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주세페 로치오가 한국에 오고 며칠 지나서 나는 알베르토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표님, 로치오 단장이 한국에 왔더군요. 대표님도 만났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랬죠. 혹시 사장님께서는 모르셨습니까?”
“예. 미처 연락받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한국에 왔다고 연락을 받아서 알게 됐죠.”
알베르토의 말에 의하면, 그도 갑작스러운 주세페 로치오의 한국행에 상당히 놀랐다고 했다.
“지금 그분은 어디에서 지내고 있습니까?”
“한동안 호텔 생활을 했다가 저희 쪽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숙소까지 제공해 주나요?”
“회장님의 지시가 내려왔었습니다.”
지안루이지 회장과 주세페 로치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생각보다 끈끈한 것 같았다.
직원도 아닌 로치오에게 숙소까지 제공해 줬으니 말이다.
“로치오 단장은 한동안 한국에 머무를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아무래도 한국에 머무는 이유가…… 대표님 때문인 것 같은데. 혹시 로치오 단장을 영입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글쎄요. 저희도 너무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서요.”
“하긴.”
고양 유나이티드의 단장은 계속 공석이었다. 이대로 계속 둘 수 없는데, 유벤투스의 주세페 로치오 단장의 등장은 정말 뜻밖이었다.
이미 유벤투스에서 실력이 검증된 그가 온다면 고양 유나이티드는 분명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 갑작스러운 만남 이후 주세페 로치오와 그 어떤 연락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알베르토 사장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가 그대로 한국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가 보기에는 로치오 단장은 대표님과 고양 유나이티드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가요?”
“네. 이미 그는 고양 유나이티드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조사하고 있거든요.”
심지어 최근 태국에서 열린 AFC챔피언스리그 경기도 직관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 정도로 관심이 있었다고?’
그럼 로치오는 우리 팀에 들어올 의향이 있다는 건데…….
“하여튼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언제나 건승을 빕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알베르토 사장님.”
알베르토 사장과 통화를 마친 나는 김 비서를 불렀다.
“김 비서!”
“네, 부르셨어요?”
“지금 주세페 로치오 단장과 관련해서 모든 정보 가져와.”
“네.”
* * *
김 비서를 통해 전달받은 주세페 로치오 단장은…….
“이거 완전 돌아이네?”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김 비서가 정리한 자료를 읽어보면서 놀라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조사해 보니까 유벤투스의 베넬리 가문하고 충돌했더라고요. 선수 시절 때도 그랬지만 원체 자기 주장이 강하고 본인만의 신념이 있어서,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사람이더라고요.”
“이런 사람, 능력은 있어도 윗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야.”
주세페 로치오 단장을 두고 세간에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과거 감독으로서 안토니오 콩테가 있다면, 단장으로서는 주세페 로치오가 있다고.
“베넬리 가문과 충돌했던 것도, 본인이 원하는 선수와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싸웠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문제가 뭐였는데?”
“타란티노. 이 선수를 원래 붙잡으려고 했었는데, 베넬리 가문에서 거액의 오퍼를 제시한 바르셀로나에게 팔았다고 하더군요.”
“흠. 이해는 되지만, 마피아하고 연결된 가문하고 충돌하다니. 깡 한번 좋네.”
“사실 타란티노의 에이전트가 재계약 과정에서 연봉을 너무 심하게 부르기는 했어요.”
“얼마를 불렀는데?”
뭐 그래 봤자 일이백억 정도 달라고 했으려나?
그런데 이어지는 김 비서의 말에 나는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한화로 약 400억이요.”
“뭐? 미친 거 아냐?”
무슨 선수 연봉이 400억?
돌았네!
이건 베넬리 가문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액수다.
“작정하고 이적하려고 했던 모양이에요. 타란티노는 야망이 큰 선수였고, 유벤투스는 그에 어울릴 만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군. 그런데 타란티노가 이런 식으로 불화를 일으켜서 떠날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주세페 로치오 단장은 연봉 400억을 주더라도 타란티노를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고 주장했거든요.”
“이건…….”
그래, 이건 서로가 충돌할 만하다.
이건 아무리 로치오 단장이 대단하다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시에도 이 이야기가 돌았을 때 로치오 단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음?”
김 비서가 타란티노의 프로필이 담긴 서류를 건넸다.
서류를 읽어보던 나는 숨을 들이켰다.
“오, 세상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타란티노는 첫해에 42골 28도움. 라리가 우승은 물론 그토록 원하던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했고, MVP와 라리가 득점왕까지 차지했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로치오 단장 말대로 400억 주고 붙잡았으면 유벤투스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네.”
“뭐, 결과론적인 이야기는 하지만 타란티노가 남았다고 해서 이렇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하죠.”
“그렇지.”
“그런데 사실 팬들이 아쉬워하는 건, 당시 준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가 만난 상대가 유벤투스였고, 이 경기에서 타란티노의 해트트릭으로 유벤투스가 탈락했죠.”
“허허.”
유벤투스 팬들 입장에서는 정말 화가 나는 일이 되겠다.
“어쨌든 미래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거네?”
“그렇죠. 성격이 강하기는 해도, 확실하게 자기 능력을 입증한 인물입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뭐, 좋아. 능력 검증은 됐다고 치고, 그럼 이 로치오 단장은 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면서도 이 이상 접근하지 않을까?”
“그건 뭔가 자신을 확실하게 당길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계기?”
“네. 로치오 단장은 유럽에서도 알아주는 거물입니다. 이미 유럽의 대형 빅클럽들이 그에게 오퍼를 넣었다고 하고요. 그런데 그런 오퍼를 뿌리치고 한국에 남아 있는 건, 뭔가 바라는 게 있으니까 남아 있겠죠.”
