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우리 팀을 방문했다.
“안녕하십니까. 주세페 로치오입니다. 편하게 로치오라고 불러주십시오.”
“바, 반갑습니다. 지태훈입니다.”
직접 통역가를 대동해서 나를 만나온 이 거물의 정체는 바로 주세페 로치오 단장이다.
유벤투스에서 선수부터 단장까지 활약했던 그가 어째서 나를 보자고 한 것일까?
“지안루이지 회장님으로부터 당신을 추천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를요?”
“그렇습니다. 저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습니다. 이곳이 제가 갈 길과 맞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허허.”
지안루이지 회장님.
도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주세페 로치오의 등장에 천지원 이사를 포함한 주요 간부들이 모두 찾아왔다.
“주세페 로치오가 왜 여기에?”
“세상에, 저 사람이 주세페 로치오?”
한편, 주세페 로치오에 대해 잘 모르는 일부 직원들은 어리둥절했다.
“저 사람이 누군데 이렇게 반응해요?”
“주세페 로치오, 저 사람 유벤투스 전설이야.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뛸 정도로 축구도 잘했고, 단장이 된 이후에 현재 유벤투스의 주요 핵심 인원들을 섭외하면서 팀을 완전히 바꿨다고!”
2010년대에 세리에A는 유벤투스 천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서 유벤투스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주세페 로치오였다.
유벤투스 왕조의 멤버로 활약했던 그가 흔들리는 팀을 위해 직접 단장으로 복귀했다.
그렇게 단장이 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알그레노’ 감독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이 영입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알그레노 감독이지만, 현재 유럽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으며 유벤투스 새왕조의 리더로 활약하였다.
여기에 타란티노, 레반스, 카초 등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영입했다. 현재 이 선수들은 새로운 유벤투스 왕조의 핵심 멤버들이 되었다.
또한 이들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이 중에서 타란티노의 경우, 지난 시즌 8,500만 유로에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우승 공신으로 활약했다.
이 모든 일에는 주세페 로치오 단장이 중심에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당신 같은 분이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죠.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습니다.”
“……?”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아시아 정복입니다.”
내 대답에 그가 언뜻 실망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시아 정복을 시작으로, 우리는 세계로 나아갈 겁니다. 유럽이 최고 무대가 된 것처럼, 아시아도 그렇게 만들려고 합니다.”
“……!”
그의 눈이 커졌다.
사실 내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형에 대한 복수와 영신 그룹의 총수가 되기 위해, 고양 유나이티드라는 클럽을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고, 사업의 크기가 늘어나면서 점점 욕심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허투루 이 클럽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좀 더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정한 목표가 바로, 지금 주세페 로치오에게 대답한 말이다.
“언제까지고 유럽 무대만이 최고가 될 거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에는 영원불멸한 것은 없으니까요.”
“그 말은, 유럽 축구가 몰락한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허!”
“물론 지금 당장 몰락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시일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은 궤변입니다. 지금도 유럽 축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다른 대륙은 넘볼 수 없는 사이즈를 보유하고 있죠. 당신의 생각처럼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치고 표정은 상당히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
“유럽의 사정과는 별개로, 아시아 리그는 충분히 성장 가치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대한민국의 K리그는 계속해서 경쟁력을 입증해 나가고 있죠.”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와 순수 개인별로 더욱 발전이 필요한 K리그였지만, 그래도 매년 쉽게 밀리지 않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K리그에게 고질적인 문제로 작용했던 ‘자본’이 저희로 인해 강제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강제로 숨통을 트이게 만들었기에 이후 K리그가 가졌던 문제들을 해결할 여지들이 생겼고요.”
“…….”
“어떻습니까? 이 이야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내 말을 잠자코 듣던 그가 코웃음을 치며 반응했다.
“어이가 없군요.”
“…….”
“하지만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는 합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된다는 가정이 필요하지만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느닷없이 찾아와서 신세를 졌습니다. 다음에 연락드리죠. 그럼 이만.”
“아, 예.”
그는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뒤 나는 황당한 마음을 드러냈다.
“도대체 뭐 하는 양반이야?”
* * *
여기 술자리를 갖는 남녀 두 명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 비싼 양주가 빈병이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야! 너 왜 이렇게 술을 잘 마시냐?”
“그러게~ 그쪽도 엄청 잘 마시는데?”
백태현과 손지영은 처음으로 만난 소개팅 자리에서 생각보다 서로가 잘 맞는 걸 깨달았다.
몇 마디 대화만 나눠봤을 뿐인데 서로에게 호감을 지니게 됐다.
무엇보다 ‘지태훈’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안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서로 코드가 맞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저녁 겸 술자리까지 갖게 됐는데, 이런 결과가 오게 된 것이다.
“이제 집에 가즈아!”
“응? 우리 회장님 집으로? 응큼하긴~”
“아니! 아니! 그거 말고! 각자 집! 각자 집에 가자고!”
평소 스스로 술을 잘 마신다 생각했던 백태현은, 손지영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치 번데기 앞에서 주릎을 잡는 것처럼, 손지영의 엄청난 주량 앞에 백태현은 항복 깃발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이대로 우리 회장님 집에 가도 되는데?”
“뭐?”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 백태현은 다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차 비서! 빨리 와! 가자! 집에!”
