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K리그가 막 스플릿 시스템에 돌입하려고 할 때쯤, 우리에게 한 통의 연락이 날아왔다.
그것도 저 멀리 유럽에서.
“대표님. 이번에는 프랑스입니다.”
“네? 갑자기 프랑스라뇨.”
“이번 겨울에 한판 붙자고 연락 왔습니다. 리옹하고 보르도에서요.”
“……!”
유지원 부장의 보고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 유럽에서 친선매치를 진행하자고 먼저 선제안이 온 것이다.
정확히는 작년에 이어 2번째였지만.
“리옹하고 보르도가 저희를 유심히 지켜본 것 같습니다. 유럽 쪽에서 저희와 친선매치에 대한 소문이 좋게 도는 것도 한몫한 것 같고요.”
“그래요? 어떻게 도는데 이렇게 유럽 팀들이 적극적으로 먼저 제안하죠?”
“현지에서 활약하는 에이전트 통해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고 싶은 구단 입장에서 저희와 친선매치를 치르면 꽤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도대체 효과를 얼마나 보길래…….”
“작년에 저희하고 경기를 치렀던 레버쿠젠하고 도르트문트의 경우 아시아 쪽에서 찾아오는 방문객이 30% 이상 늘었다고 하네요.”
“…….”
“뭐, 그쪽이야 저희와 친선매치를 치르기 전부터 원체 유명한 팀들인 것도 있지만, 그래도 30%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그렇겠네요.”
최근 3년 사이에 우리가 받는 관심이 상상 이상이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프로축구연맹은 2020년부터 36개국으로 K리그 중계권 판매에 성공했다.
이후 작년인 2026년부터 그 2배인 72개국에 판매가 되었다.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쪽이 주 시청자 층이었고, 북미와 유럽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가 앞서 치른 친선경기도 프로축구연맹을 통해서 해외 중계가 이뤄졌는데, 우리의 경기를 시청한 동남아시아 쪽에서 상대한 유럽 팀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증가한 방문율의 절반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관광객들이었다.
특히 2017년부터 한국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는 한국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현재는 베트남 외에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한국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좋은 성적을 내거나, 이 국가들의 선수가 K리그로 이적해 주전으로 뛰면서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 경쟁력이 상승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그래서 축구에서만큼은 한국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K리그에 관심을 가지는 축구팬도 제법 많았다.
현재 아시아 최강 클럽이 모여 있는 곳이 한국이었다.
오랜 시간 AFC 무대를 휩쓴 K리그 클럽에 관심이 없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만 유독 유럽 리그 쪽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다른 국가에서는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유럽 팀에게는 큰 홍보가 되는 셈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친선경기를 보고 현지까지 찾아간 이들도 많다고 한다.
“흠. 초청비는 얼마나 준다고 합니까?”
“일단 작년보다 높습니다.”
“오?”
“들어보니까 이미 리옹하고 마르세유가 우리하고 친선전을 했던 팀들에게 얼마 줬는지 문의를 해본 모양입니다.”
“꽤 철두철미하네요?”
“그만큼 저들에게 절박하다는 거겠죠. 아시겠지만, 리옹과 보르도는 저희가 그간 치렀던 팀들하고 비교하면 아시아에 관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니까요.”
“흠. 그렇죠.”
나는 조금 생각했다가 말했다.
“우선 친선전은 진행하는 것으로 하죠.”
정규리그는 이제 5경기가 남았고, FA컵 결승전이 남았다.
이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서 우리는 다음 시즌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있었다.
“AFC챔피언스리그 출전 대비해서 수준 있는 팀과 스파링을 겨루면 좋겠죠. 지금까지 유럽 팀들과 스파링을 해서 나빴던 적은 없었으니까요.”
비시즌 기간에 유럽 팀들과 원정 경기를 치른 다음 시즌을 치르면 계속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유럽 팀과의 대결은 가장 가성비 있는 투자라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비시즌 기간에 치를 친선경기는 리옹과 마르세유로 진행하겠습니다.”
“세부 계획은 회의를 통해서 세우는 것으로 하죠.”
“네. 그리고 저희에게 또 제안이 온 팀이 있습니다.”
“음? 또 있다고요?”
알고보니 친선전을 제안한 팀이 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기가 좀 달랐다.
“유럽 리그의 시즌이 끝나는 내년 여름에 저희 홈에서 친선전을 치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어느 팀인데요?”
“맨체스터시티입니다.”
“네!?”
맨시티라면 미하엘 코치가 있었던 그 팀이 아닌가.
“콘라드 감독의 맨시티가 지난 시즌 우승을 차지하고, 이번에도 독보적인 질주를 하면서 2연패를 노리고 있죠.”
“저도 봤습니다. 과르디올라 감독 이후에 살짝 기울어지는 것 같았는데, 콘라드 감독이 엄청 잘해주더군요.”
미하엘 코치 덕분에 나도 뜨문뜨문 맨시티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아마 저희에게 좋은 상대가 될 거라고 봅니다. 비록 저희 입장에 시즌 중간에 일정을 따로 빼서 진행해야 하기는 하는데, 맨시티라는 브랜드 파워와 무엇보다 강철인 선수를 생각하면 이후 따라올 결과들이 매력적이죠.”
“하긴. 거기에 강철인 선수도 있죠.”
발렌시아에서 데뷔한 강철인은 20대 초반에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맨시티로 이적하고 나서 제대로 포텐이 터진 케이스다.
맨시티의 레전드이자 벨기에 출신의 케빈 데브라위너 이후 최고의 미드필더라는 평가를 받으며 리빙 레전드 대우를 받고 있었다.
