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고양 유나이티드의 공격력도 대단했지만, 수비에서도 단단함을 보여줬다.
『백종수, 깔끔하게 커팅합니다!』
『라시모프의 철벽 수비! 오늘 최전방에 지오 준민 선수가 아무것도 못하네요.』
『진짜 라시모프와 백종수, 이 두 선수의 조합이 대단하네요. 고양 입장에서 뒷문이 단단하니 공격도 마음 놓고 할 수 있거든요?』
확실하게 포텐이 올라오기 시작한 백종수와 이제는 완벽하게 K리그에 적응한 라시모프의 수비는 허베이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그야말로 통곡의 벽이었다.
어쩌다가 두 선수를 뚫고 슈팅 기회까지 만들어도, 박지원이라는 철벽 수문장이 존재했다.
『아말로 슈우웃! 박지원이 막아 냅니다!』
『이야, 박지원 선수가 올해 37살이에요. 만으로 36세인데, 아직도 클래스가 있습니다!』
허베이는 주도권을 완벽하게 고양에게 내줘야만 했다.
경기장은 고양 유나이티드의 홈팬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고양더블은행파크, 아니, ACL에서는 고양 아레나로 불리는 이 경기장에서 홈팬들의 응원 또한 상당히 뜨겁습니다!』
『경기장이 노랗네요. 아까보다 더 많은 관중이 들어온 것 같은데요?』
출렁이는 노란 물결 속에서 팬들이 부르는 응원가는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했다.
이러한 환경이 고양의 대량 득점을 가능하게 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박스 근처에서 호프만이 잡습니다! 호프만 직접 슈팅!…… 들어갑니다! 필리이이이입 호프마아아안!』
전반 37분, 필립 호프만이 어시스트에 이어 직접 본인의 ACL 데뷔골까지 만들었다.
카메라 앞으로 뛰어가는 호프만은 분데스리가 시절부터 보여준 특유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양쪽 검지와 중지를 펼치고 뒤집었다. 그러자 A가 2개인 것처럼 보였다.
『필립 호프만의 더블에이 세리머니가 이곳 고양 아레나에서 펼쳐집니다.』
『분데스리가에서도 저 세리머니를 많이 했었죠. 저걸 여기서도 보내요.』
필립 호프만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로 대단했다.
K리그 역사상, ‘1억 유로’라는 전무후무한 몸값으로 이적해 온 그는 자신의 몸값을 제대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호프만의 활약에 허베이 선수들은 거친 플레이로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친 플레이가 허베이에게 독이 되는 것도 모른 채.
『오세진이 높이 올려줍니다! 측면에 있는 호프만인데요! 어! 호프만이 쓰러집니다!』
떨어지는 공을 받기 위해 상대 선수와 경합하던 호프만.
그와 경합하던 허베이의 측면 수비 리 장웨이가 높이 뛰어올랐다.
그 상태에서 팔꿈치로 호프만의 얼굴을 가격한 것이다.
얼굴을 감싸고 쓰러진 호프만.
그런데 하필 그 장면이 고양 유나이티드 벤치 코앞에서 벌어졌다.
코앞에서 그 광경을 본 곽찬구 감독도 격노했다.
“야! 이거 반칙이야!”
격노한 곽찬구 감독을 본 허베이의 장준 감독도 격하게 반응했다.
“这是什么犯规!”
“이 중국놈이 지금 뭐라는 거야!”
두 감독이 실랑이를 벌이자 순식간에 양 팀 벤치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필드에 있던 선수들도 우르르 몰려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자, 지금 싸울 필요 없습니다. 상대 신경전에 말려들 필요 없고요. 진정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심이 VAR 확인할 겁니다. 괜히 흥분해서 일을 크게 키울 필요없어요.』
우우우우우-.
홈팬들이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전반전이 거의 끝날 무렵에 터진 상황이어서 양 팀 모두 감정이 극에 달했다.
“저놈들 진짜 지저분하게 플레이하잖아요!”
