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며칠 전, 라세라티 한국 지사 사장실.
“로치오 단장. 계속 이러고 있을 겁니까?”
“무엇을 말씀하는 겁니까?”
알베르토의 물음에 로치오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알베르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치오 단장, 고양 유나이티드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슬슬 결단을 내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로치오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런 그의 행동이 알베르토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근에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으시다면서요?”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에게도 눈과 귀가 있습니다.”
처음 주세페 로치오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알베르토는 깜짝 놀랐었다.
그의 입장에 로치오는 그저 약간의 흥미로 한국을 찾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모든 경기를 챙겨 보고, 선수단과 구단 자금 운영 등 다양한 면에서 살펴보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이 정도면 당장 고양 유나이티드로 가서 ‘나를 단장으로 임명해 주시오.’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조금은 답답한 뉘앙스로 말하는 알베르토의 반응에 로치오가 피식 웃었다.
“팬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구단이 있다면 이 정도는 파악합니다. 하물며 저는 유벤투스에서 단장을 맡았을 때 전 세계적으로 주요 구단의 내부 동향을 파악하고 다녔습니다.”
“…….”
“알베르토 사장님.”
로치오가 알베르토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동자는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동북아시아에 있는 리그가 유럽 5대 리그와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그건…….”
평생 자동차를 팔아온 알베르토라도 K리그가 유럽 5대 리그와 경쟁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확률이 0% 가깝다고 생각하시겠죠.”
끄덕.
알베르토는 말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경쟁률을 높일 수 있는 존재가 등장했다면, K리그에 얼마나 베팅하실 수 있으십니까?”
“글쎄요.”
알베르토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저는 지금 그 베팅 금액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
알베르토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로치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조만간에 다시 뵙도록 하죠.”
“자, 잠시만! 로치오 단장!”
자신을 부르는 알베르토에게 손짓으로 대답한 로치오는 그대로 떠나 버렸다.
그 뒤 홀로 남은 알베르토는 고민에 빠졌다.
* * *
맨체스터시티의 내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두 팀의 친선경기는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천지원 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경기는 공중파 생중계로 확정되었습니다.”
“네, 보고 받았습니다. 꽤 비싼 금액으로 중계권 계약을 했더군요. 우리로선 좋은 일입니다.”
공중파는 예전부터 국가대표 또는 리그 내 빅매치 경기 위주로 생중계를 해왔었다.
그런 상황에서 맨체스터시티라는 대형 클럽과의 경기를 놓칠 리 없었다.
공중파 3사에서 입찰 경쟁을 진행한 후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한 곳에서 낙찰받았다.
“경기는 토요일 오후 7시 30분으로 최종적으로 확정했습니다.”
가장 황금 시간대에 경기가 치러진다. 이미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팬들이 표를 구매했다.
“표는 모두 매진입니다!”
일부 남겨 놓은 현장 예매표를 제외하곤 인터넷으로 사전 예매를 진행했고, 판매 시작 4시간 만에 완판되었다.
꽤 비싼 가격으로 측정된 VIP 티켓은 불과 15분 만에 완판됐다.
아주 잠깐이지만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였다.
“강철인 선수가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을 석권했으니, 그 영향이 상당히 큽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MVP를 받았죠?”
“네. 이번 시즌은 강철인의 시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 줬으니까요.”
맨체스터시티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할 수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강철인이었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만 19개 도움을 기록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8골 10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미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까지 수상한 그는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었다.
올 시즌 가장 강력한 발롱도르 후보이기도 했다.
이런 강철인의 대활약에 이미 국민 구단이 된 맨시티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상당히 높았다.
“여기에 K리그 팬들의 결집도 크게 한몫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죠?”
“현재 리그 유일한 무패 팀이 바로 저희지 않습니까? 사실상 K리그 1위 팀과 유럽 챔피언의 자존심이 걸린 승부여서, K리그 팬들의 기대도 상당합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역사적으로 K리그 팬들은 해외 유명 구단의 방문을 썩 좋아하지 않았고요.”
“그래요? 왜죠?”
축구지식이 해박한 천지원 부장이 이유를 설명했다.
“과거 유럽 명문 팀들이 방문할 때, 방문했던 팀들이 K리그를 무시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보인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요. 때론 방한한 유럽 구단을 응원하는 국내 팬과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고요.”
“흐음.”
“그러다가 과거 유벤투스가 방한했을 때 대형사고가 터졌죠.”
“아, 기억납니다.”
축구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날강도 사건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 사건 이후 K리그 팬들은 유럽 구단의 방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아니, 없을 겁니다.”
라시드 이사와 토레스 단장이 확실한 팬 서비스를 약속했다.
그리고 계약서도 주전 선수들 출전과 공동 이벤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쪼록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죠. 어렵게 성사된 매치인데요.”
* * *
전반기 K리그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무패로 리그 1위와 AFC챔피언스리그 8강에 오르는 기염을 보였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관심이 고양에게로 향했지만, 사실 이에 못지않은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구단이 또 있었다.
바로 ‘서울 드래곤즈’였다.
