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대표님. 일부 선수들의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요?”
“네. 팬들도 주요 선수들의 재계약 소식을 기다리는 반응이고요.”
내가 할 일은 많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업무가 주요 선수들의 재계약 진행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우선 곽찬구 감독을 불러 의향을 알아보았다.
“감독님. 슬슬 선수들 재계약을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음. 안 그래도 대표님께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곽찬구 감독은 자신이 생각한 재계약 명단을 나에게 넘겼다.
명단을 살펴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형우, 김지우, 박지원, 라시모프, 나탈, 석종호. 모두 주요 선수들이네요.”
“네, 나머지 선수들의 계약 기간은 좀 더 남아 있는데, 이 선수들은 1년이 조금 넘게 남은 상태입니다.”
“FA로 풀리기 전에 협의점을 찾아서 진행해야겠군요.”
K리그는 다른 리그들과 달리 일반적인 선수 계약과 FA(자유계약선수) 시스템이 조금 다른 형태로 되어 있었다.
계약이 만료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야만 FA 선수가 다른 구단과 협상이 가능했고, K리그 내 타 구단으로 이적하게 되면 해당 구단이 전 소속 구단에게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었다.
내가 왜 이것을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냐면, 2022년부터 없어졌기 때문이다.
K리그의 보상금 제도는 2013년, 시도민구단들의 열악한 제정환경 때문에 나왔지만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다는 말도 계속 있어왔다.
결국 2022년부터 K리그도 보상금을 폐지하고 보스만룰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제 구단은 보스만룰 때문에, 6개월이 남기 전에 선수들의 재계약을 끝내야 한다.
“적당한 수준의 연봉과 조건을 제시한다면, 아마 대부분 재계약에 응할 겁니다.”
“그렇군요.”
“헌데, 나탈하고 석종호는 아무래도 이적을 바라는 눈치인 것 같습니다.”
“음?”
“아무래도 출전시간 문제가 큰 것 같습니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나탈하고 석종호는 현재 주요 포지션 경쟁자에게 밀려서 계속 로테이션으로 출전하고 아예 뛰지 못하는 날도 있거든요.”
“하긴.”
“저희가 미드필더 자원은 풍족하니 그들이 굳이 떠나겠다면 보내줘도 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것이 좋겠죠.”
“우선, 제가 두 사람을 만나서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 * *
나는 먼저 석종호와 면담을 가졌다.
“석종호 선수. 이렇게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
“아, 넵. 그렇네요.”
석종호는 이제 24세가 된 미드필더다. 주요 활동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주전으로 뛰던 그였지만 스즈키 안도가 영입된 이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요즘 좀 어떠세요?”
“아, 뭐. 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네.”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는 나와 달리, 석종호는 눈앞에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나를 어려워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음. 네. 알겠습니다. 하하.”
편하게 말하라고 했다가 더 어려워졌다.
“뭐, 오늘 석종호 선수를 보자고 한 건 재계약 때문입니다.”
“네? 아, 네.”
“감독님께서 되도록 석종호 선수와 재계약을 하면 좋겠다고 했고, 저희도 석종호 선수와 함께 가고 싶거든요. 조건은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내 말에 석종호는 고민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어렵게 말했다.
“그, 제안은 너무 감사한데요. 그러니까, 음. 저는 축구 선수이고, 많이 뛰고 싶어요. 그런데…….”
“경쟁자 때문에 뛰기는 어렵고, 더 많이 뛰는 곳으로 가고 싶으시다는 건가요?”
“…….”
“여름 이적시장은 끝났고, 석종호 선수가 이적하려면 시즌이 종료된 이후인데, 설마 그 사이에 어떤 긍정적인 반전이 없을까요?”
“그건…….”
“저는 석종호 선수가 충분히 경쟁에서 이기고 제 몫을 찾아가는 선수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선수에게 강한 믿음을 보여줬다.
석종호도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술적으로, 그의 플레이가 대체로 주목받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헌신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스즈키 안도의 노련함과 스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정말 원한다면 이적을 시켜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적만이 답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고요.”
선수가 우리보다 더 큰물에서 놀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떠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비슷한 수준이거나 더 안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물론 선수 입장에서 더 많이 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잘못된 이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석종호는 상당히 고민스러워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대표님, 저에게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시고 선택해주세요.”
석종호와 면담을 마친 나는 곧장 나탈과도 면담을 진행했다.
통역사와 함께 온 나탈과 대화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요즘 생활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팀도 좋고, 사는 것도 만족하고 있고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불편하신 부분은 없고요?”
“으음.”
나탈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출전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재계약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합니다.”
“네?”
나탈은 현재 홀로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시즌이 끝나면 브라질로 돌아가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오는 기러기 아빠인 셈이다.
“아내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점점 떨어지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여러모로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이네요.”
이해할 수 있다.
가족 입장에서 외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가장이 걱정되겠지.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는 없습니까?”
“시도는 했었는데, 아내나 아이들이 한국까지 오는 것을 꺼려하고 있습니다.”
“흐음.”
“혹시 재계약 때문에 그러십니까?”
