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33화 (133/272)

133화

다음 날, 나는 홀로 KTX를 타고 전주로 내려갔다.

그렇게 역 앞에서 택시를 잡고 덕진구에 있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전북 유니폼을 입은 홈팬들이었지만, 다른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오늘 전북의 상대로 나올 팀의 유니폼이겠지.

“대표님! 이쪽입니다!”

“아! 천 부장님. 신 과장도 있었네요.”

천지원과 신진호가 입구에서 나를 보고 환한 표정을 드러냈다.

왜 우리가 전주까지 내려온 것일까?

이유가 있었다.

“오늘 아챔 결과가 어떨까요?”

“글쎄요. 어지간하면 전북이 이기지 않을까요? 그래도 전북 홈인데.”

“그래도 상대가 우라와 레즈니까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추석 연휴 때 진행하는 AFC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경기를 보기 위해 직접 전주월드컵경기장까지 온 것이다.

천지원 부장이 연휴 때 할 일이 없다면 함께 아챔이나 보러 가자고 권유하는 바람에 이렇게 오게 됐다.

“들어가시죠. 표는 이미 구했습니다.”

“벌써요?”

“네. 대표님 것도 있습니다.”

“아이고, 표값이 얼마죠? 제가 입금을…….”

“괜찮습니다. 이거 뭐 표값 얼마나 한다고. 급여도 많이 주시니 이 정도는 제가 사겠습니다.”

“그럼 안에서 먹을 음식은 제가 사죠.”

“좋습니다.”

그렇게 우리 셋은 표를 들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게이트 앞에 서 있던 직원이 표를 검사하다가 나를 보고 흠칫했다.

“지태훈? 헙!”

무심코 내 이름을 말해 버린 직원이 화들짝 놀라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본 신진호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 대표님, 유명인 맞으시네요.”

“어, 얼른 들어가죠.”

괜한 부담을 받고 싶지 않아서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미 주변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어? 저 사람 지태훈 대표 아니야?”

“진짜네! 지태훈이 왜 여기 있어?”

“헐! 대박!”

아, 이거 좀 곤란한데.

전북 유니폼을 입은 몇몇 사람들이 나한테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사인이나 사진 같이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팬이에요.”

“어, 음. 네.”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종종 홈팬들의 요청으로 같이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해주는 경우는 있었다.

그런데 타 구단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쩌다 보니 팬들하고 사진을 찍은 나는, 천지원의 재촉에 서둘러 자리로 이동했다.

때마침 내 카드를 들고 음식을 사러 갔던 신진호도 돌아왔다.

“대표님! 곧 경기 시작합니다. 얼른 가시죠.”

“아아, 넵. 갑시다.”

마침내 전주월드컵경기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한번 왔을 때는 원정 좌석에 앉았는데, 이번에는 홈좌석에 앉았다.

확실히 보이는 각도가 다르다.

우리가 있는 일반석을 기준으로 왼쪽에 원정팀 우라와 레즈, 오른쪽에는 홈팀 전북 서포터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녹색과 붉은색 물결이 출렁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양 팀 서포터스들 모두 경기 전 치열한 응원전을 통해 신경전을 드러냈다.

오오오오~ 어!

짝짝

오오오오~ 어!

짝짝

위아 레즈!

위아 레즈!

원정석을 거의 꽉 채운 우라와 레즈 서포터스들이 경기장을 크게 울릴 정도로 응원하고 있었다.

J리그 팀 중에서 가장 격렬하고 화끈한 팬을 보유한 팀이 바로 우라와레즈다.

이번에 우리가 영입한 스즈키 안도의 전 소속팀이 바로 우라와 레즈다.

이에 맞서는 전북 서포터스들의 응원도 만만치 않았다.

빛나는 K리그1의 최다 우승팀이자 수많은 팬을 거느린 리딩클럽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팬들이 하나가 되어 외쳤다.

전북의 승리를 위하여~

녹색의 전사여~ 전진하리라!

심장이 뛰는 한 그대를 지켜주리라~

녹색 물결이 만들어 낸 어마어마한 응원가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율을 일으키게 했다.

우리 팀하고는 또 다른 분위기다.

“와, 대단하네.”

