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전북과 우라와 레즈의 경기는 생각보다 접전이었다.
황진용의 득점으로 종합스코어 1:1이 된 우라와 레즈도 1골 이상의 득점이 필요했다.
양 팀 모두 득점을 위해 총공세를 펼쳤다.
“조용권! 바로 올려!”
“積極的にシュートして!”
양 팀 감독이 모두 터치라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전술 싸움을 벌였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나왔다.
『하야토가 공을 잡았는데요!』
『공간 내주면 안 되죠!』
『열렸는데요! 아! 결국 실점합니다.』
우와아아아아!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로 전북은 우라와 레즈의 공격수 하야토에게 실점을 당하고 말았다.
골문 앞에서 수비하던 수비수가 발이 미끄러지면서 생긴 빈틈으로, 하야토가 낮고 빠른 슈팅으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골키퍼도 미처 반응하지 못할 슈팅 속도였다.
우라와 레즈의 서포터스들이 환호했고, 하야토가 전북 서포터스 앞에서 세리머니를 펼쳤다.
우우우우-
전북 팬들은 그런 하야토에게 야유를 퍼부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아, 안 돼…….”
“설마 지나?”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전반전은 1:1로 끝났다.
이후 반전을 꾀해야 하는 후반전에서, 격변이 일어났다.
『오늘 득점을 만든 황진용이 프리킥을 준비하는데요.』
『황진용 선수의 프리킥도 일품이죠. 더글라스 선수도 프리킥을 잘 차지만, 오늘 황진용 선수 킥 컨디션이 아주 좋거든요? 기대해볼 만한데요!』
우라와 레즈의 아크 정면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역에서 벌어진 반칙으로 프리킥 기회를 얻어낸 전북이었다.
프리키커로 황진용이 나섰다.
황진용은 인간 벽을 만든 우라와 레즈 선수 앞에서 숨을 고르며 찰 준비를 했다.
그리고 곧 주심의 휘슬과 함께 힘차게 공을 찼다.
팡!
『황진용! 바로 때리는데요~~ 들어갑니다아아아아!』
『이야아아아!』
감각적으로 수비벽을 빠르게 지나친 공이 그대로 골문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황진용의 프리킥 득점에 홈팬들은 난리가 났다.
『자, 황진용 선수. 득점 후 세리머니도 안 하고 바로 공을 들고 센터서클로 가네요!』
『지금 세리머니 할 시간 없습니다! 종합스코어 2:2인데, 8강 가려면 1골 더 필요합니다!』
『2023년부터 원정 다득점 제도는 없어졌지만, 승리한 팀만 8강에 올라가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전북에게 필요한 득점은 단 1골.
그리고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약 20분.
그리고 전북에게는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황진용이 우라와의 수비를 벗겨내고 측면에서 올려줍니다!』
『오늘 황진용 선수 정말 잘해주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크로스를 산드루 선수가 받습니다! 산드루, 그대로 터닝슈우우웃!』
수비 3명을 앞에 둔 산드루의 감각적인 터닝 슈팅이 골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라와 레즈 골키퍼가 손으로 쳐냈다.
『아! 선방입니다!』
『아직 공 살아있죠!』
순식간에 우라와 레즈 골문 앞은 혼전으로 바뀌었다.
득점을 노리기 위한 전북 선수들과 막기 위한 우라와 레즈 선수들의 필사적인 플레이들이 펼쳐졌다.
『황진용! 슛! 아! 또 막힙니다! 이번에는 수비수 몸에 맞았는데요!』
『더글라스! 때려야죠! 슛! 아! 다시 공 나오죠! 슛! 아!』
『또 한 번 황진용인데요! 황진용! 슈우우웃! 어!? 전북 선수들 손을 올립니다!』
『손에 맞았어요! 분명 손에 맞았어요!』
황진용이 때린 슈팅이 우라와 레즈의 요시다 무라의 손에 맞았다.
그걸 본 황진용과 전북 선수들이 PK를 요청했다.
