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일찌감치 터진 박요한의 해트트릭으로 경기 분위기는 완전히 고양 유나이티드로 넘어왔다.
『파주가 무너지네요. 네. 지금 완벽하게 무너지고 있어요.』
박천명 해설위원이 현 상황에 대해 분석하며 말했다.
『지금 파주가 이렇게 된 건, 이광용 감독의 전술적 패착이 커요. 지금 파주가 뒷문이 위험한데, 너무 공격적으로 라인을 끌어올렸거든요. 그렇다고 지금 파주가 공격이 잘 되는 것도 아닌데, 자, 그런데 보세요. 고양에는 지금 누구 있죠? 박요한 있죠. 박형우도 있죠. 여차하면, 공간 열리면 중거리 때려 줄 호프만하고 김지우까지 있어요. 이런 팀을 상대로 라인을 너무 끌어올렸죠? 그리고 미드필더 지역에서 압박도 안 돼요. 이러니 전술에 문제가 생긴 거죠.』
『이광용 감독이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왔군요.』
박천명의 지적대로 파주는 전술을 바꿔야만 했다.
이광용 감독도 그걸 알고 수석코치와 이야기해서 전술에 변화를 가져갔다.
『자, 파주에서 전반전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교체를 시도하네요.』
『바꿀 수밖에 없죠. 누구를 교체하는지를 봐야하는데요. 아, 김교훈 선수를 투입할 준비하네요.』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를 함께 볼 수 있는 김교훈 선수인데요. 이건 파주가 뒷문을 좀 더 보강하겠다는 뜻이겠네요.』
『그렇죠. 지금 파주가 너무 밀리고 있거든요? 자칫하다 대량 실점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니까, 지금 파주로서는 김교훈 선수 투입이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주는 차성진 선수가 나오고, 김교훈 선수가 들어갑니다.』
전술 변화를 가져가는 파주FC.
파주는 조금은 볼을 소유하고 수비적인 밸런스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화면에 지태훈 대표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표정이 아주 밝네요.』
『팀이 지금 이기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죠.』
웃고 있는 지태훈 대표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생중계됐다.
그런 그의 옆에는 김 비서도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걸 본 이형욱 캐스터가 한마디 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사귀죠? 고양에 대표적인 커플로 이름을 알린 두 사람입니다.』
『아, 네. 하하.』
그 사이 파주가 역습을 나섰다.
『김교훈이 볼을 잡는데요! 김교훈이 세비치에게. 세비치가 직접 깊숙하게 들어갑니다!』
라시모프가 세비치 앞을 막아섰다.
그 뒤에는 백종수와 김지우가 나란히 지역 수비하면서 슈팅과 드리블 길목 자체를 완전히 봉쇄했다.
『아! 들어갈 때도 없고 줄 때도 없죠. 지금 고양 수비가 너무 좋네요.』
오늘 고양은 파주의 공격을 여러 차례 완벽히 막아내고 있었다.
수비 상황일 때, 김지우-라시모프-백종수로 이어지는 스리백이 통곡의 벽처럼 파주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 3인방은 완벽한 호흡을 보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양쪽 윙백으로 뛰는 정성진과 이진수도 적절히 수비에 개입하면서, 역습의 시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진수가 볼을 받고 달립니다! 상당히 빠른데요!』
올해 만으로 29살이 된 이진수는 물오른 실력으로 좌우측 측면을 누비고 있었다.
특히 이진수의 순간 스피드 능력은 K리그1 최고 수준에 달했다.
『K리그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지닌 팀이 누구냐고 이야기한다면, 바로 고양 유나이티드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파주FC 선수들이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역습 한 번에 파주가 크게 흔들렸다. 이진수, 박형우, 박요한 등 발이 빠른 선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카운터어택을, 파주 수비수들이 쉽게 막지 못했다.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옵니다! 이번에도 박요한인데요! 오늘 박요한 선수 활약이 엄청납니다!』
해트트릭 이후 박요한이 볼을 잡는 횟수가 상당히 많았다.
동료들도 오늘 박요한의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것을 알고, 거의 몰아주듯 공을 전달하고 있었다.
