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맨시티 선수들의 내한에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맨시티 선수단은 이틀 정도 적응 훈련을 진행한 뒤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자, 선수하고 팬분 이쪽 보세요. 찍습니다. 하나, 둘!…… 네, 됐습니다!”
맨시티 선수들은 훈련을 진행하면서 팬서비스 일정도 소화했다.
강철인을 중심으로 팬서비스를 진행한 그들은 국내 팬들에게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며 팬과 시간을 보냈다.
“강철인 선수를 직접 보다니.”
“와, 저 사람이 콘라드 감독이야!”
“튀랑 보기보다 덩치 엄청 좋네. TV로 볼 때하고 전혀 달라!”
국내 팬들은 실제로 보는 맨시티 선수들을 보고 신기해하거나 놀라워했다.
나는 그런 그들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맨시티 선수단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우호적입니다.”
“그렇겠죠. 저희가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팬들에게 실례되는 행동하지 말라고.”
맨시티는 예전부터 한국 팬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강철인이 뛰기 전부터 한국에 있는 맨시티 팬들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수시로 진행해 왔던 맨시티였다.
비슷한 예로 도르트문트가 있었다.
도르트문트도 맨시티 못지않게 국내 팬들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국내 팬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죠.”
천지원 이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친선경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지만 의미가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시작은 좋았다.
* * *
웅성웅성.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고양 더블은행파크로 향하는 3호선 대화역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아, 모르셨어요? 오늘 고양하고 맨시티하고 경기하는 날이잖아요!”
“어유, 오늘이 그날이에요?”
일부 고양 시민들은 인산인해를 이룬 대화역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그만큼 전국 각지에서 오늘 경기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왔다.
“미리 시에 협조를 구해서 다행입니다. 대표님.”
“네,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구단 차원에서 고양특례시와 사전에 협의하여 몇 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시 차원에서 경찰 인력을 투입해 시민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교통정리 및 치안유지를 담당했다.
일부 시 관계자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출근해서 주변 정리를 돕기도 했다.
“지금 백석 버스터미널도 사람이 엄청 몰렸다고 합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왔나 보군요. 예상했던 범위입니다.”
경기장 관람석은 이미 매진됐고, 그것마저 모자라서 주변 술집까지 가득 찼다.
이렇게까지 많이 몰린 적이 있을까?
이걸 보고 조금은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K리그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리면 좋으련만.”
“같은 생각입니다.”
벌써 경기장 내부에선 고양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스로 이루어진 노란 물결과 맨시티 팬들로 이루어진 하늘색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팬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AR을 활용해 경기장 센터서클에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장내 아나운서 박창훈의 등장했다.
[오늘 상당히 대단한 팀과 경기를 하는데요! 바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팀이자!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맨체스터시티인데요! 오늘 경기를 위해 저희가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처음 AR을 겪어본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이벤트라는 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일반석에 앉아 있는 팬들이 이벤트에 관심을 보이는 사이, 서포터스 회장이자 콜리더 박태준이 서포터스 앞에 등장했다.
“자, 여기가 어디입니까! 바로 우리의 홈! 고양이지 않습니까!”
노란색 확성기를 쥔 박태준이 검은 선글라스와 고양 유나이티드 엠블럼이 박힌 머플러와 모자를 착용한 상태로 서포터스 앞에서 외쳤다.
“우리가 누구인지 한번 제대로 보여 줍시다!”
기선제압!
서포터스를 이끄는 콜리더로서 경기 전에 상대의 기를 꺾어 줄 필요가 있었다.
“시작합니다!”
“가즈아!”
콜리더의 사인에 서포터스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우리가!
고양!
우리가!
고양!
대표가 바뀐 첫 시즌을 제외하고 매년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은 이미 챔피언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더불어 K리그를 리드하고 있다는 자신감마저 생긴 상태였다.
그런 마음이 응원가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서포터스의 응원가를 마주하는 국내 맨시티 팬들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쟤들 왜 저래?”
“와, 작정하고 나오네.”
대부분 질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은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소리 높여 응원가를 불렀다.
이렇게 기선제압에 성공한 서포터스들의 모습을 나도 지켜보고 있었다.
“제법이네.”
팬들의 지원사격이 몹시 고마웠다.
따로 부탁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지원사격을 해줬다.
“좋아. 한 번 힘차게 가보자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TH투자회사 공식 초청, 고양 유나이티드 대 맨체스터시티의 대결을 생중계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캐스터 이창용, 한찬희 해설위원님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공중파에서도 생중계가 진행됐다.
상당한 빅매치였기 때문에 토요일 저녁에 진행하는 드라마는 결방되고, 뉴스 시간대까지 뒤로 조정했다.
『이번에 K리그가 여름 휴식기를 맞이해서 상당한 빅매치를 펼쳐지게 되었는데요. 두 팀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위원님.』
『네. 맨시티는 대부분 아시겠지만,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석권한 유럽 챔피언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보물이죠? 아시아 선수 역사상 첫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을 달성한 강철인 선수가 이곳에서 뛰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화면에는 맨체스터시티와 관련된 영상들이 빠르게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한찬희 해설위원이 멘트를 마치자 이번에는 고양 유나이티드 영상으로 바뀌었다.