『자, 주심이 VAR과 교신하는데요!』
『이거 VAR 봐야죠! 확인해야 합니다!』
전북 팬들도 작금의 상황을 두고 손을 꽉 쥐고 지켜보았다.
『아! 주심 온필드 리뷰 들어갑니다!』
경기장 전광판 화면에는 [On Field Review]라고 큼지막하게 적혔다.
여러 번 이전 상황을 돌려보던 주심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휘슬을 불면서 우라와 레즈 쪽으로 손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찍었습니다!』
『찍었어요!』
PK가 확정된 순간, 경기장에 있던 모두가 환호했다.
『자, 키커로 누가 나올까요?』
『전북의 PK키커는 더글라스인데요. 어? 황진용 선수가 나오는군요.』
『오늘 혼자서 2골을 기록한 황진용 선수인데요. 여기서 득점하면 해트트릭과 함께 팀의 역전골을 만들 수 있습니다.』
황진용이 키커로 나선 순간, 모든 이들이 그와 우라와 레즈 골키퍼에게 집중했다.
우우우우우-.
우라와 레즈 서포터스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우라와 레즈의 골문이 전북 서포터스 앞쪽으로 바뀌었다.
전북 서포터스들은 황진용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름을 외쳐주었다.
그렇게 긴장된 순간, 주심의 짧은 휘슬과 함께 황진용이 움직였다.
팡!
발끝을 벗어난 공이 왼쪽 구석으로 향했다. 골키퍼도 공이 날아오는 방향에 맞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차는데요! 들어갑니다!』
『이야아아! 오늘은 황진용의 날이네요!』
『황진용이 해트트릭과 함께 역전골을 만들어냅니다!』
『완벽합니다!』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득점을 기록한 황진용은 전북 서포터스가 있는 방향으로 무릎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펼쳤다.
지켜보던 전북 선수들 모두 황진용에게 뛰어가 그를 덮치며 기뻐했다.
홈팬들도 자리에서 방방 뛰며 기쁨을 누렸다.
『이게 바로 축구죠! 경기 모르거든요! 오늘 경기 정말 끝내줍니다!』
『과거에 서울 드래곤즈가 16강전에서 우라와 레즈를 만나서 연장 접전 끝에 대역전을 만들어 낸 그날이 떠오르네요.』
『맞네요. 그렇네요. 그날 경기도 저하고 같이 중계했죠?』
『그렇습니다.』
결국 경기는 황진용의 해트트릭으로 마무리되었다.
『주심이 경기 종료를 알립니다! 전북이 우라와 레즈를 누르고 8강에 진출합니다!』
* * *
경기장에서 나온 나는 속이 뜨거웠다.
그런 나를 향해 천지원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경기 어떠셨습니까?”
“엄청 재밌었네요. 저는 설마 전북이 떨어지나 생각했었거든요.”
“전북이 확실히 저력이 있는 팀입니다. 괜히 최다 우승팀이 아니죠.”
“저런 팀하고 무승부한 우리 팀은 얼마나 잘한 겁니까?”
“우리도 잘했죠.”
그때, 신진호가 끼어들었다.
“경기도 끝났는데, 다 함께 한잔하시렵니까?”
“어, 그거 좋죠.”
비록 다른 팀의 경기였지만, 이런 경기를 직관으로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오늘 사용할 최고의 안주가 준비됐는데 어찌 술을 안 마실 수가 있을까!
“아, 그거 아십니까?”
“네?”
“오늘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황진용 선수 말입니다.”
“네. 오늘 엄청 잘하더라고요. 지난번 경기에서 그런 선수가 있는지는 몰랐는데 말이죠.”
“원래 주전 선수가 아닙니다. 주로 로테이션으로 나오는 선수죠.”
“그래요?”
“네. 오늘 경기 이전에 원래 주전으로 나오던 이원준이 경고 누적으로 출전을 못 했거든요.”
“그랬군요.”
“근데 오늘 나온 황진용 선수가 사실 저희 팀 출신이라는 겁니다.”
“네!?”
처음 안 사실에 깜짝 놀랐다.
