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206화 (206/272)

206화

맨시티와의 일전이 끝났어도 우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고양 잘하더라.

-마지막에 PK 내준 건 아깝기는 한데, 그래도 잘했다. 졌잘싸다.

-맨시티가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썩 좋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 챔피언 팀을 상대로 비등하게 붙었다는 건 대단한데?

-박형우하고 호프만은 대단하더라.

-콘라드 감독 인터뷰 봤음? 칭찬 많이 하던데.

경기 종료 이후 콘라드 감독은 미디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양은 훌륭한 팀이었습니다. 마지막 PK로 우리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상대도 분명 훌륭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콘라드 감독은 평소 상대에 대해 칭찬이 인색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이례적으로 칭찬할 정도로 고양 유나이티드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훌륭했다.

경기 이후 있던 회의에서도 그 여파는 확연했다.

“대표님. 유니폼을 비롯해 저희 팀 상품 판매량이 상당히 많이 늘었습니다.”

“얼마나 늘었습니까?”

“품목마다 최소 30% 이상 늘었습니다. 신규로 저희 팀 제품을 구입하는 이들도 50% 이상 늘었고요.”

이런 활약 덕분에 우리에게 긍정적인 결과들이 나왔다.

나는 정소영 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맨시티전 수입도 정산됐지요?”

“네. 입장료, 광고, 중계권, 굿즈와 식음료 판매 수익까지 합치면 손익분기를 훨씬 넘겼습니다.”

“좋네요.”

나는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다렸던 인물이 나를 찾았다.

“또 뵙는군요.”

“어서 오세요.”

주세페 로치오 단장.

그가 경기 이후 며칠 만에 다시 연락해 온 것이다.

“지켜보니 어떻습니까?”

“다 알고 계셨군요.”

내 말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우리 팀을 계속 주시하고 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죠. 고양 유나이티드는 향후 10년 이내에 아시아 유명 팀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봅니다.”

“10년?”

“네. 어디까지나 이 상태로 간다면 말이죠.”

“그 말은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 말로도 들리는군요?”

로치오가 씩 웃었다.

“이걸 보시겠습니까?”

그가 나에게 정리된 서류를 건넸다. 총 30장 정도 되는 분량의 A4 용지에는 빼곡하게 내용이 채워져 있었다.

그걸 나는 앉은 자리에서 천천히 읽어보았다.

내가 다 읽는 동안 로치오 단장도 말없이 기다렸다.

“허어.”

내용을 다 읽은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다 있군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에 드십니까?”

“예.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네요.”

나는 보고서를 탁자에 내려놓고 로치오 단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 계획을 실현하려면, 로치오 단장, 당신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로치오는 자신만만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본능적으로 그의 괴짜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다른 프로 축구 클럽들과 궤를 달리한 운영을 취하더군요.”

“계속 말씀해 보세요.”

“고양 유나이티드의 모기업은 TH투자회사. 대표님이 운영하는 회사죠. 하지만 TH투자회사는 고양 유나이티드를 이끌기 위해 만든 회사일 뿐이죠. 실제로 고양 유나이티드 자체가 모기업인 셈이죠. 고양 유나이티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계열사들이 함께 움직이니까요.”

“…….”

정확하게 간파했다.

우리가 어떤 시스템으로 팀을 경영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로치오 단장은 우리의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축구 클럽 뒤에는 모기업이 존재하죠. 그렇기에 대부분의 클럽들은 모기업의 눈치를 보고, 혹여 모기업의 제정 문제로 자금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어떻게든 자생할 여력을 갖춰야 하고요.”

“동의합니다.”

“그런데 고양은 팀 자체가 모기업이기 때문에, 최소한 어디에 눈치 볼 일은 없습니다. 이건 그 누구도 갖기 어려운 매리트죠!”

말을 하면 할수록 로치오는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만약 제가 이 팀을 이끌 수 있다면, 서로가 원하던 목표를 앞당겨서 실현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럼 한 가지 묻죠. 당신이라면 어느 정도까지 앞당길 수 있습니까?”

