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홈 개막전을 앞두고 주중에 AFC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었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호주 원정을 떠나게 된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
오로지 승리한다는 일념에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했다.
나는 선수들의 피로도를 걱정해서, 비행기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자금이 많이 들긴 했지만, 그 덕분에 선수단은 편안하게 시드니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드니와 일전을 벌인 고양.
하지만 지난 주말 경기의 피로도와 일부 베테랑 선수를 제외하면 처음 겪는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고양 선수들의 몸이 전반적으로 무거웠다.
그 결과 승부는 우리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게 됐다.
『경기 끝났습니다! 아쉽게 양 팀 모두 0:0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우라와와 허베이의 경기 결과를 봐야 하는데요. 결과에 따라서 우라와가 치고 올라올 수 있습니다.』
시드니와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고양 선수들은 아쉬움을 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온 그들은 우라와 승점 격차가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좀 아쉽네.”
G조 순위표 (팀명/승점/득실차)
[1] 고양 유나이티드 | 7 | +8
[2] 우라와 레즈 | 6 | +5
[3] 시드니FC | 2 | -5
[4] FC허베이 | 1 | -8
우라와가 허베이를 2:0으로 잡아내면서 승점 1점 차이로 좁혔다.
남은 3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뒤집혀질 수 있었다.
“우리가 4라운드에서 홈에서 시드니를 잡고, 우라와도 허베이를 잡는다면, 5라운드 경기가 분수령이 되겠군요.”
“무조건 다 이겨야 합니다.”
곽찬구 감독과 대화를 나누던 나는 걱정을 드러냈다.
“그나저나 조금 걱정이군요. 일요일에 홈 개막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지치면 안 됩니다.”
“안 그래도 체력 회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무리하긴 했어도 주중 경기에서 로테이션도 돌렸고요.”
“음. 박형우 선수를 포함해서 몇몇 선수를 아예 명단에서 제외했었죠.”
“네. 그래서 무승부로 만족해야만 했지만요.”
현재 팀 득점 1위 박형우를 포함해서 주요 선수들을 체력 안배 차원에서 명단에서 제외하는 초강수를 뒀다.
만약 박형우까지 뛰었다면 시드니 전에서 최소한 1골을 얻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이번 주말 경기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호프만을 믿었는데, 역시 박형우와 함께 뛰게 해야 효과가 제대로 나옵니다.”
“그렇더군요.”
“그래도 이번 주말 경기가 끝나면 A매치입니다. A매치에 차출되는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2주간 체력을 회복할 수 있죠.”
“하긴.”
3라운드를 끝으로 3월 A매치 기간이 다가온다.
그런데 이번 3월 A매치에서 우리에게 꽤 특별한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박요한 선수는 어떻습니까?”
“꽤 흥분한 것 같더군요. 드디어 뽑혔다면서.”
“잘 됐죠. 박요한 선수가 여태껏 안 뽑혔다는 게 이상했던 일입니다.”
계속 이야기가 나왔던 박요한이 마침내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물론 발탁됐다고 해서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발탁됐다는 부분이 중요했다.
“이번 경기에 선발로 내세울 생각이신가요?”
“네. 요한이야,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선수입니다. 이번에도 특별한 경우 없으면 선발로 내세울 거고요. 그리고 국대에 가기 전에 선수 기 좀 살려줘야죠.”
“이번 파주전에서 한 골 넣으면 좋겠네요.”
