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이번에 미디어 콘텐츠 사업부를 새로 만들 예정입니다.”
“예?”
“미디어 콘텐츠 사업부는 TH미디어와 연계하여 고양 유나이티드와 관련된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기획 및 제작해서 최종적으로는 플랫폼에 서비스하게 될 겁니다.”
내 말에 회의장이 술렁였다.
하지만 곧 분위기는 정돈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도 어느 정도 예상하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TH미디어에서 OTT플랫폼 사업을 추진하는 이야기는 고양 유나이티드 관계자들도 알고 있었던 일이다.
이 OTT플랫폼 사업에 고양 유나이티드와 관련된 미디어 콘텐츠가 들어가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이다.
“지금까지 K리그 클럽들이 제공해왔던 그 이상의 고품질 콘텐츠를 제작해서 최종적으로 구독 시스템을 통한 판매까지도 가능하게 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천지원 부장을 바라봤다.
“새로 신설될 미디어 콘텐츠 사업부의 총괄에는 천지원 부장님이 맡아 주십시오.”
“……!”
천지원을 제외한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사전에 천지원 부장에게만 오늘 일을 예고했었다.
다른 부장들은 전혀 몰랐으니 놀랄 수밖에.
“아울러 천지원 부장은 TH미디어 K리그 콘텐츠 총괄 이사에 겸임하여 활동할 예정입니다.”
“……!”
파격적인 승진에 모두가 놀랐다.
어떤 이는 부러움을, 어떤 이는 질투와 시기가 보였다.
하지만 어떤 감정을 보이든, 이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높게 그를 신뢰하는지를 말이다.
“앞으로 천지원 이사님과 연계하여 콘텐츠 제작에 힘을 써주십시오. 그리고 공백이 된 마케팅 팀장은 신진호 과장이 맡을 예정입니다.”
천지원이 신사업 부서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뒤를 신진호 과장이 받게 되었다.
신진호 과장 또한 부장으로 파격 승진하게 된다.
이렇게 인사 개편을 마무리하고 회의를 마쳤다.
회의를 마친 후 나는 대표실에서 천지원과 독대했다.
“천 부장님, 아니 천 이사님.”
“네, 대표님.”
“TH미디어에서 추진하는 이번 신사업은 향후 TH그룹의 중요 사업이 될 겁니다. 천 이사님의 성과에 기업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목표했던 것 이상으로 결과를 만들겠습니다.”
창문을 바라보던 나는 몸을 돌렸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천지원을 향해 미소를 드러내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천지원은 고개를 숙였다.
* * *
이탈리아 토리노.
라세라티의 회장 잔루이지는 어떤 남자와 만났다.
큰 눈에 보석 같은 파란 눈동자, 매부리코, 도톰한 입술과 관리가 잘된 턱수염을 기른 그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미남이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간 잘 지냈나, 주세페 단장.”
주세페 로치오, 현(現) 이탈리아 유벤투스FC의 단장(스포팅 디렉터)인 그가 잔루이지 회장과 만났다.
잔루이지 회장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조금 마신 뒤 말했다.
“듣자 하니 베넬리 가문하고 충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던데 말이야.”
베넬리 가문.
현재 유벤투스FC를 이끄는 구단주의 가문이었다.
“골닷컴의 기사를 보신 겁니까?”
“단순히 찌라시 기사 하나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세.”
“…….”
“자네가 멍청한 라차티노 부회장 같은 인물과 충돌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베넬리 가문은 아니야.”
그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은 뒤, 로치오를 직시했다.
“주세페 단장. 베넬리 가문의 뒤에는 마피아가 있는 건 알고 있나?”
“소문만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 같은 인재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네.”
“…….”
“현 베넬리 가문의 수장 안토니오 베넬리는 심성이 고약해. 뭐, 그런 심성 때문에 자네와 충돌하는 거겠지만.”
잔루이지 회장은 로치오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로치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베넬리 가문이 최근 사업 하나를 크게 말아먹었어. 그러니 자네가 원하는 만큼의 자금과 기술적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밖에.”
잔루이지 회장은 깍지를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사업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몰라. 단장으로서 구단 경영에 참여한 자네라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두려고 합니다.”
“음.”
예상치 못한 말이었을까?
로치오의 말에 그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계획하는 바가 있나?”
“저를 품어줄 수 있는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출발을 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맨체스터에 있는 두 팀과 파리에 있는 팀 하나에서 제안이 들어오긴 했습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갈 생각인가?”
로치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그들 또한 과연 저를 품어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하니까요.”
“그렇군.”
잔루이지 회장은 깍지를 풀고 손가락으로 무릎을 툭툭 치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자네가 유벤투스에서 일한 지 이제 5년 정도 됐나?”
“단장으로서는 5년이 되어가죠. 선수 시절까지 포함하면 15년 정도 됐고.”
주세페 로치오는 과거 선수로서도 맹활약했었다. 유벤투스의 전설로, 리그 우승을 비롯하여 다양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은퇴 이후 지도자가 아닌 경영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럼 이건 어떤가?”
“……?”
“자네에게 흥미로운 제안 하나를 하고 싶네.”
“제안이요?”
“자네가 좀 더 안목을 넓게 볼 수 있다면 말일세. 아시아로 가보는 것은 어떠한가?”
“아시아?”
“그래. 한국에 대해 알고 있나?”
“맨체스터시티에 있는 강철인의 나라 아닙니까?”
“맞네. 그곳이라면 자네를 품어줄 아주 그릇이 큰 구단주가 있네.”
