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오셨습니까. 회장님.”
“아아. 한국에서 생활은 어떤가. 알베르토.”
“배려해 주신 덕분에 편안합니다.”
“다행이군. 최근 한국에서 판매율이 늘었더군. 자네 덕분이야.”
“감사합니다.”
라세라티을 이끄는 풍채 좋은 거구의 남자, 잔루이지 회장이 직접 한국까지 찾아왔다.
70대의 나이에도 상당한 덩치를 지닌 그는, 말단사원에서부터 회장까지 오른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오른팔이 알베르토이기도 했다.
“한국은 말이야. 올 때마다 아~주 좋은 곳이야.”
“그렇습니까?”
“저 푸른 하늘 밑에 있는 산들을 봐. 이탈리아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 있어. 그리고 여기에 사는 사람들을 봐. 저 건물들하고. 이게 과연 전쟁을 치렀던 나라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야.”
지안루이지가 태어났을 때, 한국은 한창 6.25 전쟁을 겪고 있을 때였다.
어린 시절 그가 봐왔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였다.
그런데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것을 바꿔놨다.
“이토록 대단한 나라가 어디에 있나? 지금은 대부분의 나라가 우러러보고 있지 않나?”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최고의 국가로 오를 때까지, 그들의 엄청난 성장력을 지켜본 지안루이지 회장은 한국에 대한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알베르토. 한국 시장은 아주 중요해. 자네의 역할이 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약속은 잡았나?”
“네. 안 그래도 가능하다고 연락받았습니다.”
“잘 됐군. 언제쯤 보기로 했나?”
“2일 차 저녁에 보기로 했습니다.”
“흠. 시간도 적당하군. 그래, 그럼 맞춰서 준비하도록.”
“네.”
회장이 만나려는 인물이 과연 누구인 것일까?
마침 회장이 탑승한 차가 도시 안을 지나갈 때, 그의 눈에 무언가가 사로잡혔다.
“호오. 제대로 걸어 놨구만.”
“마음에 드시는지요?”
“아주 좋군.”
도시 한복판에 커다란 전광판에는 포르테27 보닛에 앉아 있는 지태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 * *
“대표님, 주요 선수들의 재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오, 잘됐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지원 부장의 보고에 나는 환한 표정을 드러냈다.
계약기간이 얼마 안 남은 선수들의 재계약이 무난하게 완료된 만큼 한동안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조금 걱정했던 석종호 선수도 재계약에 사인했습니다.”
“오, 다행이네요. 나탈 선수는요?”
“그게…… 아무래도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 좀 아쉽네요.”
“아무래도 가족 일이 걸려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그럼 시즌이 끝나고 브라질로 돌아간다고 하나요?”
“네. 이미 에이전트를 통해서 브라질 팀을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아쉽네요.”
나는 잔뜩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탈은 내가 부임할 때부터 뛰고 있던 선수였다. 그래서 나름 애정이 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언젠가는 구단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토록 빠른 시일이 될 줄은 몰랐다.
“나탈 선수도 상당히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혹시나 나중에라도 인연이 되면 다시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다른 선수들도 알고 있습니까?”
“아직 모를 겁니다. 하지만 금방 다 알겠죠.”
“어쩔 수 없죠. 그럼 오피셜을 냅시다.”
오피셜을 내자는 말에 유지원 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 시즌이 안 끝났는데 오피셜을 내도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미리 오피셜을 발표하는 게 팬들에 대한 예의일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해서 발표하겠습니다.”
그렇게 주요 선수들에 대한 재계약 완료 오피셜과 함께 나탈에 대한 소식도 함께 전했다.
【오피셜】고양UTD 나탈, 계약 만료 후 팀 떠난다.
나탈이 떠난다는 소식에 고양 팬들은 상당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때 고양이 용병 농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때, 모처럼 제 몫을 해주던 선수가 나탈이었다.
지금은 라시모프, 스즈키, 사무엘 등 괜찮은 외국인 선수들이 존재했지만, 불과 2~3년 전만 해도 나탈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탈이 떠난다고 발표가 나오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나탈도 개인SNS를 통해서 아쉬움과 미안함을 드러냈다.
나탈(Natal13) : 안녕하세요. 나탈입니다. 이렇게 팀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해드려 무척 아쉽고 죄송합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동안 저는 정말 팬들로부터 많은 환호를 받았습니다. 감히 생각할 수도 없을만큼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시즌 동안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사무엘과 통역사로부터 도움을 받아 직접 자필로 쓴 편지를 공개했다.
팬들은 그런 나탈의 편지에 감동과 함께 아쉬움이 더욱 컸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팀 동료들도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탈, 이렇게 떠난다니까 너무 아쉽다.”
“안 가면 안 되냐?”
“네가 가면 우리 측면은 누가 맡아주냐.”
아쉬움을 드러내는 동료들의 모습에 나탈은 고마움을 느꼈다.
“모두들 고마워. 비록 우리가 함께 뛸 날이 많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보자. 나도 최선을 다할게.”
