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고양 더블은행파크가 뒤집혔다.
『골! 골입니다! 라시모프의 선제골!』
『이야~ 엄청난 골이 나왔네요! 맨시티 선수 중에서 그 누구도 라시모프를 확인하지 못했어요!』
『고양이 1:0으로 앞서 나갑니다!』
전반 25분 만에 나온 첫 골의 주인공은 고양 유나이티드였다.
모두의 예상을 깬 선제골에 고양의 모든 홈팬들이 광기에 휩싸였다.
“잘했어!”
고양 선수들이 라시모프의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 주었다.
반면 예상치 못한 실점에 맨시티 선수들은 당황했다가 곧 크게 자극을 받았다.
“정신 차려!”
실점 당한 것도 열 받는데 콘라드 감독의 따가운 질책까지 더해지자 선수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다시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재개됩니다.』
맨시티 쪽에서 볼을 가지고 움직였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전과는 달랐다.
“진지하게 하자!”
“여기까지 와서 쪽팔린 일을 겪을 수는 없어!”
조금은 안일하게 생각했던 맨시티 선수들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라이벌 팀과 맞대결하듯 진지하게 경기에 임했다.
그런 진지함을 바탕으로 플레이를 펼치자 맨시티가 왜 유럽 챔피언까지 오를 수 있던 것인지 금방 증명되었다.
『강철인의 패스! 정확합니다!』
우와아아!
아주 찰나의 순간, 스즈키와 오세진이 강철인에게 틈을 보였다.
그 미세한 틈은 곧 강철인에게 기회였다.
발끝을 벗어난 공이 마치 대지를 가르듯 정확하게 선수들 사이를 가로질러 목적지까지 정확하게 배달됐다.
『호드리고가 공을 받는데요! 질주합니다!』
호드리고는 빠르게 코너플레그 근처까지 침투했다. 이진수가 황급하게 수비하기 위해 나섰지만, 호드리고는 그런 이진수를 가볍게 재쳤다.
“앗!”
당황한 이진수가 급하게 몸을 돌렸을 땐, 이미 호드리고가 골문으로 쇄도하고 있는 맨시티 선수들을 향해 크로스를 올리고 있었다.
팡!
『위험합니다!』
『라비! 득점합니다! 맨시티가 동점골을 만듭니다!』
모든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실점하고 3분도 안 돼서 동점골을 만든 맨시티.
득점에 성공한 라비가 두 팔을 대각선으로 올리면서 세리모니를 펼쳤다.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한 맨시티는 매서웠다.
추가 득점의 기회가 금방 생겼다.
삑!
『스즈키 선수의 반칙. 맨시티에게 프리킥 기회가 주어집니다.』
『상당히 좋은 기회인데요.』
골문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프리킥 기회를 잡은 맨시티.
프리킥 키커로 강철인이 나섰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강철인은 침착하게 프리킥을 찼다.
팡!
절묘하게 휘어져 들어간 공이 고양 선수들의 벽을 넘어 그대로 골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렁-
우와아아아!
박지원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득점이었다.
『득점합니다! 대단한 프리킥 득점을 보여주는 강철인입니다!』
『이야, 역시 강철인 선수네요! 이번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프리킥 득점을 여러 차례 성공했던 강철인 선수인데요. K리그 팬들한테도 이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네요!』
강철인의 프리킥은 아름답고 멋졌다. 강철인의 득점만큼은 적과 아군 상관없이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실점 당했던 맨시티가 순식간에 2:1로 역전하면서 경기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고양이 흔들릴 수 있는데요!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습니다!』
곽찬구 감독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런 그를 콘라드 감독이 슬쩍 쳐다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일까?’
여유가 생긴 콘라드 감독은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내심 궁금해졌다.
하지만 곽찬구 감독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반전이 끝나버렸다.
* * *
“태훈 씨, 괜찮아요?”