“그게 무슨…….”
로치오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의 반응을 본 잔루이지 회장은 작게 웃었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자네 같은 반응을 보일 거야. 하지만 말일세.”
잔루이지 회장은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신 뒤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향후 10년. 아니, 5년 뒤에는 유럽에 살고 있는 모두가 알 정도로 거물이 될 유명 인사가 될게야.”
“그 정도입니까?”
로치오는 놀랐다.
선수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던 잔루이지 회장이 특정 인물을 이렇게까지 칭찬하는 경우를 거의 본적이 없었다.
잔루이지 회장은 상당히 까다로운 위인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로치오였다.
그랬기에 조금은 흥미가 동했다.
“긴말할 필요 없지. 가서 만나보기만이라도 하게. 그럼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될게야.”
* * *
“아, 이거 좀 어색한데요.”
“대표님, 그냥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강시윤PD와 천지원 이사의 주문을 받으면서 나는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브이로그라니.”
뜬금없지만, 나는 지금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를 촬영하고 있었다.
신사업부인 미디어 콘텐츠 사업부와 TH미디어의 공동 기획 회의에서 ‘구단주님의 일상’을 찍어 보자는 내부 의견이 만장일치로 통과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미 컨셉과 제목도 모두 정해진 상태였다.
“구단주님의 플렉스한 일상생활이라니. 내가 무슨 플렉스를 한다고.”
“대표님. 이거 잘 찍으면 대박 난다니까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열정적으로 촬영을 진행하고 있으니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다.
“태훈 씨, 잠깐만요.”
김 비서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곧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나는 괜히 쑥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강시윤PD가 빠르게 카메라 화면에 담았다.
“앗! 이것도 찍는 거예요?”
“당연하죠.”
놀란 김 비서가 당황해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한 마디 툭 던졌다.
“귀엽네.”
“아! 몰라요!”
그녀가 내 가슴팍을 가볍게 툭치고 사라졌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우리는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렇게 촬영한 브이로그 일부 영상이 구단 공식 SNS 계정과 동영상 플랫폼에 올라갔다.
그리고 반응은 생각보다 폭발적으로 좋았다.
-존잘 구단주님!
-김 비서님 귀엽다 ㅎㅎ
-K리그 팬질한 지 수십 년인데 구단주 브이로그는 처음 본다.
-재벌가 일상이 궁금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우리하고 다르지 않구나.
팬들은 대체로 좋은 반응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런 반응들에 힘입어 기사까지 나왔다.
포털사이트 메인 기사에 오를 정도로 꽤 인기가 있었다.
그걸 본 강시윤PD가 나에게 말했다.
“대표님, 앞으로 계속 시리즈별로 찍어야겠는데요?”
“음. 어쩔 수 없네요.”
이렇게 반응이 좋으면 그만둘 수가 없다. 내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을 무릅쓰더라도 할 보람이 생긴다.
그렇게 우리는 몇 가지 영상을 추가로 더 찍었다.
[직원들 몰래 라이벌팀 유니폼을 입고 출근해 보았습니다.]
[구단주가 추천하는 고양 유나이티드 굿즈 리뷰! + 신상 나왔다구!]
[재벌 구단주도 치킨 먹나요? 치킨 먹방 대공개! + 보고 있나요, 스폰서님!]
[구단주가 직접 말하는 고양 유나이티드 썰! 썰! 썰! + 특별 게스트 곽찬구 감독님?]
영상들은 모두 대박이 났다.
특히 치킨 먹방 동영상의 경우, 기존에 구단을 후원하는 스폰서들의 광고 문의 요구가 쇄도하기도 했다.
이 외에 신규 광고주들의 문의도 들어왔다.
촬영하던 직원들도 내 먹방쇼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맛있게 드시네요.”
“잘생겼는데 잘 먹으니 반응이 좋을 수밖에요.”
평소 앉은 자리에서 치킨 한 마리를 다 먹던 나다.
치킨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과 재벌가에 대한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난 상황이 섞이면서 상당히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내가 먹었던 치킨은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이렇게 새로 추진한 사업도 잘 풀려가고 있었다.
* * *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
“여기가 한국인가.”
주세페 로치오는 처음 보는 낯선 한국 땅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회장님의 말대로 과연 나를 품을 수 있는 인물이 여기에 있을까?”
그런 로치오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익숙한 라세라티에서 출시한 신규 차와 그 옆에 선 한 남자.
“저 사람인가?”
광고 속에 있는 지태훈을 본 그가 씨익 웃었다.
* * *
고양 유나이티드의 광폭 행진은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호프만이 발밑으로 정확하게 패스하는데요! 박요한입니다! 박요한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박요한의 리그 12호 골이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올 시즌 K리그 득점 선두 박요한과 도움 선두 호프만의 합작 플레이로 또 한 번 골망을 흔들었다.
리그와 아챔 모두 성공적으로 순항하는 그들은 여전히 리그 1위를 유지하며 질주하고 있었다.
쟁쟁한 라이벌 팀들이 따라오고 있었지만, 고양의 광폭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홀린 듯 멍하니 경기를 지켜보는 인물이 있었다.
“멋있어.”
박요한의 골을 본 김현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은 최지수는 피식 웃었다.
‘정말 제대로 빠졌구나.’
김현지를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을까?’
사람의 감정을 막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지난번에 꽤 곤란한 상황을 치렀고, 이에 관해서 구단주가 직접 움직이기까지 했다.
‘부디 처신 잘해야 할 텐데.’
김현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최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