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60화 (160/272)

160화

매번 이적 시장이 열릴 때마다 클럽들은 한해 농사를 짓기 위한 준비로 여념이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프로 클럽의 입장에서 매 시즌 생존해야 했고, 더불어 더 나은 성적을 위해서라도 이적 시장 활용은 중요했다.

그런데 이번 이적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차기 시즌에는 처음으로 출전하는 AFC 챔피언스리그를 준비해야 했고, 다음 시즌부터 판이 더욱 커지는 K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돈 있는 클럽들은 시즌이 끝나기 전부터 물밑에서부터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도 입수한 바가 있다.

이에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꼭 부탁드립니다. 다가올 시즌에는 더블 스쿼드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있는 힘껏 해보겠습니다.”

곽찬구 감독이 요청한 영입 요청리스트를 손에 꼭 쥐고 있는 나는, 스페인 세비야로 향했다.

세비야에 연고지를 둔 레알 베티스 단장과 만난 나는 한석원의 완전 영입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한석원 선수를 우리 팀으로 완전 영입하고 싶습니다. 계약서대로 진행하시죠.”

이미 한석원과 시즌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우리 팀 생활에 만족감을 표했고, 완전 이적 의사를 드러냈다.

지난 시즌에 비록 주전까지는 아니어도 교체로 나와서 쏠쏠한 활약들을 보여줬던 한석원은 다가올 시즌 구성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였다.

레알 베티스 단장 호드리고는 조금 고민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최근 우리 팀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말이죠. 강등권 경쟁을 하고 있는데, 선수 한 명이 아쉽습니다.”

“그럼 돈을 더 드리죠.”

“네?”

“얼마면 됩니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돈’이었다.

“완전 이적료로 처음에 400만 유로를 원했죠? 100만 유로 더 드리죠.”

“……!”

K리그에서 이 정도 액수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유럽 리그에서는 그리 많은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레알 베티스 입장에서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기도 했다.

한석원을 판매하고 얻은 수익과 가진 돈을 활용해서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할 수도 있었으니까.

호드리고 단장은 곧 환한 미소를 드러내더니 내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미스터 한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거래 성사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석원의 완전 영입은 아주 빠르고 쉽게 진행됐다.

이어서 나는 독일 도르트문트로 향했다.

도르트문트 단장 요르겐과 담판을 짓기 위해 만났다.

“어서 오십시오. 먼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 그것보다 바로 본론으로 이야기하시죠.”

“좋습니다. 이미 저희가 메일을 통해 문의 드렸지만, 저희는 장현우 선수를 원합니다.”

선수 이적은 계약기간이 많이 남았을 경우, 구단과 구단의 합의가 먼저 이루어진다. 이후 개인 합의가 진행되는 편이다.

장현우의 계약기간이 적지 않게 남은 입장에서, 도르트문트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영입 오퍼를 넣고 있었다.

“이미 선수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희는 조건만 맞으면 장현우 선수를 그쪽으로 보낼 의향이 있습니다.”

“오, 그거 무척 좋은 이야기이군요.”

“한데, 그쪽에서 저희의 조건을 들어줄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어디 한 번 들어보고 싶군요.”

“저희가 원하는 조건은 이렇습니다. 선택지는 총 2가지입니다.”

“……?”

나는 손가락 두 개를 펴고 말했다.

“첫 번째, 장현우 선수를 2,500만 유로에 영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요르겐 단장은 내 조건을 듣고 황당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럴 만도 했다.

도르트문트는 가성비 있게 유망주를 데려와서 비싼 값에 내다 파는 팀이었다.

그들이 장현우의 실력을 알아보고 영입을 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유럽 무대에서 검증되지 않은 선수에게 무리하게 이적료를 들이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페이크라는 거지.’

원래 목적은 두 번째 조건이다.

“제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아직 두 번째 조건이 남아 있습니다.”

“…….”

“두 번째 조건은 장현우 선수에 저희가 5,500만 유로를 추가로 얹혀서, 그쪽 미드필더 필립 호프만을 넘겨주는 겁니다.”

“이런 미친!”

요르겐 단장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러다가 금방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나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이 사람이 이토록 놀란 이유.

그건 바로 필립 호프만 때문이다.

현재 도르트문트를 이끄는 23세의 젊고 어린 미드필더였다.

중앙과 측면,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모든 미드필더 자리에서 뛸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였다.

지난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어린 나이에 대표팀으로 뽑혀 출전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 선수를 달라고 하니, 도르트문트가 놀랄 만도 했다.

“금액도 충분히 맞다 봅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필립은 저희 팀에서 아주 중요한 선수입니다. 지금 챔피언스리그 경쟁에서도 무척 중요한데…….”

“필립 호프만의 빈자리는 장현우 선수가 충분히 채워줄 겁니다. 그리고 장현우 선수가 부족하다면 저희가 추가로 드리는 돈으로 선수를 영입해서 써도 되고요. 충분히 괜찮은 조건이라고 보는데요?”

“하!”

요르겐은 기가 막혔다.

나는 그런 그에게 한마디 더 던졌다.

“싫으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저희도 장현우 선수 이적 건에 대해서 없는 걸로 할 테니까.”

“잠깐!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소!?”

정말 미련 없이 돌아나가려는 나를 요르겐 단장이 급하게 붙잡았다.

그러고는 나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걸렸다.

“좋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은 드리지 못합니다.”

애초에 도르트문트는 선수 이적에 있어서 야망 있는 팀이 아니다.

그들은 매번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지만,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유는 팀의 이적 정책 때문이다.

