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은퇴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크게 놀라며 묻는 박지원의 모습에 김지우가 작게 웃었다.
“형, 뭐 그렇게 놀래요. 저도 슬슬 선수 이후 생활을 생각해 봐야죠.”
“아니, 요즘 축구 선수들 38 넘어도 뛰는데, 너도 가능하잖아.”
“뭐, 어떻게든 뛰면 뛸 수 있겠죠. 근데 저는 박수받을 수 있을 때 떠나고 싶어요.”
김지우의 때아닌 고백에 박지원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너, 혹시 생각해 둔 목표라도 있는 거냐?”
“역시 형은 눈치가 빨라.”
“뭔데?”
“아챔 우승.”
“……!”
“올해 FA컵 우승 트로피 하나 팀에 안겨주고, 내년에 아챔 우승트로피 안겨주고 멋지게 은퇴하고 싶네요. 조금 더 하면 리그 우승 트로피까지.”
“너 제법 야망이 크구나?”
“이 정도야 뭐. 그래도 이 정도는 해줘야 저도 박수받을 거 아니에요.”
“너는 충분히 잘했어. 지금 떠나도 박수받을 수 있는걸?”
“그럼 어떻게…… 지금 가요?”
“뭐라는 거야.”
“하하하!”
김지우의 목표는 확고했다.
주장으로서, 그리고 애정하는 소속팀을 위해서, 그는 팀이 얻을 수 있는 우승트로피를 모두 획득하고 멋지게 은퇴하고 싶었다.
“계약기간 2년이 저한테 남은 시간이기도 해요.”
“혹시 구단에서는 알고 있냐?”
김지우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러자 박지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뭐야, 그럼 구단도 알고 계약한 거야?”
“네. 이제야 하는 말인데, 은퇴 이후에 코치직도 할 수 있게끔 계약 옵션에도 넣었어요.”
“정말이야?”
“네. 형한테만 말하는 거예요. 다른 애들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이건 형우도 몰라요.”
“뭐, 형우는 은퇴하면 지도자 코스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너도 그럴 줄은 몰랐다.”
“제가 이제 어디를 가겠어요. 이제는 여기가 제 고향인데.”
“너, 정말 팀에 애정이 많구나?”
그 말에 김지우가 살짝 쑥스러워했다.
박지원은 그런 그에게 환한 표정을 드러냈다.
“네가 꿈을 이룰 수 있게 나도 든든하게 골문을 지켜주마.”
“고마워요. 형. 나는 팀 동료들 중에서 형이 제일 든든하더라.”
“짜식아. 그러니까 내가 형이지.”
“하하하!”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생각을 안고 다음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스플릿라운드로 돌입하기 전, 같은 시기에 진행하는 AFC챔피언스리그도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나란히 8강으로 올라간 전북과 울산은, 각각 중국의 베이징FC와 일본의 가와사키를 만났다.
대한민국 K리그의 클럽의 자존심인 전북과 울산은 동반 4강 진출을 노렸다.
올 시즌에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받는 두 팀은, 8강에서도 여지없이 상대에게 실력을 보여 줬다.
특히 16강에서 우라와를 꺾고 어렵게 8강으로 올라갔던 전북은 베이징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줬다.
『산드루가 득점합니다! 전북이 또 거리를 벌리는데요! 벌써 3:0입니다!』
『역시 전북이죠! 오늘 산드루 선수가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데요! 보시면 황진용 선수하고 호흡이 아주 좋네요!』
『산드루 선수가 득점하면서 황진용 선수도 오늘 2개의 도움을 올립니다!』
전반전에 3골을 쏟아붓는 미친 화력을 보여준 전북은, 원정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베이징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전북은 베이징의 골문을 터트리고 있었다.
『기어코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산드루입니다! 전북의 스코어는 어느덧 6:0을 가리킵니다!』
『이야, 베이징 선수들 넋이 나갔어요.』
『이게 K리그 팀과 중국 슈퍼리그의 차이가 아닐까 싶은데요. 놀라운 점은, 베이징은 지난 슈퍼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올라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양국 클럽 우승팀끼리 붙는 상황인데…… 역시 상대가 안되네요.』
『안 되죠. 아무래도 역대 전적이 보여주잖아요? 베이징은 지금까지 K리그 팀들을 만나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요.』
『오늘 베이징은 ‘공한증’을 제대로 느낄 것 같습니다!』
결국 1차전 경기는 전북의 대승으로 끝났다. 홈에서도 아닌 원정에서 무려 6골을 만드는 화력쇼를 선보였다.