전반전을 마치고 라시드 이사와 토레스 단장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김 비서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음? 아, 괜찮아. 어차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니까.”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유럽팀들보다 강했다.
그런 팀을 상대로 비록 점수가 뒤지고 있어도, 이 정도면 준수하게 선방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대로 끝나버린다면 아쉽지 않을까요?”
김 비서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대로 끝나면 아쉽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경기가 참 재미있군요.”
때마침 돌아온 토레스 단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놀라웠습니다. 생각보다 유럽에서 뛰었다가 돌아온 한국 선수들이 제법 많이 보였더군요.”
“그렇습니까?”
“박형우, 한석원, 김지우, 스즈키. 이 선수들 모두 유럽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이 아닙니까?”
“다 알고 계시는군요?”
박형우나 한석원은 그렇다고 쳐도, 김지우나 스즈키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다 알죠. 특히 김지우 선수는 제 친구와 함께 뛰었기도 했고요.”
“어? 그렇습니까?”
“네. 알모어라고 있는데, 그 친구가 은퇴를 앞두고 보훔에서 말년을 보낼 때 저 김지우 선수와 함께 뛰었다고 하더군요.”
“오, 그랬군요.”
이건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토레스 단장은 고양 선수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는 참 좋은 선수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더 좋은 팀이 될 자질이 느껴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진심입니다.”
그는 경기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단순히 선수만 좋다고 그 팀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죠. 좋은 선수들이 유지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이곳 고양 유나이티드는 그런 시설들이 제법 잘 갖춰졌다고 봅니다.”
우리를 많이 조사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이 상태로 계속 나아간다면 그 모자란 부분도 채워지겠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맨시티도 정말 훌륭한 팀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웃어 보였다.
* * *
주세페 로치오 단장도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제법인데.’
손에 쥐고 있는 수첩에는 그가 경기를 지켜보면서 하나씩 메모해 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런 그가 평가했을 때, 고양 유나이티드는 결코 만만히 볼 팀이 아니었다.
‘비록 스코어는 지고 있지만, 경기 내용이 나쁘지 않아.’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도 했다.
‘곽찬구 감독은 이 정도로 강렬하게 베팅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인물이 아니야. 뭘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까?’
고양이 오늘 보여준 경기력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선수를 운영하는 방식이나 전술적 선택 등 지금껏 자신이 조사했던 부분과 상당히 차이점을 보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참 신기한 팀이야.’
그렇게까지 생각한 로치오는 수첩을 자켓 주머니 안에 넣었다.
“더는 볼 것도 없겠군.”
모든 평가를 마친 그는 미련 없이 경기장을 떠났다.
* * *
후반전을 앞두고 고양의 라커룸 분위기는 실망보단 흥분으로 가득했다.
“와! 진수 형! 봤어? 쉬레가 나 엄청 마킹하더라!”
“어우, 나는 호드리고 상대하느라 정신없었다. 호드리고 엄청 잘하더라.”
잔뜩 흥분한 팀 막내 정성진과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함께 흥분하고 있는 이진수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지우가 작게 웃었다.
‘다들 즐기네.’
경기 시작 전에는 다들 긴장으로 가득 찼었는데, 막상 경기를 치르면서 선수들은 결과보다 경기 내용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이게 나을 수도 있었다.
“철인이 진짜 대단하더라. 지원이 형. 프리킥 그거 상대해 보니까 어땠어요?”
이진수의 물음에 박지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내가 뭘 어떻게 못 하겠더라. 가급적이면 프리킥 찬스 주지 마라. 이건 뭐 알고도 못 막겠더라.”
“어유, 알았어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곽찬구 감독이 조금 늦게 들어왔다.
“다들 분위기 좋네?”
“…….”
감독의 한 마디에 선수들이 일순간 침묵했다. 혹시나 ‘우리가 실수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곽찬구 감독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주 잘하고 있어!”
