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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169화 (169/272)

169화

이명훈이 쫓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나는 당혹스러웠다.

“이명훈이 잡히게 두어서는 안 돼.”

김진철 이사가 사고를 당한 이때, 이명훈을 도울 방법이 많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한 줄기의 빛이 내려왔다.

“이명훈의 신병은 우리에게 맡기시죠.”

태조건설의 이진호.

소식을 들은 그가 움직였다.

공교롭게도 그도 업무차 베트남에 출장을 와 있었던 상태였다.

안 그래도 자기 아들과 연관된 인물이었기에, 이진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정도가 지났을 때, 이진호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명훈의 신병은 무사히 확보했습니다.

다행이었다.

이진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안전 가옥에 이명훈을 두겠다고 제안했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진철 이사가 없는 상황에서 당분간 그를 맡아 줄 곳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런 사이, 놀랄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이사님이 깨어났습니다!”

“뭐라고요!?”

황급히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정말 김진철 이사가 깨어나 있었다.

덤프트럭에 치였던 김진철 이사.

다른 사람이었다면 죽었을 사고였지만, 기어코 김진철 이사는 의식을 회복했다.

가족과 병원 의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는 뒤늦게 도착한 나를 보고 반응했다.

“뭐야. 마치 죽은 사람 보는 것 같은 그 얼굴은.”

“이사님!”

나는 울먹이는 얼굴로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김진철 이사는 움찔했다가 이내 피식 웃으면서 내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괜찮다. 나 안 죽었다.”

“흑. 이사님! 진짜! 저 이사님 없으면 안 됩니다! 어흐흐흑!”

“거, 참 사내자식이 질질 짜기는!”

나중에 김 비서에게 듣기로는, 그날 김진철 이사는 누구보다 환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나는 깨어난 김진철 이사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말을 했다.

“강 사장이 우리 쪽으로 합류했고, 이명훈이 태조건설 쪽으로 넘어갔다?”

“네. 상황이 그렇게 됐네요.”

“뭐, 특별히 신경 쓸 상황은 아니군. 이명훈의 신병은 오히려 태조건설이 확보하고 있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태조건설이라면 지태완도 함부로 건들지 못할 테니까.”

김진철 이사도 충분히 상황을 납득했다.

“그건 그렇고 이후에 상황은 어떻게 진행할 거냐?”

“예?”

“이후 계획이 있을 것 아니냐.”

그는 나에게 이후 계획을 공유하기를 원했다.

나는 머릿속을 조금 정리한 뒤 대답했다.

“지태완을 안과 밖에서 흔들 겁니다.”

“방법은 있나?”

“강민수 사장의 말에 의하면, 지태완이 긴축정책을 진행하면서 상당한 잡음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 부분을 노릴까 합니다.”

“어지간한 여론 플레이로는 지태완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을 거다.”

“그렇겠죠. 그래서 방법을 하나 생각해뒀습니다.”

“어떤 방법이지?”

“내부에 폭탄을 심을 겁니다.”

“폭탄?”

의아해하는 표정을 드러내는 그를 보며 내가 씩 웃었다.

* * *

강민수 사장이 오 비서를 만났다.

영신전자 근처 고급 일식집에서 오 비서를 불러낸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렇게 보는 건 오랜만이군.”

“그렇네요.”

“회장님 옆에서 보좌는 잘하고 있나?”

“아, 예. 사장님께서도 그간 잘 지내셨지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단검을 하나씩 숨기고 있었다.

“사장님. 저를 이런 비싼 곳으로 불러낸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회장님 엄명이 있어서 제가 아무나 막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요.”

“아아. 별건 아니네. 그저 서로의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만든 자리니까.”

“오해라…… 정말 말만 들으면 없던 오해마저 생기겠군요.”

“그런가? 하하하.”

오 비서는 대화를 나누면서 강민수를 주의 깊게 살폈다.

강민수는 그런 오 비서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똑똑한 회장이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바로 오 비서지.’

오진운 비서팀장.

지태완이 회장이 된 이후, 비서팀장으로 올라온 인물이었다.

