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71화 (171/272)

171화

“대표님, 오 비서의 환심을 얻었습니다.”

강민수 사장의 보고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쉽게 넘어왔군요.”

“오 비서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한 인물입니다. 그 부분을 자극하면 충분히 구워삶을 수 있죠.”

“어쨌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리죠.”

“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지태완의 가장 큰 심복인 오 비서의 경계심을 무너뜨렸으니 이제 폭탄을 하나씩 심을 차례다.

“대표님.”

“아, 박 팀장님.”

강민수 사장이 떠나고 박준후 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태선 의원과 시간을 잡았습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요? 어디서 보자고 하나요?”

“여의도에 있는 당 사무소 근처에 한식당을 예약하겠다고 합니다. 저희는 그쪽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거리가 있으니 바로 이동하죠.”

“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박준후 팀장과 함께 지태선 의원을 만나러 여의도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박준후 팀장이 말했다.

“저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일을 마치시면 연락 주십시오.”

“아, 넵. 저… 그런데 식사는 어떻게 하시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다행이다.

아무리 일이라고 해도 나 혼자만 먹는 건 기분이 좋지 않았다.

* * *

도착한 식당에 들어서니 지태선 의원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만.”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는 환한 표정을 드러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요즘 국정은 좀 어떠십니까? 굉장한 중책을 맡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아아. 대통령님을 보좌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나. 설마 정식으로 나를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하실 줄은 몰랐네.”

이현승 정부 1주년이 다가오는 무렵. 대통령은 지태선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기존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던 인물이 과거 일으킨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진사퇴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며칠 안 되셨지요?”

“그렇지. 지난주 월요일에 정식으로 발령받았으니…… 이제 일주일이 조금 넘었지.”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저희 집안에 이렇게 정치적 인사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고맙네. 태훈이, 자네도 돌아가신 회장님 못지않게 정말 훌륭히 잘하고 있더만.”

“감사합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 우리는 음식과 술을 한 잔씩 하며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때 미국 쪽에서 그런 말을 했던 거야. 아무리 동맹관계라도, 우리도 할 말은 해야지. 안 그러나?”

“맞습니다. 우리가 무슨 그쪽 부하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대한민국 정부가 이렇게 미국에게 당당하게 할 말을 하면, 굉장히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네.”

“공화당 쪽에서 난리였죠?”

“특정 정당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네. 청와대 관계자로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까 말이야. 허나, 특정 정당이 아니어도 이를 곡해하는 시민들도 많아.”

“사대주의 때문에 그런 걸까요?”

“지나친 사대주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그간 미국에 가지고 있는 지나친 환상이 있어. 그게 우리의 자주권마저 위협한다면 어떻게 해야겠나?”

“흐음.”

“먼저 한잔하지.”

“아, 넵.”

우리는 술이 채워진 잔을 가볍게 부딪치고 이내 잔을 비웠다.

“내가 원래 이런 이야기들을 관계자 외에는 안 하는 편인데, 자네하고 만나면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구먼.”

“하하. 제가 그만큼 편하다는 거겠죠.”

“편하기도 하고, 유능하니까. 무엇보다 말이 잘 통하고 말이야.”

나는 슬슬 운을 띄울 차례가 왔다고 판단했다.

“의원님. 아니, 실장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의원이나 실장이나.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고. 편한대로 부르게.”

“아, 넵. 그럼 실장님. 요즘도 지태완이 계속 정부에 딴지를 건다고 들었습니다.”

“딴지라…… 아주 교묘하게 수작질하고 있지. 같은 지가(家)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야.”

지태완은 대표적인 반(反)정부 인물로 떠오르는 상태였다.

지금도 정부에서 어떤 정책이든 사업이든 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반박 내용이 대부분 맞는 내용이라서 청와대로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게다가 지태완을 지지하는 일반 대중들의 여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직 이 정부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차기 대선후보로 지태완이 거론된다는 게 너무 우습지 않나?”

“그 부분은 저도 좀 놀랐습니다.”

“그 녀석은 굉장히 정치적이야. 사업하지 말고 정치를 했어야 했어.”

지태선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은 지태완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오늘 그를 만나고자 했던 것도, 이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실장님. 제가 실장님을 좀 돕고 싶습니다.”

“응?”

나는 지태선에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사진 속에는 상당한 덩치를 지닌 사람들에게 호위받고 있는 어떤 남자의 사진이었다.

“혹시 명천파라고 아십니까?”

“명천파? 처음 듣네만.”

지태선은 아예 모르는 눈치였다.

“명천파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조직폭력단 사이에서 급성장한 조직입니다. 그 명천파를 이끄는 자가 사진 속에 있는 남자, 속칭 황 실장이라고 불리는 남자고요.”

“흐음.”

“그런데 이 남자의 배후에 지태완이 있다는 이야기가 돕니다.”

“……정말인가?”

놀란 지태선의 반응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최근 서울 드래곤즈 선수단 사고, 아십니까?”

“알지. 꽤 큰 사고라서 우리도 유감을 표했지.”

“그 사건의 유력한 주범으로 명천파의 황 실장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

지태선이 두 눈을 부릅떴다.

“황 실장의 명령을 받은 이명훈이라는 자가 차를 조작해서 사고를 일으켰죠.”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자네는 어떻게 이 일을 알고 있는 건가?”

“이명훈이란 자의 신병을 저희가 확보하고 있으니까요.”

“……!”

지태선은 손에 쥔 사진을 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왜 이 일을 나에게 말하는 거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해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진즉에 처리했겠죠.”

“설마…….”

“경찰과 검찰 모두 내부에 협조자가 있습니다. 그 두 곳 모두 믿을 수 없습니다.”

“허어.”

