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경기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지는 이번 친선 경기는, 대한민국이 홈팀의 이점을 안고 콜롬비아를 상대로 상당히 주도적인 경기를 펼쳤다.
『강철인, 정확하게 패스합니다! 박요한이 받는데요! K리그 최고의 라인브레이커로 평가받는 박요한이 콜롬비아의 공간을 뚫습니다!』
『자~ 박요한 좋습니다!』
국가대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박요한의 라인브레이커 능력은 콜롬비아를 상대로 통했다.
『오늘 콜롬비아의 오스피나 선수가 우리 박요한 선수 때문에 상당히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주전 수비수인 오스피나 선수인데요. 이 오스피나 선수가 어지간하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현재 우승 경쟁 중인데, 이 오스피나 선수가 대단히 큰 역할을 해주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오스피나 선수가 박요한 선수의 라인브레이커에 계속 흔들리네요!』
“잘한다! 박요한!”
박요한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로 멋졌다.
첫 국가대표 선발 데뷔전인 그는 월드클래스 선수를 앞에 두고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계속해서 콜롬비아의 수비를 흔들었다.
결국 이런 플레이가 엄청난 찬스로까지 이어졌다.
『장현우가 짧게 전방으로 내줍니다! 이번에도 박요한입니다!』
『어! 오스피나, 넘어졌어요!』
박요한을 무리하게 따라잡으려다가 휘청거리면서 넘어진 오스피나.
그런 그를 지나친 박요한이 순식간에 상대 페널티박스 안까지 쇄도했다.
경기장에 있던 모두가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박요한은 침착하게 슈팅까지 시도했다.
팡!
미사일처럼 날아간 슈팅이 그대로 골문 안으로 향했다.
출렁-
우와아아아아아!
『박요하아아아안! 골입니다!』
TV로 지켜보던 나와 김 비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지르다가 곧 서로를 끌어안았다.
“으아아! 골이야! 골이라고!”
“꺄아아! 태훈 씨! 골이에요! 골!”
그야말로 방방 뛰었다.
『지난 파주FC전하고 완전히 똑같은 골인데요. 장현우 선수가 박요한 선수에게 밀어준 이 패스, 그리고 오스피나 선수가 여기서 넘어지는 바람에 박요한 선수에게 엄청난 기회가 됐습니다!』
『박요한이 자신의 첫 국가대표 경기에서 데뷔골까지 만듭니다!』
득점 이후 카메라 앞으로 뛰어간 박요한이 오른쪽 검지를 치켜세우며 숫자 1을 만들어 보였다.
그리고 곧 유니폼 상의의 엠블럼에 짧게 키스한 뒤, 손목에 고양 유나이티드 엠블럼이 박혀있는 경기용 손목보호대를 들어 올려 보였다.
『오, 이거 고양 팬들이 감동하겠는데요?』
『이야. 이런 세리머니는 처음 보네요!』
『아무래도 국가대표 경기까지 뛸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소속팀에 대한 세리머니겠죠?』
『아마, 지태훈 대표나 곽찬구 감독도 보고 있을 텐데, 상당히 좋아하겠어요.』
“당연히 좋죠! 그걸 말이라고!”
박요한의 세리머니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솔직히 조금 감동 했다.
그렇게 박요한의 득점으로 대한민국이 1점 앞서 나갔다.
하지만 이 행복도 얼마 가지 않았다.
『조심해야죠!』
『아, 실점합니다. 득점 이후에 집중력이 살짝 흐트러진 상태에서 너무 빨리 실점했네요.』
한국은 득점 이후 불과 2분 안에 콜롬비아에게 실점했다.
『콜롬비아의 라다멜 카티뉴 선수에게 실점한 대한민국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선수 중 한 명이었는데요. 이 선수가 지금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고 있는데, 현재 득점 랭킹 3위에 있는, 상당히 미래가 유망한 어린 선수입니다.』
『속도가 빠르고 피니시 능력이 있는 선수죠?』
『그렇죠. 이제 겨우 22살밖에 안 됐는데, 리그에서만 무려 16골을 넣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양쪽에서 계속 이적설이 도는 선수인데요. 오늘 이 선수 조심해야 합니다.』
“쟤들은 왜 이렇게 좋은 선수들이 많냐?”
경기를 보던 나는 콜롬비아 선수들의 화려한 소속팀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 나에게 김 비서가 말했다.