나탈이 조심스럽게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외국인 선수들은 이 부분이 문제였다. 일전에 사무엘도 가족 문제로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사무엘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생활하고 있어서 문제없었다.
하지만 나탈은 다르다.
나탈의 가족은 한국까지 멀리 가서 사는 것을 어려워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족 문제라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대표님. 아직 시즌이 남아 있으니 이 부분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 어떨까요?”
상황을 알게 된 유지원 부장이 그렇게 조언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고 우선 면담은 이 정도 선에서 멈췄다.
그렇게 선수 두 명과 면담을 마친 나는 피로를 느꼈다.
“쉽지 않죠?”
“김 비서.”
김 비서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한잔 가져와서 내 앞에 놓았다.
“차 한잔 드세요.”
“고마워.”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산뜻한 맛과 함께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재계약 진행이 잘 안 됐다면서요?”
“안 됐다기보단, 뭔가 해결책이 필요해 보였다고 해야 할까? 시간도 필요하고.”
석종호에겐 언제든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면 해결될 거라 보지만, 나탈은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
“곽찬구 감독은 뭐라 하던가요?”
“아쉽지만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고 말하네.”
곽찬구 감독은 현재 남은 시즌에 집중하고, 추후 방법을 논의해 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됐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내가 할 일인데.”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응?”
“누구예요?”
“석 회장님.”
석정원 회장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 지태완과 관련된 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네, 회장님. 무슨 일이세요?”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네?”
* * *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를 지속적으로 후원하던 더블은행.
그런 더블은행의 K리그 메인스폰서 자격이 올해까지였다.
프로축구연맹은 당연히 더블은행이 재계약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블은행 측에서 자금 사정을 이유로 재계약을 거절했다.
프로축구연맹은 당장 내년에 K리그 메인스폰서를 맡아줄 후원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어떻게 일이 그렇게 될 수 있죠? 이런 일은 사전에 조치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끄럽지만, 우리의 실책이네. 헌데, 속사정을 조금 얘기하자면 더블은행 쪽에서 갑자기 말을 바꿨어.
“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당연히 재계약에 응해줄 것처럼 이야기가 됐단 말이야. 거의 도장만 찍으면 되는 그런 분위기였지. 그런데 갑자기 며칠 사이에 통보해온 거야. 재계약을 못 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네요.”
-그래.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 있어. 더블은행 관계자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눴는데, 요지부동이야.
느낌이 싸했다.
“그래서 해결책은 있으십니까?”
-우리도 지금 다방면으로 방법을 찾고 있지만 막막한 상태이긴 하네.
그 노련한 석정원 회장도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나한테 전화를 한 거겠지.
노련한 베테랑마저 당황하게 만드는 희대의 사건이다.
“언론에는 아직 노출 안 됐죠?”
-이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기자들이 먹잇감을 물려고 애쓰고 있네만, 최대한 틀어막고 있는 중일세. 하지만 이것도 시간 문제야.
“그렇겠죠.”
나는 고민했다가 말했다.
“회장님. 저희 쪽에서도 방법을 찾아보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미안하네. 자네도 자네 일을 하느라 바쁠 텐데.
“회장님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많은데요. 뭘. 이번에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전화를 마친 나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 비서에게 말했다.
“김 비서. 이사님을 호출해줘.”
“네? 김 이사님이요?”
“어.”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방법이 있으세요?”
“응. 방법은 있는데 알아볼 게 있어서.”
잠시 후, 김진철 이사가 찾아왔다.
그는 갑자기 자신을 부른 이유가 뭔지 궁금해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아, 그게 상황이…….”
프로축구연맹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야기하자 김진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더블은행에서 거절해?”
“네, 그렇다고 하네요. 혹시 더블은행 관계자하고 아세요?”
“잘 알지. 과거에 회장님과 더블은행의 현 대표이사하고 친분이 돈독했으니까. 나하고도 개인적으로 친했고.”
“…….”
“내가 만나볼까?”
“누구를요? 더블은행 대표?”
“그래.”
“괜찮으실까요?”
“문제 될 게 뭐 있나? 아니면 당장 전화를 해도 되고.”
김진철이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수신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어, 한 대표. 나야, 진철이.”
김진철은 더블은행 대표와 대화를 나누더니 곧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영신그룹에서 압박을 줘?”
“…….”
왜 느낌이 싸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영신그룹이란 말이 나오는 걸 듣자 모든 상황이 납득되었다.
“알았어. 나중에 또 연락하지.”
전화를 마친 김진철은 몹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지태완이 수를 쓴 거 같아.”
“뭐라고 합니까?”
“더블은행 대표이사가 지태완에게 협박을 받은 모양이야. 그 협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터지면 수습 불가능한 약점을 잡혔던 거겠지.”
“하필…….”
작금의 상황이 나도 몹시 불쾌했다.
“지태완이 하는 행동이 참으로 양아치군. 직접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서 주변 인물들까지 다 건드리니 말이야.”
“동감입니다.”
이진호 회장의 아들을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K리그 전체를 건드리려고 하고 있다.
“석 회장님이 고생 좀 꽤나 하시겠어.”
“이사님. 이 일을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합니다.”
“뭐?”
“저희가 메인스폰서가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