“원하신다면 이명훈의 신병을 넘겨드리죠.”

지태선은 나를 또렷하게 응시했다.

“나에게 원하는 게 있나?”

“저에게 가장 큰 아군 하나가 생긴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아군이라…… 자네도 어지간히 지태완이가 싫었던 모양이군.”

“피차일반이지 않습니까.”

내 말에 지태선이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곧 내 빈잔에 술을 가득 채워준 뒤, 잔을 내밀며 말했다.

“한잔하지.”

“좋습니다.”

술을 가볍게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우리는 서로 기분 좋은 얼굴로 쳐다봤다.

“자네에게 큰빚을 졌구만.”

나는 말없이 웃어보였다.

“언젠가 이 빚은 갚도록 하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나에게 연락하게.”

“그렇게 하지요.”

그날 우리는 늦은 밤까지 술을 기우며 기분 좋게 시간을 보냈다.

* * *

며칠 후, 나에게 기막힌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대표님. 정부가 움직였습니다.”

“그렇습니까?”

“명천파 본부가 정부에서 파견한 요원들과 충돌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거의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아니, 괴멸이라고요?”

“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정부에서 상당히 손을 쓴 모양입니다. 명천파가 증거를 치우는 과정에서 정부 요원들과 충돌이 일어났고요.”

“황 실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안타깝게도 도주했다고 합니다. 허나, 머지않은 시기에 붙잡힐 것 같습니다. 현재 정부에서 황 실장에 대한 조사가 끝났고, 출국 금지 명령까지 내려진 상태입니다.”

박준후 팀장의 보고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드러냈다.

지태선과 만난 이후, 나는 박준후 팀장에게 명천파 쪽을 주시하라고 명령을 내려둔 상태였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지태선 측에서 빠르게 움직여주었다.

아무래도 그쪽도 많이 급했던 모양이다.

어찌 됐든 나한테는 이득이다.

“이번에는 큰형이 타격 좀 받겠는데?”

* * *

쾅!

“그게 무슨 소리야!”

분노에 가득 찬 지태완의 목소리가 회장실을 크게 울렸다.

이 상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오 비서는 숨도 못 쉴 만큼 강한 압박을 겨우 버티고 있었다.

“명천파가 괴멸해? 황 실장은!”

“그게…… 연락이 끊겼습니다.”

“이런 개……!”

지태완은 책상에 있던 액자와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서 던졌다.

와장창-.

쩅그랑-.

오 비서는 당장이라도 숨이 멈출 것 같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당장! 당장 어떻게든 황 실장! 잡히지 않게 만들어! 알았어!?”

“히익! 네, 넵!”

“황 실장이 붙잡히면 너나 나 모두 끝이야. 시간이 없어! 빨리!”

“넵!”

후다닥 도망치듯 회장실 밖으로 나가는 오 비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태완은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하, X발.”

설마 막내 동생에게 크게 한 방 얻어맞을 줄이야.

“청와대를 이용하다니. 이건 예상 밖인데.”

분노로 들끓었던 지태완은 어느샌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안 되겠어. 정말 안 되겠어.”

그의 두 눈이 섬뜩할 정도로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 * *

“후, 끝났군.”

오늘 하루 업무도 끝났다.

“요즘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간단 말이야.”

벽에 걸린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배고프네.”

저녁도 거르고 업무를 봤다.

“오늘은 김 비서도 먼저 퇴근했고. 다른 직원들도 다 갔구만.”

정리하고 나오니 사무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평소라면 김 비서와 함께 퇴근했을 것이다.

김 비서는 아직 병실에 있는 김진철 이사 때문에 요즘 일찍 퇴근하고 있었다.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자야겠다.”

피로와 배고픔이 동시에 오니 몸이 무겁다.

김 비서가 없으니 대신 운전해줄 사람도 없다.

“어쩔 수 없나. 걸어가야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를 나와 번화가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 먹거리가 남아 있던가.”

며칠 전에 장을 보긴 했었는데, 얼마나 남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귀찮은데 그냥 포장해서 들어갈까.”

마침 눈앞에 순대국밥 집이 있었다.

“순대국밥. 좋지.”

회귀 전에는 썩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이다. 그런데 내가 이걸 좋아하게 된 계기는, 감옥에 있을 때 누군가 넣어준 사식으로 받아서 먹었을 때였다.

회귀 후에도 종종 순대국밥을 먹었다. 먹을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분도 들고.

“히야, 정말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때 먹었던 순대국밥 맛은 잊히지 않아.”

옛날 생각을 하면서 순대국밥 하나를 주문해서 포장했다.

“오우, 순대국밥 냄새가 진동하네.”

한 손에 대롱대롱 들고 가는 순대국밥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를 맡자 배고픔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번화가를 지나서 집 근처까지 도착한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휙 돌리는 순간, 어떤 복면을 쓴 남자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런 씨!”

깡!

야구방망이가 허공을 가르더니 이내 땅바닥을 내리찍었다.

손에 쥐고 있던 순대국밥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죽어!”

복면을 쓴 남자가 재차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나는 바닥을 굴러 공격을 피한 뒤, 남자의 정강이 쪽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퍽!

“윽!”

남자가 중심을 잃고 몸이 기울어졌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려 남자를 덮쳤다.

“크윽!”

남자는 손에 쥔 야구방망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내 밑에 깔렸다.

나는 남자의 멱살을 잡으며 외쳤다.

“당신 뭐야!”

“퉤!”

남자가 대답 대신 내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어우, 씨!”

더러운 침에 당한 내가 순간 허우적대자 남자가 그런 나를 밀쳐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재차 야구방망이를 쥐고 나를 후려치려고 했다.

“거기 누굽니까!”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쳇.”

나를 공격하려던 남자는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야,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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