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울산 문수경기장.
동 시간대에 벌어지는 최종전 경기 중 가장 치열한 접전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붙여! 붙이라고!”
“공간 내주지 마!”
전반전에서 무려 양 팀 합쳐 5골이라는 화력을 보여준 울산과 서울이었다.
그런 경기력이 후반전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푸른 물결의 울산 서포터스들과 검붉은 물결의 서울 서포터스들이 만드는 함성이 경기장을 크게 울렸다.
그리고 이 경기에 한 인물이 지켜보고 있었다.
『최종전에서 이렇게 다득점 경기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는데요. 양 팀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서울이 지금 지고 있기는 한데, 오늘 경기 결과에 다음 시즌 아챔 티켓이 걸려 있단 말이죠. 지금 대구가 이기고 있기 때문에, 서울은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서울이 2골을 넣었기 때문에, 이 경기를 이기려면 2골이 더 필요한데, 만약 서울이 4골로 울산을 잡게 되면 다득점에서 대구를 앞서게 되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오늘 서울이 이겨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아, 마침 화면에 보이네요.』
『이태수 선수! 이태수 선수가 울산까지 왔어요.』
이태수.
그가 원정석에서 휠체어를 타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서울이 후반기에 극적인 반등을 할 수 있었던 계기는, 혼수상태였던 이태수가 깨어난 뒤부터였다.
사고 이후 절망적인 상황을 겪었음에도 결국 다시 일어나려는 의지를 본 서울의 모든 선수와 관계자들도 ‘포기할 수 없는 의지’가 생겨 버린 것이다.
이후 폭발적인 경기력으로 연전연승을 거둔 서울은 결국 오늘의 상황까지 오게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K리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비록 이태수 선수는 더 이상 선수로 뛸 수 없지만, 그의 의지가 팀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는데요.』
『이태수 선수도 팀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굳은 얼굴로 경기장을 바라보던 이태수가 두 팔을 위로 올리고는 힘껏 외쳤다.
“힘을 내라---! 서---울---!”
“……!”
때마침 서포터스들도 목소리를 죽이고 있던 타이밍이었다.
그 상황에 이태수의 거대한 외침을 들은 팀 콜리더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손에 쥔 빨간 확성기를 입가에 대고 외쳤다.
“우리도 다 같이 외칩시다! 힘을 내라---! 서---울--!”
그러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외쳤다.
힘을 내라! 서울!
기적을 담은 외침.
그리고 그 외침이 결국 선수들에게 닿았다.
『서울의 패스 마스터 소비치가 공을 잡고 전방으로 길게 내줍니다! 측면에서 공을 받고 질주하는 이유진인데요!』
『오~ 이거 지금 기회죠!』
『이유진 슈팅! 아니고 짧게 패스합니다! 조윤영인데요!』
『때려야죠!』
울산의 페널티박스 앞이 혼전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윤영이 울산 수비 3명을 앞에 두고 슈티을 때렸다.
팡!
『조윤영 슈우우웃!』
출렁-.
『들어갔어요!!』
흔들리는 울산의 골망.
서울의 3번째 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 * *
고양별무리 경기장.
『방금 들려온 소식입니다! 서울이 울산을 상대로 동점골을 기록합니다!』
『이야~ 서울 대단합니다! 이러면 서울하고 울산은 3:3이네요!』
『정말 대단하네요. 양 팀 합쳐 6골! 가끔 다득점 경기가 나오기는 한데, 오늘 같은 경기에서 나오는 다득점은 정말 보기 어렵거든요?』
『그렇죠!』
현장 중계위원들이 먼저 소식을 접하고 뒤이어 전북 서포터스들도 소식을 접하고 환호를 터트렸다.
와아아아아!
“뭐야? 재들 왜 이래?”
“야! 서울이 동점골 넣었어!”
“어? 진짜네!”
고양 서포터스들도 뒤늦게 소식을 듣고 반응했다.
1골 차이로 반응이 크게 엇갈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전북이 다시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고양의 곽찬구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미하엘 코치!”