“대표님이 부임하기 전에 있던 일인데, 황진용 선수의 첫 프로 데뷔 팀이 저희 팀이었습니다.”
“허어.”
“황진용 선수가 지금 전북이라는 팀에 있어서 그렇지, 다른 팀에 가면 충분히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죠.”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저렇게 잘하는 선수가 고작 로테이션 자원으로 쓰인다니.
만약 우리 팀에 저런 선수가 있다면 더 높은 곳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황진용 선수는 임태무 감독에게 중용받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그를 당시 전북 감독이었던 남창식 감독이 눈여겨보다가 데려갔죠.”
“값은 제대로 받고 보냈나요?”
“아니요. 거의 무상으로 내줬습니다.”
“예!?”
“아마 모종의 거래가 있던 것으로 압니다. 자세한 건 알지 못하고요.”
하여튼 잊을 만하면 나오는 임태무와 허재우의 업적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놈들은 떠난 지 한참 됐건만 아직도 이름이 나온다니.
“황진용을 다시 데려올 수 없을까요?”
“아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제 저희 팀은 옛날 그 쓰레기 같던 팀이 아니니까요.”
쓰레기 같은 팀이 아니라니.
그가 예전에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게 됐다.
그때, 신진호가 끼어들었다.
“아유, 남은 얘기는 장소를 옮겨서 계속하시죠.”
“그러죠. 차가 있나요?”
“제 차가 있습니다.”
천지원이 차를 끌고 왔었다.
그렇게 우리는 차를 타기 위해 주자창으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도련님!
“어? 김 비서, 무슨 일이야?”
-깨어났어요!
“깨어나? 뭐가?”
-이태수 선수요! 이진호 회장님 장남! 그 사람이 깨어났데요!
“뭐!?”
순간 내 두 눈이 부릅떠졌다.
혼수상태로 있던 이태수가 깨어났다던 소식에 놀란 것이다.
“회장님은?”
-이진호 회장님은 마침 두바이로 가셨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그곳에 사람이 없어요. 석 회장님도 그곳에 가신다고 연락이 왔고요.
“젠장. 알았어. 지금 올라갈게.”
-지금요?
“어. 나중에 병원에서 보자고.”
-네. 저도 준비하고 이동하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는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태수 선수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고 하네요.”
“네!? 정말입니까?”
“네. 아쉽지만 술은 다음에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올라가시려고요, 대표님.”
“KTX가 남아 있을 겁니다. 안 되면 버스라도…….”
내 말에 천지원이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 그러지 마시고 제 차 타고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갑자기 이래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안 그래도 대사건이지 않았습니까? 대표님께서 이태수 선수 일로 마음을 많이 쓰셨고요.”
“…….”
“최대한 빠르게 서울로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천지원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올라가게 됐다.
* * *
이태수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몇몇 사람들이 병원에 도착했다.
그중에는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도 있었다.
“이태수 선수, 괜찮으십니까?”
“으음. 네. 제가 어떻게 된 거죠?”
“거의 3개월 만에 깨어나셨습니다.”
이태수가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만 가득한 병실에서 이태수 감독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주변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상체만 일어났다.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너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터라 몸이…….”
이태수는 아직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저 괜찮은 겁니까?”
“그게…….”
연맹 관계자들이 대답을 망설였다.
이미 이태수의 선수 생명이 끝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지 난감했다.
그때였다.
“이태수 선수!”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를 지닌 남자가 등장했다.
“누구…… 윽!”
이태수가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 * *
깨어난 이태수를 본 순간, 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다.
『아르헨티나의 U20 대표팀이 결국 우승을 차지합니다!』
『대단합니다! 이 모든 게 한국인 감독이 해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갑자기 내 주변이 바뀌더니 어떤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 영상 속에서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는 어린 선수들과 그 옆에 웃고 있는 익숙한 인물이 있었다.
‘저 사람은 이태수?’
『믿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달성합니다!』
『신화를 써냈습니다! 이태수 감독이 결국 본인의 말을 지키고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이, 이게 뭐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것들은 전부 뭐지?
당황한 순간 영상이 끝나고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태수와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