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우리가 속한 G조는 최악의 조로 탄생했다.
G조 : 우라와 레즈, 고양 유나이티드, 시드니FC, FC허베이
일본 챔피언과 K리그 FA컵 챔피언 그리고 상당한 원정거리를 자랑하는 호주 팀과 지난 시즌 2위로 준우승한 중국 팀까지.
아마 올해 치러지는 동아시아 조별리그 중에서 가장 죽음의 조로 평가받을 것이다.
“뭔가 잘못됐어. 음. 아무리 봐도 뭔가 잘못된 거야.”
“꿈이겠지?”
“첫 도전이 설마 조별리그 탈락인가.”
사무실에서 함께 지켜보던 직원들도 혼란한 표정을 드러내며 웅성거렸다.
“이런 조에서 1위로 통과해야 한다니. 너무 가혹하잖아!”
“조, 조 2위에게도 기회는 있어!”
“이런 조에서 2위 하면 떨어진다고!”
최악의 조가 만들어졌다면, 반대로 매우 달달한 꿀조도 있는 법이다.
문제는 그 엄청난 꿀조가 우리 다음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H조 발표합니다!”
H조 : 울산 모터스, FC킷치, 유나이티드FC, 라이언FC
“이게 뭐야!”
“아니! 너무하잖아!”
홍콩 클럽인 킷치, 필리핀 리그 소속 유나이티드FC, 싱가포르 소속 라이언FC.
상대적으로 토너먼트 진출도 장담하기 어려운 팀들이 모두 모여 있는 이 꿀조가 울산 앞에 차려졌다.
누가 봐도 아주 무난하게 울산이 1위로 올라갈 수 있는 조였다.
“개부럽다.”
“진짜 너무 부럽다.”
최악의 조를 받아든 우리와 달리 저렇게 맛있는 꿀조를 먹은 울산이 너무 부러웠다.
아마 울산은 지금 환호하고 있겠지?
이후 상황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선수들도 조별리그 편성을 보고 반응이 엇갈렸다.
“좀 심한데.”
“이거 우리가 1위 할 수 있나?”
“이 정도면 매 경기가 결승전인데.”
“호주까지 또 언제 가냐.”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의욕을 불태우는 이들도 있었다.
“잘 됐다. 처음 나가는 대회인데, 우리가 1위 하면 다들 주목할 거 아냐?”
“다 이겨 버리자고!”
“맞아! 우리가 뭐 꿀릴 게 있냐?”
이런 상황에서 곽찬구 감독이 나를 찾아왔다.
“대표님. 조편성 보셨죠?”
“네, 아주 잘 봤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썩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누가 보더라도 말이죠.”
“그렇죠.”
“그래도 해볼 만합니다.”
곽찬구 감독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우라와 레즈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시드니는 전력이 좋지 않고, 허베이는 최근 내부 사정으로 소란스럽다고 합니다. 선수들도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고요. 그리고 시드니나 허베이 모두 한국 팀 상대로 전적이 썩 좋지도 않고요.”
“흐음.”
“아마 저희와 우라와 레즈가 조 1위를 놓고 경쟁할 가능성이 큽니다.”
“작년에 우라와 레즈 경기를 보니까 그렇게 썩 잘하지는 못하더라고요.”
“홈에서 극강의 실력을 보여주는 팀입니다. 토너먼트에서 만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군요.”
“어쨌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나 선수들 모두 자신 있으니까요.”
“네,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 * *
태훈컵은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었다. 대회가 진행하는 동안, 나는 신성한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표님! 작품 오픈했습니다!
“오!”
기다렸던 작품이 오픈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바로 초콜릿페이지에 들어가서 반응을 살폈다.
“제목이…… 이거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겠습니다.>
일전에 봤던 축구공 작가가 우리팀을 소재로 집필한 축구 소설이었다.
마침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어서 초콜릿페이지 메인 배너에도 올라와 있었다.
“오, 축구공 작가 댓글도 있네.”
