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시간은 흘러 전반기 2경기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고양은 홈에서 수원 블루를 상대하고, 이어서 부리람과 2차전 경기를 치른다.
두 경기 모두 홈에서 하는 만큼 일정 면에서는 조금은 우위에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경기를 생중계하겠습니다. 저는 캐스터 이형욱이고요. 박천명 해설위원과 함께합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노란 물결과 파란 물결이 요동치고 있었다.
『2028 K리그1 18라운드 고양 유나이티드와 수원 블루의 대결인데요. 오늘 경기가 끝나면 K리그는 약 2주 정도 여름 휴식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양 팀 모두 오늘 경기 치르고 다가올 후반기를 잘 준비해야 됩니다.』
『자, 두 팀의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시즌 초반부터 치고 나가던 고양은 여전히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지만, 수원 블루는 초반에 아주 잠깐 리그 4위까지 올라왔다가 현재 7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고양이 중간에 부상 선수와 경고 누적 등을 이유로 전력에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그렇죠. 한동안 부상 때문에 복귀하지 못했던 박지원 골키퍼가 오늘 다시 돌아와서 골문을 지킵니다.』
전반기 마지막 리그 일정을 앞두고 장기간 부상으로 이탈했던 박지원이 복귀했다.
모처럼 골문 장갑을 낀 박지원의 활약은 눈이 부셨다.
『공현빈 슈우웃! 하지만 박지원 골키퍼의 선방에 막힙니다!』
『박지원 선수, 모처럼 복귀인데도 여전하네요!』
박지원의 단단한 선방 덕분에 고양은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할 수 있었다.
『고양의 코너킥 기회인데요. 올라갑니다! 오오오! 들어갑니다!』
출렁이는 골망.
그리고 두 팔 벌려 팬들 앞으로 뛰어가는 한석원.
코너킥 상황에서 나온 한석원의 헤딩골은 이날 경기의 결승골이 되었다.
1:0으로 승리를 거둔 고양은 18경기에서 14승 4무 0패로 46점으로 전반기를 무패로 마감했다.
전반기에 보여준 고양의 퍼포먼스는 대단했다.
그 어떤 팀도 고양을 꺾지 못했다.
아직 후반기가 남아 있기는 했어도 대부분은 고양을 강력한 우승 후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3일 후 치러진 AFC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경기를 치렀다.
홈으로 불러들인 부리람을 상대로 고양은 여유롭게 경기를 펼쳤다.
이미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두었던 고양은 전혀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부리람은 생각보다 끈질겼다.
『어, 실점하고 맙니다! 수파낫 차나틱에게 실점하고 맙니다.』
『조금 아쉬운 실점 장면이 나왔네요.』
생각지도 못하게 먼저 실점을 당한 고양.
하지만 이번 시즌 고양은 위기에 강했다.
잠자던 사자의 코털 건드린 부리람은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교체로 나온 한석원! 득점합니다! 오늘 멀티골을 기록하는 한석원!』
『이렇게 되면 부리람은 8강에 진출하려면 최소 4골을 넣어야 합니다.』
종합스코어 4:1이 되자 부리람의 의욕은 확 꺾여 버렸다.
그렇게 경기는 고양의 승리로 끝났다.
『고양이 구단 역사상 첫 8강에 진출합니다!』
8강 진출을 확정한 고양의 선수들과 팬들이 내지른, 기쁨으로 가득 찬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 경기가 끝나고 충격적인 결과 있었다.
【AFC】전북, 가와사키에게 패배. 16강 탈락.
【AFC】고양, 울산 나란히 8강 진출 확정.
16강에 올랐던 고양, 전북, 울산.
그런데 16강 경기에서 전북이 역전패를 당하면서 8강에는 고양과 울산 두 팀만 올라가게 됐다.
비록 고양과 울산이 8강에 올라갔지만, 지난 시즌 챔피언의 탈락은 충격적이었다.
준결승전까지는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나누어서 경기를 치렀다.
그래서 동아시아에 부여되는 8강 티켓은 단 4장.
그중에 2장을 K리그 클럽이 가져간 것만 봐도 K리그 클럽의 경쟁력은 올해도 변함없었다.
그래도 울산이 탈락한 일은 아쉬울 뿐이었다.
그렇게 8강전 대진은 추첨을 통해 정해졌다.
【오피셜】AFC챔피언스리그 8강전, 고양 유나이티드 VS 울산 모터스 확정!
고양과 울산이 중요한 길목에서 또 한 번 맞붙게 되었다.
* * *
전반기 일정을 마무리한 우리에게 2주간의 휴식기가 주어졌다.
“말이 휴식기지 중간에 맨시티와 붙는 일정 때문에 제대로 쉴 수도 없단 말이지.”
우리는 맨시티와의 친선경기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다.
여기에 여름 이적시장까지 열렸다.
“대표님. 한석원 선수의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이죠?”
“아무래도 최근 한석원 선수의 출장 빈도수가 적어서 관련해서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모양인 것 같습니다.”
나는 한석원의 에이전트와 만나게 됐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대표님을 믿고 저희 석원이를 여기 고양 유나이티드에 맡겼는데 말이죠.”
한석원의 에이전트, 박동수는 굳은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석원이를 이적시키고 싶습니다.”
갑작스러운 이적 통보.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절대 안 됩니다.”
나와 박동수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우리는 한석원 선수를 주요 선수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주요 선수라면서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고 계속 벤치에 앉히고 교체로만 출전하는 이유가 무엇이죠?”
