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35화 (135/272)

135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나와 이태수 사이를 감돌았다.

“누구… 십니까?”

경계심 가득한 이태수의 물음에 옆에 있던 프로축구연맹 관계자가 대신 대답했다.

“아! 저분은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님입니다.”

“지태훈 대표님?”

의문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말했다.

“소식 듣고 왔습니다. 그쪽 아버님이신 이진호 회장님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요.”

상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진호 회장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태수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래서요?”

차갑게 대꾸하는 그의 태도에 순간 나는 말을 잘못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화제를 돌릴 필요가 있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갑니다.”

“오랜 시간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그럴 겁니다. 빠른 회복을 빌겠습니다.”

“…….”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왜 저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푸십니까?”

“그건……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이태수 입장에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금방 자리를 떠났다.

그런 내 뒷모습을 이태수가 말없이 쳐다보았다.

* * *

병실에서 나오자 기다렸던 김 비서와 천지원 부장, 신진호 과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후우. 이태수 선수, 생각보다 되게 성격이 있어 보이더군요.”

“그렇습니까? 몸은 좀 어떻답니까?”

“아무래도 방금 깼으니 멀쩡할 리가 없죠. 시간이 좀 필요해 보입니다.”

“선수는…… 안답니까?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

“글쎄요. 아직 모르는 눈치였던 것 같습니다.”

“흐음.”

우리는 무거운 표정을 드러냈다.

평생 축구 선수로 살아왔던 사람의 모든 꿈이 무너져내렸다.

그것도 본인이 원치 않았던 사고로.

아마 충격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이태수 선수는 극복할 겁니다.”

“네?”

“저는 봤거든요. 그가 어떻게 될지.”

“……?”

이게 꿈이 아니라면, 나는 확실하게 보았다.

이태수라는 사람이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갈지.

‘분명 내가 봤던 것들이 전부 이태수의 미래였다면…… 저 사람은 내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사람이 분명해.’

내가 봤던 그 영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했다.

대한민국 사람이 아르헨티나로 가서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우승을 하지 않나.

그리고 유럽을 제패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월드컵을 우승하는 그런 영상들.

분명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회귀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겪은 나에게는, 어쩌면 나는 엄청난 광경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설마 이 모든 상황이 미래를 위한 모든 과정이었다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김 비서.”

“네?”

“이태수 선수를 주시해. 앞으로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할 건지 다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그날, 나와 이태수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됐다.

* * *

고양 유나이티드의 돌풍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시즌 초반부터 모두의 예상을 깨고 후반기인 현재에도 리그 3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1위 울산과 2위 전북이 승점 동률로 선두를 유지하고, 그 뒤를 승점 5점 차이로 뒤쫓고 있었다.

산술적으로 고양 유나이티드도 충분히 리그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고양 유나이티드의 진가는 FA컵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앞선 라운드부터 상대를 꺾고 8강까지 올라온 고양 유나이티드는, 8강에서 울산을 만나게 됐다.

이미 전반기에 한 번 패배했던 울산을 홈으로 불러들인 고양 유나이티드는 충격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번 8강전 경기 중에서 가장 치열할 거라고 예측했던 고양과 울산의 대결인데요. 어, 지금 상당히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확실히 고양이 홈에서 강하긴 하네요. 울산이 이렇게 전반전부터 밀려버릴 줄은 누가 알았을까요?』

평일 저녁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임시 경기장으로 쓰고 있는 별무리 경기장에는 상당히 많은 홈팬이 자리 잡고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 경기장 한쪽에 있는 전광판 스코어보드에서 충격적인 숫자가 적혀 있었다.

【고양 3:0 울산】

전반전에만 무려 3골을 연달아서 기록한 고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울산이 이렇게 무너질 팀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양에게 운이 좀 따랐다.

