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병실에 눈을 감고 누워서 있는 김진철 이사의 모습을 보는 내 기분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김 비서는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말없이 안으며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녀에게 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녀가 정신적으로 회복될 때까지 무기한 휴식을 부여했다.
그사이에 나는 집무실에서 경찰로부터 CCTV 영상과 관련해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보고도 믿기지 않는데요. 달려오던 덤프트랙하고 부딪쳤는데, 죽지 않고 사셨네요. 이건 하늘이 도왔습니다.”
“운전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저희가 현장에서 발견했을 때 운전자는 즉사한 상태였습니다. 부검 결과 운전 도중에 심장이 정지된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럼 단순 사고였단 말입니까?”
“음,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만.”
나는 미간을 좁혔다.
이 사고가 겨우 단순 사고일까?
느낌이 싸했다.
내 촉은 이번 일이 결코 단순 사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순 사고가 아닐 겁니다. 그러니 좀 더 수사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대표님. 아무리 저희라도 무작정 수사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사고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수사하세요!”
“……!”
분노가 치민다.
김진철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분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런 꼴을 당했다.
분노한 내 모습을 보고 경찰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진정하시지요. 대표님.”
박준후 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저희 대표님께서도 지금 많이 예민하신 상황이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음, 알겠습니다.”
박준후는 경찰들을 돌려보낸 뒤,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표님. 많이 화가 나실 겁니다. 하지만 화를 드러내면 안 됩니다.”
“박 팀장님.”
“옛말에 군자는 그 위치가 중요하여,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면 아니하고, 본인의 감정보다 주위를 더욱 신경 쓰여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
“전대 회장님은 당신이 과거 강남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크게 분노했지만, 그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후우.”
나는 호흡을 골랐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박준후 팀장이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잘하셨습니다.”
그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앉으시죠.”
그 말에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서로 마주 보는 상황에서, 박준후는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내게 말했다.
“세상에 모든 일을 본인 생각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번 사건을 두고 대표님께서 지태완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증거가 있으십니까?”
“그건…….”
증거는 없다.
그저 촉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사업가들에게는 각자 특유의 촉이 존재합니다. 그 촉이 본인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론 스스로를 찌르는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촉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그럼 박 팀장님은 이번 일을 단순 사고사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
미간을 좁히는 나와 달리 박준후는 여전히 어떤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무표정에 가까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증거가 있다면, 이번 일의 결과는 달라질 겁니다.”
순간 내 머릿속이 번뜩였다.
“설마 무언가 알아내신 부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
“없다면 만들어 내면 그만입니다.”
“……!”
“지태완이 하는 방식이죠. 우리도 똑같이 해주면 됩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내 눈을 부릅뜨게 했다.
“공교롭게도 김 이사는 강민수 사장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봉변을 당했습니다.”
맞다.
김진철은 최근 영신식품의 강민수 사장과 접촉하고 있었다.
강민수를 우리 쪽으로 끌어오자는 김진철과 용준형의 의견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성과가 크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물밑 작업은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강민수 사장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어쩌면 우리가 강 사장과 접촉하고 있는 일을 지태완이 알아챘을지도 모르죠.”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장이라도 지태완을 찾아가 쳐죽이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이 무너지고 만다.
“강민수 사장을 만나십 시오. 그리고 그를 우리 쪽으로 끌고 와야 합니다.”
“……!”
강민수 사장을 끌고 오라고?
“지금 당장 말입니까?”
“네. 지금이 아니면 강민수 사장을 데려올 기회는 없을 겁니다.”
* * *
태훈컵 마지막 날의 경기가 진행됐다.
울산과 부산이 먼저 경기를 치렀고, 이 경기에서 울산이 부산을 4:1로 대파했다.
울산이 1경기를 더 치른 상태에서, 2승 1패 승점 6점으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울산의 컵 우승 확률은 높지 않았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전북과의 경기에서 최소 무승부만 거두어도 태훈컵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현재 2경기 모두 승리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무승부만 거두어도 승점 7점이 되기 때문이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무승부만 거두어도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인데요. 반면, 전북의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그렇죠. 전북이 앞선 2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했는데요. 현재 전북은 부산에게 득실차로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AFC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의 자존심이 바닥으로 뚝 떨어진 상태죠.』
『아무리 친선 컵대회라고 해도 전북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전북은 현재 승점 1점을 획득했고, 2골을 넣고 3골을 실점했습니다. 부산은 3경기 모두 치렀지만, 승점 1점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1골을 넣고 8골을 실점했습니다.』
『어쨌든 전북은 오늘 경기에서 고양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체면이 살거든요.』
아무리 친선대회라고 해도, 두 팀이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서로 질 수 없는 두 팀의 경기가 시작됐다.