내 말에 곽찬구 감독이 희미하게 웃었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TH투자회사 K리그1 2028 3라운드, 고양 유나이티드 대 파주FC의 경기를 생중계하겠습니다. 저는 캐스터 이형욱이고요. 모처럼 제 옆에는 박천명 해설위원님이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왁스를 발라 머리를 올린 이형욱과 안경을 쓴 박천명이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오늘 상당히 중요한 경기가 이곳 고양더블은행파크에서 벌어지는데요. 바로 고양과 파주의 통산 106번째 경기북부더비가 치러집니다.』
『그렇습니다. 현재 AFC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고 있으면서 출발이 좋은 고양과 시즌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은 두 팀이 만났습니다.』
『상당히 상반된 분위기 속에서 만난 양 팀인데요. 파주FC 이야기부터 먼저 할 수밖에 없겠네요.』
『네, 파주FC 같은 경우에는 지난 시즌 막판에 경질된 이반코비치 감독의 후임으로 U20 청소년 대표팀과 성인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지냈던 이광용 감독을 급하게 선임했는데요. 작년에 강등은 겨우 피했는데, 이번 시즌도 출발이 좋지 않아요. 1라운드 홈개막전에서 인천에게 0:3 패배했고, 2라운드에서는 부산한테 90분 내내 0:1로 끌려다니다가 막판에 부산의 수비 실수로 내준 PK로 1:1 무승부를 거두었거든요? 오늘 경기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파주는 시즌 초부터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파주FC는 이재신이 비리로 체포된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선수단 내부에서 그간 참아왔던 불만들이 미투 형태로 터져 나왔다.
그 결과 최종현, 산토스 같은 주전 선수들이 시즌이 끝나고 팀을 이탈하면서 전력이 약화됐다.
덩달아 기존 스폰서 기업들과 관계도 악화하면서 재정 또한 흔들렸다.
이후 이광용 감독이 부임하고 어려운 팀 사정 속에서 어떻게든 잘 이끌어보려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 가장 분위기가 좋은 라이벌을 만나게 됐다.
『이에 반해 고양 유나이티드는 말할 필요도 없이 분위기가 상당히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양은 현재 AFC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조 1위로 올라와 있고요. 현재 K리그1에서도 리그 3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앞서 우승 경쟁하는 전북과 울산이 승리하면서, 1경기를 덜 치른 고양을 제치고 1, 2위로 올라선 상태였다.
『이번 시즌 고양은 지난 시즌보다 더 파괴력 있는 팀으로 만들어졌는데요. 이번에도 리그에서만 2경기 5골. 특히 지난 서울전에서 보여 줬던 막판 추격골은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네. 1:0으로 앞서다가 연달아서 서울에게 3골을 내줬는데, 금방 호프만의 중거리 골과 김지우의 PK 득점으로 무승부를 했었죠.』
『그때, 서울하고 고양이 서로 너무 잘했어요. 명승부였죠.』
『그렇습니다. 자, 이렇게 통산 106번째 경기북부더비를 치르게 된 양 팀인데요. 곽찬구 감독이 부임한 이후 고양은 파주를 상대로 무패, 전승을 거두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곽찬구 감독의 고양은 파주하고 3번 붙었고, 그 경기들 모두 다득점으로 이겼습니다.』
『이번에도 다득점 경기가 나올 확률이 있는데요. 저희는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위 아 더 K리그!』
이번 시즌 K리그의 새로운 슬로건, ‘We are The K League’를 외치며 두 중계위원은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 * *
경기장은 팬들로 가득 찼다.
양팀 분위기는 전혀 달랐지만, 경기 북부 더비의 위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경기장 매진입니다, 대표님.”
“훌륭하네요.”
이미 사전 예매로만 티켓이 90%가 팔렸다. 나머지 10%는 현장 판매를 통해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동이 났다.
“뉴스 배포하세요.”
“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미리 기사를 준비했다. 내 지시에 기사가 바로 송출됐다.
【오피셜】통산 106번째 경기북부 더비, 전석 매진! …… K리그 역대 홈 개막전 최다 관중 기록 달성.
리모델링 증축으로 약 15,000석 정도가 늘었다. 최대 56,311명까지 수용 가능했다.
기존에 서울 드래곤즈와 수원 블루윙즈에서 나온 2011년 3월 6일 홈개막전에서 51,606명을 기록한 경기가 역대 최다 홈 개막전 관중 기록이었다.
그 기록을, 2028년 3월 12일 고양 유나이티드와 파주FC가 깨버렸다.
약 17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었다.
“신기록도 달성했으니 이제 이기기만 하면 되겠군요.”
나는 흐뭇한 미소를 드러내며 경기장을 바라봤다.
양팀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 *
『경기 시작했습니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시작된 통산 106번째 경기북부 더비.
더비 경기답게 시작부터 경기는 격렬했다.