오랜 시간 지태완을 보좌해 온 성과를 인정받아서 박준후 팀장을 밀어내고 회장 비서단의 리더가 된 것이다.

오 비서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영신그룹에 입사할 때 상당히 우수한 스펙과 능력으로 지태완의 눈에 띄어 비서까지 됐으니까.

그렇게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보이는 것과 달리 회장의 뒤처리 역할로서 활동하기 바빴다.

회장이 사람들 몰래 벌인 짓들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가끔 스스로 회장의 비서가 맞나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

지태완은 그를 사실상 2인자로 치켜세웠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 비서가 그의 소시오패스적인 성격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강민수 사장이 그 부분까지 상세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태훈으로부터 들은 정보를 통해 대략적인 상황은 알고 있었다.

지태완을 내부에서 흔들기 위해선 오 비서를 구워삶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 역할로 강민수가 나선 것이다.

“내가 회장에게 오해를 산 것 같아서 말이야.”

“오해요?”

오 비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되물었다. 강민수도 그걸 알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했다.

“내가 회장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 모든 게 회장을 위한 행동이란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나는 과거에도 전대 회장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어. 그냥 이게 내 성격이야. 전대 회장도 그걸 알고 덤덤하게 받아주셨던 거고.”

“……그랬군요.”

“현 회장에게 내 성격을 이해해 달라고까지 바라지는 않아. 허나, 이런 점을 제대로 알고 있었으면 해서 말을 하는 거고.”

“근데 이 이야기를 왜 저한테 하시는 겁니까? 저보단 회장님에게 직접 이야기하시는 게 좋지 않습니까?”

“자네가 회장의 오른팔이지 않나? 자네를 거치지 않고 어떻게 바로 이야기하겠나.”

강민수의 아부성 멘트에 오 비서는 저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을 본 강민수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부 한 번에 좋아하긴.’

실실 웃고 있는 오 비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차라리 잘 됐어. 네가 쉽게 넘어와 줘야 나도 작업하기 편하니까.’

그는 손수 젓가락으로 회를 짚어 오 비서 앞에 빈 접시에 놓아주며 말했다.

“내가 십수 년 전에 자네를 처음 봤을 때, 자네는 성공할 줄 알았네.”

“…….”

“자네는 나를 잊으면 안 되네. 그때 자네를 뽑았던 심사위원이 바로 나였으니까 말이야.”

그렇다.

오 비서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올 때, 그를 뽑았던 인물이 바로 강민수였다.

오 비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잘 알고 있죠. 그래서 늘 강 사장님께 감사하고 있고요.”

“그래, 알아주면 고맙네. 먹게.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마음껏 먹게.”

“아, 네.”

오 비서가 접시에 놓인 회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오, 맛있네요.”

“입에 맞아서 다행이구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던 강민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일을 회장님께 잘 말씀드릴 수 있도록 부탁하네.”

“물론입니다. 걱정마세요.”

“그래. 그럼 자네만 믿겠네.”

열심히 먹고 있는 오 비서를 보며 강민수는 속으로 웃고 있었다.

* * *

“아빠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요.”

“다행이네.”

김진철 이사가 의식을 회복하면서 김 비서도 다시 출근했다.

“좀더 쉬어도 되는데.”

“안 돼요. 제가 너무 많이 자리를 비웠어요.”

김 비서가 돌아오면서 그간 막혔던 업무들이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김 비서님~ 비서님 없는 동안 대표님이 얼마나 외로워하셨는지 몰라요~”

“엇, 정말요?”

“그렇다니까요. 호호호.”

나에게 결제 서류를 올리러 온 정소영 부장이 김 비서를 보고 쓸데없는 말을 했다.

“크흠. 정 부장님. 많이 한가하십니까?”

“호호호. 아니요. 가보겠습니다, 대표님.”

할말만 하고 쏜살같이 사라져버린 정소영 부장이었다.

그후 잠깐이지만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저 없는 동안 많이 외로우셨어요?”

“그건 정소영 부장이…….”

은근한 김 비서의 물음에 나는 머뭇거렸다.

