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며칠 후,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 K리그에 전해졌다.
【단독】(주)TH투자회사, 2028년부터 K리그 메인스폰서 된다!
-TH투자회사? 거기가 어딘데?
-어? 저기 고양유나이티드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 아냐?
-뭐야? 고양이 메인스폰서도 해?
갑작스러운 메인스폰서 변경 소식에 팬들은 대체로 놀란 반응을 보였다.
리그의 메인스폰서가 바뀌는 일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더블은행이 오랫동안 메인스폰서 역할을 해왔던 터라, 팬들에게는 이 소식이 굉장히 낯설었다.
하지만 정식 오피셜도 아니고 구체적인 스폰 금액이나 계약 기간도 알 수 없었기에 처음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오던 어느 날, K리그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오피셜】(주)TH투자회사, K리그 메인스폰서 확정. 계약 기간 5년. 연간 총상금 1,000억.
-뭐야!?
-진짜냐?
-말도 안 돼.
-워, 이게 얼마야?
K리그 팬들이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우승 상금 5억대에 불과했던 K리그였다.
그런데 메인스폰서가 바뀌면서 단숨에 1,000억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것도 우승팀에게만 1,000억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프로축구연맹】
*안녕하세요. 한국프로축구연맹입니다. K리그를 사랑해주시는 축구팬 여러분에게 뜻깊은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2028년부터 K리그의 메인스폰서가 기존 더블은행에서 ㈜TH투자회사로 변경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K리그1 총상금은 1,000억 수준으로 오르며, 상금 지급은 다음과 같이 변동될 예정입니다.
우승 상금 500억.
준우승 200억.
3위 50억, 4위 40억, 5위 30억, 6위 20억, 7~12위 10억으로 차등 배분될 예정입니다.
해당 상금은 계약 기간인 5년 동안 유지됩니다.
그동안 전례가 없었던 일이 K리그를 찾았다.
비록 K리그1에만 해당하는 일이지만, 이 변화는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K리그 팬들은 적극 환영했다.
-와, 우리도 이제 리그 커지냐!
-우승 상금 500억이면, 전북 1년 예산 아니냐? 어지간한 시도민구단은 3년 정도도 거뜬하겠는데?
-리그 규모 엄청 커질 듯.
-우리도 중국이나 일본처럼 되는 건가?
-대박이네. 상금도 차등분배라서 순위싸움 엄청 치열하겠다.
-이러면 구단들도 투자가 늘겠네.
-감사합니다. K리그의 만수르님.
대부분 환영했지만 일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커지면, 중국 꼴 나는 거 아냐?
-불안한데, ㈜TH투자회사가 계약 기간 끝나서 스폰서 그만두고 나가면 다음엔 누가 해? 상금이 적어질 수는 없을 거 아냐?
하지만 이런 우려 섞인 시선은 금방 묻혔다.
당장 가까운 중국과 일본이 대규모 투자로 리그의 규모를 늘려갈 때, 늘 제자리걸음이었던 K리그였다.
그랬던 K리그가 순식간에 판을 키울 수 있게 됐으니, 팬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번 총상금 금액으로만 놓고 봤을 때, 이웃 국가인 중국의 슈퍼리그(320억)와 일본의 J리그 (230억) 총상금과 비교하면 최소 3배나 더 높다.
여기에 긍정적인 시선이 더해지는 것은 평소 K리그가 보여준 저력도 한몫했다.
매년 1조 5,000억을 투자했다가 망했던 중국 슈퍼리그보다 AFC 챔스에서 성적이 좋았던 K리그.
K리그보다 최소 수십 배는 투자했던 J리그도, K리그를 만나면 고전했다.
물론 중국과 일본 클럽들이 아시아를 호령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 기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 외의 기간에는 전부 K리그 팀들이 아시아를 휩쓸고 다녔던 패권국이었다.
그런 패권국에서 엄청난 투자가 진행된다고 하니, 향후 K리그는 눈부신 성장을 보여줄 거라고 예측했다.
그렇게 팬들의 기대 속에서 K리그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쳤다.
* * *
“정말 고맙네. 우리 지 대표 덕분에 K리그가 크나큰 발전을 할 수 있을 걸세.”