“아시겠지만 이 부분은 감독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리고 곽찬구 감독님은 단 한 번도 한석원 선수를 전력 외로 분류한 적도 없고요.”
“석원이는 라리가에서 뛸 정도로 실력이 있습니다. 그런 선수를 계속 벤치에 둔다는 것은 문제가 많습니다.”
박동수 이 사람, 오늘 작정하고 왔구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눴을 뿐이지만 피로가 몰려왔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법.
“한석원 선수와 저희는 계약기간이 2년은 더 남아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구단에서 낭비할 바에는 선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풀어주시지요.”
“제 입장은 변함없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단호한 내 태도에 박동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안 되겠군요. 오늘은 이 정도로 이야기하시죠.”
“…….”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박동수는 인사하고 떠났다.
그가 떠나고 천지원 이사와 김 비서가 함께 등장했다.
“굉장히 무례한 사람이군요.”
“맞아요. 저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굳이 말을 들어줄 필요 없어요.”
두 사람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 * *
“아, 형! 미쳤어!?”
“뭐래, 짜샤. 다 널 위해서 내가 힘쓰고 왔는데, 형한테 격려는 못 할망정 뭐?”
박동수와 만난 한석원은 벌컥 화를 냈다.
“형!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그럼 나한테 부탁하지 말던가. 맨날 벤치에 있어서 힘들다고 말하던 사람이 누군데?”
“…….”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한석원은 같은 포지션 경쟁자들의 대활약에 밀려 주로 교체로 뛰고 있었다.
한동안 마음고생을 좀 했었다.
그래도 전반기 막판에 연속골을 넣으면서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 상황에서 에이전트가 구단 대표와 만나서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팀 떠날 거 아냐?”
“아! 안 가!”
“왜? 너 얼마 전에는 이적하고 싶다고 했잖아.”
“아, 그건…… 거 왜, 직장인들도 평소에 회사 때려치고 싶다는 이야기하지만 계속 다니잖아. 그런 마음으로 이야기한 거라고.”
“하?”
“어쨌든, 이적 생각 없다고 내가 만나서 말할게.”
“쩝.”
박동수는 멋쩍은 표정을 드러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석원이 어릴 때부터 지켜보던 박동수는 그가 정말 아끼는 동생이었다.
가족보다 아끼던 동생이 전 소속팀과의 갈등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좀 잘하나 싶었는데, 출전 기회를 잘 잡지 못해 고생하는 한석원의 모습을 보고, 박동수도 조금 울컥한 마음이 있었다.
“됐다. 네가 괜히 나서지 마라. 내가 저지른 거니까 내가 마무리할게.”
“형, 마무리 잘 할 수 있지?”
“나 못 믿냐?”
“응.”
“아오.”
“어쨌든 잘 마무리 해줘.”
“알았다.”
* * *
“지난번 일은 죄송합니다.”
박동수가 나에게 사과했다.
“에이전트이기 전에 정말 아끼던 동생이었거든요. 최근에 동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좀 울컥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죠.”
솔직히 박동수의 사과를 좋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괜히 더 일을 크게 키울 필요는 없었다.
“곽찬구 감독에게도 한석원 선수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볼 수 있게 말을 해뒀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나는 적당히 상대해 주고 박동수를 돌려보냈다.
“대표님. 조금 전에 라시드 이사하고 토레스 단장이 한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유지원 부장님께서 지난번처럼 영접 부탁드립니다.”
“네.”
맨시티와의 친선전을 앞두고 라시드 이사하고 토레스 단장이 먼저 한국을 찾았다.
“또 뵙는군요, 라시드 이사님.”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두 사람과 만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맨시티에서 단장을 맡은 토레스입니다.”
“지태훈 대표입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금발에 파란 눈이 인상적인 토레스 단장이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말했다.
“대표님,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정말 로치오 단장이 한국에 있는 게 사실입니까?”
“그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들은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입니다. 지금 한국에 있죠.”
“오!”
두 사람이 놀란 얼굴을 드러냈다.
“혹시 서로 아는 사이입니까?”
내 물음에 이번에는 라시드 이사가 대답했다.
“그렇게 친분 있는 관계는 아닙니다만, 로치오 단장이 유벤투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갔다는 이야기가 소문처럼 퍼지고 있어서요.”
“그렇습니까?”
“네. 저희와 라이벌인 맨유가 로치오 단장을 노리고 있거든요. 저희도 어쩌다 보니 그 소식을 듣게 되었지요.”
“흐음.”
“로치오 단장 같은 사람이 갑자기 연고도 없는 한국에 무작정 찾아갈 일은 없을 텐데…… 역시 대표님과 관련된 일이겠죠?”
라시드 이사의 물음에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내 태도에 그는 씩 웃었다.
“역시, 그랬군요.”
“저희 이 이야기를 하려고 본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 * *
고양 선수단의 분위기는 좋았다.
전반기 리그 무패, AFC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FA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4강 진출을 확정한 상태였다.
내부에서는 조심스럽게 더블 이상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곽찬구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경계했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스플릿까지 포함하면 아직 반이나 남았다.
남은 경기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선수들도 들뜬 기분을 최대한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 맨시티와의 친선경기는 선수들에게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맞아. 지금까지 맞붙었던 유럽 팀들과는 수준이 다르잖아.”
콘라드 감독의 맨시티는, 전설 펩 과르디올라 이후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팀을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번에 구단 최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유럽 챔피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아무리 친선전이라도 그런 팀을 상대하게 된 고양 선수들의 분위기는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보여 주자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좋아!”
그렇게 다가올 친선경기를 생각하며 선수들이 전의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