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팡!
모두가 놀랐다.
『오! 막았습니다! 설찬우의 슈퍼세이브!』
『와, 이걸 막네요! 경기가 정말 어떻게 되는 건가요!』
포효하는 설찬우와 그런 그에게 다가가 환호하는 서울 선수들.
반면, 고양 유나이티드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듯 가라앉았다.
원정 응원 온 팬들도 상당히 당황해했다.
“포기하지 마!”
그때, 주장 김지우가 동료들에게 강하게 외쳤다.
“게임 안 끝났어! 경기 아직 안 끝났다고! 너희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고작 이런 일로 포기하는 나약한 녀석들이었어!?”
주장의 일침에 그제야 동료들이 정신을 차렸다.
“미안해, 형. 내가 실축하는 바람에.”
“야, 겨우 이런 일로 사과하지마. 너 그동안 잘해 왔잖아. 미안하면 실력으로 갚아! 알겠지?”
“응. 고마워, 형.”
실축했음에도 자신을 믿어주는 김지우의 말에 박형우는 고마웠다. 그리고 이 상황을 만회하고자 다시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가자!”
팀이 위기를 겪을 때, 주장은 흔들리지 않고 팀을 잡아줄 의무가 있었다.
김지우는 그런 주장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벤치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곽찬구 감독은 속으로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김지우에 대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볼 때마다 대단한 녀석이야.’
김지우는 주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괜히 그가 계속 주장을 맡기는 게 아니었다.
평소에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동료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마지막이기도 하니…….’
오로지 곽찬구 감독만 알고 있는 사실이, 그의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끝까지 해보자. 지우야. 네가 말했던 것처럼, 나도 인생 걸고 끝까지 가보마.”
그리고 이런 김지우의 헌신과 열정은, 금방 결과로 나타났다.
『박형우가 공을 받습니다. 호프만에게 패스하는데요. 호프만이 들어갑니다! 호프만, 오세진에게 패스합니다. 오세진, 측면으로 향하는 정성진에게!』
『아~ 고양~ 굉장히 빠릅니다! 패스도 정확하게 들어가는데요!』
『바로 서울의 문전 앞까지 침투합니다!』
『찬쓰죠!』
단 4번의 패스로 기회를 만들어 버린 고양.
『정성진 올립니다!』
크로스를 시도한 공이 서울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지는 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사람이 있었다.
『김지웁니다!』
최후방에서 어느샌가 상대 골문 앞까지 온 김지우가 공을 잡았다.
그의 앞에는 골키퍼 설찬우가 있었고, 양옆에는 2명의 수비수까지 있었다.
『김지우 때려야죠!』
『슈우우우웃! 들어갑니다!』
『이야~ 이게 바로 주장이죠! 주장이 일을 냅니다!』
김지우의 발끝에서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동점골과 함께 고양 선수단과 팬들 모두 뒤집어졌다.
우와아아아아!
“그래! 이거지!”
환호하는 고양 팬들과 주먹을 불끈 쥐며 누구보다 기뻐서 방방 뛰는 곽찬구 감독의 모습이 함께 카메라에 잡혔다.
반면, 서울 드래곤즈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경기는 3:3.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승부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시간은 추가 시간까지 포함하면 약 6분 정도 남았는데요!』
양 팀은 추가 시간까지 치열하게 뛰었다.
삑! 삐익! 삑!
『경기 끝났습니다! TH투자회사 2028 K리그1 정규리그 2라운드, 서울과 고양의 경기는 3:3 무승부로 마치게 됐습니다.』
『양 팀 모두 정말 훌륭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비록 무승부이기는 해도, 정말 손에 땀이 차는 경기였습니다!』
『그럼 저희는 다음 중계 때 뵙겠습니다. 위 아 더 K리그, 저는 캐스터 이형욱, 박하윤 해설과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아깝다.”
이번 2라운드 경기를 직관하지 못했던 나는 결과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했다.
그런 나를 보고 피식 웃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태수였다.
그는 중계를 보던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나를 보고 툭 던지듯 말했다.
“장군멍군으로 끝났군요.”