혀가 잔뜩 꼬부라진 목소리로 비서를 호출한 그는 자꾸 점멸하려는 의식을 겨우 붙잡으며 어떻게든 자리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다행히 금방 비서가 와서 자리를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손지영을 먼저 집에 보낸 뒤, 백태현도 집에 가는 길에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우, 메시지 보내기 힘드네.”
메시지를 보낸 뒤, 그는 긴장이 풀리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겨우 정신을 차린 그가 부서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어우, 죽겠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미친 것 같다.
“무슨 술을 못 마셔서 한이라도 맺혔나.”
또 술도 비싼 술만 골라 마셔서 술값도 상당히 많이 나왔다.
“사람은 나쁘지 않은데…….”
개인적으로 호감은 있었다. 하지만 같이 술 마시자는 이야기는 꺼내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화면을 열었다.
그리고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드ㄹ가ㅓㅇ?
뎅
ㄷ으메ㅂㅛ
“…….”
화면을 보던 백태현은 어이없어하면서 마른세수했다.
* * *
박지원의 복귀가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한비오의 출전 시간이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한비오는 데뷔전 이후 자신감을 안고 준수한 활약을 펼치면서 박지원의 공백을 채우고 있었다.
『골키퍼 선방입니다!』
『한비오 선수, 어린 선수지만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정말 미래가 기대됩니다!』
하지만 한비오도 매번 좋은 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때론 엄청난 위기를 맞이할 때도 있었다.
『한비오 선방인데요! 아! 공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위험해요! 레오나르두 슛!』
날아오는 공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 공격수가 슈팅 찬스를 얻고 강하게 슈팅을 때렸다.
황급히 한비오가 몸을 날려보았지만, 이미 공은 상대 공격수 발끝을 벗어나 있었다.
한비오는 눈앞에서 지나가는 공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오! 막아냅니다! 라시모프가 몸으로 막은 뒤 걷어냅니다!』
『이야, 라시모프! 이건 라시모프 선수가 한 골 막아 낸 것과 다름없습니다!』
포효하는 라시모프.
그러고는 곧 한비오에게 다가가더니 곧 자신의 가슴을 치며 외쳤다.
“믿! 음!”
“……!”
어설픈 한국어.
그렇지만 최대한 또렷하게 외치고 있었다.
라시모프가 한 번 더 외쳤다.
“믿! 음!”
본인 가슴을 손바닥으로 팡팡 치며 외치는 라시모프를 본 한비오는 순간 울컥할 뻔했다.
“응! 믿어!”
“좋! 아!”
이렇게 골키퍼가 위태로울 땐, 믿을 수 있는 동료의 도움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저게 원 팀이죠. 고양이 계속 선두를 질주하는데요. 저런 모습을 보니 뭘 해도 잘할 수밖에 없겠다 생각되네요.』
고양 유나이티드는 전반기 무패 질주를 하며 선두를 질주했다.
그런 와중에 치러진 AFC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태국클럽의 최강자이자 F조 2위로 올라온 부리람과 맞붙게 됐다.
1차전은 태국에서 원정 경기를 치르게 된 고양 유나이티드.
『득점합니다!』
우와아아아!
K리그에서는 조금은 주춤한 기색을 보이는 박형우지만 AFC챔피언스리그에서만큼은 대단한 위용을 보였다.
부리람의 홈구장 ‘창 아레나’는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부리람을 2:0으로 누르고 1차전을 승리로 장식합니다!』
박형우의 멀티골로 태국 원정에서 승리한 고양 유나이티드는 기분 좋게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 *
“곧 여름이네요.”
“그러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더워진 날씨에 나와 김 비서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곧 여름 휴식기로 돌입하면 맨체스터시티하고 경기를 치르겠네요.”
“응.”
“우리가 그 대단한 맨체스터시티하고 붙어서 이길 수 있을까요?”
“옛말에 그런 게 있어. 공은 둥글다고.”
“그게 무슨 뜻이에요?”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야.”
나는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먹으면서 말했다.
“객관적인 전력상 우리가 맨체스터시티에 밀리는 건 사실이지. 하지만 과거에 우리가 친선경기에서 AT마드리드를 잡았던 것처럼, 어떤 결과가 올지 몰라.”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이번 친선경기가 K리그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서 문제지만요.”
“으음.”
고양이 계속 1위를 질주하면서, 여름 휴식기에 치러질 맨시티와의 경기가 자연스럽게 K리그 자존심 대결로 바뀌고 있었다.
“K리그 팬들 사이에서 이번에 좋은 모습 보여주지 못하면, 또 엄청난 조롱거리가 된다고 우려하고 있어요.”
“그렇겠지. 국내 축구 한 번도 안 본 이들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물고 뜯고 하겠어.”
“만약에 우리가 대패하거나 허무하게 지면 어떻게 하죠?”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주변에 어떤 우려가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내 팀을 믿어야 했다.
“그리고 무조건 걱정만 할 일이 아니야. 만약 여기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우리에게도 이득은 있어.”
“이득이면… 경기 중계권료하고 티켓 수입이요?”
“그건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고. 더 중요한 게 있어.”
“……?”
어리둥절해하는 그녀에게 작게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주세페 로치오.”
“네?”
“그를 우리 팀으로 끌어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