내 물음에 그가 오른손을 활짝 펴고 짧고 굵직하게 대답했다.

“5년.”

“……!”

“저에게 5년의 시간을 주신다면, 이 팀을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그 누구도 견줄 수 없는 팀으로 만들어 드리죠.”

그 말을 들은 나는 무릎을 탁치며 외쳤다.

“합격!”

* * *

【오피셜】유벤투스 前단장 주세페 로치오, 고양 유나이티드 단장으로 합류!

필립 호프만 영입 이후 우리는 또 한 번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게 됐다.

주세페 로치오 단장은 유벤투스의 레전드이자, 타란티노, 레반스, 카초 등을 영입하며 유벤투스의 부흥을 이끈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렇기에 그가 유벤투스 단장직을 그만두자, 맨유와 파리생제르망 같은 거물 클럽들이 그를 호시탐탐 노렸다.

그런데 소리소문없이 이탈리아를 떠난 그가 한국에서, 그것도 K리그 팀의 단장직을 맡았다는 소식은 유럽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마치 과거 이탈리아 리피 감독과 칸나바로 감독이 광저우와 중국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것처럼.

『이탈리아에서 온 주세페 로치오, 그는 누구인가? 이적 썰썰썰!』

『주세페 로치오 영입한 고양, 설마 다음 목표는 타란티노 영입?』

『로치오가 고양에 온 이유!』

포털사이트와 유튜브에는 주세페 로치오 관련한 기사와 영상으로 가득했다.

-로치오 단장 영입썰이 있었던데 진짜였네.

-내가 알던 그 로치오? 와, 미쳤네.

-大---고---양---!

-도대체 어디까지 발전하려는 걸까? 미래가 궁금하다. 궁금해.

K리그 관계자들과 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그런 와중에 커뮤니티에 재미난 사진이 한 장 찍혀서 올라왔다.

-엌ㅋㅋㅋ 이게 뭐야?ㅋㅋㅋ

-오피셜 뜨자마자 삽겹살 파티 벌였나 보네 ㅋㅋㅋ

지태훈 대표와 김유리 비서 그리고 주세페 로치오와 천지원 이사, 이렇게 4명이서 구단 근처에 있던 어떤 삼겹살 전문점에서 함께 고기를 굽고 소주를 먹는 모습이 어떤 팬에 의해 찍혀 올라왔던 것이다.

-이 와중에 구단주가 고기 굽고 있네 ㅋㅋㅋ

-대표긴 해도 나이가 제일 어리잖아. 구워야지 ㅋㅋ

-신박하긴 하다. 나는 비서가 구워줄 줄 알았는데 ㅋㅋ

몇 장 더 추가로 올라온 사진에는 지태훈 대표가 직접 집게와 가위를 잡고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그 옆에서 김유리 비서가 젓가락을 쥐고 호시탐탐 불판을 노려보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로치오와 천지원이 서로 소주잔을 부딪치고 소주를 마시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로치오 단장 오자마자 한국인 다 됐네 ㅋㅋ

-나 이런 거 너무 좋아 ㅋㅋ

-마, 이게 K-회식이다!

팬들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었고, 이 사진들도 모두 기사화 되었다.

『한국 맛에 빠진 것일까? 삼겹살에 소주 먹는 로치오 단장의 모습이 화제!』

* * *

여름 휴식기를 보내던 중, 우리에게 편지 하나가 왔다.

“양하린? 누구지?”

편지를 뜯어서 확인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10살 양하린입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팬이에요!]

고양 유나이티드 팬이라는 초등학생의 편지였다.

편지를 쭉 읽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어.”

“왜 그러세요?”

“한번 읽어 봐.”

궁금해하는 김 비서에게 편지를 넘겼다. 편지를 읽던 김 비서도 깜짝 놀랐다.

