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카초.
원래 이름은 ‘알렉산더 카쉬초나프’이며,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출생했다.
폴란드 1부 리그 엑스트라클라사에 속한 레기아의 유소년으로 입단하며 축구를 시작했다.
18세에 프로 데뷔에 성공한 카초는 2년 정도 레기아에서 수비수로 뛰면서 프로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런 상황에서 이탈리아 세리에B 소속이던 파르마를 이끌던 알그레노 감독의 눈에 띄어 이적하게 된다.
그렇게 이탈리아 2부 리그를 시작한 카초는, 그해 파르마 승격에 일등공신으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알그레노 감독이 유벤투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카초도 감독을 따라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후 약 8년 동안 유벤투스 소속으로 뛰며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카초를 데려오자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처음 카초를 영입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는 로치오 단장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
세리에A 최고의 수비수이자 새로운 유벤투스 왕조의 일원이기도 한 그를 어떻게 영입한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그 정도로 잘난 선수가 굳이 K리그까지 와서 뛰겠는가.
필립 호프만과는 다른 케이스다.
호프만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는 선수라면, 카초는 완숙의 경지에 이른 선수다.
해외 축구를 관심 있게 본다면, 카초의 이름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을 정도로 명성도 높았다.
그런 그를 영입한다?
그런데 로치오 단장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죠.”
매력적인 파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그가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을 기점으로 카초의 계약 기간은 1년 남습니다. 그리고 카초는 유벤투스의 재계약 제안을 거절했고요.”
“호오.”
카초가 재계약을 거절했다는 이야기에 조금 놀랐다.
“아직 이 이야기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고요.”
“이걸 어떻게 아신 거죠?”
“카초 본인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
“카초는 유벤투스에서 이룰 수 있는 업적은 다 이루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동기부여도 떨어지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은 모양인 것 같습니다.”
“으음. 그럼 굳이 K리그가 아닌, 더 좋은 리그로 갈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프리미어리그라든지.”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갈 수 없습니다.”
“네?”
갈 수 없다니?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인가?
“카초 정도 레벨의 선수라면 소위 말해 빅클럽으로 이적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른 클럽들에는 카초 못지않은 훌륭한 선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죠.”
“…….”
“선수로서 경쟁해야 하지만, 새로운 리그에 적응하며 시간을 투자해야죠. 그러기에는 카초의 시간이 아깝습니다.”
“그렇다고 K리그로 온다고 해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닐 텐데요?”
“냉정히 이야기해서 유럽 5대 리그의 팀보다는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카초 정도 수준이면 금방 이곳에서 정상급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보고요.”
“흐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었다.
“선수 본인이 이곳에 올 마음이 있을까요?”
“설득해야죠.”
“…….”
뭔가 대단한 방법이 있는 줄 알았다.
조금은 실망스러운 기분이 드는데 로치오 단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베르나르를 이용하면 됩니다.”
“베르나르?”
“슈퍼에이전트 베르나르, 그가 데리고 있는 고객 중에 카초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로치오 단장을 통해서 베르나르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유럽의 슈퍼스타들을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는 베르나르는 소위 슈퍼에이전트로 불렸다.
과거 미노 라이올라나 조르제 멘데스 같은 슈퍼에이전트로 활약하는 그의 고객 명단에는 카초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베르나르는 철저하게 돈으로 움직이는 인물입니다. 과거에 저도 몇 번 상대를 했었죠.”
“그 말은…… 돈으로 베르나르를 매수하자는 말로 들리는데요?”
“전략이죠.”
로치오 단장의 계획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에이전트의 수수료를 최대한 많이 보장해서 카초를 설득하는 일을 맡기자는 것이다.
“선수를 설득하는 일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유벤투스는 어떻게 설득합니까?”
“그건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카초의 계약이 아직 1년 남은 이상, 유벤투스의 허락이 없다면 당연히 이적은 불가능하다.
로치오 단장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유벤투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압니다. 제가 직접 상대해서 결과를 만들어 오겠습니다.”
“좋습니다.”
로치오 단장의 자신만만한 대답과 함께 우리는 본격적으로 카초 영입을 위해 움직였다.
* * *
“선수 설득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잘 부탁합니다.”
우리는 베르나르가 만족할 만한 수수료 지불을 약속했다. 더불어 선수금으로 먼저 일부 금액을 지불하기까지 했다.
베르나르는 더없이 만족한 얼굴로 자신을 믿으라며 큰소리 탕탕치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그럼 저도 이탈리아에 다녀오겠습니다.”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예.”
로치오 단장은 유벤투스와 거래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사이 우리는 황진용 영입을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다시 돌아와 줘서 기쁩니다.”
“살면서 앞으로 제가 이 팀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네요.”
고향 팀으로 복귀하게 된 황진용의 기분은 묘했다.
한때 충성을 다했던 친정팀에서 쫓겨나듯 내쳐졌던 그가, 다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달라진 고양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세요. 그게 저희가 황진용 선수에게 원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사실 황진용은 전북과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난겨울에 잔류를 선택한 황진용은 박정혁 감독과 어떻게든 좋은 관계 속에서 계속 경기를 뛰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판이었다.
황진용을 처분할 생각이었던 박정혁 감독은 철저하게 그를 외면했다.
황진용도 그걸 알고 몇 차례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둘 사이에는 금이 갔고, 황진용도 팀에 대한 애정이 식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전반기 막판에 산드루가 큰 부상을 당했다.
산드루의 대체자가 없던 전북이기에 박정혁 감독은 부랴부랴 황진용을 다시 기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타이밍에 우리로부터 오퍼가 들어왔다.
