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시원하게 올라간 공이 전북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뚝 떨어졌다.
양 팀 선수들이 떨어지는 공에 맞춰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박요한이 펄쩍 뛰어오르는 시늉을 보였다.
그 순간, 근처에 있던 전북 선수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박요한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였다.
박요한은 뛰는 시늉만 했을 뿐, 뛰지 않았다. 뒤늦게 전북 선수들이 상황을 파악했을 때, 이미 다른 선수가 공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 선수는 바로 라시모프.
최종 수비를 지키는 라시모프가 혼전 상황에서 튀어나와 시원하게 헤딩으로 날아오는 공의 각도를 바꿨다.
팡!
출렁-
우와아아아아!
라시모프의 헤딩슛이 골망을 흔드는 순간, 지켜보던 모두가 비명 같은 함성을 질렀다.
『득점합니다! 라시모프가 전북의 골망을 뒤흔듭니다!』
『이야~ 역시 고양인데요! 이렇게 빠르게 선취골을 터트리면, 이제 경기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전북이 시작부터 위기를 맞습니다! 스코어는 1:0으로 고양이 앞서나갑니다!』
득점에 성공한 라시모프가 카메라 앞에서 무릎 슬라이딩을 하며 포효했다가 뒤따라오던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셀레브레이션을 보였다.
득점을 지켜보던 고양의 벤치 쪽도 기쁨을 드러냈다.
라시모프는 장현우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장현우 선수도 도움을 1개 올립니다. 이로써 장현우 선수는 K리그1 최다 도움 타이기록을 세웁니다!』
『이야~ 대단합니다, 장현우 선수! 이렇게 되면 무려 14년 만에 K리그1에서 타이기록이 나오네요!』
『정확히는 K리그1, 2 통틀어서 최다 도움 기록은 같은 소속인 김지우 선수가 가지고 있지만, K리그1 최다 도움 기록 타이는 장현우 선수가 기록합니다!』
삑!
이른 시간 선제 득점을 올린 고양 유나이티드의 한 방은 최종전을 흔드는 신호탄이 되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전반 7분만에 라시모프의 선제골로 앞서나가는데요. 어~ 지금 타 구장 소식이 들려오네요!』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서울 드래곤즈가 울산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최근 서울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데, 결국 울산한테도 보여주는군요!』
『자, 그럼 이렇게 되면 전북이 비록 지고 있지만, 아직 우승컵을 가져갈 확률은 전북에게 있습니다!』
고양과 서울이 나란히 선제골을 만들면서, 우승컵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됐다.
『어디 볼까요? 오! 지금 또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는데요. 대구가 수원 블루를 상대로 득점을 했습니다!』
『대구와 서울이 지금 승점은 같지만 다득점 차이로 대구가 4위, 서울이 5위인데, 이러면 대구가 다시 앞서나가네요!』
동시간에 벌어지는 상위 스플릿 경기는 예상대로 변수들이 터져 나왔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터치 라인까지 나온 전북 감독이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전북 선수들도 동점골을 위해 이를 악물고 뛰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경기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요. 서로가 최선을 다해서 뛰어야 합니다!』
『그렇죠. 아, 잠시만요! 또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와아아아!
갑자기 원정석에 위치한 전북 서포터스 쪽에서 엄청난 환호가 터져나왔다.
이에 대해 중계위원들이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이 또 한 골을 넣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울산이 크게 흔들리네요!』
『이야~ 이거 또 울산 준우승하나요? 이대로면 전북은 지더라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립니다!』
양 팀 벤치에서도 이 소식이 동시에 들어갔다.
“감독님! 서울이 추가골을 넣었답니다!”
“뭐!?”
곽찬구 감독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뭐지? 우리한테 좋은 상황 아닌가? 그런데 이 불안감은 도대체 뭐지?’
곽찬구 감독이 느끼는 불안감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
『자, 울산이 한 골 따라붙었습니다! 이제 울산이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울산도 저력이 있는 팀이죠! 하지만 서울도 다음 시즌 AFC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만만치 않을 겁니다!』
분명 중계위원은 고양과 전북의 중계를 진행하고 있지만, 어느샌가 울산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오우! 울산이 또 골을 넣었네요!』
『어, 이렇게 되면 울산과 서울이 2:2가 되는데요. 울산에게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이 소식은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뭐? 울산이 따라잡았다고!?”
경기에 집중해야 할 선수들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타 구장 소식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전북 선수들은 골이 반드시 필요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양은 전북이 쉽게 노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함을 보였다.
“걸어 잠궈!”
곽찬구 감독은 전북의 심리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1골을 넣고 극단적으로 잠그는 플레이로 전북을 막아세웠다.
자연스레 전북이 공격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고양이 심리적으로 전북을 압박하고 있었다.
팡!
“아!”
골문과 거리가 한참 떨어진 곳에서 슈팅을 때린 황진용이 안타까운 표정을 드러냈다.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다 보니 허무한 플레이들이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 상황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명단에서 빠진 산드루와 더글라스였다.
『브라질 콤비이자 전북의 에이스인 두 선수가 상당히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네요.』
『답답할 겁니다. 중요한 경기에서 자신들이 빠져 버렸으니까요. 게다가 팀도 지금 지고 있잖아요? 울산도 지금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고.』
그때, 기름을 붓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울산이 결국 경기를 뒤집습니다! 3:2로 울산이 앞서나갑니다!』
전북의 팬들이 소식을 먼저 접하고 절망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전북 벤치에서도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야~ 울산과 서울의 경기도 정말 대단하네요. 아직 전반전인데 5골이나 터져 나왔네요!』
전북은 울산의 경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기어코 역전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전북 선수들도 혼란스러웠다.
