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이번 서울 원정은 쉽지 않다.”
K리그 2라운드, 서울 드래곤즈와 일전을 앞둔 상황에서 나온 곽찬구 감독의 첫마디였다.
“감독님!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주장 김지우가 선수들을 대표해서 묻자 곽찬구 감독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서울은 아주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매번 긴축 자산 운영을 하던 서울.
하지만 메인스폰서가 바뀐 영향으로, 서울은 지난겨울에 상당히 과감한 투자를 진행했다.
그중 가장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히카르두 실바. 이 포르투갈 출신 감독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지.”
바로 감독이었다.
“선수 시절 주로 포르투갈 무대에서 활약했던 인물인데, 감독으로서는 상당히 유명하지. 너희들도 아마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오랜 기간 벤피카에서 뛰었던 히카르두 실바 감독은 은퇴 후에 그곳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코치부터 시작해서 경험을 쌓은 그는 전임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이후 급하게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해에 벤피카는 대역전 끝에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이후 3년 정도 더 벤피카를 이끌며 리그 2회 우승, FA컵 1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8강, 유로파리그 4강까지 올리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스코틀랜드 셀틱 감독으로 부임한 후, 3년 동안 리그 3회 우승, FA컵 2회 우승, 리그컵 1회 우승을 기록하고, 챔피언스리그 8강 2회를 기록하며 명장으로서 가치를 보였다.
이후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그의 다음 행선지를 서울 드래곤즈였다.
가장 적극적으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 모셔온 서울은, 이번 시즌 K리그 우승을 노리며 명가 재건을 선언했다.
그리고 시작부터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었다.
“개막전 경기에서 서울이 전북을 잡았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곽찬구 감독은 전술 보드판을 이용해 서울의 전술을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히카르두의 서울은 4-4-2를 사용하는데, 이건 어디까지 큰 틀일 뿐이다.”
2010년대 후반, 2020년대 들면서 유럽무대에서 포르투갈 지도자에 대한 신뢰도가 부쩍 올랐다.
이유는 그들이 갖춘 다채로운 전술적 경기 운영에 있었다.
“공격 상황에서, 서울은 최소 2가지의 전술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어.”
곽찬구 감독은 직접 자석 말판을 움직이며 설명했다.
“지난 시즌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던 강유찬을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화를 줬는데, 이게 생각보다 제대로 먹혔어. 이 강유찬을 중심으로 측면을 통한 빠른 역습과 상대 파이널써드에서의 부분 전술로 상대를 압박하고 득점까지 만들었어.”
“파이널써드의 부분 전술은 뭐가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공격할 때, 서울은 최소 4명의 선수가 박스 안에 들어간다. 4-4-2의 축이 되는 2명의 공격수를 포함해서 2명의 선수가 추가로 들어가지. 근데 공격 상황에서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선수가 랜덤하다는 거야.”
“예?”
“어느 때는 중앙 수비수가 들어가고, 어느 때는 측면 수비수나 미드필더가 들어갈 때도 있지.”
“그럼 자칫 역습이라도 맞이하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서울이 앞서 전반에 2번의 실점을 한 것도 그 이유야. 하지만 후반전에는 달랐어. 어느 정도 호흡이 맞기 시작하니까 도저히 틈이 나오지 않은 공격을 퍼붓더라고.”
“허어.”
선수들이 작게 탄성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공격의 시발점인 강유찬을 틀어막고, 동시에 상대가 파이널써드와 하프스페이스 지역을 봉쇄해야 해.”
“그럼 지역방어로 수비를 해야할까요?”
“하프스페이스 지역에서는 패스 길목을 내주지 않는 지역 방어를 우선으로 하고, 파이널써드 지역에는 좀 더 압박해야지.”