“아니, 코치님. 팀 왜 이렇게 잘해요? 작년에는 이 정도까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희 원래 잘했습니다.”
“에이.”
“진짭니다.”
“에이.”
이태수는 내 반응에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그렇고, 코치 일은 할 만하십니까?”
“생각보다 괜찮더군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이번에 자격증도 따셨다면서요?”
“네. 덕분에 무난하게 딸 수 있었습니다.”
“무난한 것치고 엄청난 성적으로 따셨던데요?”
정보에 의하면 원래 AFC C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을 이수하던 그는, 강사 추천 자격으로 B급 자격증까지 딸 수 있었다.
지도자로서 상당한 실력을 보인 그는 파란을 일으키며 수석으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번에 대회에도 나간다면서요?”
“네. 말단 코치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FIFA U-17 대회라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
B급 자격증부터 중, 고교 18세 이하 청소년 클럽팀 감독 또는 (성인) 국내 모든 클럽 및 각급 대표팀 코치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태수는 이번에 팀내 말단 코치로서 U-17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준비할 게 많으시겠네요. 어렵지는 않으세요?”
“뭐, 별로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군요.”
하긴.
내가 본 영상이라면, 이 눈앞에 남자는 세계적인 감독이 되실 분이니까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겠지.
“마음 같아서는 우리 팀 감독으로 데려오고 싶은데…….”
“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휴, 큰일 날 뻔했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가 급하게 주제를 돌렸다.
“이대로 감독까지 승승장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감독이라…… 고맙습니다.”
이태수 감독을 우리 팀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내가 욕심을 내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중에 이태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코치님을 해코지한 범인을 용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라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될 텐데. 대단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죠.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고 움직였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그리고 그 명령자가 처벌받지 않았습니까?”
“…….”
“비록 선수의 생명은 끝났지만, 저에게는 지도자로서 삶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도자로서 대성할 생각만 하고 있고요.”
“그렇군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가 가진 그릇이 결코 범인은 아니라고 느꼈다.
“이태수 코치님. 제가 조언 하나 해드려도 될까요?”
“네?”
“반드시 외국어 배우세요.”
“예? 갑자기 외국어는 왜…….”
“아무튼 외국어 배워놓으세요. 영어, 독일, 스페인 등등 배울 수 있는 언어는 다 배우세요.”
“……?”
“도움이 될 겁니다. 제 조언 허투루 듣지 마세요.”
“아, 알겠습니다.”
나의 조언이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 *
3라운드 파주와의 홈 개막전을 앞둔 나는 김 비서와 함께 어딘가로 향했다.
“태훈씨, 도착했어요.”
“응.”
모처럼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납골당이었다.
며칠 안 남은 아버지 기일 때문에 미리 납골당을 찾은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의 유골함을 본 나는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혹시 하늘에서 보고 있으신가요? 형이 결국 잡혀 들어갔어요.”
아버지가 하늘에서 보고 있으시다면, 어떤 기분으로 내려다보고 있을까?
형제가 질긴 싸움 끝에 결국 한 사람은 감옥에 가는 결말로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죄송해요.”
나는 아버지에게 진심을 담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저도 처음부터 원했던 결말을 아니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나는 말을 하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회귀 전에 내가 겪은 결말을, 이제 형이 겪게 됐다.
막상 이게 잘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 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형은 그간의 죗값을 치러야 해요.”
형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큰 죄를 저질렀다.
그 죗값은 제대로 치러야 했다.
단순히 나의 치기 어린 복수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죗값을 치르기 위해, 형은 감옥에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미안해요. 아버지.”
아버지의 유골함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나에게,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태훈 씨.”
“…….”
“태훈 씨 잘못 아니에요.”
“……알아.”
“근데 왜 울어요?”
“…….”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다가 주먹으로 눈가를 훔치고 말했다.
“울긴 누가 울었다고.”
“괜찮아요.”
나와 김 비서는 한동안 아버지 유골함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 * *
K리그 1라운드 경기를 앞둔 날, 모처럼 김진철과 용준형이 함께 술을 한잔 먹고 있었다.