『전북 선수들 답답하죠. 지금 플레이가 많이 조급하고, 경직되어 있어요. 평소 전북이 보여주지 않은 모습들인데요.』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전북이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고양은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전북을 괴롭혔다.
하지만 전북은 저력이 있었다.
『아, 정성진의 반칙! 전북이 프리킥 기회를 얻습니다!』
『자아~ 골문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반칙인데요. 전북에게 기횝니다!』
전북은 프리키커로 황진용이 나섰다.
『우라와레즈 전에서 대단한 프리킥을 보여줬던 황진용 선수인데요. 과연 여기서 또 하나 보여줄까요?』
주심의 신호와 함께 황진용이 공을 찼다.
팡!
빠르게 감겨져 날아간 공이 벽을 세워뒀던 고양 선수들을 지나쳐 그대로 골문 구석으로 휘어져 들어갔다.
출렁-
박지원이 날아오는 방향에 맞춰 몸을 날려 팔을 길게 뻗었지만, 황진용의 프리킥이 더 빠르고 날카로웠다.
결국 출렁이는 고양의 골망과 함께 지켜보던 전북의 모든 이들이 환호했다.
『골입니다! 황진용이 기어코 득점합니다!』
기어코 1:1를 만드는 전북.
고양별무리 경기장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스코어가 동률을 이루면서 경기는 더욱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양 팀 모두 승리를 원했다.
『박형우 슈우우웃! 아! 골키퍼 선방에 막힙니다!』
『한성태 때립니다! 하지만 골문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납니다!』
양 팀은 여러 차례 기회를 주고받으며 득점을 노렸다.
『양 팀이 모두 빠르게 경기를 전개하는데요. 선수들의 체력이 걱정됩니다.』
『이러면 후반전에는 체력이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삑! 삐익! 삑!
결국 주심이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전반전 끝났습니다! 고양과 전북의 전반전은 접전 끝에 1:1로 마무리됩니다!』
『후반전에는 양 팀에 모두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저희는 잠시 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와, 진짜 손에 땀을 쥐네.”
“도련님, 즐거우셨어요?”
“어. 엎치락뒤치락하는데 재미없을 수가 없지.”
VIP좌석에서 나는 경기 현장과 함께 울산과 서울의 경기 또한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울산이 진짜 악착같이 하네.”
“네. 2골 먼저 실점하고 나서 정신을 차린 모양이에요.”
울산은 서울에게 2골을 먼저 실점했다. 그것도 홈에서!
홈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승을 노리는 팀이 졸전을 보이면 얼마나 수치스럽겠나!
하지만 울산은 본인들의 저력을 확실하게 보여 줬다.
실점 이후 무려 3골을 쏟아내며 경기를 완벽하게 뒤집으며 전반을 마쳤다.
“우리야 이미 안전한 상황이니까 이렇게 편하게 지켜보는거지, 만약에 우승 경쟁하는 입장이면 진짜 피가 말렸겠다.”
“저희도 곧 결승전 치르지 않나요?”
“물론 그렇기는 해. 근데 리그와 컵 대회는 다르지 않을까? 작년에 우리가 치렀던 최종전을 떠올려 봐.”
“음.”
불과 1년 전이다.
우리가 K리그2 우승 트로피를 두고 제주와 치열하게 접전을 펼쳤던 그 일이 말이다.
컵 대회 결승전을 아직 겪어본 적이 없지만, 리그전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자, 그럼 계속 지켜보자고.”
* * *
우승이냐, 준우승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상위스플릿 경쟁에서 가장 주목할 경기는 역시 전북과 울산의 우승 경쟁이다.
그런 두 팀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후반 45분만 남았다.
“파이팅!”
“오우!”
전북 선수들이 결의를 다지는 모습을, 고양 선수들이 보고 말했다.
“쟤들 진짜 이 악물고 나올 것 같은데.”
“우리야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경기이긴 해도, 방심해서는 안 돼. 다가올 결승전 상대잖냐.”
“맞아. 게다가 시즌 마지막 리그 홈경기야. 팬들한테 좋은 모습 보여 줘야지.”
“맞아.”
고양 선수들도 결의를 다졌다.
그렇게 후반전이 시작되자, 경기는 다시 한 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전북에게 선수 변화가 있습니다! 한성태 선수가 빠지고, 류태훈 선수가 들어오네요.』
『어~ 한성태 선수는 스트라이커이고 류태훈 선수는 미드필더인데요. 그럼 전북은 스트라이커를 빼는 건데요.』
『득점이 필요한 전북이 스트라이커를 뺀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전북이 종종 제로톱을 사용하기는 하는데, 지금 마땅히 투입할 스트라이커가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제로톱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 변화가 과연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봐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선수 교체로 포메이션에 변화를 준 전북.
그런 전북을 상대로 고양은 서두르지 않았다.
침착하게 상대 플레이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경기를 운영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급한 팀은 자신들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문제였을까.
그런 고양의 목덜미를 물기 위해 전북이 움직였다.
“위험해!”
“어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전북이 결국 고양의 목덜미를 물었다.
『황진용의 침투패스! 류태훈이 잡습니다! 류태훈 슈우우웃! 들어가는군요!』
『이야아아! 이게 전북이죠! 대단합니다!』
『전북이 앞서 나갑니다!』
고양별무리 경기장은 전북의 선수단과 서포터스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저 단 한 번의 찬스를, 전북은 완벽하게 득점으로 만들어냈다.
간헐적 기회를 결과로 만드는 것.
이게 바로 우승경쟁하는 팀들이 보유한 저력이었다.
허탈함을 느낀 고양 선수들을 향해 주장인 김지우가 손뼉을 치며 외쳤다.
“아직 시간 있어! 집중해! 벌써 집에 갈 생각하지 마!”
주장의 독려에 선수들은 다시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