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94화 (194/272)

194화

미국, 뉴욕.

“내가 살면서 미국에 다 오다니.”

“어라? 미국 처음이세요?”

“처음은 아니긴 한데, 너무 어렸을 적에 간 거라서.”

나는 김 비서와 함께 뉴욕에 오게 됐다. 추진하는 사업은 순항 중인 가운데, 이번에는 영신그룹의 일로 오게 됐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아, 반갑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은 남자가 나에게 인사했다.

현재 영신글로벌 뉴욕지사 사장직을 맡은 이진우였다.

영신글로벌은 영신그룹에서 추진하는 각종 해외 사업들을 기획하고 유치하는 회사였다.

이진우는 4년 전부터 이 회사의 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이사님으로부터 이야기 들었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이사님 통해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김진철 이사가 특별히 만나보라며 추천해준 인물이 바로 이진우였다.

30세에 입사해서 불과 10년 만에 사장직까지 오른 그는 향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로 판단했다.

“김 이사님은 저한테 있어서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제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죠.”

“그렇습니까?”

“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그분이 본부장이셨거든요. 제 가치를 제일 먼저 인정해 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이진우는 원래 다니던 직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김진철 이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스카웃 제의를 했고, 직접 영신그룹까지 데려왔다고 한다.

“지금의 영신전자를 만들어 준 스마트 프로젝트를 기획하신 분이 사장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하.”

스마트 프로젝트.

지금은 현대인들에게 필수인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스마트 제품들의 초안을 기획했던 프로젝트였다.

2010년대 초반 영신전자의 핵심 사업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알려졌다.

현재 영신전자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높인 것도 바로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초안 기획을 이진우가 담당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도산해서 없어진 콴진 그룹에서 추진했었다가 내부 반대로 무산되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비즈니스로 만났던 김진철 이사님이 제가 추진했던 프로젝트를 듣고 좋게 봐주셨던 거죠.”

콴진 그룹은 중국 기업으로, 한때 중국 내에 전자제품 업체로 큰 명성을 누렸다.

하지만 2010년대에 급작스러운 재정 악화와 연이은 사업 실패로 결국 도산하고 말았다.

가만 보면 김진철 이사도 대단한 것 같다.

겉으로는 엄청 무서운 호랑이 같은 남자인데, 은근히 사람 보는 눈이 좋은 것 같다.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저도 지태훈 대표님이 너무나 궁금했었거든요.”

그는 진심으로 나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아 보였다.

“돌아가신 전대 회장님의 슬하에 자식들이 많았죠. 그 많은 회장님의 자식들 중에서 과연 누가 이 거대한 그룹을 이끌어갈 리더가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전대 회장님이라뇨. 전대 회장은 지태완인데.”

“그런 사람이 무슨 회장입니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말하는 그가 약간은 소름이 끼쳤다.

“혹시 지태완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까?”

“뭐, 이런 거대한 조직에서 매번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있구나.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다.

나는 슬쩍 옆에 있던 김 비서를 쳐다봤다. 그런데 김 비서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그거 아십니까?”

“네?”

“지태완이 등장하기 이전에 제가 가장 유력한 영신전자 사장 후보였습니다.”

“……!”

“그런데 저는 영신전자 사장이 아닌, 영신글로벌의 사장이 되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권모술수에 말리셨군요.”

“사업은 잘할 수 있지만, 제가 정치에서는 나약하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죠.”

지태완이 가장 잘하는 것.

그것은 정치적인 중상모략에 능숙하다는 것이다.

상대를 함정에 빠트리고 본인은 전혀 개입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흔적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만약 흔적이 남게 되더라도 가차 없이 꼬리를 잘랐으니까.

나도 회귀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처를 할 수 있었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냥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똑똑한 이진우도 지태완의 술수에 놀아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나는 왜 김진철 이사가 이진우를 만나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진우 사장님.”

“예?”

“혹시 지금도 영신전자 사장 자리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건 왜…….”

“제 편이 되어주신다면, 영신전자 사장이 되게 해드리죠.”

“……!”

내 제안에 이진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 * *

뉴욕에서 이진우 사장을 만난 나는 바로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칼리드 왕자가 뉴욕에서 보자는데?”

“예? 갑자기요?”

“어. 무슨 일인지는 만나서 설명하겠대.”

갑작스러운 칼리드 왕자의 등장이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한 그를 무시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오! 형제여! 뉴요커가 된 기분이 어떠한가?”

“뉴요커는요. 그냥 그렇죠.”

“하하하! 자네는 똑같구만!”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일로 뉴욕까지 오셨습니까?”

“아! 나도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아무래도 자네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야.”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칼리드 왕자는 특유의 여유로운 자세로 설명했다.

“혹시 기억하나? 내가 축구팀 하나를 인수할 계획이 있다고 말이야.”

“아, 기억납니다.”

작년 말이었던가, 올해 초였던가.

하여튼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여러 축구팀을 알아봤는데, 이번에 MLS 팀 하나가 매물로 나왔어.”

MLS.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미국 프로축구의 명칭인데, 칼리드 왕자는 그곳에 속한 한 팀을 인수할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인수할 팀이 마침 뉴욕에 있어.”

