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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166화 (166/272)

166화

“여, 이게 누구야~ 호박 아니야?”

“…….”

두 번째 경기에서 나온 박하윤 해설의 호박 발언으로, 박형우와 호프만은 졸지에 호박이 되었다.

“호박이 무슨 뜻이야?”

한국어가 낯선 필립 호프만은 처음에 호박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사무엘과 김지우가 호박 뜻을 알려주자 필립은 머쓱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보고 ‘der Kürbis’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독일어로 호박을 ‘der Kürbis’라고 해.”

난감해하는 그에게 박형우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필립. 호박이 펌킨만 있는 게 아니야.”

“음?”

“보석 중에 우리말로 ‘호박’이라 표현되는 보석이 있어. 우리가 보석처럼 잘하면 돼.”

“……!”

생각지도 못한 박형우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김지우가 그에게 팔을 올리고 해드락을 걸면서 말했다.

“이야, 형우. 너 이 자식, 똑똑하구나?”

“후후.”

“호박이라고 해서 나는 그 먹는 호박만 생각했는데, 보석을 떠올리네.”

김지우에게서 벗어난 박형우가 필립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앞으로도 잘해보자.”

“응.”

필립도 주먹을 쥐고 박형우와 가볍게 부딪쳤다.

웃는 얼굴을 드러내는 두 선수의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내가 회귀하지 않고 교도소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으로 끝났다면?

회귀했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전혀 다른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결과물들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요.”

“불편하십니까?”

“아니요. 오히려 설레는걸요.”

“설렌다니…….”

태조건설 이진호 회장.

처음으로 그와 단둘이 만났다. 테이블에는 고급 양주와 다양한 안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단둘이 보자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사실 이 자리는 이진호 회장이 먼저 요청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언젠가 그와 이런 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은 있었지만, 그게 지금이 될 줄이야.

“술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아, 좋아합니다.”

그가 빈 잔에 술을 먼저 따라주었다. 술을 받은 나도 바로 상대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는 말없이 노란색 빛깔로 가득 채워진 잔을 손에 쥐고 내 앞에 내밀었다.

설마 스트레이트로 마시자는 건가?

스트레이트로 달리면 내일 일은 못 할지도 모르는데.

조금 고민이 됐지만, 나는 살짝 웃으며 잔을 쥐고 이진호의 잔과 부딪쳤다.

가볍게 술잔을 부딪친 뒤, 스트레이트로 술을 쭉 들이켰다.

작은 글라스 잔에 들어간 술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니, 마치 불에 탄 듯 활활 타올랐다.

“크으.”

절로 탄성이 나온다.

그렇게 스트레이트로 마신 다음 잔을 내려놓자, 이진호가 말했다.

“오늘 보자고 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죠?”

“아, 예.”

“아들 때문입니다.”

“아드님이라면…… 이태수 선수?”

갑자기 그가 내게 고개 숙였다.

“고맙습니다. 아들을 살려주셔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고 이후, 아들이 자살을 시도했었습니다. 다행히 미수로 그치기는 했는데, 대표님께서 석 회장님과 이야기해서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넵.”

이태수는 대한축구협회의 지원을 받아 지도자 과정을 밟는다.

지도자 자격증을 확보하면 유소년 코치부터 시작하게 된다.

아무리 이진호가 이태수와의 관계가 불편하다고 한들, 결국 그도 아버지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저희 아들을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건…….”

그건 당신 아들이 미래에 엄청나게 대단한 인물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할 수는 없었다.

“동정입니까? 아니면 연민입니까?”

“그런 걸로 사람을 돕기에는, 저희의 인연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

“사실…….”

말을 하려다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안 되겠네요. 한잔 더 드시죠.”

나는 이진호의 빈잔에 양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이진호도 내 잔에 술을 채웠다.

그렇게 또 한 번 스트레이트로 양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처음보다 타오름이 덜했다.

“후우.”

“……?”

“지금 제가 회장님께 할 말이, 어떤 결과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쪽을 불편하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어려우면 굳이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요.”

사실 이진호 회장을 만나면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간 여러 가지 이유로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오늘 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이태수가 휩쓸린 사고에, 저희 큰형, 지태완이 배후로 있습니다.”

쾅.

“뭐라고요!”

이진호가 저도 모르게 테이블을 강하게 치며 외쳤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지태완은 장기적인 계획에서 위협이 될 저를 제거하기 위해, 저를 포함해 제 주변을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

“회장님의 아드님도, 불행히도 저와 엮인 이유 하나로, 그런 피해를 입은 거죠.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숙였다.

어떤 질책이 날아오더라도 달게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용했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이진호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차갑게 얘기했다.

“지금 저에게 한 말, 한 치의 거짓이 없다고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상대가 교묘하게 피해 나가지만, 그가 이태수 사고에 엮어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저희 쪽에서 영신그룹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해야겠군요.”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그저 단순한 법적 대응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회장님. 분노하신 것은 알겠지만, 법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이미 지태완이 손을 많이 써놓은 상태입니다.”