“네?”
“세진이하고 석원이 경기 투입할 수 있게 준비하세요.”
“네!”
벤치에서 대기하던 오세진과 한석원을 동시에 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교체 전에 곽찬구 감독이 직접 두 선수에게 어떤 지시를 내렸다.
지시를 받은 두 선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선수 교체를 합니다! 오세진 선수와 한석원 선수를 투입하는데요. 누구를 빼나요? 아, 김지우 선수하고 나탈 선수를 동시에 빼네요!』
『자~ 이 중요한 순간에 선수 두 명을 바꾼다는 것은, 곽찬구 감독도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진다는 건데요!』
교체로 나오는 나탈은 홈팬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나탈도 그런 홈팬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걸 본 캐스터가 말했다.
『나탈 선수가 오늘 K리그 마지막 경기를 뛰는데요. 홈팬들도 그동안 수고해 준 나탈 선수에게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그렇죠. 아직 나탈 선수에게는 마지막 FA컵 결승전 경기 2번이 남아있기는 한데, 이번 시즌이 끝나고 나면 브라질 세리에A 코린치아스로 갑니다. 이 경기 이전에 이적발표가 났었죠.』
『그렇습니다. 코린치아스도 브라질 내에서 상당한 팀인데, 비록 FA로 가는 거긴 해도 대단합니다.』
선수 교체 후 경기는 금방 속개되었다.
‘긴장했던 전북이 잠깐 숨을 돌릴 여유를 부릴 거다. 그 틈을 노릴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해!’
지금 팀에게 필요한 것은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득점이 필요하다.
어차피 1골을 먹든 2골을 먹든 지는 것은 똑같다.
승리하려면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곽찬구 감독의 판단은 정확했다.
『전북이 라인을 상당히 올리고 있는데요!』
『황진용 슈우우웃! 아! 하지만 고양의 수비에 막힙니다!』
굴절된 공을 장현우가 가로채기에 성공했다. 그렇게 볼 소유권을 가져온 그가 오세진에게 볼을 패스했다.
그렇게 볼을 받은 오세진의 발끝이 매섭게 불을 뿜었다.
팡!
마치 당연하다는 듯 전방으로 공을 길게 보냈다.
그렇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이 박형우 앞으로 뚝 떨어졌다.
상대 수비수와의 경합에서 이겨내고 공을 따낸 그가 순식간에 전북 진영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런 박형우를 막기 위해 전북 선수들이 우르르 뛰어왔다.
장기인 드리블이 막히는 상황에서 박형우는 무리하고 바로 동료를 이용했다.
그 동료는 바로 한석원.
한석원이 측면에서 공을 받고 질주했다.
순식간에 상대 코너킥 존 근처까지 온 그가 전북 선수 한명을 앞에 두고 대치했다.
“…….”
한석원이 드리블을 치는 척하다가 공을 올렸다.
팡!
짧지만 빠르게 올라간 공이 전북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뚝 떨어졌다.
그렇게 낙하하는 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사무엘이었다.
사무엘이 하늘로 배를 보이며 붕 떠오르더니 곧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팡!
옆에는 전북 수비수, 앞에는 전북 골키퍼가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정확한 ‘오버헤드킥’이었다.
발 끝에 닿은 공이 그대로 전북의 골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키퍼가 뒤늦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출렁-
전북의 골망이 흔들리는 순간,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양의 모든 이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올해 최고의 골이 터져 나왔습니다! 정말 멋진 골을 만드는 사무엘입니다!』
『와아아아! 누가 사무엘보고 퇴물이라고 했습니까!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이게 바로 사무엘을 두고 하는 말이겠네요!』
오버헤드킥으로 환상적인 동점골을 만든 사무엘이 벤치로 뛰어갔다.
그리고 기다렸던 곽찬구 감독과 힘껏 포옹했다.
벤치에 있던 대기 멤버와 교체아웃 했던 나탈과 김지우도 사무엘을 끌어안고 포효했다.
