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울산 문수 경기장.
경기장은 짙은 파란색과 노란 물결로 수놓아 있었다.
양 팀 서포터스들이 준비한 깃발들이 흩날리는 가운데, 오늘 중계를 맡은 이형욱 캐스터와 박하윤 해설이 중계석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위 아더 K리그! TH투자회사 K리그1 2028 1라운드, 울산 모터스 대 고양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중계합니다. 저는 캐스터 이형욱이고요, 박하윤 해설을 모시고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드디어 기다렸던 K리그 개막이 열렸는데요. 이번 K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 상당히 달라진 모습으로 팬들 앞에 등장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달라진 K리그를 보니까 가슴이 설레네요.』
카메라는 경기장 곳곳을 화면에 잡아주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의 모습. 연인과 함께 온 커플들의 모습.
서로 응원하는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서포터스들의 모습까지.
다채롭게 화면에 담았다.
『상당히 많은 분이 이곳 문수 경기장을 찾아주셨습니다.』
『K리그 인기가 상당히 많이 올라간 것 같아서 참 뿌듯하네요.』
『지난 시즌 리그 우승 팀, 울산 모터스와 FA컵 우승팀인 고양 유나이티드가 이곳 울산 문수 경기장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K리그의 특별한 시스템이죠.』
K리그1 개막전은 전년도 리그 챔피언과 FA컵 우승팀의 맞대결로 시작을 알린다.
전년도에 리그와 FA컵 더블을 달성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그렇게 진행해 왔다.
『사실 두 팀은 지난 프리시즌 대회였던 태훈컵에서 한 번 맞붙었는데, 그때 상당히 엇갈린 희비가 나왔습니다.』
『그땐 울산이 고양에게 패했는데, 그때는 프리시즌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요.』
『네. 울산과 고양은 모두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상태인데요. 모두 조별리그에서 2승을 거두면서 쾌조의 출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고양 유나이티드는 죽음의 조라고 불리는 G조에 속해 있는데, 허베이와 우라와를 잇따라 격파하면서 상당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양 유나이티드가 이렇게 잘해 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2경기 9골, 공격적으로 상당히 파괴력 있는 모습도 보여 줬지만, 수비에서도 단 1골만 내주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네. 특히 우라와 원정에서 선제실점한 이후 연달아 3골을 넣으면서 대역전을 한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화면에 고양유나이티드 선발 명단이 등장했다.
『자, 그럼 오늘 경기 선발 명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원정팀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박지원(GK)
이진수 | 라시모프 | 백종수 | 정성진
석종호 | 김지우
박형우 | 호프만 | 박요한
사무엘
감독 : 곽찬구
벤치 : 한비오(GK), 오세진, 스즈키, 한석원, 이광수, 박광섭, 김진규, 양철민
『오늘 고양은 4-2-3-1로 나왔는데요. 지난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선발에서 변화가 있습니다.』
『고양이 연속해서 원정 경기를 치러야 하니까 로테이션은 필수인 상황인데요. 석종호와 사무엘, 이 두 선수가 모처럼 선발로 나왔습니다.』
고양은 우라와, 울산, 서울 이렇게 시즌 초반에 원정 3연전을 치러야 했다.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서라도 곽찬구 감독은 로테이션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고양은 역시나 투박, 박형우와 박요한을 이용한 측면과 후방 라인 침투로 기회를 노릴 거고요. 이 전술의 중심에는 호프만이 있습니다. 사무엘 선수는 직접 득점을 만들기 보단, 울산 수비를 괴롭히면서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줄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마침 경기장에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게이트 앞에 도열한 고양 선수들은 뒤이어 나오는 울산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전년도 FA컵 우승팀이 리그 챔피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게 일종의 관례처럼 해오는 행사인데요. 이것도 여러모로 호불호가 갈리고 있죠.』
똑같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왜 FA컵 우승팀이 리그 우승팀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냐는 의견은 매년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프로축구연맹은 규정과 역사를 이유로 침묵했다.
그렇게 고양 선수들에게 축하 박수를 받고 경기장에 입장한 울산 선수들이 필드에 서자, 홈팬들의 함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그러자 원정팀도 선수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상황에서 양 팀 선수단이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양 팀 선수들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는 가운데, 곽찬구 감독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곽찬구 감독은 이번 개막을 앞두고 K리그 미디어 행사에서 올해 K리그1 우승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바가 있습니다.』
『곽찬구 감독도 능력이 있죠. 지난 4년 동안 고양 유나이티드를 강팀으로 바꿔 놓았으니까요.』
주심이 손목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하고 휘슬을 입에 물었다.
삐이이익!
『주심이 경기 시작 휘슬을 붑니다! TH투자회사 K리그1 2028 1라운드, 울산 모터스 대 고양 유나이티드의 전반전이 시작됩니다!』
마침내, K리그1 개막전이 시작됐다.
* * *
울산은 리그 디팬딩 챔피언으로서, 상당히 의욕적인 플레이로 고양을 위협했다.
“막아!”
“제레미!”
오늘 선발로 나온 제레미는 팀 공격의 중심이었다.
호프만의 활약에 계속 자극받는 제레미는 지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2라운드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도 의욕적으로 플레이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이 정도 리그에서 내가 최고라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안 돼.’
제레미의 발끝을 벗어난 공이 고양의 뒷공간을 노렸다.
마치 대지를 가르는 것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공이 움직였다.
최전방에 있던 동료 선수가 공을 받기 위해 뛰어들었다.
이 공을 받기만 한다면,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울산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촤악-
“크읏!”
백종수가 깔끔한 커버플레이로 공을 커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근처에 있던 라시모프에게 패스했다.
