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평소처럼 출근하던 나는 사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무슨 일이지? 김 비서, 혹시 뭐 보고 받은 거 있어?”
“아니요. 있었으면 바로 보고했겠죠. 알아볼까요?”
그때, 천지원 부장이 헐레벌떡 앞으로 뛰어와서 말했다.
“대, 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 큰일 났습니다!”
“네?”
“박요한 선수 열애설 떴습니다!”
“네?”
뭐? 열애설?
갑자기?
“이, 이것 좀 보십시오!”
천지원 부장이 보여준 기사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단독】국가대표 출신 A선수, 소속팀 치어리더와 열애
: {스포츠미디어-박용진 기자} 최근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A선수가 소속팀의 치어리더와 열애 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해당 치어리더는 상당한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로, 최근 A선수와 열애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가 확보한 해당 사진이 그 증거다.
“이, 이게 뭐야?”
“대표님, 해당 선수가 박요한 선수와 김현지 치어리더라고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이미 두 사람 SNS에는 관련 이야기로 몰려들었고요!”
세상에.
두 사람이 언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아니, 그것보다 진짜 맞나?
“사실 여부는 체크했습니까? 두 사람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김현지 씨는 아직 연락이 안 됐고, 박요한 선수는 팀훈련 중에 연락을 받고 상당히 놀라더니 그런 일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럼 이거 거짓 기사라는 거네요. 그런데 왜 이런 기사를 낸 거지?”
기자가 첨부한 사진에는 두 사람이 아파트 앞에서 웃는 얼굴로 함께 있는 모습으로 찍혀 있었다.
그 구도가 상당히 절묘해서, 언뜻보면 사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팩트체크도 안 하고 올린 기사인데, 왠지 악의적인 기사로 보입니다.”
“일단 김현지 씨하고 계속 연락해 보고요. 박요한 선수는 제가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살다 보면 선수가 열애할 수도 있다. 세상에 연애하는 선수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뭐든 시기라는 것이 존재했다.
두 사람은 우리 팀에 있어 중요한 인물들이다.
박요한은 한창 선수로서 중요한 흐름을 타고 있는 선수였고, 김현지는 상당한 인기를 보유한 인물이었다.
만약 이 일로 두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온다면, 우리에게도 상당한 손해로 작용할 수 있었다.
“김 비서. 두 사람이 끼치는 티켓값이 얼마인 줄 알아?”
“네?”
박요한 선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온 뜬금없는 내 물음에 김 비서가 갸웃했다.
“박요한의 이름을 마킹한 유니폼을 구매한 사람이 약 1만 명 정도 돼. 여기에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박요한을 응원하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아. 최근에 국가대표까지 발탁됐으니, 박요한을 응원하는 사람은 더 많겠지.”
“…….”
“금액으로 대략적으로 환산해 보면, 현재 상황에서 최소 4억. 그것도 유니폼값만 계산했을 때야. 이 사람들이 매시즌 우리 홈경기를 방문하고, 관련 굿즈를 사들인다면?”
“엄청나네요.”
“그래. 그리고 김현지도 마찬가지야. 김현지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대포, 아니, 카메라맨들과 기존 팬들 그리고 신규 유입된 팬들까지 하면, 액수는 억단위야. 매번 치어리더가 있는 단상 앞좌석이 매진되는 것만 봐도 그렇지.”
“…….”
“이 두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생긴다면, 우리에게 발생하는 손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지.”
“후속적 손실까지 생각하면 상당하겠죠.”
“맞아.”
“그래서 태훈 씨, 아니,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적극적으로 나서야지. 사실 확인을 하고, 두 사람에게 문제가 없다면, 강경 대응으로 가야지.”
미디어의 효과는 굉장하다.
한번 발생한 파급력을 수습하려면, 최대한 초기에 수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따라올 뒷말들이 우리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 일을 잘 수습할 필요가 있다.
“대표님께 괜한 걱정을 끼쳐드렸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과받으려고 온 게 아닙니다.”
고개 숙여 사과하는 박요한에게 나는 손을 내저었다.
“그건 그렇고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진 현지 씨를 보고 도움을 드렸거든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생각보다 별일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럼 두 분은 별 특별한 사이가 아니시라는 거죠?”
“네. 오히려 현지 씨에게 괜히 피해가 갈까 죄송하네요.”
박요한은 오히려 김현지를 걱정했다. 때마침 천지원 부장을 통해 김현지의 연락을 받았다.
“대표님. 김현지 씨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랍니까?”
“사실이 아니고, 구단하고 박요한 선수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확인을 끝낸 나는 바로 대응에 나섰다.
“기사를 낸 곳이 스포츠미디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스포츠미디어에 항의 및 정정보도 요청 메일 보내고, 고양스포츠 이광진 대표님에게 해당 내용에 대해서 기사 요청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우리의 대응은 빨랐다.
【오피셜】고양 유나이티드, 박요한 선수와 김현지 치어리더 열애설 사실 아니라고 밝혀.
해당 기사가 나간 후, 다행히 사람들에게는 그저 약간의 해프닝 정도로 여기며 논란을 피할 수 있었다.
* * *
약간의 소란이 있고, 김현지가 박요한을 찾았다.
“요한 씨.”
“아, 현지 씨. 어쩐 일이세요?”
“이번 일 정말 죄송해요. 괜히 본의 아니게 요한 씨에게 피해 입혔네요.”
“피해라뇨. 아닙니다. 저는 현지 씨가 괜히 저 때문에 피해가 아닐까 싶어서 걱정했습니다.”
“아니에요. 전혀 없어요.”
이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박요한 이 사람 생각보다 훈훈하잖아?’
