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75화 (175/272)

175화

김 비서는 자신의 생일날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하루 통째로 휴가를 냈다.

“바다가 보고 싶어요.”

김 비서는 바다를 좋아했다.

그래서 충청남도 서해안 쪽에 고급 호텔을 잡았다.

그녀와 함께 해안가 도로를 드라이브하며 바다를 보다가, 가까운 해수욕장에서 가볍게 발을 물에도 담가 보기도 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우리는 호텔 테라스에서 저물어가는 해를 보았다.

“김 비서. 정말 이걸로 만족해?”

“태훈 씨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저는 이것도 충분히 만족해요.”

“그래?”

김 비서는 참 말을 예쁘게 한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 나는 조금은 바보처럼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빠르게 표정 관리를 했다.

“고마워요.”

“응? 뭐가?”

“이런 시간 만들어줘서. 그리고 내 곁에 있어 줘서.”

나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 저물어가는 노을빛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런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내가 비치고 있었다.

살짝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더 고마워. 유리야.”

“태훈 씨.”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다 네 덕분이야.”

“…….”

점점 내려가는 태양을 가운데 둔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고 바라봤다.

그녀를 내려다보던 나는 천천히 그녀의 얼굴 쪽으로 가까이했다.

그러자 그녀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쪽.

눈을 감은 그녀와 키스했다.

그녀가 키스하는 내 목에 손을 올리고 감싸 안았다.

나도 그녀의 얼굴과 허리를 손으로 감싸고 뜨겁게 키스했다.

그런 우리를 향해 태양은 여전히 뜨거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 * *

고양 유나이티드가 우라와 원정을 떠나기 전, 나는 급한 연락을 받게 됐다.

“정말, 지태완의 처벌이 확정됐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명훈의 증언과 김도형의 자백으로 모든 게 드러났다고 합니다.”

“그럼 지태완은 어떻게 됩니까?”

“김도형을 숨겨준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에, 이명훈의 증언으로 살인혐의로 죄는 더욱 가중처벌 될 겁니다. 아마 몇 십년은 감옥에 살게 되겠죠.”

그런가.

정말 지태완은 끝나는 것인가.

왠지 허무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최종 빌런처럼 느껴졌던 그가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이제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할 사람은 없겠군요.”

“그건 알 수 없죠. 허나, 커다란 바위 하나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죠.”

“그렇죠.”

이번 일로 그간 범인이 누군지 모르고 당했던 피해자 가족들도 지태완이 범인인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영신그룹 총수가 저지른 짓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CNN, BBC 등 주요 미디어에서 이번 일을 크게 다루었다.

유명 대기업의 총수가 소시오패스라는 게 낱낱이 공개됐으니, 이번 이슈는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일본으로 향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원정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 2028 AFC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리그 2차전 경기를 중계할 캐스터 이민우입니다. 장제현 해설위원과 함께합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오늘 고양 유나이티드가 사이타마 원정을 오게 됐습니다. 지난 1차전에서 상당히 파괴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던 고양 유나이티드인데요.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시나요?』

『어~ 고양 유나이티드가 컵대회부터 지난 1차전까지 공수밸런스가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작년에 수비 쪽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던 백종수 선수가 이번 시즌에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고, 무엇보다 새로 보강한 필립 호프만의 가세가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수단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필립 호프만이 지난 경기에서 1골 3도움으로 1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무려 4개를 기록했는데요. 단순히 공격포인트뿐만 아니라, 패스 정확도가 무려 94%에 전방으로 향하는 패스는 17번을 시도해서 14번을 성공시켰습니다.』

『필립 호프만이 분데스리가에서도 그랬지만, 상당히 멀티플레이어였거든요. 본인이 기본적으로 동료를 활용한 플레이도 가능하지만, 필요하면 직접 득점도 만들 수 있고요.』

필립 호프만의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었다.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였다.

중계화면에서도 마침 지난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대부분 필립 호프만이 나왔다.

『오늘도 선발로 나오는 호프만과 박형우를 잘 활용해서 고양은 빠르게 득점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라와의 홈이죠? 이 사이타마 경기장은 상당히 많은 팀이 고전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우라와가 상당히 거센 분위기인데다, 홈에서는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전북을 만나 탈락하기는 했어도, 홈에서는 계속 무패였고요.』

『그렇습니다.』

『오늘 고양이 우라와 원정에서 좋은 결과를 만든다면 향후 16강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카메라는 양 팀 선수단의 모습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 주다가 돌연 원정석에 있던 내 모습을 찍었다.

『지태훈 대표의 모습인데요. 일본 원정도 따라왔군요.』

『현지에서도 이렇게 지태훈 대표에게 카메라를 비쳐주는 건,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지태훈 대표의 형이죠? 지태완 회장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고, 혐의가 인정되어 처벌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이건 여담이지만, 지태훈 대표가 현재 영신그룹 차기 회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총수가 사라진 영신그룹에서 새로운 총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민제국 영신텔레콤 사장이 임시로 그룹을 이끌어가는 상황이지만, 새로운 총수를 빨리 임명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차기 영신그룹 회장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김진철 이사와 용준형 사장이 나를 대신해서 현재 영신그룹 내부 주요 관계자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뭐, 두고 보면 알겠지.”

나는 여유로운 얼굴로 팔짱을 낀 채 경기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몸을 풀었다.