“흐음. 그 말은 그 양반이 우리에게 관심은 있지만, 그렇다고 확 손을 내밀기엔 뭔가 모자란 부분이 있다는 건가?”
“그렇게 볼 수 있죠.”
김 비서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로치오 단장을 우리 편으로 확실하게 끌어올 수 있으려면 뭐가 필요할까?
“우리가 세계 무대에서 비벼볼 수 있는지 보고 싶은 게 아닐까요?”
“음?”
어느샌가 등장한 천지원 이사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로치오 단장은 야망이 큽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대표님이 로치오 단장에게 이렇게 말했었죠? 유럽 무대와 견줄 수 있게 K리그를 만들고 싶다고.”
“음,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죠.”
그래,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렇게 말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네. 어쩌면 로치오 단장은 대표님이 하신 이야기를 증명할 수 있을지 궁금할 겁니다.”
“그럼 그렇다고 지금 당장 우리가 유럽으로 가서 유럽 팀하고 붙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는 벽에 걸린 달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 여름. 맨체스터시티와의 친선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달도 안 남았죠.”
“……설마?”
“네. 그 경기에서 우리가 로치오 단장에게 보여주면 됩니다.”
“……!”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가올 맨체스터시티전에서 최대한 주세페 로치오 단장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준비했다.
* * *
하루 일정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박요한은 누군가와 마주쳤다.
“어? 요한 씨?”
“음?”
동네에서 마주친 사람은 다름 아닌 김현지였다.
“퇴근하고 오세요?”
“아, 네. 현지 씨는요?”
“저도 오늘 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그랬군요.”
박요한은 요즘 들어 자신의 눈에 자꾸 들어오는 김현지가 조금은 불편했다.
지난번 열애설 사건 때문에 본의 아니게 곤욕을 겪었던 그는, 혹시나 또 그녀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빠르게 인사만 하고 떠나려고 했다.
그런 그를 김현지가 붙잡았다.
“저 요한 씨!”
“네?”
“혹시 괜찮으시면 저하고 저녁 드실래요?”
“네?”
“그, 지난번 일 도와주신 것도 있고, 보답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보답을 못 했던 김현지였다. 박요한이 적당한 말로 거절하거나 도망쳤기 때문이다.
“음.”
고민하던 박요한은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마침 아무 일정도 없는 상태였고, 같이 저녁 드시죠.”
“역시 안…… 네? 정말요?”
당연히 또 거절당할 거라 생각했던 김현지는 예상치 못한 승낙에 뛸 듯이 기뻐했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박요한은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아, 안 돼. 정신 차려. 박요한.’
그렇게 동네에서 식사하게 된 두 사람.
그들이 찾은 고깃집은 다른 곳보다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이목을 피해 자리 잡은 고깃집에서 김현지가 집게를 쥐었다.
“제가 구워도 되는데…….”
“아니에요! 제가 해야죠!”
열심히 고기를 굽는 김현지를 유심히 지켜보는 박요한이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얼굴이 흙색으로 변했다. 곧 벌겋게 달아오른 김현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
겉은 탔고, 속은 익지 않은, 다른 의미의 겉바속촉으로 구워진 고기를 보고 김현지는 속으로 ‘망했다!’를 연신 외쳤다.
“제가 구울게요.”
그렇게 말하고 집게를 잡은 박요한이 능숙하게 고기를 구웠다.
그걸 본 김현지가 진심으로 놀란 얼굴로 말했다.
“고기 정말 잘 구우시네요?”
“네. 형들하고 같이 고기 먹으면 제가 구워요. 평소에 고기 먹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고기는 저도 좋아하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인가?’라는 뒷말은 삼켜졌다.
금방 고기를 노릇하게 구운 박요한이 고기 한 점을 그녀의 접시 위에 올렸다.
“드세요.”
“가, 감사합니다.”
고기를 한입 먹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 육즙이 살아있어!?”
고기를 씹을 때마다 육즙이 잘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박요한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고기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잘 굽느냐도 중요하거든요. 아무리 좋은 고기라도 잘 굽지 못하면 소용이 없죠.”
“대단하세요! 축구도 잘하시는데 고기도 잘 구우시고! 못하는 게 없으세요!”
“에이, 뭘요.”
앞에서 마구 칭찬 세례 하는 김현지 때문에 박요한은 괜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저, 근데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네?”
“치어리더분들은 음식 관리 어떻게 하세요?”
“음. 사람마다 다른데요. 저는 잘 먹고 그만큼 운동해요.”
“오, 그러시구나.”
“네. 물론 관리가 필요할 때는 식이요법을 하기는 하는데, 그건 일년에 몇 번 안 돼요.”
“오, 신기하네요.”
“히히. 요한 씨는 어때요? 축구 선수들도 음식 관리하시나요?”
“하죠. 언제 어디서 뭘 먹어야 하는지 구단 코치님들하고 요리사분들 그리고 의무팀하고도 다 상의해서 정해요.”
“오.”
“물론 이렇게까지 하는 건 K리그에서 저희 팀뿐이라고 하더라고요.”
두 사람은 공통된 주제로 금방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저는 지금 팀에 잘 들어온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요한 씨 지금 엄청 잘하시잖아요.”
“네. 제가 잘할 수 있게 도와준 구단에게 고맙고, 동료 선수들도 다 친하게 지내고 있고, 무엇보다 현지 씨하고 이렇게 같이 밥도 먹어서 좋네요.”
“네?”
“아!”
마지막 말은 무심코 흘러나왔다.
이야기를 한 박요한도, 듣고 있던 김현지도 모두 깜짝 놀랐다.
순간 말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박요한은 바로 사과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김현지가 말했다.
“저도 좋아요.”
“네?”
“저도 요한 씨가 이렇게 같이 밥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