히카르두 실바 감독 체제로 시즌을 시작한 서울 드래곤즈는, 전반기에서 딱 1패만을 기록하고 1위 고양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히카르두 실바는 포르투갈 특유의 선진화된 전술과 다양한 시스템을 팀에 적용하여,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여기에 데얀 페리시치와 강유찬 등이 대활약하면서 서울은 현재 고양의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그런 서울을 이끄는 히카르두 실바 감독이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감독님.”
“오랜만이군. 그간 잘 지냈나?”
“물론입니다. 감독님도 잘 지내시는 것 같더군요. 우승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맨체스터시티의 콘라드 감독.
그가 실바 감독을 만났다.
“이렇게 보는 건 꽤 오랜만이지?”
“그렇죠.”
콘라드 감독이 처음 감독 지휘봉을 잡았던 팀이 바로 벤피카였다.
그리고 벤피카에서 원클럽맨으로 활약해오던 히카르두 실바.
당시 선수 말년을 보내던 그를 이끌던 감독이 바로 콘라드 감독이었다.
이후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콘라드 감독은 프리미어리그로 떠났고, 이후 아스톤빌라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그랬던 그가, 고향인 포르투갈에서 짧게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는 실바 감독을 찾아왔던 것이다.
“저를 그저 인사나 하려고 찾은 것은 아닐 테고…… 고양 유나이티드 때문이겠죠?”
“허허. 그렇게 말하니 내가 제자를 이용해 먹는 사람으로 보이는구먼.”
“뭐, 상관없습니다. 이럴 때 서로 도와야죠.”
“고맙네.”
히카르두 실바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했다. 담담히 이야기를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측에서 분석한 것과 큰 차이는 없군.”
“그렇습니까?”
“다만, 몇몇 변수들이 마음에 걸려. 상대 감독이 전술적으로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선수단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그렇죠. 박형우나 호프만 이런 선수들은 현재 최고에 이릅니다.”
“그래도 맨시티에 비할 바가 되겠습니까?”
“흐음.”
객관적으로 보면 맨시티가 한참 우위에 있다. 아무리 고양이 무패 질주한다고 해도, 현재 맨시티는 유럽 챔피언에 오를 정도로 강팀이다.
혹시 모를 시차 등을 염두에 선수단 컨디션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불안함을 해소하지 못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선수 시절 때도 느꼈지만 감독님의 승부욕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가? 하하하.”
“모쪼록 좋은 결과 내시길 바랍니다.”
“고맙네. 나중에 또 보도록 하지.”
그렇게 두 사제의 만남도 끝났다.
* * *
맨체스터시티를 맞아 경기를 준비하는 곽찬구 감독은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한 친선경기를 넘어 K리그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 압박감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그를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자네는!? 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그를 찾아온 인물은 다름 아닌 이태수였다.
현재 연령별 대표팀 코치로 활약 중인 그가 연락도 없이 곽찬구 감독을 찾아온 것이다.
“감독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네.”
이태수는 자신이 준비한 자료들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콘라드 감독은 공격적인 스리백을 다룰 줄 아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경기장을 상당히 전략적으로 쓰기도 하죠.”
“이, 이건…….”
“지금 보시는 자료들은 그런 전략에 대비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태수가 준비한 자료들을 하나씩 읽어본 곽찬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가 자료들을 하나씩 설명하는 이태수의 말을 들을 때마다 곽찬구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했다.
“정말 이 모든 것을 자네 혼자 준비한 건가?”
“네.”
충격받은 얼굴을 드러내는 그에게 이태수가 빙긋 웃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나를 돕는 거지?”
“저도 한때나마 K리그 선수였습니다. 지금도 K리그를 응원하고 있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랬군.”
곽찬구 감독은 이태수에게 건네받은 자료들을 손에 쥐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자네의 기대에 배반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기대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평소 같으면 어디 감히 팀을 이끄는 감독에게 훈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태수가 가져온 정보와 대응 전략은 곽찬구 감독도 충격에 빠트릴 정도로 대단했다.
‘도대체 저 녀석은 뭐지?’
도저히 나이 어린 코치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베테랑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하늘이 돕는 거일지도 모르겠군.’
곽찬구 감독은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선경기를 준비할 수 있었다.
* * *
시간이 흘러 마침내 맨시티 선수들이 내한했다.
인천국제공항에는 내한한 맨시티 선수들을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강철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꺄아아악! 철인 오빠! 여기 좀 봐주세요!”
“아! 어쩜 좋아! 너무 귀여워!”
“형! 여기도 봐줘!”
나이에 비해 귀여운 외모를 지닌 강철인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팬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공항이 흔들렸다.
“이야, 철인이 너 인기 좋네?”
“뭐래.”
강철인과 함께 맨시티에서 뛰는 ‘랑튀’.
현 프랑스 대표팀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맨시티에서 부동의 중앙 수비수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강철인과 더불어 맨시티에 없어서는 안 될 에이스였다.
그리고 강철인과 같은 시기에 이적해 온 이적 동기생이기도 했다.
“나 불닭볶음면 사준다고 한 약속 잊으면 안 된다?”
“어. 사줄게. 사줄게.”
강철인 덕분에 한국 음식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랑튀는 최근 불닭볶음면에 빠져 지냈다.
한국에 가면 박스로 사주겠다는 강철인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철인은 그것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다.
‘형우 형. 조만간에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