“태훈 씨. 우리도 멋진 클럽이에요.”
“그렇기는 해도, 그래도 아직은 저 유럽 클럽들에게 비비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금방 따라잡을 거예요.”
그때, TV에서 내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 들려왔다.
『콜롬비아 선수들이 유럽의 빅리그나 빅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제법 있는데요. 최근 K리그도 상당히 변화하고 있죠? 고양 유나이티드를 중심으로 K리그도 올해부터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언젠가는 우리도 유럽 부럽지 않은 그런 리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거 봐요. 저 사람들도 저렇게 말하잖아요.”
솔직히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고 있으니 나도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열심히 해야지.”
“우리 힘내요.”
“응.”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김 비서를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 * *
『경기 종료됩니다! 대한민국이 콜롬비아를 3:2로 꺾습니다!』
경기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다.
“기분 좋군.”
박요한 1골, 강철인 2골을 묶어 승리를 거둔 대한민국은 기분 좋게 A매치 첫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역시 강철인은 강철인이네.”
현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끄는 에이스이자 주장답게, 강철인은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저 선수가 여름에 우리 팀 경기장에서 뛴다는 거지?”
축알못인 나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강철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설렜다.
“그나저나 박요한은 잘했지만, 다른 선수들이 조금 아쉽겠는걸?”
오늘 강철인만큼 최고의 활약을 펼친 박요한은 80분까지 활약했다가 박수받으면서 교체아웃 됐다. 그 외에 정성진은 68분에 교체 출전했고, 오세진은 아쉽게 벤치를 지켰다.
오세진의 경우, 포지션 경쟁자인 장현우가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기회를 받지 못했다.
“다음 경기가 아르헨티나였던가.”
이번에 아르헨티나가 일본과 A매치 경기를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하고도 붙게 됐다.
“다음 경기에서는 더 멋진 플레이를 보여줬으면 좋겠네.”
그렇게 A매치 감상을 마무리한 다음 날, 외국인 선수들이 참여한 A매치 경기 결과가 들려왔다.
『‘호프만 2도움 맹활약’ 독일, 스페인에게 2:1 승리.』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에 치러진 독일과 스페인의 경기는, 호프만의 맹활약 속에 독일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 선발로 출전한 호프만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면서 팀 공격의 축으로 활약했다.
독일 팬들은 호프만이 건재한 사실을 보고 환호했다.
『‘라시모프 풀타임 소화’ 우즈베키스탄, 이라크와 0:0 무승부.』
라시모프는 중앙 수비수로 선발 출전하여 팀의 무실점을 이끌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이라크를 상대로 공격력 부재로 고전했다가 결국 무승부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라시모프는 몇 번의 위기를 잘 막아 내며, 팀내 최고 평점을 받았다.
이렇게 외국인 선수들까지 좋은 활약을 펼치는 소식이 들려오자, 나를 포함한 고양 유나이티드 관계자들과 팬들 모두 기뻐했다.
* * *
A매치 휴식기에도 소속팀에 남은 선수들은 훈련하지만, 평소만큼 빡빡하지는 않았다.
개인 훈련을 마친 김지우는 차를 몰고 모처럼 서울로 향했다.
청담동에 있는 어느 식당에 도착한 그는 친구들을 만났다.
프라이빗룸에서 그를 기다리던 두 명의 남자가 반응했다.
“여~ 지우야~”
“지우맨~”
그런 둘을 보며 김지우가 씩 웃었다.
“짜식. 잘 지냈냐?”
“새끼. 경기장에서 보면서.”
“올해는 아직 못 만났잖냐.”
“뭐, 그렇네.”
김지우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친구들의 정체는, 함께 K리그에서 뛰는 동료들이었다.
수원 블루의 주장 김상도.
부천의 한상준.
그리고 고양의 김지우까지.
이렇게 3명은 1992년생 동기로,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기도 했다. 덧붙여 한때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함께 뛰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함께 하는 팀은 달라도, 오랜 인연으로 쌓아온 그들은 이렇게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시즌이면 한잔할 텐데, 시즌 중이라서 맥주 한잔도 못 하네.”
“야, 임마. 시즌이고 비시즌이고 떠나서 차 끌고 왔다.”
“마시게 되면 대리 불러서 가면 되지. 뭐, 네가 돈이 없냐? 여기서 얼마나 한다고.”
“야, 마누라님한테 혼나. 안 그래도 오늘 겨우 허락받고 나왔어.”
