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토요일 낮, 고양별무리 경기장에는 모처럼 구름 관중이 모여들었다.
더블은행파크보다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은 많이 적었지만, 그래서 관중이 가득 들어차 보이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경기장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흘렀다.
두 팀 모두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서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고양 유나이티드가 준비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어? 저게 뭐야!?”
“뭐야! 홀로그램이야!?”
센터서클 위로 그래픽으로 처리한 거대한 숫자가 나타난 것이다.
[30:00]
센터서클 위로 나타난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걸 본 관중들이 그게 시간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의 반응은 평범한 편이었다. 금방 관심을 끄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사라지고 뒤이어 양 팀의 로고가 나타나자 관중들이 다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해!”
천지원 부장의 지휘 아래 본격적인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MC 박창훈입니다! 반갑습니다!
갑자기 경기장 한가운데서 솟아오른 박창훈의 모습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지금 제 모습이 신기하시죠? 저도 제 모습이 무척 신기한데요! XR 기술과 접목해서 저는 지금 가상 공간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XR? 그게 무슨 말이지?”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오늘 아주 중요한 일전이 남아 있는데요. 저희는 오늘 경기 승리를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저와 함께 카운트를 외쳐 주시겠습니까!
박창훈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시 센터서클 위로 숫자가 나타났다.
[10, 9, 8, 7…… 1. 0]
관중들이 박창훈이 외치는 카운트에 맞춰 함께 소리를 질렀다.
카운트가 0이 되는 순간, 이번에는 합창단이 등장했다.
합창단은 곧 고양의 공식 서포터스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대한 고양~ 승리를 위해~
너희의 뒤에는 우리가 있어~
와아아아!
그러다가 갑자기 관중들이 탄성을 질렀다.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 주변에 경기를 뛰는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주요 선수들이 마치 실제로 경기를 뛰는 것처럼 보였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앞서 나갑니다!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는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이어서 고양 유나이티드의 서포터스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노란 깃발을 흔드는 서포터스들의 등장에 지켜보던 실제 서포터스들이 환호했다.
“미쳤다!”
“와, 이걸 언제 다 준비했냐!”
XR 기술을 접목시켜 만든 화려한 퍼포먼스에 관중들은 홀린 듯이 지켜봤다.
하지만 이 퍼포먼스의 화룡정점은 따로 있었다.
-모두 하늘을 봐주십시오!
박창훈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크아아아앙!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대한 포효소리.
그리고 곧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저게 뭐야!?”
“드래곤!?”
“용이잖아!”
온몸이 황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이 두 날개를 펴고 등장했다.
경기장 위를 크게 한 바퀴 돌던 황금용은, 천장 위에 날개를 접고 앉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크게 포효했다.
그러더니 곧 경기장 센터서클 쪽으로 내려왔다.
센터서클에는 어느샌가 FA컵 우승트로피가 자리잡고 있었다.
황금용은 그 트로피를 꼬리로 감싸더니 다시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간 용의 몸이 어떤 문구로 바뀌었다.
[2027 더블은행 FA컵 결승 2차전]
[고양 유나이티드 VS 전북 모터스]
마지막 문구를 본 관중들이 모두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
그 어떤 축구클럽도 보여주지 못한 화려한 퍼포먼스에 양 팀 모두 충격을 받았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박창훈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침내 결전의 순간이 왔습니다! 이제 이 결전을 치를 양 팀 선수들을 모십니다! 선수단-- 이이이입 자아아아앙!
우와아아아아!
양팀 선수단이 중앙게이트를 통해서 경기장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광경을 본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 * *
『방금 상당히 대단한 퍼포먼스를 지켜봤는데요. XR 기술을 접목한 퍼포먼스라고 하더군요.』
『확실히 고양 유나이티드여서 가능한 퍼포먼스가 아닌가 싶네요.』
『황금용이 등장한 장면은 역대급이네요.』
오늘 경기를 라이브로 중계하던 방송사 중계위원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 다시 경기 내용으로 돌아가보죠. 오늘 경기를 어떻게 보시나요. 한정의 해설위원님?』
『전북이 1차전에서 2:1로 승리했기 때문에, 전북이 우세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지난 경기에서 산드루가 퇴장당했기 때문에, 전력손실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고양 유나이티드 또한 저력이 있는 팀이거든요? 고양 유나이티드도 한번 터지면 폭발적인 득점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승부는 누구든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전북은 FA컵 최다 우승팀이고, 고양은 창단 첫 FA컵 우승트로피를 노리고 있는데요. 오늘 누가 우승트로피의 주인공이 되도, 역사는 새롭게 쓰여집니다.』
『그렇죠.』
“오늘 반드시 이긴다!”
오늘 선발로 나선 고양 선수들이 필드 위에 모여 승리를 다짐했다.
“이기든 지든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쳐보자고!”
“오늘 우리는 역사를 쓴다!”
“파이팅하자! 하나, 둘!”
“어이! 어이! 어이!”
고양 선수들이 전의를 불태우며 각자 위치로 움직였다.
곽찬구 감독이 팔짱을 낀 채 벤치 앞 터치라인 앞에 서서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VIP 관중석에는 지태훈과 프로축구연맹 석정원 회장을 비롯한 인원들도 있었다.
