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스즈키 안도.
이번 시즌을 앞두고 고양 유나이티드에 합류한 일본인 선수였다.
주력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팀 빌드업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었다.
볼을 소유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어지간한 몸싸움에는 밀리지 않은 피지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고양 유나이티드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이유에는 스즈키 안도의 보이지 않은 활약도 분명 존재했다.
물론 늘 조용한 것만은 아니다.
올 시즌 그가 기록한 공격포인트는 1골 4도움.
그의 데뷔골은 생각보다 늦게 나왔지만, 생각보다 꽤 임팩트 있는 데뷔골이었다.
『박형우의 슈팅! 하지만 공은 전북의 수비수에게 막힙니다!』
주말 리그 경기에서 전북과 경기를 치른 고양 유나이티드.
전반기에 원정에서 경기를 치렀던 고양은 이번에는 홈에서 전북을 맞이했다.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두 팀의 대결이었기에 팬들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이끌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경기는 상당히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전북은 디팬딩 챔피언답게 원정 경기임에도 화끈한 공격을 선보였다.
고양은 몇 번이나 큰 위기를 맞이했지만, 골키퍼 박지원과 수비수 라시모프와 주장 김지우의 활약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 고양에게도 여러 번 기회가 왔지만 생각보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후반 26분에 고양에게 기회가 왔다.
『양 팀 경기가 상당히 팽팽하게 진행하는 가운데 아직 스코어는 0:0입니다.』
『오늘 두 팀 공격과 수비 상당히 좋은데요. 이런 상황에서 누가 실수하느냐. 아니면 누가 한 방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뒤집힐 수 있습니다!』
『스즈키 안도가 공을 잡습니다.』
『스즈키 선수, 패스하나요!』
『측면으로 뛰어 들어가는 나탈이 있습니다!』
전북의 하프스페이스 지역에서 공을 잡은 스즈키 안도.
스즈키가 공을 잡는 상황에 맞춰, 근처에 있던 나탈이 전북 선수 한 명을 달고 측면으로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스즈키는 그런 나탈에게 바로 패스하지 않고, 상대 골문 쪽을 주시했다.
‘해볼 만한데?’
나탈의 움직임에 모두 스즈키가 패스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지역 방어를 하던 전북 수비수들이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허술한 모습을 보였다.
아주 절묘하게 슈팅 각도가 나온 상황!
스즈키는 자신 있게 슈팅을 때렸다.
『스즈키, 때립니다!』
『어어어어-!』
힘차게 때린 슈팅이 위로 올라가다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아래로 뚝 떨어졌다.
전북의 모든 선수들이 당황했다.
그들 모두 스즈키가 슈팅을 때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북의 골키퍼 성재문은 골문 앞으로 조금 나와 있던 상황이었다가 위에서 뚝 떨어지는 공을 보고 다급하게 팔을 뻗으며 뛰어올랐다.
하지만 공은 절묘하게 골키퍼의 등 뒤로 떨어진 다음 바닥을 한번 튕기고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갑니다! 스즈키 득점입니다!』
『이야아아! 이게 들어가나요! 세상에!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골입니다!』
『리플레이 한번 보실까요? 지금 느린 장면으로 나오는데요! 아! 볼이 드롭이 걸렸네요! 저렇게 공이 떨어지면 잡기 힘들어요! 안 그래도 성재문 골키퍼도 골문하고 거리가 조금 있었던 상태였어요!』
『드롭볼로 득점을 만든 스즈키 선수의 판단이 아주 좋았던 장면입니다!』
스즈키는 카메라 앞으로 달려가더니 곧 새총 세리머니를 펼쳤다.
우라와 레즈 시절부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셀레브레이션이었다.
『마침내 K리그 데뷔골을 만드는 스즈키 안도인데요! 데뷔골을 기록한 상대 팀은 바로 전북입니다!』
『팀에게 아주 중요한 골이 될 수 있는 골을 만든 스즈키 선수입니다!』
데뷔골을 터트린 스즈키의 득점 이후 고양의 기세가 한껏 뛰어올랐다.
반면 전북은 어려운 경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스즈키는 득점 이후에도 활약을 이어갔다.
『더글라스의 길목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스즈키!』
『이야~ 저거 보세요! 저렇게 공만 딱 뺏어오는 저 스킬! 저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닙니다!』
상대가 누구랄 것도 없이, 볼을 커팅하고 동료에게 다시 공을 공급하는 스즈키의 활약 덕분에 고양은 끊임없이 공격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고양은 전북이라는 거함을 잡는 이변을 일으켰다.