축구공 : 안녕하세요. 축구공입니다! 이번에도 축구 작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최축> 많이 사랑해주시구요. 도움을 주신 고양유나이티드 관계자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222 댓글 21
나는 바로 좋아요를 눌러준 다음, 댓글도 남겼다.
TH Ji: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 지태훈입니다. 축구공 작가님 작품 대박 기원합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 저희 고양 유나이티드가 나옵니다!
댓글을 남기자마자 축구공 작가가 바로 대댓글을 남겨주었다.
축구공 : 앗! 대표님! 이렇게 직접 댓글도 남겨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ㅠㅠ! 열심히 쓸게요!
이미 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상태여서 독자들도 바로바로 댓글을 남겼다.
나혼자만나노마신 : 와! 지태훈 대표님이다! 진짜 대표님이에요?
축구공은축구만써라: 와!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오시다니!
호프만이호프만달래 : 와, 찐이다! 반가워요!
대부분 놀라워하거나 좋아해줬다.
그런데 좋은 댓글만 있지 않았다.
“어라? 이게 뭐야?”
축알못저격수: 작가님이 축구를 잘 모르시네요. 이런 작가가 무슨 축구 소설을 쓴다고 ㅉㅉ 축구를 게임으로 배우신 듯.
오탈자헌터: 오탈자 ㅈㄴ 많네. 하차한다.
소설비평가: 지난번 작품은 재미있게 봤는데, 이번 건 노잼이네요. 하차합니다.
소설계고든램지: 이딴 걸 글이라고 썼냐! 갖다 버려라!
댓글을 보던 나는 미간을 좁혔다.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서 해당 내용들을 확인해 봤다.
“잘 썼는데…… 고증도 잘됐고, 재미도 있고. 뭐가 문제지?”
오탈자까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고증이나 재미가 없지 않았다.
혹시나 작가가 상처 받았을까 걱정돼서 연락했다.
-엇! 대표님!
“작가님, 잘 계시죠? 댓글을 보니까 막 나쁜 댓글들이 보여서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옛날에 많이 속상했는데 지금은 면역이 돼서요.
“이런 댓글들이 많이 달리나요?”
-네, 그리고 이 정도면 약과에요. 다른 인기 작품 보면 저보다 심하게 달리는 작품도 많아요.
“그, 그렇군요.”
-아! 유리구슬 작가님 작품 댓글만 봐도… 어휴, 저는 후덜덜해요. 거기는 심지어 글로벌 서비스 되고 있어서 외국인도 와서 욕하더라고요.
“허어.”
축구공 작가 덕분에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작가들이 이런 일을 자주 겪는구나.
하긴, 인기 있는 축구 선수들도 대중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는다.
잘할 때는 그렇게 칭찬받다가도 조금만 못하면 온갖 욕을 다 먹는 경우를 자주 봤다.
아마 그것과 같은 상황이겠지.
“축구 선수들도 악플과 비난 때문에 상담받는 경우가 있는데, 작가님들도 그러신가요?”
-오, 축구 선수도 그런가요? 저희도 뭐 주변에 정신과 상담받는 분들 많아요. 없는 분 찾기가 더 힘들어요.
“심각하네요.”
나는 축구공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외부 공격에 대응해야 하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힘내시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
-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뒤, 나는 곽찬구 감독을 찾아갔다.
“감독님.”
“오, 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상담할 부분이 있어서요. 우리팀 선수들 중에 악플이나 비난으로 힘들어하는 선수들이 있습니까?”
“네? 음, 딱히 없는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나는 곽찬구 감독에게 작가와 통화하면서 느꼈던 부분들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곽찬구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고민할 부분이기도 하죠.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구단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흐음. 외국 사례를 좀 살펴봐야 하는데, 어떤 곳은 정신과 의사를 고용해서 정기적으로 선수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관리한다고 하더군요.”
“오, 그렇군요.”
우리도 정신과 의사를 고용할까?
돈이 없는 건 아니니까, 한다면 할 수 있다.
“그래도 대표님께서 그런 생각을 해주시니 너무 감사하네요.”
“예?”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방치했지.”
“…….”
“작년에 종호가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다행히 잘 해결됐지만, 그 과정을 홀로 견뎌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거든요.”