“이제 시작이죠. 저도 기대가 하는 바가 큽니다.”
석정원 회장을 포함한 프로축구연맹 사람들이 나를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석정원 회장은 눈물까지 보였다.
“내 살면서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건만. 정말 고맙네, 고마워.”
나는 프로축구연맹과 5년 계약을 맺고 정식으로 메인스폰서 자격을 취득했다.
이 메인스폰서 자격은 내년 1월 1일부터 바로 적용된다.
연간 1,000억.
5년간 약 5,000억.
물론 이만한 규모의 금액을 일시불로 지불하진 않았다. 미리 3년 치를 선불로 프로축구연맹에 지급하고, 나머지는 매년 결과 보고를 받고 3년 후에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나에게 이 정도 자금은 충분히 있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자금만 해도 조 단위에 육박했고, 몇 년 후면 이보다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할 수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물론 무리한 투자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지태완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잘못 건드리면 더 크게 되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할까.
실제로 K리그를 무너뜨릴 뻔했던 지태완의 계약은 오히려 K리그를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줬다.
“아마 지금쯤 배 아파서 몸부림치고 있겠지?”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아, 저희 형 생각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허허허.”
석정원 회장도 이번 사건에 지태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대노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고 흡족해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지태훈 대표.”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죠.”
나와 석정원 회장이 악수하며 환한 표정을 드러냈다.
* * *
어느덧 추석이 다가왔다.
올해 추석은 평일에 껴있었다.
애매하게 화, 수, 목이었다.
직장인 입장에서 앞뒤로 휴가를 내면 최대 9일까지 쉴 수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다행히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서 이렇게 명절도 집에서 보낼 수가 있네요.”
“그러게요. 주말이었으면 경기 때문에 명절도 그냥 넘겨야 했을 텐데.”
“모처럼 아이들하고 시간 보내네요.”
“저도요.”
우리 직원들은 주중 명절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대표님은 명절 때 어떻게 보내세요?”
“저요? 글쎄요.”
직원들의 물음에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버지 집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겠지만 이제 그럴 수도 없다.
따로 갈 곳도 없고, 홀로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우울하기는 했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도련님! 여기 음식 가져가세요.”
“어, 음. 알았어.”
나는 김 비서 집, 아니, 정확히는 김진철 이사 집에 와서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준비한 차례상에 음식을 하나씩 올려두던 나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도련님! 혼자 있지 말고 저희 집으로 오세요! 같이 시간 보내요!”
김 비서의 이 한마디에, 별생각 없이 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김진철도 이런 나에 대해 특별히 뭐라 말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왜 왔냐는 듯 불편한 기색을 보였을 것 같았는데…… 별로 말이 없으니 더 무섭다.
게다가 여기는 김진철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 비서의 가족이 모두 모여 있었다.
“오빠가 우리 언니 애인이에요?”
“무, 뭐?”
당돌하게 나한테 김 비서 애인이냐고 묻는 이 여자.
김 비서가 그런 그녀의 등짝을 찰지게 때리며 말했다.
“애가 못하는 말이 없어! 빨리 음식이나 날라!”
“아! 진짜!”
김 비서의 여동생 김예리였다.
김진철에게는 슬하에 2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김 비서와 김예리였다.
처음 마주한 김예리는 마치 나를 검문하듯 유심히 지켜보았다.
행동 하나하나 감시당하는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불쾌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심했다.
“아이고, 회장님의 막내 도련님께서 이렇게 와주시니 집 분위기가 막 살아나네요.”
김 비서의 어머니 박 여사님은 나를 보고 환한 표정을 드러냈다.
김 비서의 어머니도 굉장히 오랜만에 만났다.
어린 시절에 몇 번 본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 수줍던 도련님이 이렇게 멋지게 장성해서 유명한 대표님이 되셨다니. 정말 피는 못 속이네요. 호호호.”
“가, 감사합니다.”
“우리 유리가 막 불편하게 하지 않죠?”
“네? 그럴 리가요. 오히려 제가 많이 의지하고 있는데요.”
“그래요?”
의지한다는 말에 박 여사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더니 곧 묘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유리가 어디 모자라지 않는데, 누가 우리 딸을 데려가려나 모르겠네요.”
“…….”