삑! 삐익! 삑!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립니다! 고양이 홈에서 전북을 1:0으로 잡아냅니다!』
『자, 이렇게 되면 이제 선두 싸움이 더 치열해지겠네요! 조금 이따가 진행할 울산과 대구의 결과를 봐야 하는데요, 지금 결과만 놓고 보면, 전북이 득실차로 1위를 유지하지만, 울산이 1경기 덜 치른 상태입니다. 그리고 3위 고양이 승점 2점! 단 2점 차이로 좁혔습니다!』
『이야, 순위 싸움 엄청 치열하네요. 여기서 막판에 고양이 반전을 일으킬까요?』
『스플릿 라운드까지 앞으로 5경기 정도가 남은 상황인데요. 스플릿 이후까지 생각한다면 앞으로 딱 10경기 남았습니다. 이 안에 고양도 충분히 반전을 노릴 수 있다고 봅니다.』
『고양이 진짜 대단하네요. 승격 첫 시즌에 지금 우승 노리고 있거든요? 기록을 좀 살펴봐야 하는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2017년 제주, 2018년 경남 이후 그런 팀이 없었거든요? 지금 고양이 10년 만에 승격 첫 시즌에 우승 경쟁하고 있네요.』
『맞습니다. 앞선 두 팀은 우승까지는 실패했지만, 지금 고양은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기대를 좀 해보겠습니다.』
『네, 그럼 저희 중계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캐스터 이형욱, 박재형 해설위원님과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경기에서 활약한 스즈키 안도는 그 주의 경기 MVP에 선정됐다.
MVP로 선정된 기쁨을 누리던 그에게 나는 뜻밖의 선물을 준비했다.
* * *
㈜요를이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리구슬’이라는 작품이 있어서였다.
유리구슬은 글로벌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글로벌 수익 1조를 기록했다.
역대 한국 작품 중에서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고, 이 매출은 웹툰과 애니메이션, 시즌제 드라마 제작과 굿즈 제작 등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유리구슬의 원작자에 관심도 컸다. 하지만 원작자는 미디어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개인 SNS 활동도 거의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원작자가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네, 대표님. 도착하셨나요? 네. 저는 거의 다 왔어요. 네. 앞에서 뵙죠.”
노란색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여인이 누군가와 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 왔다.”
고양 유나이티드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 도착한 여인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햇빛이 그녀를 비췄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이 여인은 흰색 브이넥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선글라스와 손목에는 고급 시계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에는 명품 숄더백을 메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남자가 다가왔다.
“작가님!”
“아, 대표님~”
작가라고 불린 여인을 향해 요를의 대표 신성한이 환한 얼굴을 드러냈다.
“잘 지내셨죠?”
“저야 작가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죠. 작가님은 별일 없으셨죠?”
“저도 잘 지내고 있죠. 차기작 구상하면서요.”
“오! 차기작이라니! 기대됩니다!”
진심으로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신성한을 향해 여인도 작게 미소를 드러냈다.
그러다가 신성한 옆에 있는 어떤 남자를 보고 의아해했다.
“이분은 누구시죠?”
“아! 이분은 이번에 저희가 추진하고 있는 기획 작품을 써주실 작가님입니다. 본명은 하남수 님이시고요, 필명은 ‘축구공’ 작가님입니다.”
“그렇군요.”
하남수는 눈앞에 미인을 보고 쭈뼛쭈뼛하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축구공 작가입니다.”
그런 그에게 신성한이 여인을 소개했다.
“축구공 작가님, 여기는 기예진 작가님입니다. 아시죠? 유리구슬.”
“헉!”
하남수는 입을 떡하고 벌렸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유리구슬 작가를 실제로 만나서 깜짝 놀랐던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미인인 작가님이셨다니!’
그가 놀라거나 말거나 기예진 작가가 그에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기예진이에요.”
“아, 네넵! 영광입니다! 작가님!”
“호호. 그러지 마세요. 저 별거 아닌 사람이에요.”
“벼, 별거 아니긴요! 작가님이 별거 아니면 저는……!”
그때 신성한이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자자, 저희는 일정이 있으니 얼른 이동해야 합니다~ 가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죠.”
* * *
나는 구단 사무실에서 스즈키와 신성한 그리고 요를의 작가들하고 미팅 시간을 가졌다.