“그렇군요.”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정신적으로 단단해질 수 있겠죠. 그러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게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고요.”
아무래도 선수들 멘탈 케어 부분에서 진지하게 고려를 해봐야겠다.
사업적인 부분에서 고려해도, 앞으로 선수들이 받을 부담은 상당할 것이다.
팀이 인기가 많아지고 주목을 받게 되면 그만큼 많은 말들이 오고 가는 것은 사실이니까.
만약 선수들이 받는 부담이 커진다면, 이것은 사업적으로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누가 봐도 다 안다.
그렇다면 그 리스크를 많이 줄일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득이 될 것이다.
“한번 진행해 보죠.”
“잘 부탁드립니다.”
* * *
태훈컵 두 번째 경기가 진행했다.
고양이 부산과 맞붙는 상황에서 먼저 울산과 전북이 경기를 치렀다.
『누가 봐도 대단한 명승부가 펼쳐지고 있는 두 팀의 대결입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스코어는 2:2 입니다!』
이번 태훈컵은 친선매치이다 보니, 교체 숫자에 제한이 없었다. 전반전에는 양 팀 모두 비주전 선수들이 대거 나왔다면, 후반에는 주전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비주전 선수들이 나온 전반전은 특별한 내용이 없었던 반면, 주전이 모두 나온 후반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후반전에 양팀 통틀어 4골이 터져 나오는 각축전을 벌인 가운데, 울산은 제레미가 홀로 2골을 기록하며 팀 데뷔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난 고양과의 경기에서 보여 줬던 것과 달리, 오늘 제레미 선수는 우리가 알던 그 제레미네요!』
중계진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제레미가 기어코 승부의 방점을 찍었다.
『사실상 마지막 코너킥 상황인데요. 울산이 코너킥을 얻습니다!』
『자, 올라가는데요! 제레미 앞으로 떨어집니다! 제레미이이이! 고오오오올!』
『이야아아! 대단하네요! 해트트릭입니다!』
제레미는 K리그의 강호 전북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그렇게 울산은 제레미의 환상적인 플레이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후 치러진 고양과 부산의 대결.
여기도 만만치 않은 내용으로 경기가 펼쳐졌다.
『부산이 먼저 선제골을 만들어 냅니다! 박태훈 선수의 기가 막힌 마무리였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전반전 이른 시간에 부산에게 실점한 고양 유나이티드.
하지만 고양 유나이티드에게 2번의 실수는 없었다.
『호프만이 전방으로 길게 패스합니다! 정말 자로 잰 듯한! 아니! 대지를 가르는 패스가 나왔습니다!』
『박형우죠! 지난번 울산을 위협했던 이 플레이죠!』
『박형우 달리는데요! 박형우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실점 이후 순식간에 동점골을 만드는 고양 유나이티드였다.
그리고 이 경기를 통해서, 호프만과 박형우의 환상적인 호흡을 볼 수 있었다.
『또 들어갑니다! 이번에도 필립 호프만의 어시스트에 이은 박형우의 마무리입니다!』
이 경기에서 박형우와 필립 호프만은 각각 3골과 3도움을 기록했다.
모두 비슷한 상황에서 득점까지 만들어졌다.
이를 본 박하윤 해설이 감탄하며 말했다.
『대단하네요. 필립 호프만이 패스하면, 박형우가 마무리. 과거 토트넘에서 활약했던 그 듀오의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고양은, 음, 호프만과 박형우, 그래, ‘호박 라인!’ 호박 라인이 대단하네요!』
『푸훕, 뭐, 뭐라고요? 호박 라인이요?』
『좋지 않습니까? 호프만의 ‘호’와 박형우의 ‘박’을 따서 ‘호박’. 뭔가 K시리즈에 어울리는 국산품 느낌으로다가. 예?』
『아하하! 네, 호박 라인. 좋네요.』
그렇게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호박 라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해설자님. 아까 토트넘 듀오가 떠오른다고 했는데, 왜 그 듀오 이름을 말하지 않으시죠?』
『여기에는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날 두 팀의 경기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대승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