“혹시 우리 딸에게 관심 있나요?”
“네!?”
“나는 환영인데~ 호호호.”
박 여사의 말에 내가 화들짝 놀라자, 곧 한쪽에서 김진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슬슬 시작하자고!”
“알았어요~ 호호호.”
눈웃음을 보이며 사라지는 박 여사였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우리는 다 함께 차례를 지냈다.
대한민국의 고유 명절인 추석에는 이렇게 가족이 다 모여 차례를 지낸다.
“원래 차례라는 것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릴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정성만 있으면 그게 차례상이지.”
“…….”
“요즘도 명절에 세대 갈등이 심하다지? 애들이 뭘 잘못이겠냐. 다 이 어른들이 잘못하는 거지. 자고로 부모가 잘하면 애들과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지. 안 그러냐?”
김진철의 말에 우리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다 같이 절하자.”
그렇게 김진철과 그 식구들이 모두 절을 올렸다. 눈치만 보던 나는 얼떨결에 틈에 껴서 같이 하게 됐다.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뒤늦게 그런 나를 본 김 비서와 박 여사가 작게 웃고 있었다.
차례가 끝나고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 대표, 술 마시나?”
“아, 넵. 조금만 마시겠습니다.”
“그래, 그럼 한잔 받아.”
김진철이 차례 지낼 때 썼던 술을 주전자에 담아서 내게 따라줬다.
공손하게 술을 받은 나도 곧 김진철의 잔을 채워졌다.
그렇게 서로의 잔을 채운 뒤, 김진철이 김유리를 보며 말했다.
“유리, 넌 안 마시냐?”
“괜찮아요. 이따가 운전해야 해요.”
“응? 어디 가냐?”
“도련님 모셔다 드려야죠.”
“……그놈의 도련님은 무슨. 지 대표가 무슨 어린 애냐? 혼자 집에도 못 가게?”
미간을 좁히며 말하는 김진철과 달리 김 비서는 태연하게 젓가락을 놀리며 밥을 먹었다.
나는 괜히 불편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김 비서, 나는 괜찮아. 이따가 택시 타고 가면 돼. 여기서 멀지도 않고.”
김진철의 집과 우리 집 사이의 거리는 차로 10분 정도 걸렸다.
여차하면 택시타고 가면 그만이다.
그때, 박 여사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우리 유리가 술이라면 환장하고 좋아하는데.”
“어, 엄마!”
“호호호. 지금 막내 도련님 앞이라고 가리는 거니?”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몰랐다.
여태까지 김 비서가 술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구나.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괜찮아. 김 비서. 오늘은 그냥 마시자.”
“음. 네.”
결국 김 비서도 잔을 받았다.
그렇게 각자 잔을 채운 우리는 술을 마셨다.
“크으.”
이름 모를 전통주가 내 혓바닥과 목을 축이고 위장으로 넘어갔다.
뜨거움과 독특한 향이 나를 자극했다.
“지 대표.”
“예?”
“진행하던 사업들은 잘되고 있나?”
“아, 네. 꽤 진척이 보이고 있고요. 최근 리그 메인스폰서 자격도 획득했고, 아! 경기장 보수 작업도 문제없이 진행 중이고요.”
“그거 잘 됐구만.”
“영신건설 쪽 일은 어떻습니까?”
“용준형 사장이 아주 고군분투하고 있지. 지금 두바이에 있을걸?”
“네, 안 그래도 연락 받았죠.”
용준형 사장은 신도시 사업 건으로 계속 한국과 두바이를 오고 가고 있었다.
칼리드 왕자의 세력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무리 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진철은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지 대표가 보기에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 같은지 보이나?”
“그건…….”
“나는 보여. 굉장히 많은 변화가 올 거라는 걸.”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침을 삼켰다.
사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과연 얼마만큼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간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나도 여러 가지 성장을 해왔지만, 아직 김진철만큼 노련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노련한 그가 보는 미래는 또 다를 것이다.
“긍정적인 변화로 보이십니까? 아니면 반대로 보이십니까?”
“글쎄.”
내 물음에 김진철은 말을 아꼈다.
그러다가 그는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남겼다.
“좋은 결과는 나쁜 결과든, 향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결과라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