“저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김 비서가 내 품에 자연스럽게 안겨 왔다. 그런 그녀의 허리를 자연스럽게 잡았다.

묘한 분위기 속에 우리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다가 살며시 입을 맞추는 그때,

“대표님, 팀장님 대신 보고…… 앗, 죄송합니다.”

신진호 과장이 대표실에 들어왔다가 황급히 문을 닫고 나갔다.

“…….”

나와 김 비서는 멍하니 닫힌 문을 쳐다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쿡.”

“호호.”

우리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실수한 것 같은데.”

“그렇네요.”

“그래도 돌아와서 기뻐. 김 비서가 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태훈씨.”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보며 미소를 드러냈다.

* * *

우리가 태훈컵을 치르는 동안 비슷한 시기에 동아시안컵도 열렸다.

이 대회에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도 대표팀에 차출됐다.

그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정성진 선수가 마침내 교체로 출전하면서 생애 첫 A대표팀 신고식을 치릅니다!』

『지난 시즌 K리그 신인왕의 주인공이죠! 오늘 활약 기대해보겠습니다!』

팀의 측면 수비수를 맡는 정성진이었다.

작년에 FA컵 우승과 신인왕을 거머쥔 정성진은 생애 첫 A대표팀 발탁까지 이루었다.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야 해.’

정성진은 자신이 A대표팀에 발탁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박요한이 차출될 줄 알았다.

절정의 활약을 보였던 박요한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팬들과 관계자들이 꼽은 대표팀 후보였다.

그런데 박요한이 아닌 정성진이 뽑힌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대표팀에는 정성진만 있지 않았다.

“긴장하지 말고 뛰면 돼.”

“넵! 세진이 형!”

같은 소속팀인 오세진도 생애 첫 A대표팀으로 발탁됐다.

그는 장현우가 맡던 역할을 맡아서 수행했다.

그리고 호평을 받았다.

『오세진 선수가 또다시 전방으로 패스를 뿌려 줍니다!』

『이야, 오세진 선수 발끝이 오늘 상당히 매섭습니다!』

『측면에서 뛰어가던 정성진이 볼을 잡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듀오죠! 정성진 뛰어갑니다!』

오세진의 패스를 받은 정성진이 측면을 헤집었다.

마침 상대팀은, 이번 대회에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일본이었다.

그리고 우승을 놓고 벌어지는 대회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정성진 앞에 요시다가 있습니다! 이번 시즌 우라와 레즈에서 뛰고 있는 베테랑 선수인데요!』

수비형 미드필더인 요시다가 측면으로 뛰어 들어가는 정성진 앞을 막아섰다.

정성진은 패스를 주는 척하다가 드리블을 시도했다.

『신인의 패기를 보여 줍니다! 정성진 드리블 돌파!』

베테랑 선수를 제친 정성진이 상대 측면을 헤집고 깊게 들어갔다.

그렇게 만든 찬스.

『정성진, 크로스 올립니다!』

짧고 빠르게 올라간 크로스가 박스 안에 들어가 있던 동료의 머리로 정확하게 떨어졌다.

『김종우인데요! 헤디이이잉! 들어갑니다!』

『대한민국이 앞서가는 득점을 만들어냅니다!』

오늘 선발로 나온 김종우의 이마에 정확히 닿은 공이 궤적을 그리면서 그대로 일본의 골망을 흔들었다.

우와아아아!

멀리 일본까지 원정 온 대한민국의 붉은악마가 환호했다.

득점을 기록한 김종우는 카메라 앞에서 세리모니를 펼친 후, 뒤따라온 정성진을 보고 강하게 끌어안았다.

“크로스 좋았다, 성진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더 감사하지! 으하하!”

김종우는 이번에 처음으로 A대표팀에 뽑혔고, 이번 일본전에서 데뷔골까지 만들어 냈다.

정성진도 데뷔전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어시 축하한다.”

“고맙습니다.”

오세진도 어시스트를 기록한 정성진을 축하했다.

그날, 이 득점은 결승골이 되었고 대한민국은 동아시안컵 우승하며 최다 우승 기록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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