라시모프는 측면에 있는 이진수에게 공을 보냈다.
공을 소유한 이진수가 측면을 질주했다.
그런 그를 막기 위해 달려드는 울산 선수들.
허나, 이진수는 무리하지 않고 노련하게 뒤로 공을 돌려보냈다.
한순간, 울산의 공간이 비게 됐다.
그렇게 비어 버린 공간 안으로 호프만이 공을 잡고 뛰어들었다.
오늘 유독 견제를 많이 받았던 호프만이,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움직였다.
그런 호프만 앞에는 상당히 많은 선택지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상대 하프스페이스에 있는 박형우.
그를 향해 패스를 시도했다.
팡!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패스 한 방에 박형우는 어렵지 않게 공을 받고 질주했다.
순식간에 열려 버린 울산의 뒷공간.
“막아!”
다급해진 울산 수비수들이 박형우를 견제하기 위해 움직였다.
울산의 페널티박스 앞까지 온 박형우는 슈팅을 시도하려다가 자신에게 몰린 수비수들을 보곤 이내 뒤쪽으로 볼을 흘려보냈다.
어느샌가 다가온 이진수가 공을 받고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렸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울산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뚝 떨어졌다.
떨어지는 공을 향해 사무엘이 쇄도했다.
그런 사무엘 곁에는 이미 견제하고 있던 울산 선수가 있었다.
두 명의 선수가 동시에 펄쩍 뛰어올랐다.
팡!
공은 사무엘의 정수리를 맞고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자세를 잡고 기다리던 울산 골키퍼가 공을 잡기 위해 펄쩍 뛰어올랐다.
그런데 그런 골키퍼보다 먼저 뛰어오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요한이었다.
팡!
박요한은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해서 이마에 공을 댔다.
궤적이 바뀐 공이 그대로 울산의 골문 안으로 향했다.
출렁-
우와아아아아-!
울산의 골망이 출렁이는 순간,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과 팬들이 모두 환호했다.
* * *
박요한의 득점이 터진 순간, 중계진도 목소리를 높였다.
『골! 골입니다! 이번 시즌 K리그1 1호골의 주인공은 박요한입니다!』
득점에 성공한 박요한이 카메라 앞에서 세리머니를 했다.
이어 뒤따라온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고양의 플레이가 상당히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는데요. 호프만에서 시작된 패스가 박형우에게 전달됐고, 박형우도 무리하지 않고 이진수에게 내줬고요. 여기서 마무리 크로스에 이은 득점까지. 아주 깔끔하고 훌륭했습니다!』
『이게 바로 고양이죠!』
박하윤은 박요한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요한 선수는, 정말 고양에게 있어서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박형우나 호프만 같은 선수도 있지만, 박요한 선수도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제 몫을 해주고 있거든요. 게다가 고양의 성골 유스죠. 팬들은 박요한이 얼마나 예쁘겠어요? 네?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
곽찬구 감독도 박요한의 득점에 포효했다.
『감독도 기쁘죠. 박요한 선수는 곽찬구 감독이 부임할 당시부터 픽해서 키운 애제자인데, 얼마나 잘 성장하고 있습니까!』
득점 이후, 주심은 VAR을 통해 오프사이드 여부를 확인했다.
삑.
『네, 문제없이 득점으로 인정됩니다!』
와아아아!
고양 팬들의 환호가 다시 한번 울려퍼졌다.
이후 다시 경기가 재개됐다.
이른 시간 득점을 만들면서 분위기가 올라온 고양이 수차례 울산의 골문을 위협했다.
그 과정에서 울산은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게 흔들리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박하윤이 말했다.
『확실히 고양의 수준이 달라졌어요. 지난 시즌에 고양이 울산 원정에서 패배했었거든요. 그때도 아깝게 지기는 했었는데, 그때보다 수준이 더 높아진 것 같네요.』
『네, 제가 봐도, 수준 높은 플레이들이 계속 보이는데요. 기록을 놓고 보더라도, 지금 고양이 더 우세합니다.』
시종일관 고양이 밀어붙이는 형국이지만, 그렇다고 울산이 아무것도 못하고 맞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울산이 역습하는데요!』
『제레미 슈우우웃! 하지만 골키퍼에게 막힙니다!』
간헐적인 역습찬스에서 울산의 위협적인 슈팅들이 몇 차례 나왔다.
하지만 그런 기회들은 골키퍼에게 막히거나 수비수들의 커버플레이에 의해 차단당했다.
몇 번의 공격을 막은 상황에서 또 한 번 고양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수비 맞고 골라인 밖으로 벗어납니다. 고양의 코너킥!』
호프만이 공을 차기 위해 오른쪽 코너킥존에 섰다.
울산 골문 앞에 양 팀 선수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호프만이 신호를 주고 공을 찼다.
팡!
시원하게 포물선을 그리고 올라간 공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뚝 떨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떨어지는 공으로 향했다.
그 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사람이 있었다.
팡!
바로 박형우였다.
위로 들어 올린 왼쪽 발등에 정확히 닿은 공이 궤적을 바꾸고 그대로 울산의 골문 안으로 향했다.
출렁-
우와아아아아!
박형우의 골이 터지자 또 한 번 문수경기장은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박형우가 득점합니다! 고양이 두 골차로 달아납니다!』
『이야, 정말 환상적인 발리슛이었는데요! 이렇게 되면 이번에도 호박라인이 득점을 만들었네요.』
『고양은 환호하고 울산은 흔들립니다!』
득점을 기록한 박형우가 카메라 앞에서 무릎 슬라이딩하며 오른손 주먹을 위로 힘껏 들어 올렸다.
그렇게 고양은 개막전에서도 막강한 파괴력을 보여 주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