사실상 4강 진출이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이쯤이면 전북도 자비심을 안고 2차전을 치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에 치러진 2차전에서 전북은 전혀 자비심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황진용이 멀티골을 기록합니다! 스코어는 5:0입니다!』
『지난 1차전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2차전에서도 전북은 무섭네요.』
전반에만 5골.
완벽한 확인 사살이었다.
또한, 전북은 상대에게 만회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한 수비를 보였다.
결국 전북은 2차전에서도 5:0 승리를 하며, 합계 스코어 11:0을 만들며 여유롭게 4강 진출을 확정했다.
그런데 이런 전북과 달리, 울산과 가와사키 경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1차전 홈에서 경기를 치른 울산은 가와사키를 2:0으로 누르며 승리를 챙겼다.
4강에 올라갈 수 있는 고지를 선점한 울산은, 2차전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변을 겪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가와사키가 승리를 거둡니다!』
『아, 정말 아쉽네요. 울산 선수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요. 가와사키가 너무 잘했네요.』
『가와사키 선수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기뻐합니다.』
2차전에서 3골을 터트린 가와사키가 역전의 기적을 썼다.
지난 시즌 디펜딩 챔피언을 꺾은 가와사키는 4강에 진출한 기쁨을 만끽했다.
결국 4강전은 한일전으로 형성되었다.
동·서아시아로 나누어서 경기를 치르는 AFC챔피언스리그에서 4강전은 사실상 지역 1등을 가리는 구간이기도 했다.
여기서 승리한 클럽이 최종적으로 동·서아시아의 최고 클럽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4강전은 K리그가 스플릿라운드를 치르는 기간에 펼쳐졌고, 이 경기의 승자는 12월에 예정되어있는 결승전에서 우승트로피를 두고 서아시아 클럽과 격돌한다.
* * *
스플릿라운드(파이널라운드)에 돌입하면서, 일정이 발표되었다.
“우리 일정 왜 이러냐.”
“아, 이건 좀…….”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수단과 프런트 직원들 모두 반응이 떨떠름했다.
*(H) : Home (A) : Away
34R 서울 (H)
35R 수원 블루 (A)
36R 대구 (H)
37R 울산 (A)
38R 전북 (H)
상위스플릿 막차를 탄 서울과 대구를 포함해서 정해진 일정은 우리에게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의도한 것처럼 보이는 대진표였다.
“사실상 이번 시즌 리그 우승의 여부가 우리팀 손에 달리게 된 거 아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잘하면 우리도 우승 가능해.”
“그렇기는 하지만 진짜 될까?”
산술적으로 우리가 우승할 가능성은 존재했다.
현재 1위 전북과 승점 2점 차이로 리그 3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2위 울산은 전북에게 승점이 1점 뒤지고 있었다.
만약 3팀이 모두 36R까지 이겼을 경우,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울산은 마지막에 누구하고 붙냐?”
“서울하고 붙는데.”
“울산도 만만치 않겠는데? 서울이 최근 상승세잖아.”
“어, 이태수 선수가 은퇴하고 자극 많이 받았던 모양이더라. 확 치고 올라오던데?”
중하위권을 오고가던 서울 드래곤즈는 스플릿라운드 경기 전까지 무려 5연승을 거두는 괴력을 선보였다.
그런데 37, 38R에서 서울이 상대하는 두 팀이 전북과 울산이었다.
“우리하고 서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승 여부가 싹 갈리겠구만.”
“여기에 전북의 아챔 결과도 영향을 받겠죠.”
“아, 그러네. 개네 4강전 치러야지?”
전북은 아챔 일정이 남아 있었다.
이 경기 결과에 따라서 전북이 남은 리그 경기에 받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잘하면 우리가 우승할 수도 있겠는데?”
“오오.”
은근히 우승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샴페인을 터트릴 수는 없었다.