『스코어는 다시 2:2가 됩니다! 자, 이제 경기는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습니다!』
고양과 전북의 스코어가 다시 동률 이루는 순간, 이후 경기를 크게 흔들 만한 소식이 또 들려왔다.
『어! 울산이 또 골을 기록합니다!』
『이야아! 지금 전북이 실점한 상황에서 울산이 1골을 더 넣어 버렸네요! 경기 진짜 모르네요!』
울산은 기어코 4번째 골을 만들었다.
결과가 뒤집히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마치 오셀로를 하듯, 이 순간 모든 것이 뒤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단단했던 전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북은 이제 이기는 길밖에 없습니다!』
『볼 뺏기는 전북인데요, 고양이 빠르게 역습합니다!』
동점골 이후 다시 살아난 고양은 매서웠다.
정신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전북을 상대로 고양은 거리낄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전북에게 위기로 작용했다.
『시간은 어느덧 후반 45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추가 시간은 4분이 주어지는데요. 이 시간 안에 전북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를 위한 1골입니다.』
정규시간이 끝나가고 추가시간이 왔음에도 스코어는 여전히 2:2였다.
전북의 우승 기록이 깨지느냐 마느냐는 이제 추가 시간 4분에 달렸다.
그러던 중에 또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울산과 서울의 경기가 끝났네요! 두 팀의 경기는 울산이 4:3으로 승리를 거두었고요. 자, 이제 이 경기가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이번 시즌 우승 트로피 여부가 결정됩니다!』
전북이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쥐어짜며 뛰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지쳐가는 가운데, 박형우가 공을 받았다.
“형우야!”
고양의 오른쪽 하프스페이스에서 공을 잡은 박형우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박형우 옆에 함께 뛰는 동료 선수들과 그런 그를 막기 위해 달려드는 전북 선수들이 있었다.
모두가 박형우가 패스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어어! 뭐야!?”
“그냥 달리는 거야!?”
모두가 기립했다.
전북의 벤치와 서포터스 쪽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고양의 벤치와 서포터스 쪽에서는 기대 어린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기어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박형우! 동료에게 패스하지 않고 직접 제치는데요! 또 제칩니다! 오! 또 한 명 제칩니다!』
『어어어어어---!』
『이제 골키퍼 한 명만 남았는데요오오오! 박혀어어엉우우우우우!』
『으아! 으아아아! 아아아!』
미친 돌파에 이은 단 한 번의 슈팅!
그리고 흔들리는 골망.
이 모든 상황이 불과 후반 추가 시간 10초를 남기고 벌어진 일이었다.
『엄청난 골이 나왔습니다! 박형우의 리그 28호골이자 고양의 3번째 골입니다!』
『전북이 무너집니다아아!』
골을 만들고 카메라 앞으로 뛰어가서 슬라이딩하는 박형우.
그런 박형우를 덮치는 팀 동료들과 그 앞에서 미친 듯이 환호하는 노란 물결의 홈팬들.
그리고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전북 선수들이 절망하는 모습까지.
이 모든 것이 단 1골이 만들어 낸 장면이었다.
『이제는 전북 킬러 박형우입니다! 마지막 희망마저 꺾인 전북에게 엄청난 절망을 선사합니다!』
박형우의 골이 터지고, 득점 기록을 작성한 주심이 휘슬을 입에 물고 길게 불었다.
삑! 삐익! 삐이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고양이 전북을 3:2로 누르면서 전북의 우승을 저지합니다!』
같은 시각,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간절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울산 선수들과 팬들도 환호했다.
먼저 경기가 끝난 울산은 경기장 대형 스크린 화면에 고양과 전북의 경기를 라이브로 틀어놓은 것이다.
그러다가 박형우의 엄청난 득점이 터져 나오자 울산 문수경기장은 함성으로 뒤덮였다.
울산 서포터스들은 비록 상대 선수이기는 해도, 박형우의 이름을 외쳤다.
박형우--!
그리고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울산 문수 경기장 전광판에 문구가 떴다.
[2027시즌 K리그1 우승팀 : 울산 모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