그 말에 선수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처럼만 해. 지금처럼. 너희들,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어. 끝까지 집중력만 잊지 말자. 알겠지?”
“네!”
“좋아! 그럼 잘 쉬고, 후반전도 잘 치르자. 알겠지?”
“네!”
환한 표정으로 힘차게 대답하는 선수들을 보며 곽찬구 감독이 웃었다.
‘표면상으로 우리가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기 내용은 크게 밀리지 않았어. 이건 기대 이상의 성과야.’
비록 오늘 경기를 진다 해도, 이미 고양 유나이티드에게 있어 상당히 소득이 컸다.
오히려 문제는 맨시티에게 있었다.
맨시티 라커룸.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콘라드 감독이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고작 이 정도 경기력을 보여 주려고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냐?”
감독의 질책에 선수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사실 선수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본인들의 경기력이 오늘 최상이 아니라는 것을.
감독은 그 부분을 지적했다.
“너희들이 잘 알 거다. 비록 우리가 스코어로는 이기고 있지만, 우리는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상대에게 좋은 기회들을 제공했어. 만약 상대가 그 기회를 모두 살렸다면, 우리는 더 많은 실점을 당했을 거다.”
하지만 단순히 선수들만의 컨디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양의 역습이 상당히 빠르다.’
한석원, 박요한, 정성진에 필요하면 이진수까지 가세할 수 있는 역습 편대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여기에 호프만이나 오세진같이 전방으로 정확하게 패스를 줄 수 있는 자원까지 있었다.
‘방심하면 당한다.’
이 경기는 맨시티의 프리시즌 첫 경기이기도 했다. 출발이 좋지 않으면 자칫 이후 경기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후반전에는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알겠나?”
“예!”
이렇게 서로 다른 분위기 속에서 후반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마침내 후반전.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어떤 변화가 감지되었다.
『후반전 시작과 함께 고양이 선수 교체를 시도하는데요. 박형우 선수가 준비합니다!』
박형우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고양의 모든 홈팬들이 환호했다.
고양의 슈퍼스타인 그는 팬들 입장에서 가히 최종병기로 평가받았다.
『오세진 선수가 교체아웃되고, 그 자리에 박형우 선수가 들어가는데요. 이렇게 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오세진 선수가 전반전에 강철인 선수 마킹을 잘해 줬지만, 득점이 필요한 고양의 입장에서 박형우 선수의 투입으로 추가 득점을 노릴 생각으로 보입니다.』
『전술에도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네, 박형우 선수가 투입됐기 때문에, 정성진 선수가 측면 수비수로 돌아가면서 포백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한찬희 해설위원의 말대로 고양은 박형우를 투입하면서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바뀌었다.
『원래 고양이 쓰던 4-3-3 전술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심이 휘슬을 불며 후반전 시작을 알렸다.
삑!
『네, 주심의 휘슬과 함께 후반전 경기 시작합니다!』
맨시티의 선축으로 시작된 후반전 경기.
맨시티 선수들은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볼 점유율을 높이면서 서서히 고양의 진영으로 침투했다.
『전반전에도 그랬지만 전체적인 볼 점유율은 맨시티가 좀 더 높았는데요. 후반전에도 맨시티가 볼을 소유하면서 고양을 압박하네요!』
점차 밀려드는 상대를 본 고양도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진로를 막아!”
“지역 방어! 지역 방어! 패스 길목 주면 안 돼!”
고양 선수들은 지역 방어를 하면서 맨시티가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맨시티에게는 너무나 유능한 선수들이 많았다.
그중에 강철인은 톱이었다.
『강철인이 전방으로 패스합니다! 빠지는데요!』
중앙에서 볼을 잡고 앞으로 밀어준 패스가 그대로 고양의 수비 뒷공간을 허물면서 들어갔다.
타이밍을 재던 쉬레가 뛰어들어 가더니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팡!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때린 슈팅이 그대로 골문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