“이건…….”

“아무래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내용이지?”

“아무래도 그렇네요.”

나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김 비서. 로치오 단장 호출해.”

“네.”

* * *

한국대 고양병원.

고양시 식사동에 있는 한국대 고양병원은 종합병원으로, 개원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곳에서 한 여자아이가 휠체어에 타고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르다.”

양하린은 이곳에 꽤 오랜 시간 입원해 있었다.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이기 힘든 그녀는 짧은 시간이기는 해도 이렇게 창밖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녀를 찾는 이가 있었다.

“하린아!”

“엄마!”

양하린의 엄마가 그녀를 찾았다.

엄마는 평소와 달리 상당히 놀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하린아. 너 혹시 나 모르게 무슨 일을 꾸몄니?”

“어?”

엄마 몰래 편지를 보냈던 양하린.

혹시 엄마가 알아차린 걸까?

“그, 그게…….”

입원하면서 친해진 간호사 언니에게 몰래 부탁해서 편지를 보냈던 그녀였다.

설마 간호사 언니가 말해 버린 걸까?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조금 달랐다.

“하린아! 얼른 가자! 너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

“어?”

엄마의 손에 이끌려 병실로 돌아온 양하린.

곧 그녀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안녕? 네가 하린이니?”

박형우.

그녀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서 그가 환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 어어.”

“편지는 잘 받았어. 나를 찾았다며?”

“세상에 정말 박형우 선수님이세요?”

“맞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양하린의 모습을 본 박형우가 환하게 웃었다.

그런 박형우 곁에는 구단 관계자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 모든 상황을 영상에 담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양하린의 엄마는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다.

그런 그녀에게 박형우가 친절히 설명했다.

“하린이가 구단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를 꼭 만나고 싶다고요.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아!”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엄마가 사과했다.

“죄송하네요. 저희 애가 바쁘신 분에게 실례를…….”

“아닙니다. 하린이가 오랜 시간 저희 팀을 응원해 왔다면서요?”

“아, 네. 하린이 아버지가 고양 유나이티드 팬이거든요. 5살 때부터 응원했으니 5년 됐네요.”

“그랬군요.”

박형우는 허리 숙여 웃는 얼굴로 양하린과 시선을 맞췄다.

“하린아, 네 덕분에 우리 팀이 잘 될 수 있었어. 너도 꼭 병에서 이겨내서 다시 응원하러 와. 알겠지?”

“네!”

양하린은 감격한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 * *

“요즘 애들이 참 당돌해.”

한쪽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한마디 툭 던지듯 말하자, 옆에 있던 김 비서나 천지원 이사가 피식 웃었다.

“뭐야, 왜 웃어?”

“태훈 씨가 그런 말 하니까 조금 안 어울린다고 해야할까요?”

“뭐라는 거야.”

나는 양하린에게서 시선을 떼고 몸을 돌려 대기하고 있던 의사에게 말을 걸었다.

“양하린의 병명이 뭡니까?”

“그게……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지는 체질을 지녔습니다. 점점 혈관과 팔다리가 굳어지고 있죠. 치료는 진행하고 있지만, 불치병에 가까워서 저희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이는 알고 있나요?”

“아니요. 부모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나는 의사의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모르기는 개뿔.

애는 다 알고 있더만.

양하린이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저는 곧 죽을지도 몰라요. 죽기 전에 소원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박형우 선수를 꼭 만나보고 싶어요.]

죽기 전에 꼭 박형우를 보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편지 내용을 확인한 나는 바로 로치오 단장을 호출했다.

로치오 단장도 이럴 때 구단이 외면하면 안 된다며, 아이의 소원을 이루게 해주고 덧붙여 마케팅으로도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를 마치고 바로 박형우를 호출했고, 사정을 들은 박형우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부디 아이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네요.”

“분명 좋은 시간이 되었을 거예요. 보세요. 아이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박형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양하린은 그 누구보다 환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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