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나는 부스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태훈 씨. 일어났어요?”
“음. 일찍 일어났네?”
“습관이니까요.”
“그렇구나.”
어젯밤, 업무를 마치고 김 비서와 오붓하게 저녁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눈이 맞은 우리는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가 아침이 되었다.
“씻고 나오세요. 같이 식사하게.”
“알았어.”
그녀의 환한 얼굴을 보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었지.”
나는 서둘러 씻고 옷을 입은 다음 부엌으로 나왔다.
마침 김 비서가 아침 준비를 끝내놓았다.
“드세요.”
“응.”
김 비서가 준비한 밥을 기분 좋게 먹으면서 오늘 일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맨시티 관계자하고 미팅하기로 되어있는데…… 라시드 기술이사였나?”
“네, 맞아요. 미팅은 구단 사무실에서 진행될 거고, 시간은 오전 10시로 잡았습니다.”
“유지원 부장이 잘 맞이했나 모르겠네.”
“네. 어제저녁에 인천국제공항에서 접견 완료했고, 직접 차량으로 고양시에 있는 호텔까지 모셨다고 연락받았습니다.”
“그렇군.”
식사를 마치고, 나는 김 비서와 함께 빠르게 뒷정리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출발하지.”
“네.”
그렇게 우리는 구단 사무실로 향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아, 반가워요.”
입구에서 마주친 신진호 과장이 나와 김 비서를 보고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인사했다.
그런 그의 인사를 받아준 내가 그에게 물었다.
“라시드 기술이사는 오셨습니까?”
“아직이요. 조금 전에 유지원 부장님이 모시러 가셨습니다.”
“미팅 준비는 끝냈습니까?”
“네. 세팅 다 끝냈습니다. 회의 중에 마실 음료하고 관련 서류들도 테이블에 다 올려놨구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넵. 그럼 저는 업무 보러 가보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신진호 과장이 떠났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깐 지켜보던 나는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흠.”
시간이 잠깐 남았다.
라시드 기술이사가 묶고 있는 호텔은 구단 사무실까지 차로 10분 정도 걸린다.
“김 비서. 잠깐 나 좀 봐.”
“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씩 웃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쪽.
“태, 태훈 씨!”
“오늘 하루도 힘내 보자, 김유리.”
“네, 태훈 씨도요.”
지이잉.
“응?”
그때, 라시드 기술이사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우리는 회의실로 향했다.
잠시 후, 라시드 기술 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형적인 아랍 남자의 외모를 지닌 그가 사람 좋은 표정을 보이며 나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맨시티에서 기술이사를 맡고 있는 라시드입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입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인상이 좋으시군요.”
“감사합니다. 앉으시죠.”
“네.”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상황에서 라시드가 말했다.
“원래 제가 아닌 단장이 올 예정이었습니다만, 구단 내부 사정으로 글로벌 기술이사인 제가 왔다는 점을 양해부탁드립니다.”
“아, 괜찮습니다. 몸이 안 좋으셔서 오지 못하셨다고 들었는데, 단장님은 괜찮으신가요?”
“네, 많이 회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원래 현 맨시티 단장 토레스가 이곳에 올 예정이었으나, 교통사고를 당해 오지 못했다.
그래서 글로벌 기술이사인 라시드가 급하게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다.
“사실 칼리드 왕자님하고 저는 사촌입니다.”
“어? 그러십니까?”
“네. 조금 먼 친척 관계이기는 한데, 이번에 제가 대표님을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랬군요.”
“칼리드 왕자님은 현재 UAE의 차기 왕위 후보로 올라오신 분입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각별하게 신경 써서 잘 부탁한다고 연락을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랬군요.”
허허, 칼리드 왕자한테 고맙네.
“오늘 정식으로 계약서 사인을 진행하고자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사실 어지간한 세부 협의는 끝났고 계약서 사인만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계약 실행을 위한 마지막 도장을 찍기 위해 일부러 한국까지 온 라시드였다.
“서명하기 전에 혹시 문제가 되거나 하는 부분은 없으신지요?”