『확실히 지난 AFC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호주 원정을 다녀온 피로도가 아직도 남아 있고, 주말에 포항하고 동해안 더비까지 치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다가 부상 선수까지 겹치니까 울산이 많이 힘든 건 사실이네요.』

『반면 고양은 풀 전력이죠. 부상 선수도 없죠, 피로도도 없죠. 주말 리그에서 서울을 4:1로 대파해서 분위기까지 좋고요. 곽찬구 감독도 서울하고 경기를 할 때 일찌감치 로테이션으로 선수 피로도 관리도 확실히 챙겼고요.』

『울산은 동해안 더비에서 로테이션할 겨를도 없었는데, 여러모로 경기 자체가 고양이 좀 더 유리했던 건 사실입니다.』

울산은 어떻게든 경기를 뒤집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했지만, 한번 무너진 분위기를 되살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울산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오세진이었다.

여름 이적 시장 때 울산에서 고양으로 이적해온 오세진은 오늘 폭풍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세진 선수가 오늘 펄펄 날아오르네요.』

『그렇죠.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오세진 선수 입장에서 울산을 떠날 때 그렇게 좋게 떠난 게 아니거든요. 그런 울산한테 ‘봐라! 나 이렇게 잘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네요.』

『오세진 선수는 고양이 오늘 기록한 3골에 모두 관여했습니다.』

1골 2도움.

오늘 오세진이 기록한 공격포인트였다. 하지만 공격포인트는 그저 보이는 수치였다. 오늘 경기 패스 성공률 91%를 달성했고, 전진 패스 12개 중에서 8개를 성공하는 저력을 보였다.

양 팀 선수들 모두 포함해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 오세진의 대활약 덕분에 고양은 울산이라는 거함을 잡을 수 있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고양이 울산을 3:0으로 잡아내면서 준결승전에 진출합니다!』

우와아아아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준결승 진출을 확정한 고양의 홈팬들이 포효했다.

그들은 단순히 승리한 기쁨에 포효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고양 유나이티드가 기록을 세우네요! 2007년에 준결승전에 올라갔던 고양이 무려 20년 만에 준결승전으로 진출합니다!』

『고양으로서는 엄청 기쁘죠! 훌륭합니다! 오늘 고양은 승리할 자격이 있었던 팀이고요! 이제 준결승전에서 누구를 만나죠?』

『오늘 승리한 고양과 방금 같은 시간에 경기를 마친 포항과 수원의 경기에서, 포항이 수원을 1:0으로 꺾고 준결승전을 확정 지었고요.』

『오, 그렇군요.』

『내일 전북과 대구 경기의 승자와  강원과 성남 경기의 승자하고 맞붙게 됩니다.』

『모두 만만치 않은 팀들이네요.』

『그렇습니다. 자, 그럼 오늘 중계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캐스터 이형욱, 박하윤 해설위원과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우리 팀이 준결승전에 올라가는 장면을 현장에서 모두 지켜봤던 나는, 다음 날 고양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고양종합운동장, 이제는 고양더블은행파크로 바뀐 우리 팀 홈구장은 아직 보수공사를 활발하게 진행하는 중이다.

나는 안전모를 쓰고 현장 관계자들과 함께 공사 중인 경기장을 살폈다.

“기존에 있던 트랙은 모두 제거했고, 현재는 해당 공간에 좌석을 추가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건 어느 정도 걸릴까요?”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좌석이 늘어난 만큼 천장 쪽 보수공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 공사가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공사 소음 때문에 현장 책임자의 목소리가 상당히 컸다.

나도 그런 책임자 때문에 덩달아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공사 중에 변수 같은 건 없습니까!”

“아, 예! 없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무리 없이 내년 2월에는 완공 끝납니다!”

“알겠습니다! 무사히 잘 마무리 해주세요!”

“그럼 이제 다른 곳으로 가시죠!”

보수공사는 경기장 내부뿐만이 아니라 외부도 진행하고 있었다.

“기존에 점포로 운영되던 공간이 많이 노후화됐더라고요! 그래서 노후화된 곳은 모두 바꾸거나 아예 제거했습니다!”

고양종합운동장이었던 시절, 이곳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용하던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녹이 슬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여기 바닥 공사는 어떻게 됩니까?”

“네! 바닥도 깨지고 부서진 곳 포함해서 모두 새로 보도블럭 깔고 있고요. 어지간한 곳은 다 진행 끝났습니다!”

“좋네요!”

“네!”

이 현장 관계자님 목소리 정말 크다.