이미 마음이 떠난 황진용은 전북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전북은 쉽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혹시나 이적이 무산될 확률이 있던 황진용은 불안에 떨었다.
그런데 전북으로선 거절하지 못할 이적료 80억을 내밀며 이적을 성사시킨 것이다.
처음에 황진용은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저한테 그렇게 많은 돈을 쓰신 이유가 뭡니까? 객관적으로 봐도 제가 그 정도 몸값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원래 우리 팀 선수였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얼마를 지불하든 상관없습니다. 구단주도 그걸 원했고요. 당신은 그저 우리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주세요.”
“……!”
그렇게 황진용은 무사히 우리 팀에 합류했고, 오피셜까지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카초 이적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유벤투스가 이적료로 약 6,000만 유로를 원했습니다.”
“6,000만 유로라…….”
1억 유로를 사용해서 영입한 필립 호프만보단 조금 싼 가격이다.
그래도 작지 않은 금액이다.
조금 고민이 되긴 했다.
자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 6,000만 유로를 지불하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로치오 단장이 말했다.
“대표님.”
“네.”
“제가 직접 카초를 만나보겠습니다.”
“단장님께서?”
카초는 베르나르가 설득하고 있지 않나?
“베르나르가 어느 정도 설득은 했을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정리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 * *
“와, 단장님?”
“잘 지냈나? 카초.”
로치오와 카초, 두 사람이 밝은 얼굴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금방 다시 볼 줄은 몰랐어요.”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그런 법이야.”
모히칸 머리에 근육질 몸매를 한 191cm의 카초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자네가 처음 유벤투스 왔을 때가 기억나는구만.”
“애송이 시절이었죠.”
“후후. 자네가 무척 잘 성장해줘서 기뻐.”
“단장님 덕분이죠. 알그레노 감독님이 아버지 같았다면, 단장님은 뭐랄까, 어머니? 같은 분이었으니까요.”
알그레노 감독이 유벤투스 감독으로 부임한 뒤 자신을 원한다고 이야기했었지만, 당시 유벤투스 이사회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파르마를 승격시킨 공은 인정하지만, 그 정도로는 유벤투스에서 경쟁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사회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 의견을 뒤집은 인물이 바로 로치오 단장이었다.
로치오 단장은 반드시 카초를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영입까지 성공했다.
그리고 이 영입은 실로 대박이 났다.
“저는 단장님께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저를 유벤투스에 뛰게 만들어줘서 지금의 제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로치오 단장은 가볍게 웃었다가 곧 굳은 얼굴로 바뀌었다.
“카초. 부탁이 있어.”
“…….”
“나하고 한국으로 가자.”
그 말에 카초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베르나르 씨가 한국으로 이적하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했을 때, 짐작은 했었는데…… 이 모든 상황이 전부 단장님이 만드신 거죠?”
“맞아.”
“역시나.”
로치오는 궁금한 듯 물었다.
“베르나르가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았나?”
“한국에 있는 K리그. 그곳에 고양 유나이티드라는 팀에서 저를 원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었죠.”
“그랬군.”
“근데 단장님이 그곳에서 단장으로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어요.”
“이상한가?”
“네. 조금은요. 그래도 이해는 돼요. 단장님이시니까.”
로치오는 웃어 보였다.
“단장님. 유벤투스에서 뛴 시간이 벌써 8년이 넘어가요. 제 나이도 벌써 30대가 되기 직전이고요. 여기서 들어 올린 우승 트로피만 해도 꽤 많죠. 이 정도면 축구 선수로서는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챔피언스리그는?”
“그건 조금 아쉽기는 한데, 뭐, 애초에 저는 트로피 욕심이 많지 않아서요.”
“포기하는 건가?”
“아니요. 그저 재미있게 공만 찰 수 있으면 되죠.”
드물게 우승에 대한 욕심이 적은 선수가 바로 카초였다.
로치오 단장이 카초를 처음 만났을 때도 축구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좋아했다.
“카초. 지금 고양에는 너 같은 선수가 필요하다.”
“욕심 없는 선수요?”
“아니. 축구를 즐길 줄 아는 선수.”
“진심이세요?”
카초가 정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로치오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내가 자네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던가?”
“아니요.”
“자네 같은 선수가 필요해. 묵묵하게 제 몫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선수.”
그 말에 카초가 피식 웃었다.
“레알 마드리드나 맨유 같은 팀이 저를 원하는데, 굳이 거기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요?”
“애초에 자네가 그런 팀들을 원했다면 벌써 이적하고도 남았겠지. 그런데 자네가 아직도 이 팀에 남아 있는 이유가 뭐겠나.”
“…….”
“즐겁지 않기 때문이야.”
맞다.
카초가 처음 축구를 시작한 이유.
그리고 지금까지도 축구를 하는 이유는 오로지 축구가 만들어 주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20대를 유벤투스에서 보낸 카초는 빅클럽에서 즐겁게 축구를 하기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떤 빅클럽들이 유혹해도 그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있는 K리그는 달라. 적어도 내가 속한 팀이라면 카초, 네가 원하는 축구를 할 수 있을 거야.”
“…….”
“어때, 같이 해보겠나?”
카초는 입을 다물고 말없이 로치오를 쳐다봤다.
로치오도 그의 시선을 말없이 받아냈다.
그러다가 곧 카초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
“아, 진짜 단장님은 저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니까요? 알그레노 감독님도 단장님만큼 모를걸요?”
“칭찬으로 듣지.”
“네. 칭찬이에요.”
카초는 웃으면서 흘린 눈물을 살짝 닦아낸 뒤, 말했다.
“좋아요. 이적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