박형우와 호프만도 그를 보조했다.
『박요한 일대일 찬스입니다! 포트트릭 가나요!』
팡!
발끝을 벗어난 공이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스치고 뒤쪽으로 벗어났다.
『아깝습니다!』
『오우. 오늘 박요한 선수 정말 무서운데요? 파주는 박요한 선수 마킹 제대로 못하면 계속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전반전 내내 파주를 괴롭힌 고양은, 3:0 스코어로 전반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전반전 끝났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쪽이 너무나 일방적인 공격을 했던 경기였습니다. 저희는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 *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이 시작되자 준비했던 공연이 시작됐다.
-YO! 우리는 라이언 패밀리! Music On!
라이언JK와 그의 힙합 패밀리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경기장은 엄청난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단한 힙합 가수들은,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의 추억을 크게 자극했다.
-다 같이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
-YEAH! 사자가 왔다! 사자가 왔어! 맹수의 등장을 누가 막을 쏘냐!
와아아아아!
그들은 약 10분 정도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경기장은 기름을 붓듯 크게 달아올랐다.
한편, 나는 하프타임 공연이 진행하는 동안, 김 비서를 비롯한 우리 프런트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전반전 경기는 아주 죽여주네요.”
“아직 후반전이 남아 있지만, 이대로만 간다면 저희가 확실하게 대승을 거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대승을 예상했다.
“후반전이 오기 전에 우리 맥주나 한잔할까요?”
“네, 좋습니다.”
“그럼 이 카드로 맥주 좀 사와주세요.”
“네!”
우리는 맥주까지 마실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 * *
이어지는 후반전.
고양 유나이티드가 전반전 기세 그대로 경기를 진행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파주의 반격이 예상보다 거셌다.
“확실하게 붙어! 뭐 해! 공간 비잖아! 빈 공간을 채워!”
이광용 감독이 열을 내며 선수들을 진두지휘했다.
곽찬구 감독도 분위기가 묘하게 변하는 걸 느끼고, 직접 터치라인 앞에 서서 선수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파이널써드 지역 조심해! 못 오게 하프스페이스에서부터 압박해!”
두 감독이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기어코 파주가 일을 냈다.
“야! 안 돼!”
호프만과 스즈키 사이에 패스가 오고가는 중에 스즈키가 볼을 받으려다가 그만 미끄러지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단 한순간의 틈을 세비치가 볼을 중간에서 낚아채고, 파이널써드 지역에서 강하게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팡!
발끝을 벗어난 공이 골문으로 향했다.
라시모프와 백종수가 차례로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지만, 날아가는 공의 속도보다 느렸다.
박지원이 힘차게 몸을 날려 팔을 쭉 뻗었다.
하지만 공은 완벽하게 상단 구석으로 꽂혔다.
출렁-
우와아아아!
세비치의 만회골이 터지면서 파주FC가 추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득점한 세비치는 세리머니를 할 틈도 없이 바로 공을 들고 센터서클로 뛰어갔다.
고양 유나이티드 3:1 파주FC
고양에게는 너무나도 아쉬운 순간이었다.
“정신 차리자! 상대가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그래도 라이벌이야! 저 녀석들이 그냥 쉽게 지지는 않을 거라고!”
곽찬구 감독의 외침에 선수들이 이를 악물었다.
“아직 경기 안 끝났다! 집중하자!”
주장 김지우도 선수들을 독려했다.
경기는 다시 팽팽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칫 이대로 경기가 끝나버릴 수도 있었지만, 파주는 기어코 추격골을 만들면서 분위기 변화에 성공했다.
파주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차마 라이벌팀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공을 잡은 박형우가 무시무시한 드리블로 파주의 뒷공간을 노렸다.
파주 수비수 나정호가 그런 박형우를 막기 위해 무리하게 태클을 시도하고 말았다.
콰직!
“악!”
강렬한 비명과 함께 박형우가 잔디 위를 굴렀다. 그는 발목을 잡고 고통스러운 듯 손바닥으로 잔디를 쳤다.
상황을 보고 놀란 주심이 빠르게 경기를 중단하고 의무팀을 들어오게 했다.