그렇게 둘러봐야 할 곳들은 모두 둘러봤다. 현장 점검을 마친 나는 관계자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그렇게 나는 다음 일정을 위해 움직였다.

“우리 대표님 너무 유명해서 만나보기가 어렵네~”

“손 대표님. 뭐, 그런 섭섭한 말을 합니까?”

“농담이야, 농담.”

손지영과 만난 나는 구단 의류 사업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출시한 유니폼 반응이 상당히 좋더라고.”

“다행이네. 혹시나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손지영이 주도로 만든 벽수그룹의 ‘라 르 테일’은 처음 대중에게 선보이는 스포츠용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호감을 얻고 있었다.

벽수그룹 특유의 인테리어 감성이 스포츠용품으로 넘어왔다는 평가가 많았다.

“유니폼이 예쁘고 실용적이야. 질감도 좋고, 선수들이 뛸 때 말하더라 상대 선수에게 옷깃을 잡혀도 잘 안 넘어지게 된다고.”

“다행이네. 우리 정말 노력 많이 했거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유니폼을 구해서 다 비교 체험했다고.”

“대단하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우리가 보내준 동계용 점퍼는 어때? 패딩하고.”

“어, 그거 되게 좋더라. 안 그래도 그거 수량 얼마나 가능해?”

“수량이야 뭐,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래? 다행이네.”

“왜? 뭐 하게?”

“아니, 이번에 신상품을 먼저 예약구매 형태로 해서 판매하려고.”

“오~”

“그냥 단순히 옷만 판매하는 게 아니고, 그 천 부장님이 말했던데, 리미티드 에디션?  그렇게 해서 팔자던데?”

“아아. 한정판 말하는 거구나. 그런 판매면 우리도 환영이지. 그래서 계획은 있어?”

“어. 천 부장님이…….”

회의를 통해 나온 마케팅팀 이야기를 전달했다. 얘기를 들은 손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아무 문제 없지.”

“어, 그럼 잘 부탁해. 대금은 이야기하면 바로바로 줄게.”

“어. 뭐, 천천히 줘도 돼.”

손지영은 그렇게 말하더니 곧 묘한 표정을 드러내며 나를 쳐다봤다.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흐음~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야?”

“뭐, 뭘?”

“그, 청순가련 비서님은 지금 없는 거지?”

“…….”

갑자기 내 품으로 훅 다가온 손지영.

그녀는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슥 훑듯이 만지며 말했다.

“분명 본인 능력도 있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인재도 많고.”

“…….”

그녀가 살짝 말아쥔 주먹으로 내 가슴을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정말 아깝단 말이지.”

“뭐가 아까운데?”

“그 비서만 없으면 나한테도 기회가 있을 거 같은데…….”

“이상한 소리 계속할 거면 이만 간다?”

“흥. 됐네요.”

손지영은 금방 나하고 거리를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영신그룹하고는 어때?”

“…….”

“아직도 싸워?”

그녀의 말에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손지영도 나와 영신그룹의 관계를 어느 정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손지영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했었다.

“고생이 많구나.”

“고생까지야. 괜찮아.”

“그래도 네가 잘하고 있으니까. 잘 해결될 거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런데 우리 아빠가 묻더라.”

“엉?”

“언제 같이 밥 먹을 수 있겠냐고.”

“글쎄…….”

“아빠가 조금 서운해하시는 거 같더라.”

왜일까.

나와 손지영의 아버지하고 딱히 큰 접점은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상하게 대답할 수는 없겠지.

“조만간에 시간 내볼게.”

“오! 정말이다?”

“어.”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손목에 찬 시계를 봤다.

“나 또 다음 일정 소화하러 가야 해.”

“바쁘네. 어디로 가는데?”

“업체 미팅이지 뭐.”

“혼자서 다 해?”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다 하면 죽지. 안 그래도 김 비서가 없는 것도 나 대신 미팅하러 가서 그래.”

“오, 비서가 대신 미팅도 해줘?”

“어. 우리 비서님이 아주 유능하거든.…… 어쨌든 시간 없다. 김 비서가 나 데리러 온데. 그럼 다음에 보자!”

“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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