감탄하고 있는 나를 향해 천지원이 말을 걸었다.

“대표님은 아챔 경기 처음 보시죠?”

“네. 처음 봅니다. 정확히는 직관은 처음이죠.”

내가 다른 팀 경기를 심도 있게 볼 일은 없었다.

내 팀 경기 챙겨보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게다가 작년까지 K리그2에 있던 우리에게 아챔은 언감생심이었다.

작년에 울산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를 TV로 본 게 전부다.

“아챔이 색다른 묘미입니다. K리그 보는 것하고 또 달라요. 이건 또 다른 국가대항전이거든요.”

“그래요?”

“네. 저는 K리그 경기도 좋아하지만 아챔 경기를 더 재미있게 보거든요. 여기서는 같은 리그 팀들이면 다 잘 되기를 바라고 있고요.”

“오.”

우리가 대화를 하는 사이 곧 주심을 포함한 심판들과 양 팀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곧 시작하네요.”

“두근두근하네요.”

* * *

한편, 오늘 경기는 LIVE 현장 중계로 진행됐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2027 AFC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전북 모터스 대 우라와 레즈의 경기를 생중계하겠습니다. 저는 캐스터 이형욱이고요, 옆에는 박하윤 해설님이 함께 하십니다. 반갑습니다.』

『아! 반가워요! 오늘 전북에게 아주 아주 중요한 날인데요. 1차전에서 전북이 사이타마에서 0:1 패배를 했단 말이죠. 오늘 무조건 이겨야 올라갑니다.』

『양 팀 모두 홈극강인데요. 그 까다로운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아쉽게 패배를 했지만, 전북에겐 아직 90분이 남아있단 말이죠.』

『전북이 오늘 또 이겨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이유요?』

『어제 울산이 8강 확정했거든요. 울산이 올라갔는데, 전북이 못 올라갔다? 아~ 이거 전북 입장에서 자존심 상하거든요.』

『하하, 네.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2020년대 들어서 K리그1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전북과 울산.

이 두 팀의 자존심은 AFC챔피언스리그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하루 전날, 디팬딩 챔피언 울산은 2차전 호주 원정에서 웨스턴시드니를 5:1로 대파하며 합계 스코어 8:1을 기록하며 8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조별리그부터 16강까지 무패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울산이었다.

그야말로 디팬딩 챔피언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전북도 조별리그에선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며 조 1위로 통과했지만 16강에서 강팀, 우라와 레즈를 만나 패배를 기록해 버렸다. 오늘 승리하지 못하면 탈락하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어? 지금 카메라에 낯익은 얼굴이 잡혔는데요?』

갑자기 화면에서 보인 누군가에 중계위원들이 반응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지태훈 대표가 여기에 왔군요?』

『올해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고양 유나이티드! 그 팀을 이끄는 지태훈 대표네요!』

『얼마 전에 발표가 났었죠? 지태훈 대표가 있는 회사가 K리그 메인스폰서로 선정되었다고 말이죠. 상금 금액이 1,000억 대가 되었고요.』

『1,000억. 어마어마한 금액이죠. 상상만 했던 일이 내년에 현실로 이루어지는데, 정말 기대가 커요.』

『그런데 지태훈 대표가 여기에 왜 왔을까요?』

『글쎄요. 무슨 이유가 있어서 왔겠죠? 고양이 주말에 전북하고 경기가 예정되어 있나요?』

박하윤 해설의 물음에 앞에 있던 PD가 손으로 X표시를 했다.

『아니네요. 살펴보니까 고양이 전북하고 경기를 치르려면, 한달 정도 남았는데요?』

『그럼 그냥 구경 온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집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왜 대표님이 여기서 나와?”

“뭐야? 대표님이 왜 저기 있어?”

각자 집에서 경기를 보던 곽찬구 감독과 선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김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도련님?”

그가 전주로 가서 경기를 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비서가 대표의 일정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이렇게 TV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왜 그러냐?”

“아, 아니에요.”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김진철이 당황하는 김유리를 보고 의아해했다.

“경기 시작했나 보네.”

김진철이 소파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봤다.