아쉬워하는 한상준의 말에 김상도가 대꾸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김지우는 말없이 웃었다.
“야, 됐고 주문이나 하자.”
“뭐야. 주문 안 했어?”
“너 오면 하려고 했지.”
주문은 빨랐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눴다.
“야, 요즘 좀 어떠냐?”
“어떠긴. 시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없다.”
“야, 상준아, 너희 잘나가더라.”
“우리? 아, 몰라. 맨날 초반에만 잘 나가.”
매번 승격을 위해 애쓰는 부천.
‘초반 강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시즌 초반에는 그 어떤 팀보다 강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즌 중반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위가 주르륵 밑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잘 될 거야. 이번에는 4팀까지 올라올 수 있잖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우리 엄청 빡세게 하고 있다.”
김지우는 고개를 돌려 김상도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상도야. 너희는 좀 어떠냐?”
“주옥 됐다.”
“왜?”
“1승 1무 1패. 하~ 미치겠다. 진짜.”
“아직 시즌 초반이잖아.”
“뭐, 아직 초반이기는 한데, 3라운드에서 인천한테 진 게 좋지 않아. 안 그래도 A매치 휴식기 끝나면 전북, 서울, 울산 3연전인데, 좋지 않아.”
“야~ 천하의 김상도가 뭘 이런 걸로 쪼냐.”
“쫄기는 누가 쫄아. 그냥…… 하, 모르겠다. 예전에는 내가 막 잘하면 되는데, 이제는 나 혼자서는 안 되니까 그렇지.”
“하긴. 이해한다.”
세 사람 모두 전성기를 지나 선수로서 황혼기를 맞이하는 상황이었다.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이제 몸이 내 마음처럼 안돼.”
“늙은 사람처럼 이야기하지 마라. 누가 들으면 뭐 100살 가까이 산 노인인 줄 알겠다.”
“야, 장난하냐~ 당연히 프로끼리 비교했을 때를 얘기하는 거지.”
“그런 얘기 계속해 봤자 뭐 하겠냐.”
그때, 한상준이 김지우에게 말을 걸었다.
“야, 지우야. 너는 좀 어떠냐? 그래도 너는 좀 괜찮게 하는 거 같더만.”
“나? 아니야. 나도 요즘 풀타임 뛰면 예전만큼 쉽게 회복이 안 돼서 힘들다.”
“그래? 그런데 너 계속 선발 풀타임 아니었냐?”
“아~ 새끼. 내 경기 안 보네. 나, 요즘 풀타임 많이 안 뛴다. 선발로는 계속 나와도.”
김지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선발로 출전하고 있지만, 후반에 일정 시간만 되면 교체아웃 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 경기 북부 더비에서 모처럼 풀타임으로 뛰었을 정도로, 90분 풀타임을 뛰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때, 김상도가 한숨을 내쉬며 푸념하듯 말했다.
“하~ 슬슬 은퇴할 때가 됐나.”
“왜 그런 말을 하냐.”
“너희들한테만 이야기하는 건데, 나 요즘 진지하게 은퇴 고민하고 있어.”
“뭐? 정말?”
“어. 내가 주장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은퇴했을 거야. 구단에서도 1시즌만 더 뛰어달라고 계속 부탁해서, 올해도 뛰기는 하는데, 이번 시즌 끝나면 은퇴 생각도 있어.”
김상도의 고백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K리그에서 미드필더로서 350 경기 이상 뛴 김상도는 수원 그 자체였다.
포항에서 데뷔하고 일본 J리그 가와사키를 경험하고 돌아온 김상도는 수원 블루에서만 무려 9년을 뛰었다.
그런 그가 은퇴한다면 리그가 꽤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했다.
“은퇴 이후 생각은 있는 거야?”
“글쎄. 구단에서 코치직 제안도 들어왔는데, 은퇴하면 일단 휴식기 좀 가지고 싶어. 한 1~2년 쉬어도 되지 않을까?”
“돈은 있고?”
“돈이야 뭐, 이 정도면 많이 벌었지. 애들 학비하고 생활비는…… 아껴 쓰면 되고.”
“그렇구나.”
선수로 오래 생활하다 보면, 남들이 누리는 일상적인 생활을 누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선수들은 평범한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김상도가 1~2년 쉬고 싶다는 것도 그 마음이 커서일 것이다.
“음식 나왔습니다!”
그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야,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