신호를 받은 의무팀이 빠르게 들어가 박형우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우-
갑자기 경기장 전체에 터진 거대한 야유.
“야! 말려! 저 새끼 말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고통스러워하는 박형우의 모습을 본 호프만이 눈이 뒤집혔다.
그는 나정호에게 뛰어가 무슨 짓이냐며 외쳤다.
그런데 나정호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분노한 호프만이 그의 가슴팍을 밀쳤다.
그 순간 나정호도 호프만의 어깨를 밀치면서 두 선수 사이에 신경전이 오고 갔다.
근처에 있던 선수들이 우르르 뛰어가서 두 사람을 황급히 말렸다.
주심도 박형우의 상태를 살피다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놀라면서 황급히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우우우우우-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다.
“나정호 저 새끼 퇴장 줘라!”
“야! 개정호 미친놈아!”
흥분한 고양 유나이티드 홈팬들이 나정호에게 레드카드를 주라며 외쳤다.
“호프만 저 새끼한테 레드카드 줘야지! 어디서 먼저 시비야!”
“야이, 개프만 새끼야!”
파주FC 팬들도 흥분한 것은 마찬가지.
양팀 벤치도 크게 흥분했다.
그러자 양팀 감독들이 다급히 흥분한 이들을 말렸다.
그러다가 두 감독마저 충돌했다.
“대기심! 호프만이 먼저 밀쳤다니까. 우리 정호가 당한 거야. 내가 봤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야, 정호가 먼저 도발했잖아!”
“선배! 이건 선배도 눈이 있고 머리가 있으면 딱 봐도 호프만이 잘못한 거 맞잖아요!”
“뭐? 야이 새꺄! 너 뭐라고 했어!”
두 감독마저 충돌하자 경기장은 그야 말로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 모습은 고스란히 생중계로 전파를 타고 있었다.
『아! 양팀 흥분하면 안 됩니다. 진정해야 합니다!』
『이거 좋지 않아요. 특히 파주한테는 더욱 안 좋아요. 안 그래도 파주가 지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 괜히 힘쓸 필요 없습니다!』
결국 보다 못한 주심이 칼을 빼들었다.
『아! 주심이 양 팀 감독에게 옐로카드를 줍니다. 진정하라는 거죠.』
감독에게 경고를 준 주심이 VAR과 교신을 한 뒤, 호프만과 나정호를 함께 불러들였다.
『주심이 어떤 판정을 내릴까요.』
『어, 지금 주심이 뒷주머니에 손을 올렸는데요. 아무래도 카드가 나갈 것 같은데요. 어떤 카드냐가 중요하겠습니다.』
주심이 나정호에게 먼저 뭐라 말하더니, 그에게 옐로카드를 줬다.
『나정호 선수가 옐로카드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필립 호프만을 불러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데요.』
곧이어 이어지는 상황에 모두가 경악했다.
『어! 주심이 호프만에게 퇴장을 줍니다! 레드카드가 나왔습니다!』
『아. 아무래도 주심은 나정호 선수가 도발했어도, 거기에 먼저 손을 쓴 호프만에게 더 책임이 있다고 보고 레드카드를 준 모양입니다.』
호프만의 레드카드에 고양 유나이티드가 난리가 났다.
“잠깐만요! 레드카드라뇨! 이게 무슨 일이에요! 차라리 레드를 줄거면 나정호도 같이 줘야죠!”
주장 김지우가 따져 물었지만 주심의 판정은 완강했다.
지켜보던 홈팬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이 주심을 향해 구호를 외쳤다.
-정신차려! 심판!
-정신차려! 심판!
퇴장은 번복되지 않았고, 호프만은 결국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경기장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홈팬들은 그런 호프만의 이름을 외쳐주며 응원했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후반전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필립 호프만이 퇴장당하면서 고양은 수적 열세에 처하게 됐습니다.』
『와, 정말 더비전답네요. 고양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건가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파주가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때, 카메라 화면에 지태훈의 모습이 잡혔다.
그는 맥주를 손에 쥐고 멍한 얼굴로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태훈 대표도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경기의 행방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