훈훈한 외모의 인상과 선수 생활로 다져진 균형 잡힌 근육질 몸매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 얼빠라고 생각하는 그녀도 박요한을 달리 보게 됐다.
“저, 요한 씨. 괜찮으시면 제가 나중에 밥 한번 살게요.”
“예? 어, 괜찮습니다.”
박요한은 혹시라도 또 다른 뒷말이 나올 것을 염려해서 거절했다.
‘지금 거절했어?’
김현지는 그가 제안을 거절한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왜 아쉬워하는 거야?’
순간 아쉬움을 느낀 김현지는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다음에 또 봬요.”
“네.”
그렇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인연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 * *
여전히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는 가운데 구단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에요.”
브라질로 떠났던 나탈.
그가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이다.
사무엘을 비롯한 동료 선수들도 나탈의 방문에 매우 뜨겁게 환영했다.
“나탈, 브라질 리그는 어때? 할 만해?”
“일정이 미쳤어. 예전에도 그랬지만, 세리에와 주리그 2개를 뛰는 건 말이 안 돼.”
“그래. 거긴 미친 동네야. 우리 조국이기는 해도, 정말 미쳤어.”
나탈은 브라질 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하고 현재 치료 중에 있었다.
“치료받고 있는 동안 한국에 있으려고요.”
“잘됐다. 같이 밥이나 먹자.”
“좋아요.”
사무엘은 한국 사람처럼 밥이나 먹자며 친근감을 드러냈다. 그런 그에게 나탈도 활짝 웃었다.
“주말 리그 경기도 보러 와. 구단에서 이벤트 준비한대.”
“정말요?”
“응. 팬들도 좋아할 거야.”
“초대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고양 유나이티드는 나탈이 한국에 돌아온 사실을 알고 홈경기에 초대했다. 경기 시작 전에 팬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저는 지금까지 K리그 팀들이 떠난 선수들에게 홀대한다 생각했는데, 역시 우리 팀은 다르네요.”
“응. 그래서 더욱 멋진 팀이지.”
나탈은 언젠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뛴다면, 고양 유나이티드로 돌아와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고양 유나이티드는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모두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리그 경쟁이 상당히 치열하네요.”
“큰돈이 걸려 있으니까 작정하고 하는 거지.”
이번 시즌 K리그는 4룡(龍) 싸움으로 판도를 뒤흔들고 있었다.
전북, 울산, 서울 그리고 고양.
이렇게 4개의 팀이 시즌 시작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매번 경기가 끝날 때마다 4팀의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고양 유나이티드는 무패를 달리고 있었다.
현재까지 6경기를 치르는 동안 5승 1무 승점 16점으로, 리그 1위에 올라온 상황이었다.
다득점을 우선시하는 K리그에서 고양 유나이티드는 득점 또한 상당히 좋았다.
경기당 평균 득점 3점대에 육박하며, 6경기 동안 17골을 기록했다.
이런 득점력을 증명하듯, 현재 개인 득점과 어시스트 부분에서도 고양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들이 최상위에 랭크 되어 있었다.
득점 랭킹 1위는 박요한이었다.
파주전에서 4골을 기록한 이후 제대로 포텐이 올라온 박요한은 이후 계속해서 득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6경기 8골.
경기당 1골이 넘는 수치였다.
그리고 이 골들은 제법 순도 높았다.
팀의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이던가, 제법 강팀을 상대로 넣은 골들이 많았다.
그리고 도움에서는 필립 호프만의 파괴력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6경기 6도움.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대단한 위용을 보여줬던 필립 호프만은, 막상 리그에서는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랬던 그가 파주전에서 퇴장을 겪은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6라운드에서 인천을 상대로 도움 3개를 기록할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정확하게 들어가는 패슨데요! 필립 호프만의 패스입니다!』
『오늘 호프만은 미쳤습니다! 패스 정확도 100%에 들어가는 패스마다 전부 결정타를 만들고 있어요!』
필립 호프만이 살아나면서 고양의 공격력은 더욱 무서워졌다.
물론 고양은 공격만 좋은 팀은 아니었다.
수비에서도 단단함을 과시했다.
『라시모프에게 막힙니다!』
『백종수가 커버하는데요! 이번 시즌 라시모프와 백종수, 이 두 중앙 수비수의 활약이 고양에게는 상당히 든든합니다!』
『박지원의 슈퍼세이브! 이걸 막네요!』
수비수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상대 공격수들을 위축시키게 만들었다.
어렵게 수비를 뚫고 기회를 만들어도, 박지원의 선방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상황 속에서 고양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뭐라고요!?”
“박지원 선수가 훈련 중에 부상 당했습니다.”
“……!”
팀의 주전 골키퍼이자, 연이은 선방쇼로 최고의 수문장으로 평가받는 박지원이 훈련 중에 부상을 당한 것이다.
“아무래도 백업 골키퍼인 한비오 선수가 나서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린 선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도 제 몫을 해줄 선수입니다.”
원래 이번에 다른 백업 골키퍼 영입을 노렸던 우리는 결국 이적시장이 끝날 때까지 영입하지 못했었다.
골키퍼 매물이 워낙 적기도 했지만, 박지원이 워낙 잘하다 보니 다른 골키퍼들도 고양으로는 이적을 꺼려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결국 골키퍼는 추가 영입 없이 기존에 있던 골키퍼 자원을 활용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박지원이 부상을 당하면서 다른 대안이 없게 된 것이다.
“한비오 선수가 K리그를 뛴 경험이 있나요?”
내 물음에 곽찬구 감독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한 번도 없습니다.”
“이런.”
이거…… 맡겨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