“이미 우리는 이번 시즌에 목표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욕심내지 말고 지금 상황에 집중합시다.”
“네!”
구단주인 내 말에 직원들도 그제야 들뜬 기분을 내려놨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플릿라운드 첫 경기.
우리는 원하지 않은 결과물을 받아들여야 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1:2 서울 드래곤즈】
스플릿 전까지 5연승을 기록하던 서울이 우리마저 꺾어 버렸다.
승격 후 첫 상위 스플릿을 겪은 홈팬들은 기대와 다른 상황에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우리가 희생양이 될 줄이야.”
다행히 순위 변동은 없었다.
선두 그룹을 형성하는 1, 2, 3위의 순위 격차가 컸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차이냐?
우리는 1승만 거두어도 3위를 확정하는 상황이다.
그 말은 1승만 거두면 다음 시즌 AFC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을 얻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서울에게 패한 우리는 이를 갈았다.
전북과 울산은 각각 대구와 수원 블루에게 승리를 거두며, 더 멀리 달아났다.
1위와의 승점 차이가 단숨에 5점으로 벌어졌다.
이렇게 되면 우승 경쟁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승보다 AFC챔피언스리그 티켓 확보를 현실적인 목표로 잡고 있었다.
“다음 경기를 반드시 이겨서 내년에 아챔 한번 가 보자!”
“네!”
곽찬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이 선수들의 사기를 복돋았다.
나는 구단주로서 그런 선수단에게 힘이될 수 있는 무언가를 할 필요를 느꼈다.
“AFC챔피언스리그 본선티켓을 따면, 1인당 보너스 3억씩 드립니다!”
“우와아아아아!”
곽찬구 감독이 격려했을 때 나왔던 함성보다 더 큰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곽찬구 감독도 선수들 사이에서 함께 스파르타 병사처럼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역시 돈의 힘은 대단하다.
그리고 이 효과는 바로 다음 경기에서 즉시 나타났다.
『박형우가 멀티골을 기록합니다! 고양이 수원 블루를 상대로 2:0을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고양도 사상 첫 AFC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고양은 아직 AFC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적이 없는데요! 오늘 승리하면 3위 확정과 동시에 내년 아챔 본선 진출이 가능합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오늘 경기에서 유독 이를 악물고 뛰는데요! 역시 아챔 진출이 간절해서겠죠?』
결국 우리는 팀에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역사적인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아! 경기 끝났습니다! 고양이 수원 블루를 3:1로 누르고 3위를 확정짓습니다!』
우와아아아아!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필드에 있는 선수들과 벤치에 있던 코칭스태프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기뻐했다.
수원까지 원정 온 고양의 팬들도 포효하며 기뻐했다.
구단 역사상 정규 시즌 최고 순위인 3위 달성과 동시에 사상 첫 AFC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확정한 나는,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안녕하세요. 고양 유나이티드 지태훈 대표입니다.
제가 부임했던 2025년 이후, 우리 구단은 사상 첫 K리그1 3위 기록과 2028 AFC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고양을 사랑해 주시는 팬 여러분들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는데요. 남은 스플릿 라운드 잘 치르고, FA컵에서도 좋은 결과 만들 수 있도록 저희 선수들과 프런트 모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양의 자랑스러운 팬 여러분들 계속해서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아 작성한 장문의 감사 자필 편지를 본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갓태훈 대표님 사랑합니다!
-진짜 우리 구단이 최곱니다! 유럽 팀 부럽지 않습니다! 고양 최고!
-고양이여~ 영원하라~
-살면서 우리팀이 아챔 한번 나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결국 이루었네요. 3위 확정 짓는 장면 현장에서 보고 펑펑 울었네요.
-다음에는 우승입니다! 우리가 고작 3위로 만족할 팀입니까! 이제 우승 노려봅시다! VAMOS 고양!
-너희 뒤에는 우리가 있다! (고양 서포터스 일동)
-죽을 때까지 고양을 응원하고 고양에 미쳐 살겠습니다!
-진짜 자랑스럽다! 이런 팀이 있는 지역에 사는 내가 뿌듯하다!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본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도련님, 울어요?”
“아, 안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