원래 축구를 즐겨 보던 사람은 아니었던 그는, ㈜TH투자회사에 합류한 이후 본격적으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나름 축구의 재미를 알아가던 참이었다.

그렇게 김진철이 축구를 몰입하며 보고 있을 때, 김유리가 지태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 * *

경기는 상당히 재미있게 흘러갔다.

양 팀 모두 양 사이드를 적극 활용한 빠른 측면 공격으로 득점을 노렸다.

팡!

“아!”

박스 중앙에서 동료로부터 크로스를 받은 더글라스가 때린 회심의 슈팅이 골대 위로 날아갔다.

지켜보던 홈팬들이 아쉬운 탄성을 쏟아냈다.

전북 선수들도 아쉬워했다.

반면, 우라와 레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체적으로 전북이 경기를 주도하네요.”

“네. 박빙처럼 보여도, 공격 주도권은 전북이 우세하네요.”

과정이 어떻든 전북은 계속 슈팅 기회를 만들었다.

반면 우라와 레즈는 마지막 마무리 부분에서 아쉬운 모습들을 여러 차례 보였다.

양 팀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칠수록 서포터스들의 응원도 더욱 거셌다.

나아가자 전북-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자 너흰 절대 혼자 걷지 않는다~

전북 서포터스가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면서 응원가를 불렀다.

이에 맞서는 우라와 레즈도 지치지 않고 깃발을 흔들면서 응원가를 불렀다.

赤い血のイレブン ラララ浦和レッズ~ (붉은 피의 일레븐 라라라 우라와 레즈~)

전반전 내내 볼거리들이 많았다.

양 팀 경기력이나 응원가 모두 흥미로웠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욕설이 터져나왔다.

“어! 저 새끼들 뭐야!”

“아니! 저 새끼들 제정신인가!”

우라와 레즈 서포터스 쪽에서 욱일기가 나온 것이다.

제법 크기가 큰 욱일기의 등장에 전주월드컵경기장이 술렁였다.

일부 홈팬들이 우라와 서포터스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기도 했다.

그걸 본 천지원 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녀석들 또 저러네요.”

“예? 또 저런다는 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건가요?”

“네. 저 녀석들은 K리그 팀들만 만나면 종종 저래요.”

“하아?”

나중에 들어보니 우라와 레즈가 J리그 클럽 중에서 강성 서포터스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경우들이 있다고 했다.

“아니, 강성이고 아니고 떠나서 저런 짓을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어이가 없네요.”

“아마 향후에 저희가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나가게 되면, 저희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조심해야겠네요.”

홈팬들의 분노는 곧 선수단 전체에 전달되었다.

경기장 진행 요원들이 나서서 욱일기를 가져갔지만, 이미 경기를 뛰던 선수들도 그 모습을 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북 선수들에게 엄청난 자극제가 되었다.

『황진용! 볼을 잡는 황진용인데요! 기횝니다! 황진용! 슈우우웃!』

전북의 측면 미드필더 황진용이 상대 골문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곳에서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빨랫줄처럼 날아간 슈팅이 우라와 선수들을 절묘하게 뚫고 골문으로 향했다.

놀란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공은 골문 구석으로 정확하게 꽂혔다.

출렁-.

골망이 크게 흔들리는 순간, 지켜보던 홈팬들이 모두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

지켜보던 우리도 벌떡 일어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록 남의 팀이어도, 욱일기를 본 이상 우리는 하나였다.

『황진용의 기막힌 중거리 슈팅이 득점으로 이어집니다!』

『아~ 최고에요! 황진용, 오늘 전북 측면 공격의 핵심이었는데요. 득점까지 만들면서 남바완이에요!』

중계위원들도 환호했다. 그리고 장내 아나운서도 황진용의 골을 외쳤다.

『전북 모터스의 첫 번째 득점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 골의 주인공은 황! 진용!』

황진용! 황진용! 황진용!

황진용의 득점이 터진 이후, 나는 중계카메라에 한 번 더 잡혔다.

『지태훈 대표도 기뻐하네요!』

『그렇죠. 리그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팀이고 적이기도 하지만, AFC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다르거든요. 지금 순간 우리는 하나입니다! 지태훈 대표가 몸소 몸으로 보여주네요!』

물론, 이건 내 의도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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