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비오야. 이번 리그 경기에서 네가 선발로 나갈 거다.”
“저, 정말 제가 선발인가요?”
“그래. 지원이가 부상을 입었으니 네가 나가야지.”
한비오는 갑작스레 곽찬구 감독으로부터 생애 첫 K리그 데뷔전을 언질 받았다.
꿈에서나 그리던 프로무대 데뷔.
올해 만으로 21세가 되는 한비오는 아직 프로무대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래서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비오야. 잘할 수 있을 거다. 너 자신을 믿어라.”
“넵. 지원이 형 몫까지 최선을 다해서 뛸게요!”
“그래.”
의도치 않게 부상을 당한 박지원도 자신 대신 선발로 나서게 될 어린 유망주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주말 리그가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이번 라운드에서 만난 상대는 전북 모터스였다.
전북을 홈으로 불러들인 고양은 선두 경쟁에 있어서 오늘 경기 결과가 매우 중요했다.
이런 경기에서 한비오가 선발로 나서게 된 것이다.
선수라면 평생 잊을 수 없는 꿈같은 데뷔전을 치르게 된 한비오.
그런 그에게 김지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비오야. 떨지 말고 훈련 때처럼 하면 된다. 알았지?”
“네!”
주장 김지우를 포함해 오늘 선발로 나선 동료 선수들이 한비오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래, 어려울 것 없어. 설령 실점하더라도 우리가 골 넣으면 돼.”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 최선을 다하자!”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2028 TH투자회사 K리그 7라운드, 고양 유나이티드와 전북 모터스의 경기를 생중계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캐스터 오정진이고요. 박하윤 해설과 함께합니다. 반갑습니다.』
『아! 반가워요! 오늘 우리 처음 호흡 맞춰보네요?』
『네. 그렇습니다. 함께 해서 영광입니다.』
『하하. 영광은 무슨. 오늘 저희처럼 처음 프로 경험을 하는 선수가 있는데요.』
『네, 고양의 한비오 선수인데요. 훈련 중에 박지원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백업 골키퍼로 있던 한비오 선수가 오늘, K리그 데뷔전을 치릅니다.』
『오늘 한비오 선수에게는 어쩌면 엄청난 날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박하윤 위원님은 데뷔전 때 기억이 어떠셨나요? 지금도 생생하신가요?』
『물론이죠.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오르면 잊을 수가 없죠. 평생 기억 남습니다.』
『지금 화면에 박지원 선수가 잡히는데요. 박지원 선수도 오늘 경기를 경기장에서 함께 지켜보네요.』
고양 유나이티드 엠블럼이 박혀 있는 노란색 모자를 푹 눌러쓴 박지원이 굳은 얼굴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배가 대신해서 중요한 경기를 뛰어야 하는데, 박지원 선수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마치,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는 박지원 선수입니다.』
양팀 선수들이 경기 시작에 앞서 각자 위치로 움직였다.
골키퍼 장갑을 낀 한비오가 홈팀 서포터스가 있는 골문으로 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함성이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
그때, 노란 확성기를 손에 쥐고 응원을 리드하던 박태준이 외쳤다.
“자, 우리 어린 선수를 위해 힘차게 응원해 줍시다! 다 같이 한비오!”
한비오! 한비오! 한비오!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을 향해 한비오가 인사했다.
곧 주심이 경기 시작을 위해 입에 휘슬을 물었다.
삑! 삐익!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전반전 경기 시작됐습니다! 화면 기준으로 왼쪽이 홈팀 고양 유나이티드, 오른쪽이 원정팀 전북 모터스입니다.』
『오늘 상당히 중요한 경기입니다. 지금 전북 모터스가 고양 유나이티드를 바짝 뒤쫓고 있거든요? 경기 결과에 따라서 순위가 뒤바뀔 수 있습니다!』
『전북이 초반부터 거세게 밀고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지금 말씀드리는 순간, 전북이 공격합니다!』
고양이 가지고 있던 볼을 중간에서 커트하는데 성공한 전북이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한비오가 첫 데뷔전을 치른다는 것을 알고, 시작부터 슈팅을 아끼지 않았다.
팡!
『김영진 슈우우웃! 하지만 한비오가 막아냅니다! 데뷔전에서 1호 선방을 보여주는 한비오!』
상대의 첫 번째 슈팅을 쳐내는데 성공한 한비오.
그런 그에게 동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하고 있어!”
“그래, 이렇게 하면 돼!”
동료들의 격려 속에 한비오는 좀 더 집중해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시작부터 전북이 거칠게 몰아붙이는데요. 또 다시 전북이 공격합니다. 이번에는 더글라스입니다! 더글라스 슈우우웃!』
전북의 핵심 공격수 더글라스의 낮고 빠른 슈팅이 골문으로 향했다.
아크 정면에서 때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에 놀란 한비오가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반박자 빠른 슈팅이 먼저 골망을 흔들어 버렸다.
출렁-
와아아아아아-
전주에서 고양까지 원정 온 전북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아!”
실점한 한비오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런 그에게 김지우가 달려와서 외쳤다.
“야! 아직 시간 남았어! 기죽지마!”
“네, 넵!”
『전북이 불과 5분 만에 선제골을 만들어 냅니다. 더글라스의 기습적인 슈팅으로 만들어진 득점인데요. 전북은 오늘 이런 슈팅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죠. 한비오 선수가 경험치가 부족하니까 이런 기습적인 슈팅에 약할 수 있어요. 반면 고양은 상대가 제대로 슈팅하지 못하게 길목을 차단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전북이 1점 앞서나가면서 스코어는 1:0됩니다.』
첫 실점 이후에도 한비오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팡!
“크읏!”
팡!
“제길!”
