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파이널라운드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K리그 팬들이 모여 소모임을 진행했다.
그들은 서울에 있는 어떤 치킨집에 모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소모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각자 응원하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맥주와 치킨을 먹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남자가 한탄하듯 말했다.
“아~ 이번 시즌도 우리 팀은 망했구나~”
남자는 성남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창호 씨 힘내요.”
박창호는 무려 18년 동안 성남을 응원해온 하드 서포터였다.
2027년을 기준으로 K리그가 44주년을 맞이했다. 그중 18년이면 상당한 연식을 자랑하는 셈이다.
“당신한테 위로받고 싶지 않은데요.”
가늘어진 눈으로 쏘아보는 박창호였다. 그러자 박창호를 위로했던 여자가 조금은 민망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 여자는 제주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여자의 이름은 유효진.
제주FC만 무려 11년을 응원해 왔다.
“그래도 창호 씨가 우리 팀보단 낫잖아요.”
“에휴-.”
10위 성남과 11위 제주.
현재 두 사람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었다.
두 팀 모두 승점 1점만 나고 있었다. 매번 경기가 끝날 때마다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남자가 울음을 터트렸다.
“흐어엉!”
“헉! 창연 씨!”
“맞다! 창연 씨가 있었지. 이런.”
눈물을 흘리는 이 남자의 이름은 국창연.
강원 유나이티드만 무려 14년을 응원하던 팬이었다.
그리고 현재 K리그1 12위 팀이기도 하다.
박창호와 유효진은 난감한 얼굴로 국창연을 바라봤다.
강원의 마스코트가 곰인데, 국창연은 곰을 닮았다.
곰을 닮은 그가 최악의 시즌을 보내는 팀 생각을 하니 펑펑 우는 것이다.
그런 그를 속으로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종현이었다.
인천FC를 응원한 지 17년.
비록 이번 시즌에 하위스플릿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지난 경기에서 잔류를 확정 지었다.
하필 인천이 잔류를 확정짓던 경기가 강원하고의 맞대결이었다.
강원은 그 경기를 패하고 최하위를 확정 지었다.
“자, 자, 진정들 하시죠.”
자칫 혼란할 수 있던 상황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그 남자는 바로 박태준이었다.
박태준은 특유의 인싸력으로 눈물 흘리는 국창연을 위로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정되자 유효진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태준 씨는 좋겠어요.”
“네?”
유효진이 박태준에게 부럽다는 듯 말했다.
“좋은 구단주 덕분에 팀이 승격하고 바로 3위까지 확정 지었잖아요.”
“솔직히 너무 좋죠. 요즘도 이게 꿈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우리 팀도 그런 구단주님이 오시면 좋겠다.”
“제주도 돈이 부족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좀 그래요. 괜히 감독 바꿔 가지고 나락으로 떨어졌는데요, 뭘.”
“으음. 그 일은 좀 죄송하네요.”
“에이, 태준 씨가 죄송할 일인가요. 그냥 저희가 못해서 그런 건데요.”
승격 이후에도 제주FC를 이끌던 강석훈은 시즌 도중 경질당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초반 중위권 정도를 유지하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갔지만, 여름부터 주요 선수들이 이적과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점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하반기에 치러진 고양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0:5 대패를 당한 뒤 다음 날 경질되고 말았다.
이후 정식 감독 없이 수석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임명해서 팀을 이끌고 있지만, 강등 직전의 상태로 몰리고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박태준이 맥주잔을 손에 쥐고 말했다.
“한잔하시죠!”
“그럽시다!”
맥주를 마신 그들은 자연스럽게 박태준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박창호가 먼저 말을 걸었다.
“태준 씨.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구단주는 어떤 사람이에요? 서포터스 회장 정도하면 대표이사도 만나볼 거 아니에요.”
“맞아요. 그러고 보니 태준 씨 전에 막 지태훈 대표하고 같이 사진 찍지 않았나?”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박태준은 조금 생각했다가 대답했다.
“훌륭하신 분이세요. 조금 괴짜인 면도 있기는 한데, 전부 팀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오, 괴짜라니, 어떤 식으로 괴짜인데요?”
“으음. 혹시 기억하세요? 저희 구단 용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배하고 응원했던 시절.”
“아아. 기억났다. 그 요정 지태훈? 그거 말하는 거죠?”
“맞아요.”
“아아, 이해했습니다. 그런 괴짜는 귀여운 수준이죠.”
사람들이 웃으며 반응하자 박태준도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근데 초반에 그 돌았던 소문들 사실이에요?”
“무슨 소문이요?”
“거, 왜 있잖아요. 막 구단 대표가 부임 초에 임태무 감독하고 황석호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쫓아냈다고. 단장도 두들겨 맞았다고 하던데?”
“엥? 그런 말은 어디서 들으셨어요?”
“예전에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말도 안 돼요.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요.”
박태준은 말도 안 된다며 대꾸하면서도 속으로 씁쓸함을 느꼈다.
종종 이렇게 지태훈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저 말도 안 되는 떠도는 소문만 믿는 부류들.
처음에는 지태훈이 잘나가니까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원래 잘나가는 사람에게 시기와 질투가 따라오는 법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때론 정도가 지나친 경우들이 생겼다.