“세상에, 유리구슬 쓰신 작가님께서 이렇게 미인이실 줄이야.”
“저분이 유리구슬 작가님이시라고!?”
“와~ 엄청 예뻐!”
유리구슬의 원작자인 기예진 작가의 등장에 미팅룸 바깥이 조금 소란스러웠다.
직원 중에서도 유리구슬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기예진 작가의 등장에 다들 몰려와서 몰래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조금 시끄럽죠?”
“괜찮아요.”
기예진 작가는 괜찮다는 듯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은 모시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스즈키 선수 때문입니다.”
일전에 내가 스즈키 선수를 영입할 때 내건 약속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리구슬의 원작자와 만나게 해주는 것!
한국 작품 오타쿠인 스즈키는 기예진 작가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특약 옵션 때문에 우리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래서 이 약속을 반드시 시즌 중에는 지켜줘야 했다.
다행히 신성한 대표와 기예진 작가 모두 만남을 승낙해줘서 문제가 없었다.
“여응과응이무니다.”
조금은 어색한 한국말로 영광이라고 말하는 스즈키.
그런 스즈키에게 기예진 작가가 웃어 보이며 감사했다.
“스즈키 선수님이 제 작품을 애독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감사했어요. SNS에 제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올린 게시글도 봤고요.”
“그렇스무니까?”
“네. 제가 SNS에 게시글은 잘 안올려도 눈팅은 많이 하거든요.”
“여응과응이무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대표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거예요? 원래 서로 아시는 사이였나요?”
내 질문에 신성한이 대답하려다가 갑자기 끼어든 기예진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대표님이 제가 무명 시절 때 저를 컨택해주셨어요!”
“네? 아, 그랬군요.”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초콜릿스테이지에서 무명으로 연재하던 저를 이렇게 만들어주셨으니까요!”
처음과 달리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하는 기예진 작가의 모습에 나는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곧 그녀도 자신이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깨닫고 황급히 수습하려고 했다.
“어, 음. 그러니까 이건 제가 대표님에게 너무 고마워서 그만.”
“하하! 작가님께서 대표님을 향한 마음이 어떤지 잘 알겠네요. 누군가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행복하죠!”
나에게도 믿음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기예진 작가도 같은 경험을 겪었던 것 같았다.
“사실 대표님하고 저는…….”
곧이어 듣게 된 이야기지만, 기예진 작가는 무명 시절에 상당한 고생을 했다고 한다.
20대에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집안이 빚더미에 휩싸였다고 한다.
수십억이나 되는 빚에 짓눌린 그녀는 20대 내내 하루에 알바를 3~4개씩 하면서 힘든 삶을 보냈다.
그러던 그녀에게 웹소설은 힘든 삶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아주 힘든 상황에서도 시간을 내서 그녀만의 세상을 만들어갔다.
그러던 중 막 요를을 설립했던 신성한 대표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는 그녀의 실력을 단숨에 눈여겨보고 상당한 계약금까지 손에 쥐여 주면서 계약했다고 한다.
그 계약금이 대출까지 받아서 지불한 돈이라는 것을 그녀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알게 됐다.
그렇게 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인 유리구슬이 세상에 선보이면서 그녀의 인생은 완벽하게 달라졌다.
“그 당시에 대표님이 저에게 주신 믿음이 너무나 고마웠어요. 지금도 고맙고요.”
“에이, 작가님이 다 잘하셔서 좋은 결과가 나온 거죠. 저는 딱히 뭘 한 게 없습니다.”
“아니에요! 대표님은 제 인생의 은인이에요!”
그녀의 나이 34세.
이제야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준 신성한 대표는 그녀에게 있어 인생의 은인이었다.
그 모든 상황을 듣게 된 나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네요.”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만의 사연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사연에 스스로 묻어 버리는 사람도 존재한다.
‘회귀 이전에 내가 그랬지.’
기예진 작가를 보면서 나는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게 됐다.
동시에 신성한 대표가 사람 보는 안목이 좋다는 것도 다시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신성한 대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저분은 누구시죠?”
그제야 우리 모두 그 사람의 존재를 눈치챘다.
신성한 대표가 허둥지둥 그 사람을 소개했다.
“아! 저번에 보내드렸던 원고 있지요? 그 작품을 만드시는 축구공 작가님입니다!”
“아!”
신성한의 소개에 머쓱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는 축구공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