“이봐, 김진철이.”
“왜?”
“이제 딸내미 시집 보내야지.”
“푸훕!”
술을 마시던 김진철이 그 말에 술을 뿜었다.
“콜록. 콜록.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아, 새끼! 갑자기 술맛 떨어지게 하네!”
김진철의 반응에 용준형 사장이 피식 웃었다.
“너, 정말 우리 대표님이 싫냐?”
“대표님? 너 아주 그 애송이의 개가 됐구나?”
“허어! 이 사람아! 개라니!”
“……”
“이왕이면 반려견이 됐다고 말해 줘! 왈왈! 으하하하!”
“에휴.”
그런 그를 본 김진철이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너 우리 대표하고 네 딸내미하고 사귀는 거 허락했다며? 근데 왜 결혼은 반대하냐?”
“아오! 야! 나보고 뭘 어쩌라고!”
“진짜 대표가 싫냐?”
“…….”
김진철은 대답 대신 빈잔에 술을 따르려고 했다. 그러자 용준형이 빠르게 그의 손에 잡힌 술병을 잡아 뺏으며 말했다.
“어허! 어디서 부정타게 술을 혼자 따라서 마시려고 해?”
“…….”
용준형이 그의 빈잔에 술을 가득 따라줬다.
“진짜 대답 좀 해봐라.”
“그만 좀 하라니까. 오늘 너 왜 그러냐? 나한테 뭐 불만 있냐?”
“불만 있지. 잘못하다 너 때문에 우리 대표하고 네 딸내미 모두 결혼도 못하고 늙어 죽을까 봐! 어!”
“아따, 누가 보면 네가 대표 아빠겠다. 언제부터 그렇게 챙겼다고!”
“야, 내가 그래도 대표 왼팔 아니냐?”
“뭐?”
용준형이 자신의 왼팔을 들어 보이며 으쓱대자 김진철은 황당한 표정을 드러냈다.
“몰랐냐? 아~ 혹시 네가 왼팔인 줄 알았어? 그런데 어쩌냐. 왼팔은 나고, 오른팔은 그 천지원인가 뭔가하는 부장이 오른팔인 것 같던데.”
“……참 나 어이가 없어서.”
김진철은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크으. 술이 쓰다.”
“네가 대답 안 해서 쓴 거야. 얼른 대답이나 해. 결혼 안 시킬거야?”
“아오! 야! 결혼은 개네들이 알아서 할 부분이지. 내가 무슨 자격으로 뭐 하라마라 하겠냐!”
“어? 뭐야? 그럼 너도 네 딸내미하고 대표하고 결혼하는 거에 긍정적이라는 거네?”
“하아. 그래, 임마.”
용준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술잔에 담긴 술을 입에 털어 마시고 호탕하게 웃었다.
“으하하하! 김진철이, 이거 이거, 온갖 싫은 척은 다해도 결국엔 대표를 마음에 들어했구만!”
“아, 지랄!”
“그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고 자시고, 내 딸이 죽어라 좋아하는데, 내가 어떻게 말리겠냐.”
“정말 딸 때문에 그래?”
“…….”
“야, 진철아.”
용준형이 그의 빈잔에 술을 따라주고, 곧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며 말했다.
“너 사고 나서 혼수상태였을 때, 대표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냐? 네 딸내미 울고불고할 때, 묵묵하게 너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준 게 대표야.”
“…….”
“대표가 하루종일 네 걱정하더라. 퇴근하면 제일 먼저 찾아가는게 네 병실이었고. 솔직히 가족 외에 그렇게까지 해주는 사람이 어디있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진철아. 내가 괜히 우리 대표라서 하는 게 아니고. 진짜 주변에 그만한 사람 없다. 능력도 있고, 보니까 망나니 기질도 없어졌던데. 인품도 좋아졌고. 사람 대하는데 있어서 저 위치에서 거짓없이 대하는 거, 쉽지 않다는 거 알지?”
“…….”
“잘 생각해 봐. 너 까딱하다가 진짜 좋은 사람 놓칠 수 있는 거다?”
그 말에 김진철은 조금 복잡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