“음, 경기 진행할 때 맨시티의 1군 선수들을 중에 강철인 선수를 포함해서 최소 8명 이상을 40분 이상 투입하는 내용도 확인했고, 경기 전에 팬들을 위한 사인 행사도 진행하고, 가장 중요한 수익 배분도 50:50으로 확인했고요.”
원래 맨시티 쪽에서 경기장 임대를 포함해서 대전료로 일정액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대전료로만 퉁치고 끝낼 생각이 없었다.
기본 대전료를 조금 줄이는 대신, 티켓과 중계료를 포함한 전체적인 경기 수익을 쉐어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다행히 맨시티도 문제없이 받아들였다. 대신, 티켓 가격이 많이 올라갔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티켓은 기본 한국 돈으로 5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VIP 좌석의 경우 100만 원까지 올라가고요.”
우리나라 기준으로 상당히 비싼 금액이다. 하지만 이벤트 매치이기는 해도, 대전 상대가 그 대단한 맨시티였다.
게다가 강철인을 비롯한 특급 스타들이 대거 출전한다.
무엇보다 맨시티가 한국 시장에 들이는 정성이 상당했다.
“금액이 올라간다고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분명 보러올 사람들은 많을 거구요. 그리고 맨시티가 그동안 한국 팬들을 위해 보여준 성의가 있지 않습니까? 충분히 그 값을 지불하고 올 사람들은 많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사인을 진행할까요?”
“예. 그러시죠.”
나와 라시드 기술이사가 앉아서 사인하는 모습을, 천지원 부장을 포함한 마케팅팀 직원들이 열심히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담았다.
이렇게 찍힌 사진과 영상은 구단 공식SNS와 기사를 통해 오피셜로 나갈 예정이다.
사인을 마무리하고 서로의 계약서를 확인한 뒤, 우리는 웃으면서 악수를 나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계약을 마무리한 우리는 다음 일정으로 넘어갔다.
“라시드 기술이사님. 오신 김에 구단 투어 한번 하고 가시죠.”
“아, 좋습니다.”
라시드의 고양 유나이티드 투어는 예정된 일정이었다. 원래라면 토레스 단장이 대상이었어야 했지만.
“지금 기술이사님이 계신 곳은 저희 구단 사무실 겸, 클럽 하우스입니다.”
“오, 그렇군요.”
나는 직접 그를 안내하며 클럽하우스 내부를 보여주었다.
마침 클럽하우스 내부에는 개인적으로 운동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여기는 선수들 체력 단련실입니다. 보시면 이렇게 선수들이 개별적으로 체력을 단련할 수 있죠.”
“오, 대단하군요. 유럽 빅리그에 있는 팀들도 이렇게까지 갖춘 곳은 드뭅니다.”
“하하. 그런가요?”
“네. 빈말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체력단련실을 지나쳐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라시드 기술이사가 갑자기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미하엘 코치!”
“어? 라시드 이사님!”
복도에서 서로를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환한 얼굴로 가볍게 포옹했다.
“이렇게 한국에서 뵙네요!”
“자네, 그간 잘 지내고 있었나?”
“네. 좋은 팀에서 좋은 시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하. 이사님은요?”
“늘 똑같이 잘 지내지. 자네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구만.”
맨체스터시티에서 코치로 있었던 미하엘은 라시드 기술이사하고도 깊은 친분을 드러냈다.
훈훈한 모습의 두 사람을 말없이 지켜보던 내가 끼어들었다.
“미하엘 코치님 덕분에 저희 팀 수준이 상당히 많이 올라갔습니다. 정말 고마우신 분이죠.”
“하하하! 우리 미하엘 코치가 대단하죠! 우리도 그가 어떤 실력을 갖췄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찌나 아쉽던지. 특히 그 대단한 콘라드 감독이 미하엘 코치 떠나고 울었…… 아. 이건 말하면 안 되지. 참.”
라시드 기술이사의 말을 듣던 미하엘 코치가 화들짝 놀랐다.
“어? 콘라드 감독님이 우셨다고요?”
“커흠. 내가 이야기했다고 하지 말아 주게.”