“사람을 정말 때렸으면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할 수 없었겠죠?”
“하긴요. 그렇네요.”
“그리고 왠지 이런 이야기가 나올 거 같아서 제 나름대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네?”
“곧 오실 시간이 되셨는데…… 아! 저기 왔다!”
“갑자기 무슨…… 헉!”
어딘가를 바라보고 깜짝 놀라는 박창호.
사람들도 덩달아 박창호가 바라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일순간 떠들썩하던 치킨집이 조용해졌다.
“내가 너무 늦은 건 아니죠?”
“아닙니다. 대표님. 적당한 시간 때에 잘 오셨습니다.”
지태훈.
그가 치킨집에 등장한 것이다.
* * *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시끄럽던 분위기가 일순간 가라앉을 것을 본 나는 속으로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성남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지, 지태훈이다!”
신호탄을 쏴 올린 남자를 필두로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로 반응했다.
“세상에! 지태훈 대표님이 왜 여기에!?”
“와! 지금 내가 누구를 보는 거야!?”
“미쳤다!”
치킨집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그 소란의 중심은 나였지만 말이다.
머쓱한 마음에 앞머리를 살짝 긁적이는 가운데 박태준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표님. 여기 빈자리에 앉으시죠.”
“네.”
내 양옆에는 제주 유니폼을 입은 여자와 박태준이 앉았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각각 성남, 인천, 강원 유니폼을 입은 남자들이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 지태훈입니다.”
“우와!”
정식으로 소개를 다시 하자 사람들이 환호했다.
비단 우리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만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었다.
다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도 우리 쪽을 흘깃흘깃 쳐다보고 있었다.
“사장님! 여기 맥주 하나 더 주세요! 한 사람 더 와서 세팅도 추가로 해주시고요!”
“네, 알겠…… 헉!”
치킨집 사장도 나를 알아보고 기겁했다.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야,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왜 이런 반응들을 보이는 거야?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챈 것일까?
박태준이 슬쩍 얘기했다.
“대표님이 K리그에서 유명한 것은 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최근에 라세라티 광고 있잖습니까? 그걸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대표님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요?”
“네. 설마 모르셨어요?”
알 수 있을 리가.
평소에 내 생활 패턴을 보면 일에 치여 살고 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체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아. 최근에 인별그램 팔로워가 많이 늘긴 했더라고요.”
“앗! 인별그램 저도 팔로우했어요!”
“저돕니다!”
제주 유니폼을 입은 여자와 강원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즉각 반응했다.
나는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그건 그렇고 대표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
“아, 그게 태준 씨가 좋은 사람들을 소개해 준다고 해서요.”
“헐. 미리 알았더라면 준비 좀 했을 텐데 말이죠. 너무 누추한 곳에 모신 게 아닌가 싶네요.”
“누추하다뇨. 저 치킨에 맥주 좋아합니다.”
회귀 전에 치킨에 맥주가 뭔지 잘 몰랐다. 하지만 회귀 후에 구단주로 활동하면서 치킨과 맥주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됐다.
이제는 혼자서 치킨과 맥주를 먹을 때도 많았다.
“제가 혹시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구단 대표가 팬들 있는 자리에 함부로 끼어든게 아닌가 싶었다.
얼핏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런 자리인 줄 알았다면 거절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아니에요! 정말 잘 오셨어요!”
“맞아요! 저희가 언제 이런 자리에서 대표님을 만나뵙겠어요!”
“진짜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다행히 사람들은 나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럼 대표님도 오셨고, 주문한 맥주도 나왔는데, 다들 한잔하실까요?”
주문한 생맥주가 나오자 박태준이 눈치껏 끼어들었다.
“아, 좋죠!”
“자, 한잔 합시다!”
우리는 기분 좋게 잔을 부딪치며 건배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렇게 술이 들어가니 전보다 부드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던 중, 성남 유니폼을 입은 박창호가 나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대표님. 조금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인데, 해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그, 소문에 대표님께서 감독과 선수를 몽둥이로 때려서 쫓아냈다는데, 사실인가요?”
“네?”
너무나 뜬금없는 물음에 순간 멍청한 반응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가요?”
“K리그 팬들 사이에서 괴담처럼 떠도는 이야기인데, 저도 들으면서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이야기니까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하하하!”
“흐음.”
주변에서 박창호에게 눈치를 잔뜩 주고 있었다. 질문을 했던 그는 머쓱한 얼굴로 물러났다.
나는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몽둥이로 때려도 좋았을 것을.’
생각해 보면 그놈들은 좀 맞아도 되는 놈들이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그놈들로 인한 문제가 한 번씩 드러나지 않았는가.
“아쉽네요.”
“네?”
“그놈들을 두들겨 팼어야 했어요.”
“……!”
“지금도 그놈들 생각하면…… 어우!”
내 말에 사람들이 순간 얼어붙었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런 거였군요! 하하! 난 또 뭐라고!”
“하긴 예전에 그 고양의 단장하고 감독이 문제 많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죠?”
“하하하! 괜히 대표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실까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놈들을 패지 못한 게 아쉬웠다.
물론 마음만 그렇다는 것이다.
진짜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
그래도…….
‘또 내 눈앞에 보이면 절대 가만 안 놔둔다.’
나는 웃는 얼굴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