“그래! 나탈 말대로, 우리 최선을 다하자. FA컵 우승이라도 해야지!”
“맞습니다!”
나탈의 일은 선수들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주 주말 경기에서 나탈은 대활약을 펼쳤다.
『나탈 골입니다! 이번 시즌 리그 8호골을 기록하는 나탈! 팀의 리드를 안깁니다!』
『이야, 나탈 선수! 오늘 대단한데요! 이런 선수가 떠난다고 하니까 고양은 더 아쉬울 수밖에 없어요!』
『오늘은 나탈의 날입니다!』
나탈은 상대 측면을 뒤흔들면서 다양한 찬스들을 만들었다가 본인이 득점까지 만들었다.
이러한 나탈의 활약 덕분에 팀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여전히 리그 3위를 유지하고 있는 고양은 쾌조의 활약을 이어가고 있었다.
* * *
“지안루이지 회장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 지태훈 대표. 반갑습니다.”
나는 라세라티를 이끄는 지안루이지 회장과 만났다.
얼마 전, 알베르토가 지안루이지 회장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며 자리를 한번 마련하겠다고 연락이 왔었다.
그때는 그저 형식적인 이야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자리를 마련할 줄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지안루이지 회장은 상당한 거구였다. 분명 나이가 많다고 들었는데, 키는 거의 나하고 비슷했고 덩치도 상당히 컸다.
거의 전쟁터에서 활약하는 장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놀라움은 잠깐일 뿐이다.
우리는 라세라티 쪽에서 마련한 통역사 덕분에 원활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지안루이지 회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한국에 젊고 유능한 구단주가 우리 회사의 광고 모델로 데뷔하였는데, 이 늙은이가 무척 궁금해서 말이죠.”
“그러셨군요. 저도 회장님이 궁금했습니다.”
“나를요?”
“네. 지난번에 함께 식사했을 때 알베르토 사장이 회장님에 대해 얼마나 칭찬하던지…… 귀에 딱지가 질 정도로 칭찬하더군요.”
“알베르토가? 허허허. 정말인가?”
그러자 알베르토가 살짝 쑥스러워했다.
지안루이지 회장이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소싯적 축구 선수로 활동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예? 정말입니까?”
내가 깜짝 놀라서 반응하자 지안루이지 회장은 껄껄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알베르토가 설명했다.
“회장님께서는 젊은 시절 지역 4부리그 팀에서 활약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였구요.”
“대단하시네요.”
회장의 과거를 듣고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역 4부 리그인 세리에D라고 해도, 일단 선수로 뛰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비록 지금은 한 기업의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그렇군요.”
“한국 축구도 잘 압니다. 언제였더라……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였지?”
“…….”
“하하하!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그저 축구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한국 축구는 자존심을 긁어놓은 상대나 다름없었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 전에서,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결승 골든볼로 꺾고 8강으로 올라간 일은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계속 이야기되고 있었다.
논란이 많은 경기로 평가받고 있지만, 어쨌든 그 경기도 축구의 일부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한국을 꺾었으니 됐습니다.”
“…….”
“여러모로 한국이 확실히 많이 성장했지. 눈부신 한국의 성장을 볼 때면 가슴이 두근두근 뜁니다.”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네요.”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지안루이지 회장과 계속 대화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그가 친한파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회장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자동차 스폰서 받아볼 생각 없습니까?”
“예? 자동차요?”
“그렇소. 우리 라세라티가 지태훈 대표가 있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정식 자동차 스폰서 회사로 MOU를 맺고 싶다는 뜻이오.”
“……!”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나를 향해 알베르토가 말했다.
“유럽 축구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MOU를 체결한 구단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자동차를 스폰하기도 합니다. 저희도 이미 유명 선수들을 홍보 모델로 쓰거나 몇몇 유명한 축구 구단에 공식 스폰서사로 활동하고 있죠,”
“저희한테 이런 제안을 하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이유라…… 그건 앞으로 고양 유나이티드가 상당한 가치를 지닌 축구팀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오.”
“…….”
“향후 우리가 아시아 시장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탈리아처럼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국가요. 그래서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죠.”
전 세계에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한국은 스스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고, 이미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점유율을 꽉 잡고 있다.
그래서 외국 자동차 기업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세라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고급승용차 판매율은 매년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다면 다른 경쟁사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라세라티는 우리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들이 말한 대로 우리는 최근 대한민국 내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축구팀이었다.
게다가 축구에서 자동차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작용한다.
성공한 축구선수에게 미녀와 고급 시계와 더불어 슈퍼카는 함께 따라온다.
이 룰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제안은 우리에게 상당히 좋은 제안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이 함께해서 우리의 브랜드 가치도 더욱 상승하게 될 것이니까.
“좋은 제안이군요. 그 제안 받아들이죠.”
“아주 훌륭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지 대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드리죠.”
나와 지안루이지 회장이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팀에서 공식 발표가 나왔다.
【오피셜】고양 유나이티드, 라세라티와 MOU 체결. 계약기간 2032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