“세상에.”
두 사람의 말을 듣던 나는 콘라드 감독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콘라드 감독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내 물음에 두 사람이 조금 생각했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훌륭한 분이시죠. 자기 일에 고집이 강한 분이시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품격 있으신 분입니다.”
“맞습니다. 인텔리젼트하죠.”
“우리의 전성기를 만든, 과르디올라 감독 이후 최고의 감독이니까요.”
“그렇군요.”
콘라드 감독의 지휘 아래, 맨체스터시티는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 FA컵 2회 우승, 리그컵 2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기록했다.
“대단하네요.”
내가 감탄하자 라시드 기술이사가 가볍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미하엘 코치. 콘라드 감독님께서 무척 기대하고 계셔. 여름에 다시 볼 수 있다고 하면서.”
“하하. 저도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 일 보시게.”
“네. 수고하십시오.”
대화를 마친 미하엘 코치가 우리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떠나가는 미하엘 코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곧 라시드에게 말했다.
“가실까요?”
“그러죠.”
* * *
-와아아아!
대형 TV 화면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경기장에 사람 많네.”
“그러게요. K리그 경기도 매번 국가대표 경기처럼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팀은 그렇잖아.”
“다른 팀들도요.”
“그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나와 김 비서는 3월 A매치 경기를 보기 위해, 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시면서 보고 있었다.
나는 TV를 보다가 문득 옆에 앉아 있는 김 비서의 모습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우리 구단에서 판매하고 있는 트레이닝 상하의 세트였다.
트레이닝 계열 옷들은 생각보다 몸매가 많이 부각 된다.
‘우리 김 비서 훌륭해.’
업무할 땐 오피스 복장만 입기에 잘 모르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옷을 입으면 사람이 많이 달라져 보인다.
“태훈 씨~ 이번에 주문한 치킨집 새로운 곳이라고 했죠? 괜찮네. 태훈 씨는 어때요?”
“…….”
“태훈 씨?”
“어? 아! 우리 짠하자! 짠!”
“네.”
괜히 민망해진 내가 맥주잔을 손에 쥐고 가볍게 짠하고 마셨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TV 화면으로 향했다.
『오늘 콜롬비아와의 A매치 친선전에 나설 우리 태극전사들의 선발 라인업을 발표하겠습니다!』
선발 명단 발표에 두 귀를 쫑긋하고 집중했다.
『골키퍼 김성태, 수비는 포백입니다. 고태진, 김영준, 박상영, 황성주, 미드필더에는 장현우, 박기주, 강철인, 이렇게 3명이 서고요. 그리고 공격에는 박요한, 김성철, 황지호 선수가 나섭니다.』
“오, 박요한 선발이네!”
이번에 고양에서 국가대표로 차출된 정성진, 오세진은 아쉽게 벤치에서 시작하지만, 박요한은 선발로 나왔다.
“잘해 줬으면 좋겠네.”
박요한의 멋진 활약을 기대하는 한편, 화면 속에 반가운 얼굴도 보였다.
『지난겨울에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던 장현우 선수인데요. ‘필립 호프만의 빈자리를 과연 채울 수 있을까?’ 하는 현지 의문이 있었는데, 그 의문을 최근 활약을 통해서 멋지게 깨뜨리고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장현우가 선수가 이적하자마자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그다음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데뷔골을 터트리면서 상당히 쾌조의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요. 오늘도 멋진 활약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때 카메라에 박요한과 장현우가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잡혔다.
『아, 장현우 선수가 고양에 있을 때 함께 뛰었던 박요한 선수도 오늘 선발로 나왔는데요. 최근 엄청난 활약을 보였습니다.』
『그렇죠. 지난 주말에 열린 경기북부 더비전에서 홀로 4골을 몰아치면서 고양의 대승을 이끌었죠. 오늘 처음으로 발탁된 성인 국가대표 경기인데요. 파주전처럼 좋은 모습 기대해 보겠습니다!』
『자, 말씀드리는 순간, 주심의 휘슬과 함께 대한민국 대 콜롬비아의 전반전 경기가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