전북은 작정하고 슈팅 기회만 있으면 일단 때리고 봤다.
기본적으로 슈팅 좋은 선수들이 많은 전북이기에, 한비오에게는 슈팅 하나하나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다가 또 한 번 위기를 맞이했다.
『이번에도 더글라스인데요! 더글라스 슈우우웃! 아! 들어갑니다! 전북이 추가골을 만들어 냅니다!』
『아, 이러면 오늘 고양이 너무 힘들어요. 반대로 전북은 오늘 준비했던 전략이 제대로 먹히네요.』
전반전이 아직 20분도 안 됐는데 2골이나 내준 한비오에게는 현 상황이 상당히 악몽처럼 느껴졌다.
‘설마… 아니야. 그런 생각하면 안 돼. 젠장! 정신차리자! 한비오!’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드는 한비오는 스스로 뺨을 치면서 경기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우리가 잘해야 해!’
동료들도 고전하는 한비오를 보고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경기 중에 뒷문이 불안하면, 다른 선수들도 경기에 제대로 집중하기 어려웠다.
심리적인 요소 때문에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고양이 공을 잡습니다! 고양의 공격! 호프만인데요! 호프만이 측면 쪽으로 정확하게 패스합니다! 측면에는 박형우가 있습니다! 박형우 달립니다!』
『전북 킬러 박형우죠! 찬쓴데요! 여기서 슛 하나요!』
모처럼 기회를 만들어 낸 박형우가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슈팅까지 만들었다.
팡!
하지만 슈팅은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아깝습니다! 골키퍼 선방에 기회가 무산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고양은 이렇게 계속 슈팅 찬스를 만들어서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박지원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젠장. 내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언젠가 한비오가 자신을 대신해서 경기에 출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출전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린 후배가 고생스럽게 데뷔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혹여나 오늘 경기로 위축돼서 가지고 있던 잠재력에도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던 박지원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출렁-
“아!”
눈앞에서 벌어진 세 번째 실점.
경기 시작하고 불과 30분 만에 고양은 3실점을 내줬다.
경기당 1점 미만의 실점률을 보였던 고양이, 오늘 경기에서만 무려 3골이나 내줬다.
그 순간, 박지원은 볼 수 있었다.
무너져 내리는 한비오의 뒷모습을.
박지원은 슬쩍 벤치 쪽을 쳐다봤다.
굳은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곽찬구 감독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그는 무언가 행동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골키퍼를 함부로 강판할 수는 없어. 어떻게든 이 경기는 비오가 이끌어 가야 해.’
결국 보다 못한 박지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오야!”
“……!”
실점 이후 조용했던 경기장에서 박지원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울려퍼졌다.
한비오를 포함해 모두의 시선이 박지원에게 향했다.
“너는 고양의 골키퍼다! 네가! 고양의 골키퍼라고!”
“……!”
고양의 골키퍼.
그 말에 한비오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그래. 맞아. 나는 고양의 골키퍼야. 우리팀 골키퍼는 나라고! 내가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어!’
어떻게든 만회해야 한다!
박지원의 외침은 흔들리던 한비오를 각성하게 만들었다.
『아, 전반에 3실점이면 오늘 고양에게는 정말 힘들겠어요.』
『한비오 선수가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경기를 해설하던 중계진도, 전북 선수들과 팬들도 한비오가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상황은 곧 그런 생각들을 무너뜨리게 했다.
『산드루 슈우우웃! 한비오가 막아냅니다!』
『다시 한번 전북의 슈우웃! 이번에도 한비오가 막아 냅니다!』
『뭔가 계기가 있었나요? 3실점 이후에 한비오 선수가 보여주는 모습은 상당히 안정적인데요!』
『오늘 카메라에 한비오 선수와 박지원 선수의 모습이 계속 번갈아서 잡히는데요. 한비오 선수가 선방할 때마다 박지원 선수가 상당히 좋아합니다!』
훗날 ‘아빠와 아들’이란 제목으로 핫뷰를 기록할 장면이 계속 나왔다.
박지원의 격려 덕분일까?
한비오는 계속해서 안정적인 선방을 보여주며 뒷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고양의 분위기도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전반 막판에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했다.
『호프만이 박형우에게! 박형우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전북 킬러 박형우가 이번에도 전북을 상대로 득점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전반에 0:3으로 끝나는 것하고, 1:3으로 끝나는 건 다르거든요? 지금 고양은 분위기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박형우의 득점과 함께 전반전을 마친 고양.
라커룸에 들어간 한비오는 동료들로부터 집중 관심을 받았다.
“비오야! 잘했다!”
“네?”
“잘했다고! 실점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지금 보여주는 그 모습대로만 해주면 돼!”
“네!”
“형우가 추격골 넣었으니까, 득점 2번만 더하면 최소 동점이야! 그때까지만 네가 잘해 줘!”
“넵!”
동료들의 격려에 이어 곽찬구 감독도 한비오에게 다가가 말했다.
“비오야. 처음으로 경험한 K리그 무대가 어떻더냐?”
“얼떨떨해요.”
“그렇지? 원래 데뷔전이라는 게 다 그래. 그래도 너는 그 어떤 팀도 아니고, 우리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한 골키퍼다. 너의 가치가 곧 우리 팀의 가치야.”
“……!”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계속 힘내자. 알았지?”
“네!”
“좋아. 그럼 후반전도 부탁하마.”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비오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냈다.
‘후반전에도 반드시 만회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후반전.
힘찬 각오와 달리 시작하자마자 대형 위기를 맞이했다.
『산드루가 쇄도하는데요! 아, 수비수 발에 걸려 넘어집니다! 주심은 VAR을 볼 것도 없이 바로 PK를 선언합니다!』
“아!”
시작하자마자 터진 PK에 한비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