그 모습들이 고스란히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지태훈 대표의 모습도 보이는데요. 상당히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1차전을 앞두고 공식 성명문까지 발표했는데요. 그만큼 우승트로피에 대한 열망이 크겠죠?』
『그럴 수밖에요. 지태훈 대표가 구단주로 활동하면서 고양에 투자한 금액만 해도 상당하거든요. 유럽의 갑부 구단주만큼들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K리그 내에 그 어떤 팀들보다 많은 금액을 투자했고, 그 투자가 곧 결실로 나타나고 있고요.』
『오늘 고양이 우승하게 되면, 작년에 K리그2 우승트로피에 이어 연속해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겠네요.』
『그렇죠. 무언가 성과를 얻고 싶다면, 이래서 팀에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주심이 입에 휘슬을 물고 시간을 확인했다.
삐이이익!
『경기 시작했습니다! 2027 더블은행 FA컵 2차전, 고양 유나이티드 대 전북 모터스의 전반전 경기입니다! 화면을 기준으로 왼쪽이 홈팀 고양이고요. 오른쪽이 원정팀 전북입니다!』
* * *
툭. 툭.
경기 시작부터 고양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나섰다.
빠르게 상대 진영으로 치고 들어간 고양이 초반부터 슈팅까지 만들어냈다.
팡!
아크 정면에서 날카로운 슈팅을 시도한 박형우.
발끝을 벗어난 공이 정확하게 골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전북 골키퍼가 손으로 쳐내면서 라인 바깥으로 넘어갔다.
-박! 형우!
장내 MC의 외침에 팬들이 박형우의 이름을 외쳐주었다.
박형우도 살짝 안타까워했다.
삑.
고양에게 코너킥이 주어졌다.
양팀 선수들이 전북 골문 앞에 모여 위치 선정을 위한 다툼을 벌였다.
그사이 장현우가 신호를 보내고 공을 차올렸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전북 골문 앞으로 떨어졌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북의 골망이 흔들렸다.
출렁-
두 눈을 부릅뜨고 멀리서 지켜보던 고양 팬들이 살짝 멈칫했다가 곧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잠시 후, 득점을 기록한 주인공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고양의 첫 번째 골의 주인공은…… 돌보다 단단한 석—종호--!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석종호가 낙하하는 공에 맞춰 발등으로 교묘하게 각도만 바꿔서 전북의 골망을 흔든 것이다.
이른 시간 골을 만든 석종호가 돌연 눈물을 흘렸다.
이번 시즌 내내 부침이 있었던 석종호였다.
모처럼의 득점으로 팀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 석종호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것이다.
팀 동료들은 그런 석종호에게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홈팬들도 그런 석종호의 마음을 알고 이름을 힘차게 외쳐 주었다.
삑!
다시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재개되었다.
이른 시간 득점이 터지면서 고양은 1차전에서 가졌던 부담감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수적 우위였음에도 패배했던 고양이 가졌던 부담감은 상당했었다.
“가자!”
“할 수 있어!”
선수들과 팬들이 서로에게 승리를 다짐하며 외쳤다.
반면 전북은 이른 시간 실점당하면서 부담감을 안게 됐다.
단 1번의 공격 기회로 상대로부터 실점을 당해 버린 전북은, 고양에게 결코 기회를 주면 안 된다고 자각했다.
“실수하면 큰일이다!”
“우리 플레이에 집중해!”
전북이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발로 나선 황진용을 중심으로, 전북 특유의 패스플레이와 연계로 고양의 진영 안으로 깊숙하게 침투했다.
고양도 지역 수비와 압박 수비를 혼용해서 전북이 진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전북은 그런 고양의 수비 전술을 뚫어내고 슈팅까지 만들어 냈다.
팡!
“위험해!”
수비 사이를 뚫고 들어간 전북 공격수 더글라스가 만든 슈팅이 정확히 골문 안으로 향했다.
하지만 고양에게는 베테랑 수문장 박지원이 있었다.
그가 정확하게 팔을 뻗어 공을 완벽하게 품에 끌어안고 누웠다가 일어났다.
짝짝짝-
고양 서포터스들은 그런 박지원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더글라스를 비롯한 전북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올라가! 빨리!”
공을 소유하게 된 고양이 빠르게 반격했다.
박지원이 손으로 힘껏 던진 공이 정성진 앞으로 향했다.
정성진은 측면에서 드리블하며 질주했다가 스즈키에게 패스했다.
스즈키는 공을 툭 차올려서 전방으로 보냈다.
그렇게 날아간 공을 사무엘이 전북 수비수의 견제를 이겨내고 이마로 툭 떨어뜨린 다음, 박형우에게 슬쩍 밀어줬다.
상대 수비 라인을 타며 준비하던 박형우가 공을 받고 드리블하기 시작했다.
“야! 막아!”
“박형우 막아!”
전북에게 있어서 이번 시즌 박형우는 PTSD 같은 존재였다.
몇 번이나 박형우에게 실점을 내줬다.
그래서 전북도 박형우에 대한 견제가 상당했다.
박형우를 막기 위해 사방에서 전북 선수들이 둘러싸는 형태로 접근했다.
하지만 박형우는 노련했다.
그는 무리하지 않고, 감각적인 플레이로 뛰어가는 박요한에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박요한이 전북의 라인을 부수고 들어갔다.
박형우에게 너무 많은 시선이 몰려 있던 전북은 박요한을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다.
순식간에 골키퍼와 일대일이 상황을 맞이한 박요한은 침착하게 슈팅을 때렸다.
팡!
발끝을 벗어난 공이 전북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거리를 좁히고 달려오던 전북 골키퍼가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그런 골키퍼를 절묘하게 스쳐 지나갔다.
골키퍼마저 지나친 공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모두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태앵-!
“앗!”
골이라고 확신했던 박요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공이 골포스트 위쪽 부분을 맞은 다음 아래로 떨어졌다가 골문 앞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런데…….
“어!? 들어갔어! 들어갔다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