그 말에 이진수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감독님! 파이널써드에서 압박 수비하다가 PK라도 내주면 어떻게 하죠?”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 다행히 서울 선수 중에서 드리블이나 돌파가 좋은 선수가 없어. 파이널써드에서 드리블로 돌파로 PK를 유도하는 플레이를 한다면 압박 수비가 독이 되겠지만, 지금 서울 같은 상황에서는 압박을 통해 오히려 뒷공간으로 갈 수 있는 짧은 패스를 막고, 강제로 고립시켜 공을 뺏어서 우리가 역습으로 가는 찬스를 만드는 게 더 유리해.”
곽찬구 감독의 설명에 선수들이 눈을 빛냈다.
“서울의 공격력이 상당히 좋다. 그것도 그저 개인플레이로 이루어진 공격이 아닌, 전술적으로 만들어서 나오는 득점이라는 거야. 우리가 그런 상대의 전술을 얼마나 틀어막고 역이용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느냐, 못 얻으냐가 결정될 거야.”
그렇게 말하는 곽찬구 감독의 모습에는 나름대로 결의가 차 있었다.
“올해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다. 우승을 위해서, 초반에 만나는 강적들을 꺾어야 해. 반드시 해낸다. 알겠나?”
“네!”
“좋아! 그럼 최선을 다하자!”
감독과 선수가 모두 눈을 빛내며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치러진 2라운드 경기.
경기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 득점합니다! 이번에는 서울 드래곤즈의 골입니다!』
『이야! 양 팀 모두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 경기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예상과 달리 다득점으로 진행하는 오늘 경기인데요. 오늘 경기 정말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
곽찬구 감독은 저도 모르게 경기장 내 대형 스코어보드로 시선이 향했다.
[서울 드래곤즈 2:1 고양 유나이티드]
‘미치겠네.’
곽찬구 감독은 머리가 아팠다.
슬쩍 서울 벤치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단단한 인상을 지닌 히카르두 실바 감독이 터치라인 앞에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굳은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상대도 우리가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 다 꿰고 있었군.’
경기 초반에는 좋았다.
고양이 먼저 선제득점에 성공하면서 기분 좋게 앞서 나갔으니까.
선제골의 주인공은 바로 박형우였다.
멋진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앞서 나가는데, 서울이 금방 반격했다.
일찌감치 실점한 서울은 이른 시간 선수교체를 시도하면서 1라운드와는 전혀 다른 전술로 바꿨다.
히카르도 감독이 부임하면서 영입한 크로아티아 공격수 데얀 페리시치.
강유찬을 빼는 초강수를 두며 투입한 데얀 페리시치가 일을 만들어 냈다.
『데얀 페리시치는 지난 경기에서 교체로 10분 정도 뛰었거든요? 그리고 오늘 조기 투입되면서 한 골도 아니고 두 골이나 만들었습니다!』
『곽찬구 감독의 표정이 좋지 않네요. 고양이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은데, 과연 히카르두 감독도 대단하네요. 이렇게 상황을 뒤집어 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축구는 감독 놀음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K리그에서도 감독들의 전술 싸움을 보는 일이 너무 좋네요!』
데얀 페리시치를 중심으로 전혀 다른 전술로 고양을 곤란하게 만드는 서울 드래곤즈.
하지만 고양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고양도 변화를 주고 있는데요. 네, 박요한 선수를 빼고 석종호 선수를 투입합니다!』
『어, 이건 일단 무너진 밸런스부터 먼저 찾겠다는 의도인 것 같은데요. 이렇게 되면 전체적인 포메이션 변화도 있겠는데요.』
오늘 4-3-3 포메이션으로 나섰던 고양은, 박요한을 빼고 석종호를 투입하면서 3-5-2로 바꾸었다.
『정성진 선수와 이진수 선수과 윙백으로 올라오는데요. 어, 이거 저는 수비 밸런스를 끌어올리는 교체인 줄 알았는데, 이거 완전히 공격적인데요?』
측면 수비를 공격적인 윙백으로 끌어올릴 정도로, 고양은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본 히카르두 실바 감독이 묘한 미소를 드러냈다.