맨시티가 2연패를 노릴 수 있었던 것도 강철인의 무시무시한 활약이 있었던 영향도 있다.
“강철인 선수가 작년에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이었죠?”
“네.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도움왕이었죠. 무려 19개 도움을 기록했고요.”
무시무시한 기록이다.
올해도 벌써 14개의 도움을 기록하면서 압도적인 도움 선두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골도 없는 게 아니다.
필요하면 득점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에 이번 시즌에만 벌써 8골을 넣었다.
현재 강철인의 시즌 최다 골이기도 했다.
그런 활약 때문에 한국에서 강철인에 대한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슈퍼스타의 탄생은 언제나 대중들을 환호하게 만드는데, 이런 슈퍼스타가 우리 팀에 방문한다면 엄청난 티켓파워를 보여줄 것이다.
“일단 중간에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 해당 건은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것으로 하죠. 중간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맨시티 측에도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부탁드리죠.”
* * *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한 고양 유나이티드는 당당하게 상위 스플릿에 안착했다.
이미 올해 목표했던 것보다, 큰 성공을 한 고양 유나이티드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이렇게 좋은 시절이 있었던 적이 있나 싶네요.”
“그러게. 내 프로커리어 중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야.”
훈련을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김지우와 박지원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처음 대표님이 부임할 때만 해도, 저는 이 팀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누구나 같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도 진심으로 계약 끝나면 이적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죠. 뭐, 이제 떠나고 없으니까 하는 말인데, 임태무 감독하고 황석호가 팀 개판 만들 때 솔직히 열 좀 많이 받았거든요.”
“하긴. 나도 그랬어. 임태무 감독이 독불장군에 특정 선수 편애가 심했지. 그 옆에서 총애받던 황석호는 눈치 없는 놈이었고.”
“거기에 실력도 없었죠. 그러고 보니 그 두 사람 지금 뭐한데요? 형은 소식 알아요?”
“글쎄…… 올해 초에 들은 얘기로는 임태무 감독은 라오스에 무슨 클럽 팀 맡으러 떠났다고 하고, 석호 개는 일본 가서 좀 좋게 지내나 싶다가 금방 밀려 나갔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두 사람 모두 도망치듯 구단을 떠나더니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뭐, 대가를 치른 거죠.”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도 지금 곽찬구 감독님은 정말 좋은 분이시더라고요. 능력도 있고, 생각보다 소통도 잘 되고.”
“어, 상대팀 감독으로 계실 땐 되게 깐깐한 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해결책도 주시더라.”
곽찬구 감독은 소통을 중요시하며, 언제든지 선수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감독이 있기에 선수들도 감독을 의지하고 더욱 편하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 곽 감독님 중국 가려다가 지태훈 대표님이 붙잡아서 여기 온 거라며?”
“맞아요. 곽 감독님도 예전에 저한테 해준 말씀도 있으셨고요.”
“어떻게 보면 신의 한 수네. 지금 중국 상황 보면 답이 없잖아.”
“그쵸. 매년 파산하는 구단 나와서 해체되고 임금체불도 겪고. 막말로 스스로 ‘대국’이라는 칭하는 놈들이 하는 행동은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어휴, 그런 말 하면 안 돼. 지금 우리 근처에 중국 좋아하시는 분이 들으면 경을 칠라.”
“아, 몰라요. 들으라고 해요. 설마 형, 친중?”
“그건 아니고. 친중이었으면, 내가 중국 클럽에서 총연봉 100억대 오퍼 받았을 때 바로 갔지.”
“어? 그래요? 박정훈이는 친중 아니던데? 설마 정훈이 친중이라고 까는 건가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박정훈이가 누군데?”
“아, 거, 왜 있잖아요. 예전에 나하고 비슷한 시기에 유럽리그 갔다가 중국리그 간 친구. 지금은 은퇴했지만.”
“뭐야, 그 친구? 아니, 그 친구 벌써 은퇴했어?”
“네. 작년에 중국에서 은퇴했는데. 몰랐어요?”
“별로 친하지도 않고, 소속팀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겠어.”
“하긴. 뭐, 어쨌든 그 친구는 중국 가서 연봉 오지게 받는 주제에 엄청 까더라고요.”
“그건 일반 직장인과 같은 상황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우리도 소속팀에서 연봉받지만, 마음에 안 들면 엄청 까대잖아.”
“뭐, 듣고 보니 그렇네요.”
두 사람은 하하호호 하며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형이랑 얘기하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네요.”
“나도 그래. 그리고 솔직히 팀 내 고참이니까 얘기할 사람도 마땅치 않다.”
“저도 그래요. 형하고 형우 아니면 얘기할 사람 없어요. 아, 현우가 그래도 좀 어른스러워서 가끔 얘기 통할 때가 있고.”
“그래?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형우는 오늘 바쁘데?”
“형우, 오늘 어머니 생신이라고 훈련 끝나자마자 갔네요.”
“아, 맞다. 맞다. 오늘 어머님 생신있다고 했지. 아오, 내 기억력 보소.”
“하하. 형도 늙었나 보다.”
“뭐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지우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형,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요?”
“어? 뭔데?”
“형은 계속 고양하고 함께 가실거죠?”
“어. 가야지. 최근에 재계약도 했고. 너도 재계약하지 않았어?”
“네. 했죠. 형하고 같이 2년.”
최근 진행한 재계약을 통해 두 사람 모두 소속팀과 2년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연봉도 큰폭으로 올랐고, 양쪽 모두 대체로 만족스러운 옵션들로 채웠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저 사실…….”
“……?”
“은퇴 생각하고 있어요.”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