어느 정도 몸을 푼 박형우가 물을 마셨다. 그런 그에게 호프만이 다가왔다.

“형.”

“어, 너도 마실래?”

“아니. 그것보다 오늘도 달릴 준비 됐어?”

“준비야 벌써 끝났지.”

박형우의 말에 호프만이 웃어보였다.

고양 유나이티드에 합류한 이후, 호프만은 유독 박형우를 잘 따랐다.

이유가 있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호프만의 축구 철학이었다.

이적하기 전, 자신의 철학에 맞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걱정했다.

그런데 그것은 기우였다.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실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준수했다.

특히 박형우의 실력은 호프만도 인정할 수준.

게다가 그가 베푼 친절과 호의는 호프만을 만족스럽게 했다.

얼마안가 호프만은 그를 친형처럼 따랐다.

실제로 사무엘에게서 배운 한국어로, 박형우에게만 ‘형’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발음 때문에 박형우를 ‘형’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줄 알고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았다.

형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호프만이 나름대로 예의를 갖춰 표현한 것이다.

박형우도 그런 호프만을 기특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호프만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왔다.

훈련도 함께했고, 밥도 같이 먹는 경우도 많았다.

그 결과 그라운드에서도 두 사람은 상당히 좋은 호흡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형. 오늘도 잘 부탁해.”

“내가 더 잘 부탁하지. 나한테 패스 많이 해줘.”

“걱정 마! 나 호프만이야!”

“그래!”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왠지 뺏긴 기분인데.’

오세진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응당 그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다른 동료들도 왠지 박형우를 호프만에게 뺏긴 기분이 들었다.

‘뭐, 경기에 이기면 그만이지.’

오세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꽤 많은 숫자의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이 원정석을 채웠다.

사이타마 경기장이 거의 붉은색 물결로 출렁였지만, 원정석에 있는 노란 물결도 무시할 수 없었다.

“오늘 일당백으로 해내야 합니다! 다 같이 크게 질러 봅시다!”

“우와아아아아!”

일본 원정까지 따라온 박태준은 고양 유나이티드 유니폼에 노란 머플러와 선글라스까지 갖춘 상태로 손에 노란색 확성기를 쥐고 가장 앞에서 응원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의욕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내가! 외국에서 우리 팀 응원을 지휘하게 될 줄이야!’

그동안 다른 서포터스 회장들을 만나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선수단과 함께 아챔 원정 경기를 떠나 팀을 위해 멋지게 응원을 지휘하는 서포터스의 모습을!

평생 마음 한편에만 담아두던 소망이 마침내 오늘 현실로 이루어졌다.

‘오늘을 위해 그간 참았던 연차에 적금까지 깨서 왔다고!’

의욕이 활활 불타는 가운데, 박태준이 확성기를 입에 대고 외쳤다.

“모두 준비됐습니까!”

“네에에에!”

“그럼 다 같이 고~~야아아앙!”

박태준의 선창에, 함께 온 서포터스들이 준비한 북을 치거나 깃발을 흔들며 후창했다.

고양! 고양! 고양!

그 모습을 맞은편에서 지켜본 우라와 서포터스들도 자극을 받았다.

“오이. 오이. 저 칸코쿠들 상당히 의욕적인데?”

“우리도 질 수 없지!”

“홈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주자고!”

자극받은 우라와 서포터스들도 큰 목소리로 응원가를 불렀다.

그런 양 팀 팬들의 모습에 선수들도 경기 전부터 자극받고 있었다.

『경기 전부터 양 팀 팬들의 신경전이 상당한데요. 이제 선수들이 주심의 휘슬을 기다립니다.』

주심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 킥오프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에 도달하자 주심은 입에 문 휘슬을 길게 불었다.

삐이이익!

『경기 시작했습니다! 우라와 대 고양 유나이티드의 전반전 경기가 시작됩니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허베이전에 선발로 나왔던 선수들이 이번에도 동일하게 나왔다.

홈팀인 우라와가 선축 기회를 가진 상태에서, 빠르게 볼을 돌렸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선수 앞으로 공이 향했다.

『요시다가 볼을 잡습니다! 이번 동아시아컵에서도 우리나라 대표팀과 맞붙었던 그 선수인데요!』

동료로부터 볼을 잡은 요시다가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 동료에게 다시 패스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요시다가 패스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스즈키가 태클합니다! 공이 뒤로 빠지는데요! 호프만이 잡습니다!』

호프만이 공을 잡는 순간, 박형우와 박요한이 동시에 수비 뒷공간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호프만은 망설임없이 공을 찼다.

『정확하게 올라가는 패스입니다! 박형우가 볼을 잡는데요! 박형우 달립니다!』

발밑으로 정확하게 떨어진 공을 깔끔한 첫 터치로 잡아낸 박형우가 드리블하기 시작했다.

『박형우 앞에 미야자키와 칸지로가 있습니다!』

우라와 수비의 핵 미야자키와 칸지로가 박형우의 길목을 막고 압박했다.

하지만 박형우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무리하지 않고 볼을 살짝 흘렸다.

살짝 옆으로 흐른 공을, 어느샌가 달려온 김지우가 강하게 때렸다.

『김지우 슈우우우웃!』

미사일처럼 날아간 공이 궤적을 그리며 우라와 골문으로 향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