“그럼 나보고 가만히 있으란 말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두 눈을 부릅뜬 상태에서 목소리에 강하게 힘을 실었다.

“영신그룹. 무너뜨릴 예정입니다.”

“……!”

* * *

영신전자 회장실.

“지금 뭐라고 했나?”

지태완이 차갑게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살기 가득한 모습을 하는 회장 앞에 서 있는 오 비서는 기겁했다.

오금이 저려오는 것을 간신히 견뎌낸 그가 힘겹게 말했다.

“태조건설에서 눈치챈 것 같습니다.”

“…….”

잠깐이지만 정적이 흘렀다.

“그래서?”

“예?”

“그래서 뭐?”

대수롭지 않은 지태완의 대꾸에 오 비서가 당혹스러웠다.

“이진호 회장이 저희 쪽을 공격하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쪽에서 움직인다고 해도 무슨 방법이 있겠나?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

지태완은 정말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던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그런 회장의 모습이 소름 끼치게 다가오는 오 비서였다.

“오 비서. 한가한가?”

“예? 아, 아닙니다.”

“그럼 나가서 일봐.”

“예.”

도망치듯 회장실에서 나가는 오 비서를 본 지태완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서랍을 열어 스마트폰 하나를 꺼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회장님.

“그래, 황 실장. 일은 어떻게 됐나?”

-쥐새끼가 베트남으로 빠져나간 것은 확인됐습니다. 애들 풀었고, 곧 소식이 올 겁니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아. 무슨 말인지는 황 실장이 잘 알거라 믿어.”

-실망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래.”

전화를 끝낸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지태훈. 정말 끝까지 거슬리게 하는군.’

그때, 회장실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회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신텔레콤 사장 민제국.

그가 지태완을 찾아왔다.

눈치가 빠른 그는 분위기가 좋지 않은 지태완을 보고 눈치를 살폈다.

“다음에 올까요?”

“아니. 괜찮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강민수 사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강 사장?”

영신식품 사장을 맡는 강민수는, 전대 회장의 대표적인 심복이었다.

그는 과거 김진철 이사 못지않은 충성심으로 유명했다.

능력도 뛰어나서 말단 직원에서 사장까지 올라온 케이스이기도 했다.

인품도 좋아서 사내에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태완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대표적인 반(反)지태완파였으니까.

회장이 버젓이 살아있던 시절, 마치 왕위를 찬탈하듯 회장직을 가져가 버린 지태완에 대해 천륜을 저버린 배은망덕한 인간이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지태완은 회장에 오르면 제일 먼저 처단할 인물로 선정했지만, 막상 회장이 된 이후 사내가 혼란하게 바뀌면서 함부로 강민수를 쳐낼 상황이 아니었다.

강민수 사장을 쳐내는 순간, 안 그래도 반발이 심한 반(反)지태완파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강민수 사장이 최근 지태훈 측과 접촉하는 모양입니다.”

“…….”

“지태훈과 직접적인 접촉은 아니지만, 최근 김진철과 수시로 접촉한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강 사장이 지태훈과 협력할 생각일까요?”

“자세한 건 알지 못합니다. 강민수 사장이 회장님을 비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태훈을 신뢰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강민수는 기본적으로 중립을 지키려던 인물이었다. 복잡한 정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했다.

지태완을 비난하는 것도, 인간적 도리를 지키지 못한 지태완을 비난하는 것일뿐, 이것을 사내 정치로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강 사장 쪽을 주시하세요. 김진철 때문이라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강민수가 떠나고, 지태완이 다시 황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황 실장. 처리해줘야 할 사람이 있어.”

* * *

태훈컵도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회는 호평일색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일각에서 이 대회가 계속 진행되기를 바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일이 술술 풀렸다.

향후 그려나갈 미래가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가운데, 그런 빛나는 미래를 순식간에 암울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네?”

“기, 김진철 이사님이! 김 이사님이!”

“……!”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나는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수술실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김 비서와 그녀의 가족을 볼 수 있었다.

“유리야! 이게 무슨 일이야!”

“태훈 씨. 흑흑. 아빠가. 어흑흑. 우리 아빠가. 흑흑.”

김 비서는 내 품에 안겨 연신 눈물을 흘렸다.

수술실이 열리고 의사가 나왔다.

“선생님! 어떻게 된 겁니까?”

“교통사고가 크게 났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겁니다만, 환자분께서는 거의 기적적으로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당분간 중환자실에서 회복해야 하지만요.”

“이럴 수가.”

괴물 같은 김진철 이사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이 믿겨 지지 않았다.

잠시 후, 수술을 마친 김진철 이사가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처투성이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이동하는 그를 보니 충격은 더 컸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설마 이번에도 너냐?

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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