『호프만 공을 잡는데요! 넘어집니다!』
『아, 지금 호프만 선수가 조금 당황했어요.』
처음 겪는 경기북부더비의 치열함에 에이스인 호프만도 처음부터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호프만, 올리는데요! 상당히 정확하게 전방으로 향합니다! 박형우가 잡고 달립니다!』
『파주, 공간 열리죠. 위험합니다!』
이번에도 선발로 나온 호박라인.
호박라인의 연계는 경기북부더비에서도 빛났다.
『박형우 슈우웃! 아깝게 골대 위로 향합니다!』
비록 박형우의 슈팅이 빗나갔지만, 이 슈팅 한 번으로 분위기가 점점 고양 유나이티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방점을 찍는 선수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김지우의 전방패스! 정확하게 박요한에게 연결됩니다!』
『빠지고 들어가죠!』
『기회가 옵니다! 라인브레이커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박요한인데요!』
파주의 수비 뒷공간을 정확하게 빠져들어가는 박요한.
라인브레이커라는 별명답게,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드리블 한방에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된 박요한.
경기장에 있던 모든 관중이 기립하며 그 상황을 지켜봤다.
『슈우우우웃! 들어갑니다! 박요한입니다!』
『이야아아! 제대로 들어갔어요!』
침착하게 때린 슈팅이 상대 골키퍼 윤태준을 지나쳐 정확하게 오른쪽 골문 구석으로 향했다.
펑! 펑!
우와아아아아!
골망이 흔들리자마자 골대 뒤에 있던 폭죽이 터지면서 경기장은 홈팬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
『리플레이 화면 보겠습니다. 상대 진영까지 침투해 들어온 김지우가 보여준 전방 패스 한 번에, 박요한이 파주의 라인을 부수고 그대로 골까지 만듭니다!』
『아, 파주는 지금 이게 문제입니다. 자, 지금 보세요. 여기서 레오나르도 선수가 그냥 놓쳤어요. 여기서 박요한에게 시선을 안 두고 그냥 내버려 두니까 바로 실점까지 이어졌거든요!』
득점에 성공한 박요한은 환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고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반면, 윤태준과 레오나르도 모두 낙담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고양 벤치와 팬들도 격하게 환호했다.
『고양이 이번에도 앞서 나갑니다! 전반 9분, 박요한의 골로 고양이 주도권을 가져옵니다!』
『박요한 선수가 이번 3월 A매치를 앞두고 생애 첫 국가대표팀에 뽑혔거든요? 이건 자축하는 득점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박요한은 이번 시즌 리그 2호 골을 기록합니다.』
자축하는 득점을 기록한 박요한.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번에도 박요한인데요!』
『열리죠!』
『슈우우웃!』
실점 이후 계속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파주FC의 수비수들.
그런 수비수들을 상대하는 박요한은 포식자였다.
첫 번째 득점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박요한은 여유롭게 2번째 득점을 만들어 냈다.
『들어갑니다! 이번에도 박요한입니다! 오늘 멀티골을 기록하는 박요합입니다!』
전반 9분에 이어 17분에 또 득점에 성공하는 박요한이었다.
파주FC는 이른 시간 추가 실점까지 당하자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이런 충격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호프만이 길게 연결합니다! 박요한이 잡는데요!』
중앙에 있던 호프만이 우측 측면에 있던 박요한에게 정확히 공을 연결했다.
공을 잡는 박요한 앞에는 파주FC의 곽두일이 있었다.
그런 곽두일을 박요한이 페이크를 쓰며 드리블로 돌파했다.
『어~ 열리죠!』
『제쳐 내는 박요한인데요! 지금 수비가 열리는데요!』
순식간에 PK박스 안쪽으로 들어온 박요한은 골문 앞에 선수들이 몰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슈팅을 때렸다.
팡!
발끝을 벗어난 공이 선수들 사이로 빠져나가더니 곧 바닥을 한 번 튕기고 그대로 골키퍼를 지나쳐 골망을 흔들었다.
골망이 흔들리기도 전에 박요한은 이미 카메라 앞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뛰어가는 그는 머리 위로 손가락 3개를 펼치고 있었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박요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