하게 여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까지 해줬다.
“두 분 너무 예뻐요! 꼭 결혼하세요!”
“맞아요! 꼭 결혼하세요!”
결혼하라는 여학생들의 말에 우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허허. 애들아. 그, 음, 고맙다.”
내 말에 김 비서가 발로 나를 툭 건드렸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한 나는 웃으며 여고생들에게 말했다.
“혹시 어느 학교 다니니?”
“저 백송고등학교요!”
사복을 입어서 몰랐다.
우리 학교 유소년 팀이 있는 백송고등학교 학생들이라는 말에 나는 놀랐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공부 열심히 하고. 근데 애들아, 미안한데, 우리가 아직 밥을 다 못 먹어서.”
“앗! 죄송해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우리는 적당히 식사를 마치고 분식집을 나갔다.
“김 비서 연예인 됐네. 학생들한테 사인도 해주고.”
“몰라요.”
“그나저나 아까 학생들이 했던 말 말이야.”
“네?”
나는 김 비서 앞에 서서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꼭 결혼하세요.”
“…….”
김 비서가 얼굴을 붉혔다.
“그, 학생들이 장난친 거겠죠.”
“근데 나는 장난이 아닌데?”
“네?”
놀라는 김 비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가자. 오늘은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