“저거 카드 줘야 해! 진짜로!”
『지금 저희 중계화면에 오세진 선수하고 이진수 선수의 말소리가 들려왔는데요. 사실 저희가 봐도 허베이 선수들의 플레이가 계속 거칠었던 것은 사실이거든요.』
주심은 양팀 선수단을 겨우 진정시키고, 충돌한 두 감독에게 다가가 화해를 시켰다.
두 감독 모두 별말 없이 악수하고 물러났다.
이후 주심이 VAR과 교신해서 호프만과 장웨이의 경합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 주심이 직접 화면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온 필드 리뷰에 들어갑니다! 오늘 주심은 일본의 에이지 나카토모인데요. 전반전 내내 관대하게 심판을 봤습니다.』
주심은 화면을 여러 번 확인하다가 곧 결정을 내리고 다시 필드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장웨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엉덩이 뒤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카드 집었어요!』
『과연 무슨 카드가 나올까요!』
장웨이 앞에 선 주심이 일절 망설임없이 레드카드를 꺼냈다.
『레드 카드입니다!』
『야! 퇴장이네요! 퇴장 맞죠. 팔꿈치로 제대로 가격했는데, 이건 고의성 여부를 떠나서 상당히 위험한 반칙이거든요.』
우와아아아-
레드카드가 나오자 홈팬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반면, 허베이 선수단이 격하게 항의했지만 주심은 단호했다.
그는 팔꿈치를 들어 올리며 퇴장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1명이 퇴장당한 상태에서 허베이는 남은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전.
1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는 허베이를 상대로 고양의 무시무시한 폭격이 이루어졌다.
『박형우가 기어코 해트트릭을 달성합니다!』
『후반전에도 완벽하게 득점이 폭발하는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허베이가 무너집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6:0 허베이FC】
경기장 내 스코어보드가 현재 경기 상황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박형우의 해트트릭과 박요한, 호프만, 교체로 들어온 한석원의 득점까지 묶어 6:0 스코어를 만들었다.
삑! 삐익! 삐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완벽한 ACL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결국 경기는 6:0, 고양 유나이티드의 대승으로 끝났다.
창단 첫 ACL 경기를 대승으로 마친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과 팬들이 환호했다.
* * *
【ACL】고양 유나이티드, 허베이 상대로 6:0 대승!…박형우 해트트릭, 필립 호프만 1골 3도움.
-미쳤음.
-대(大)고양---!
-가슴이 웅장해진다.
-공수밸런스 미쳤던데. 태훈컵에서 보여줬던 것보다 더 좋던데?
-와, 다른 팀들 긴장 좀 해야겠는데?
-아직 첫 경기이는 한데, 우라와만 어떻게 하면 16강은 무난하게 가겠다.
-아챔 좀 본 고인물은 기억하겠지만, 예전 13시즌 서울 드래곤즈하고 광저우 보는 것 같네. 결국 둘이 결승에서 붙었지?
-나는 데드리아노 있던 16시즌 서울 드래곤즈 보는 것 같던데.
-박형우는 나이 먹고 더 잘하네. 축구도사야.
고양 유나이티드의 성대한 데뷔전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드러냈다.
“흐뭇하구만. 다른 팀들은 어떻게 됐더라.”
우리가 속한 G조에서 우라와가 시드니를 5:0으로 대파했다.
“어유, 이게 무슨 일이야.”
장군멍군 하듯, 우라와가 시드니를 폭격하면서 득실차로 2위에 올라와 있었다.
“다음 경기가 우라와 원정인데. 잘해주기를 바라야겠지.”
일정상 우라와 원정까지 치른 다음, 그 주 주말에 K리그 개막전이 진행된다.
“2연속 원정이라서 선수들이 부담되겠는데.”
우라와 원정에 울산 원정.
확실히 쉽지 않겠다.
“그러고 보니 울산도 무난하게 이겼던데.”