박빙이 될 것 같은 두 팀의 경기는 예상과 달리 고양의 완벽한 우세 속에서 진행됐다.
『자, 호프만인데요! 이적하자마자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 호프만이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립니다!』
『이번에는 사무엘인데요! 사무에에엘!』
『들어갑니다! 고양이 선제골을 만듭니다!』
전반 14분 만에 나온 사무엘의 헤딩 선제골. 이 골은 균형을 무너뜨리는 기점이 되었다.
『이번에도 고양이 공격합니다! 박형우인데요! 지난 시즌 내내 전북을 위협했던 박형우가 달립니다!』
『아~ 전북 위험하죠!』
『박형우가 짧게 내줍니다! 돌아들어가는 박요한인데요! 박요한 때립니다!』
『오오오! 들어갔어요! 빡요한이에요!』
전북의 페널티박스 외곽에서 때린 박요한의 슈팅이 혼잡했던 양팀 선수들을 절묘하게 뚫고 지나가면서 그대로 골망까지 흔들었다.
『순식간에 2골을 실점하는 전북입니다!』
『아, 이거 전북에게는 너무나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전북도 저력이 있는 팀이기는 한데, 지금 보세요. 기본적인 볼 소유권도 확보하지 못하고, 패스도 엉성하고, 제가 알고 있는 그 전북이 맞나 의심이 드는데요!』
박하윤 해설의 말대로 오늘 전북은 상당히 엉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북이 빌드업할 때 보면, 산드루 선수나 황진용 선수 같은 볼키핑이 좋으면서도 플레이메이커 역할할 수 있는 선수들이 제몫을 해줄 때 폭발적인 빌드업이 나오거든요? 근데 이번 대회에서 황진용 선수는 부상으로 빠졌죠. 그리고 산드루 선수는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폼이 제대로 안 나오고 있는데, 이번 대회에서도 폼이 안 좋네요.』
화면에는 전북의 박정혁 감독이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박정혁 감독도 무언가 대비책을 보여야 할 텐데요.』
이번 대회를 통해서 박정혁 감독이 욕을 많이 먹고 있었다.
지난 시즌에 전북이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기는 했지만, 박정혁 감독이 지닌 고질적인 문제로 비판하는 팬들이 있었다.
달라지지 않은 전술과 매번 똑같은 선발 라인업.
이 두 가지가 박정혁 감독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특히 로테이션이 없는 부분이 문제였다. 선수들이 부상이나 징계로 결장하지 않은 이상 로테이션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에서 선수들의 불만도 상당히 많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퍼지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었다.
“나라면 산드루를 팔아버리고 황진용을 기용하거나 아니면 둘 다 팔고 그 돈으로 오세진을 데려오겠다.”
집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이태수가 이런저런 필기를 하며 혼잣말을 했다.
“고양도 딱히 전술이 좋은 팀은 아니야. 리그 수준에 비해 좋은 선수가 즐비해서 그렇지. 예전처럼 전북 천하는 기대할 수 없어. 박정혁 감독도 곧 잘려 나가겠군.”
이태수는 냉정하게 결론을 내렸다.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고 본격적으로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특히 날카로운 분석력은 최고의 장점으로 꼽혔다.
“그나저나 박요한이 기대되는걸. 여전히 제 몫을 해주고 있어. 고양은 저 선수를 잘 키워야 할 거야.”
훗날 전 세계를 휩쓸 위대한 감독 이태수는, 박요한의 미래를 기대했다.
* * *
고양이 전북을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 있을 무렵, 나는 강민수 사장을 만났다.
“지태훈 대표님.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이사 소식은 들었습니다.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강민수 사장은 참담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 표정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오래전부터 아버지의 심복으로 활동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 내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강민수 사장님. 저희와 함께하시죠.”
내 말에 강민수가 미간을 좁혔다.
“대표님. 제가 지태완 회장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누구의 편을 들 생각도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내 정치에 관심 없다는 것을요.”
“그렇다면 왜 저에게…….”
“지태완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
순간 강민수가 의아한 눈빛을 드러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이번에 김 이사가 겪은 사고. 그게 그냥 단순한 사고로 보이십니까?”
내 말에 강민수 사장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설마 배후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건 너무 비약이….”
“전대 회장님이 쓰러져서 병원에 있는 동안, 회장님을 습격한 자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리고 좀 더 과거로 가면, 박종수 이사 사망 사건까지. 그 모든 일에 지태완이 배후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강민수가 벌컥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지태훈 대표!”
“사장님께서 제 말을 믿든 말든, 저는 진실만을 말했을 뿐입니다.”
“…….”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 순간에도 엄한 사람들이 지태완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거죠. 그 안에는 강민수 사장님, 당신도 포함되어 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