『이런 유럽 챔피언을 상대하는 고양 유나이티드는 현재 K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데, 전반기를 무패로 마쳤습니다. 올 시즌 AFC챔피언스리그도 8강에 진출했고요. 재작년에 K리그2에서 우승한 뒤, 작년에는 FA컵에서 우승하면서 2년 연속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강팀의 반열에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이곳에 월드컵 특급 스타였던 박형우 선수와 독일 국가대표 필립 호프만 선수가 있죠?』
『그렇습니다. 지태훈 대표가 구단주로 부임한 이후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필립 호프만이나 박형우 같은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서 상당히 탄탄한 스쿼드를 구축했습니다.』
화면에는 고양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 이 두 팀을 이끄는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네. 맨시티의 콘라드 감독은 이번 시즌 스리백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감독이 상당히 공격적입니다.』
『공격적이라면 어느 정도로 공격적일까요?』
『맨시티는 라인과 라인 사이가 상당히 촘촘한데, 튀랑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가 공격적으로 라인을 올려서 상대합니다.』
『상당히 위험하지 않을까요?』
『오프사이드 트랩을 적극 활용해서 상대의 공격을 끊고, 중앙에서 삼각편대를 이루는 미드필더들이 볼을 소유하면서 전방 공격수들이 측면으로 빠지면 순식간에 윙백들이 마치 공격수처럼 들어와서 득점을 만드는 모습이 종종 보입니다.』
『여기에는 강철인 선수가 중심인 거죠?』
『그렇습니다.』
시즌 시작 전에 강철인을 중심으로 팀 전술을 구성한 콘라드 감독의 선택은, 올 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했다.
『맨시티가 오늘 발표한 선발 명단만 봐도 알 수가 있는데요. 선발 명단을 한번 보겠습니다.』
조인스(GK)
카마도 | 튀랑 | 네벨
쉬레 | 발베르데
데이비스 | 강철인 | 호드리고
라비 | 오데사
<3-5-2>
『맨시티의 핵심은 저 쉬레, 발레르데, 강철인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인데, 오늘 전부 선발로 나왔습니다.』
『오데사, 데이비스, 네벨을 제외하면 맨시티 주전 선수들이 다 나왔네요.』
『벤치에 타말 티에리, 라파엘, 쿤 데 돌만 등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들이 모두 대기하고 있습니다.』
『친선경기지만, 맨시티 주전 선수들이 모두 왔다고 봐도 되겠네요.』
『맞습니다.』
맨체스터시티는 계약서대로 주전 선수들을 모두 데려왔다.
굳이 계약서가 아니어도, 이번 시즌 맹활약을 보인 강철인을 위해서라도 한국팬들에게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보여줄 계획이었다.
『자, 이에 맞서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발 명단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박지원(GK)
이진수 | 라시모프 | 백종수
스즈키 | 김지우
오세진 | 호프만
박요한 | 한석원 | 정성진
<3-4-3>
『상당히 파격적인데요. 기존에 곽찬구 감독이 보여줬던 전술하고는 많이 다르네요.』
『우선 박형우 선수를 벤치에 앉힌 것도 놀라운데요. 정성진 선수와 박요한 선수를 윙백으로 뒀는데, 어떤 의도로 이렇게 짰는지 많이 궁금하네요.』
파격적인 선발 라인업에 중계진도 잠깐 말문이 막혔다.
중계진도 사전에 라인업을 받아서 확인은 했지만, 다시 봐도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K리그1 득점 1위를 달리는 박요한이 윙백으로 간 것도 놀라운데, 팀 내 에이스인 박형우가 벤치에 앉았다.
호프만이 나오긴 했지만, 보통 두 선수가 함께 나오는 편이었다.
이러다 보니 중계진도 쉽사리 의도를 예상하기 어려웠다.
『곽찬구 감독이 뭔가 준비한 게 있겠죠?』
『네. 그렇게 생각해야죠.』
* * *
“뭐라고요?”
처음에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런데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게 정말 곽찬구 감독이 준비한 선발이라구요?”
여전히 축구를 잘 모르는 나지만, 그래도 그동안 봐왔던 것들이 있었다.
그런 내가 봐도 이번 선발과 포메이션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당황스러운 내 뒤로 누군가가 등장했다.
“곽찬구 감독님도 생각이 있을 겁니다.”
“음!?”
이태수였다.
그가 가볍게 미소를 머금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 경기 보러 온 겁니까?”
“네. 곽찬구 감독님께서 제게 표 한 장을 주셨거든요.”
“아. 갑자기 표 한 장만 달라고 했더니, 그게 이태수 코치 표였군요.”
그건 그렇고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혹시 뭔가 알고 있습니까?”
“제가 설명해드리는 것보다, 보면 아실 겁니다.”
“…….”
보면 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어리둥절했던 나는 곧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됐다.
* * *
양 팀 선수들이 게이트 앞에 도열한 가운데, 곽찬구 감독은 굳은 얼굴로 선수들 맨 뒤편에 섰다.
‘얼마나 먹힐 수 있을까?’
곽찬구 감독 스스로도 상당히 파격적인 전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함께 훈련하고 준비했던 선수들도 놀라워했다.
다행히 선수들이 지닌 믿음과 신뢰가 높아서 큰 반발은 없었지만, 자칫하다 선수들이 크게 반발할 수도 있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상당한 고민이 있었지만, 곽찬구 감독의 결정은 하나였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이렇게라도 해봐야지.’
이태수 코치가 전달해 준 자료를 토대로 구상한 전술.
오늘의 결과에 따라 향후 자신과 K리그의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귓가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수단~ 이이이입 자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곽찬구 감독의 발걸음이 경기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