울산은 홍콩클럽인 킷치를 상대로 원정에서 4:1 승리를 거두었다.
“전북도 이겼다는데. 대구는 졌던가. 아, 졌네.”
함께 ACL에 진출한 전북과 대구.
전북은 브리즈번을 홈에서 2:1로 제압했다. 반면, 대구는 가시와를 상대로 원정에서 2:3 석패를 당했다.
“그래도 4팀이 올라가서 3팀이 이겼으면 선방했지.”
리그에서는 경쟁해도 ACL 같은 무대에서 응원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적으로 만나면 사정없이 물어뜯겠지만.
“그래도 우리 팀이 제일 잘했네.”
괜히 다른 팀보다 못나 보이는 것도 문제였을 것이다. 그래도 첫 경기에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줘서 흡족했다.
“구단주로서 선물을 줘야겠지?”
나는 배포가 큰 구단주.
제대로 한턱 쏴야지.
【오피셜】지태훈 대표, 역사적 첫 승리를 한 선수들에게 1,000만 원 보너스 지급!
* * *
여러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겪고 있는 가운데, 나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행사가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김 비서 생일이 코앞이네.”
매년 2월 20일은 그녀의 탄생일이다. 사실 그녀의 생일은 매번 얼렁뚱땅 넘어가기 일수였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명색이 여자친구인데, 내가 대충 챙겨주면 안 된다.
“아, 근데 뭐가 좋을까?”
모태솔로인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긴 여자친구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고민으로 가득 차 있는데, 천지원 부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표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표정이 안 좋습니다.”
“네? 아, 그게 그러니까요.”
내 이야기를 들은 천지원 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 김 비서님의 생일이라고요?”
“네. 뭔가 제대로 준비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지 모르겠네요.”
“흐음. 좋을 때네요.”
“네?”
“아, 그게 아니고, 그런 거면 진심이 담긴 이벤트가 가장 좋죠.”
“진심이 담긴 이벤트?”
천지원은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주었다.
“김 비서님도 사는 수준이 있으니, 화려한 명품은 오히려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명품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흐음.”
“차라리 분위기 좋은 식당을 잡고, 시설 좋은 호텔을 잡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겁니다.”
“그걸로 충분할까요?”
“아마도요.”
“아마도라뇨.”
“제 조언이 무조건 맞는 건 아니니까요.”
“…….”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자 천지원은 머쓱한 표정을 드러냈다.
“김 비서님과 직접 상의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엥? 그래도 괜찮을까요?”
“지금까지 드러난 김 비서님 스타일이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같이 협의해서 진행하면 더 좋아하실 겁니다.”
직접 대화를 나눠?
잠깐 고민하는 사이, 마침 김 비서가 등장했다.
“태훈, 아니, 대표님? 뭐 하고 계세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천지원 부장이 눈치껏 먼저 빠졌다.
그녀와 둘만 남게 된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김 비서.”
“네?”
“곧 생일이잖아. 그래서 말인데 괜찮으면 그때 뭐할지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를 보고 나는 황급하게 말했다.
“아, 미안해. 이런 걸 묻는 게 좀 그렇지? 나도 이런 건 처음이라서…….”
“후후.”
횡설수설하는 나에게 바짝 다가온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태훈 씨 귀엽네요.”
“으응?”
“좋아요. 우리 같이 이야기 나눠봐요. 제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걸 맞춰주려고 그런 거죠?”
“어? 어! 물론이지!”
김 비서가 나를 보며 환한 얼굴을 드러냈다.
‘아름답다.’
그녀의 환한 미소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또 한 번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순간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태훈 씨?”
“크흠!”
“태훈 씨 지금 설렜구나?”
“응. 설렜어.”
“……!”
“나 말고 그런 얼굴, 남들한테 결코 보이게 하지마! 진짜 심장 아프니까!”
“…….”
김 비서가 살짝 물러났다. 그리고 곧 그녀도 고개를 획 돌렸다.
“뭐, 뭐야?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한동안 우리 사이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