“뉴욕에요?”

“뉴욕 버팔로.”

“엥?”

뉴욕 버팔로.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다.

그때, 김 비서가 슬쩍 다가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칼리드 왕자의 친척이 운영하는 팀이에요.”

“아!”

기억났다.

그래, 칼리드 왕자 친척 중에 축구팀을 운영하는 인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얼핏 들었던 적이 있었다.

“눈치챘군. 그래. 나의 먼 사촌인 살람 아흐메드가 운영했던 팀이지. 그런데 이번에 지병이 심해져 운영을 하기가 어려워서 매물로 나오게 됐어.”

“그랬군요.”

“알아보니 재정 상태나 팀의 역사나 팬들 수준 그리고 팀 내부 상태도 나쁘지 않더군.”

뭐야, 다 알아본 거야?

그럼 딱히 내가 도울 만한 게 있나?

“사실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예?”

“팀 인수 절차는 거의 마무리되고 있어. 어쩌면 오늘 끝날 수도 있지.”

“……!”

“인수를 마무리 지으면 조만간 내부 개편이 있을 거야. 내 입맛대로 바꿀 예정이거든.”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으니, 그에 맞는 변화는 당연할 터.

“자네 팀에는 우수한 선수들이 많지. 그리고 내가 인수할 팀에도 우수한 선수들이 제법 있고. 그래서 말인데, 우리와 협약을 맺는 게 어떻겠나?”

“네?”

“구단 간의 교류를 통해서, 선수들을 교환하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는 걸세.”

그는 선수 교류를 통해 선수들의 질적 수준 상승을 도모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MLS의 수준도 K리그와 비교해서 꿀리지 않아. 그리고 K리그보다 좀 더 유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도 보장되고 말이야.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나쁠 것이 없어.”

기본적으로 임대를 통해 교류하면서 잠재력이 충분한 선수들의 경우 일찌감치 유럽 리그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어떠한가? 나의 제안이.”

“좋네요. 제가 뭐 따질 것도 많지 않네요.”

“역시 형제하고 말이 통하는구먼.”

“조금 더 상세한 협의를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좋네. 조만간 관련 내용이 담긴 서류를 자네 쪽으로 보내지.”

* * *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내가 하는 일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언제쯤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까 싶었던 일들이 이제는 하나둘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TH투자회사를 중심으로 자회사들이 성과를 만들었다.

가장 규모가 컸던 UAE 신도시 사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TH건설은 중동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이번 결과로 다양한 사업을 수주받을 수 있었다.

중동에서 가장 인지도가 좋은 태조건설을 위협하는 건설사로 떠올랐다.

TH미디어에서 추진하는 OTT플랫폼 사업도 순항하고 있었다.

코리아네트워크 박종찬의 도움을 받은 TH미디어는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결과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들이 영신그룹에서도 상당한 이슈가 되고 있었다.

영신그룹 이사회와 사장단은 점점 나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우수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일부 인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나에 대한 민심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에는 김진철과 용준형, 강민수 같은 인물들의 밑작업이 한몫했다.

여기에 이진우까지 나와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상당한 이슈몰이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뜻밖의 제의를 받게 되었다.

“앞으로 언론에도 너에 대한 물밑 작업이 들어갈 거다.”

김진철 이사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나를 향해 박준후 팀장이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 언론을 휘어잡고 있는 한보일보는 과거 영신그룹과 사돈으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현 한보일보 회장 박동진은 초대 회장님 누이의 아들이죠.”

“아, 기억났어요. 가끔 집안 행사 있으면 찾아왔었죠.”

“맞습니다. 하지만 누이분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한동안 소원했지요.”

“어쨌든 제가 그 한보일보 회장하고 만나면 됩니까?”

“네. 한보일보가 힘을 써준다면 지금보다 더 탄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한보일보 박동진 회장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상당히 꼰대 기질이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보일보 자체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도 한 수 접어준다고 하니 말 다했다.

“언제쯤 만나면 됩니까?”

“안 그래도 일정 잡아 놨다. 금주에 만나기로.”

“예? 그렇게 빨리요?”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그리고 그쪽에서도 너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는 것도 같고 말이야.”

“허어.”

정말이지 김진철 이사의 추진력은 대단하다.

그것보다 요즘 나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이번에 만났던 이진우도 그렇고, 앞으로 만날 박동진도 그렇고, 다들 나에 대해 많이 궁금한가 보다.

“이진우를 포섭한 것처럼 박동진 회장도 잘 포섭해 봐라. 솔직히 나도 그 꼰대 기질이 거슬리기는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한보일보에게 밉보이면 인생 끝장난다.”

“그 정도입니까?”

“그래. 이번에 전임 대통령이 검찰 조사받은 사건 알고 있지?”

“아.”

퇴임한 전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뇌물 수수 혐의로 말이다.

“듣기로는 임기 말년에 박동진 사장과 사이가 틀어졌다고 해. 이번 검찰 조사도 박동진 회장이 뒤에서 꾸민 짓이라는 이야기가 돌더군.”

“…….”

아무래도 내가 너무 무서운 사람을 만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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