적당히 좋은 가격으로 영입 문의가 들어오면, 도르트문트는 즉각 선수를 팔았다.

이것은 도르트문트의 재정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반대로 원하던 트로피는 들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은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이적료를 좀 더 올려 주셔야겠습니다.”

“어느 정도를 원하십니까?”

“필립 호프만은 지금도 훌륭한 선수지만 잠재적 성장이 높은 선수죠. 최소 8,000만 유로는 받아야겠습니다.”

“그럼 장현우 선수의 가치는 어느 정도 포함됩니까?”

내 물음에 요르겐 단장이 고심하다가 대답했다.

“2,000만 유로.”

오, 그래도 생각보다 후려치지는 않은 모양이네. 장현우 선수도 이적하면 충분히 대우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합쳐서 1억 유로군요.”

“네. 일전에 레알 마드리드가 9,000만 유로를 주겠다고 한 제안을 거절했던 저희입니다. 그러니 최소 1억은 받아야죠.”

장현우 선수의 몸값과 합쳐 1억 유로.

현금으로 8,000만 유로를 줘야 하는데, 엄청난 금액이다.

어지간한 유럽의 유명 클럽들도 주저할만한 금액인데, K리그의 클럽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금액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나는 요르겐 단장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잠깐 밖에 나가서 치트키를 사용했다.

“왕자님.”

-오, 형제여. 무슨 일인가?

“혹시 8,000만 유로 정도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나중에 갚을게요.”

-뭐, 자네에게 그냥 줘도 상관없기는 한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가?

나는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왕자는 곧 크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자네답구만. 아주 통이 커!

“…….”

-자금 걱정은 하지 말게. 저번에 약속한 것도 있으니 말이야. 이건 뭐, 내 용돈 정도 수준이기도 하고. 계좌는 TH투자회사로 보내면 되나?

“네.”

최근에 미국의 어느 유명 잡지사에서 아랍 왕실의 재산을 주제로 다룬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칼리드 왕자의 재산 또한 언급되었다.

그 기사에서는 최근 UAE에서 떠오르는 차기 실세로서, 사업적 수완 능력과 차기 왕위 계승 싸움에서 큰형 나바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고 소개되었다.

그러면서 그의 재산이 약 90조 정도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번에 왕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눴을 때도 얼추 맞다는 답변까지 받았었다.

그렇기에 8,000만 유로 정도는, 그에게 있어 용돈 정도 수준이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선택은 하셨습니까?”

“드리죠. 8,000만 유로에 장현우 선수까지.”

“……!”

요르겐 단장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설마 이 금액을 주겠다는 용자가 있을 줄은 몰랐겠지.

어떻게 보면 내가 호구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투자다.

내가 필립 호프만을 영입하면서 얻을 수 있는 부가적인 이익들.

그것들은 충분히 이번 투자금을 회수하고도 남을 것이다.

도르트문트도 이 정도 금액이면 즉시 전력감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금액이 된다.

그렇게 구단 합의가 완료된 후, 선수와의 개인 합의를 진행했다.

갑작스럽게 오퍼를 받은 필립 호프만은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우리가 가진 비전을 설명했다.

“조만간 우리 팀은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최고의 팀이 될 겁니다. 당신이 우리 팀에 온다면 좀 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겠죠. 당신이 가진 가치를 더욱 빛낼 수 있을 겁니다.”

“저를 좋게 평가해 주시는 건 고맙지만, 저는 아시아에 대해 잘 모릅니다. 계속 유럽에서 생활하고 싶고요.”

“드림클럽이 바르셀로나라고 하셨죠?”

“……!”

필립 호프만을 영입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기사들을 쭉 훑어봤던 나다.

그 수많은 기사 중에서 과거 그가 바르셀로나를 드림클럽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과거 중국에서 뛰던 선수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그것도 우리 팀에서 뛴다면, 당신은 언젠가 바르셀로나에서 뛸 수 있을 겁니다.”

선수는 여전히 불신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다.

“만족할 만한 연봉과 옵션들을 제공하죠.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충분히 지불 될 겁니다.”

“아무리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도 저는…….”

“정말 한국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1년 후에 조건 없이 풀어드리죠. 어떻습니까?”

“……!”

필립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이건 선수에게 있어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구단 스스로가 호구를 입증하는 파격적인 조건.

“어째서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그만큼 당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아.”

여기에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솔직히 지치지 않습니까? 당신도 몸값 올리기 위해 이곳 도르트문트에 왔지만, 3년을 뛰면서 트로피 하나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

“하지만 저희 팀으로 이적한다면 다릅니다. 매년 당신의 손에 트로피가 쥐어질 겁니다. 약속하죠.”

꿀꺽.

필립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본래 야망 있는 선수였다.

그가 바르셀로나를 드림클럽으로 여기는 이유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한 야망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의 선수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현실은 우승 트로피 하나 없는 씁쓸한 커리어다.

아무리 아시아 리그라고 해도 트로피 하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무엇보다 우리는 올해 AFC챔피언스리그 정상을 노립니다. 아시아의 정상 자리에 오르면, 당신의 가치도 충분히 인정받을 겁니다.”

아무리 아시아 리그라고 해도 대륙 간 챔피언스리그급 대회는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우수한 성적을 만들고 유럽 무대에 진출해서 좋은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이 종종 있었다.

이들 중에는 빅클럽에서 활약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신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리 함께 꿈꿀 수 있는 미래로 걸어가 보죠.”

끈질기면서도 진정성 있는 설득 끝에, 필립 호프만이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와 함께하겠습니다.”

그렇게 역대급 이적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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