‘걸렸군.’
히카르두 실바 감독이 뛰고 있는 서울 선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신호를 받은 선수들이 좀 더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지금 히카르두 감독이 뭔가 신호를 보냈는데요. 서울 선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졌어요.』
『이야~ 이거 정말 흥미진진한데요.』
양 팀의 플레이가 상당히 리드미컬하게 바뀌었다.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면서 상대를 뒷공간을 수도 없이 노렸다.
격투기로 따지면, 서로 가드를 내리고 주먹질을 하는 셈이었다.
누가 먼저 쓰러지나 내기하는 것처럼 서로 계속 두드렸다.
이렇게 되자 경기는 상당히 다득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골입니다! 서울이 또 한 점 앞서나갑니다!』
『아~ 이거 고양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인데요!』
페리시치가 또 한 골 넣으면서 기어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점수는 3:1로 크게 벌려지면서 자칫 고양의 사기가 꺽여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양에게는 굉장한 선수들이 있었다.
『호프만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불씨가 꺼져갈 수 있었던 경기에 다시 기름을 붙는 호프만의 득점입니다!』
파이널써드에서 나온 호프만의 강렬한 중거리 득점포가 터지면서, 고양의 공격에 다시 불이 붙었다.
『지금 양 팀 모두 가드를 내리고 두들기다 보니까 서로 득점할 수 있는 찬스가 계속 나오거든요. 이거 진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히카르도 감독도 그렇고, 곽찬구 감독도, 수비보단 공격적인 전술에 더 능한 감독들인데요. 이 경기가 정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어, 지금 또 고양에게 기회죠!』
고양 유나이티드가 또 한 번 기회를 잡았다.
빠른 역습을 통해 서울의 측면을 무너뜨린 정성진이 페널티박스 쪽으로 길게 크로스를 올렸다.
떨어진 공을 향해 스즈키가 펄쩍 뛰어오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스즈키가 넘어지는 순간, 고양 선수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올리며 반칙을 주장했다.
『어~ 스즈키 선수 넘어졌는데요!』
『고양의 모든 선수들이 일제히 반칙을 주장합니다! 주심도 봤을까요?』
『VAR이 있으니까, 아마 VAR 확인할 것 같은데요!』
혼전 상황이다 보니 주심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주심은 VAR과 교신하며 상황을 파악했다.
경기가 잠깐 중단되었고, 경기장 대형 화면에는 [VAR 판독중] 문구가 떴다.
잠시 후, 주심이 양 손가락으로 크게 네모박스를 그린 다음 온 필드 리뷰를 위해 뛰어갔다.
『자~ 주심이 온 필드 리뷰를 진행하는데요! 여기서 만약 페널티킥 판정이 나온다면! 고양은 동점골 기회와 동시에, 남은 시간 역전까지 노려볼 수 있습니다!』
『자, 저희도 리플레이 화면을 보고 있는데요. 지금 보면, 서울에 임진수 선수가 뛰어오르려던 스즈키 선수의 옷깃을 손으로 잡고 눌러서 넘어뜨렸거든요? 이게 주심의 성향에 따라서 충분히 반칙으로도 인정될 수 있는데요.』
마침 주심이 영상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주심은 망설임없이 서울의 페널티박스를 가리켰다.
삑!
『오우! 페널티킥입니다! 고양이 페널티킥을 얻어냅니다!』
우우우우우-.
PK가 선언되자 경기장을 수놓은 검붉은 물결이 야유를 퍼부었다.
반면 노란색 물결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 키커로 박형우가 나서는데요. 여기서 한골 넣으면! 아직 시간이 있기에, 충분히 역전도 노려볼 수 있습니다!』
PK키커로 나선 박형우.
서울 드래곤즈의 골키퍼 설찬우는 긴장한 얼굴로 자세를 잡고 기다렸다.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박형우가 천천히 공을 향해 움직였다.
팡!
발끝을 벗어난 공이 힘차게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날아가는 공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