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이명훈.”
깨어난 이명훈을 차갑게 바라보며 묻는 김진철.
정말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건가.
김진철은 이런 일은 자신에게 맡기라며 나에게는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 했다.
“서울 드래곤즈.”
김진철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에 이명훈이 반응했다.
“뭐? 이런 XX! 너희 누구야! 어디서 온 새끼들이야!”
퍽!
발악하는 이명훈의 턱을 주먹으로 날려버리는 김진철이었다.
고개가 휙 위로 올라간 이명훈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
“XX! 이런다고 대답할 줄 알아! 우리 애들이 네놈들을 가만히 놔둘 것 같아!”
“아니. 그럴 리가. 너는 아마 그 전에 죽을 거다.”
“……!”
“너를 경찰에 넘겨도 죽이겠지.”
“뭔 개소리야!”
“황보석.”
“그게 뭐……!”
“지태완.”
“……!”
“그 두 사람이 널 살려둘까?”
김진철의 입에서 지태완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이명훈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걸 본 김진철이 씨익 웃었다.
“맞지?”
“이 개……!”
퍽!
“커헉!”
김진철의 주먹에 맞은 이명훈의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흘렀다.
그런 그를 차갑게 쳐다보던 김진철이 나를 불렀다.
“지 대표.”
“네.”
“이 새끼, 어떻게 처리할까?”
잠시만요.
우리가 조폭도 아니고 뭘 어째요?
“어차피 이 새끼는 언제든 쓰고 버릴 도구에 불과해. 황 실장이란 놈을 잡아야 의미가 있어.”
“그래서 저 사람을 뭐 죽이기라도 하자?”
“그럴 리가. 나는 살인자는 아니야. 다만.”
“다만?”
“죽지도 살지도 못할 방법은 많이 알고 있지.”
“…….”
“뭐, 사지 하나 못 쓰게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러시아 친구들에게 넘길 수도 있고.”
“잠시만요. 저희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이게 무슨…….”
당황하는 나에게 김진철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걸 본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지태완의 귀에 들어가면 이 녀석은 죽을 거야. 아마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는 존재로 사라지겠지.”
“그건 그렇죠.”
김진철은 이명훈을 돌아봤다.
조금은 겁에 질려 있는 그를 향해 김진철이 달콤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명훈. 너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말이야.”
“……뭐?”
“넌 이미 우리에게 잡힌 순간, 어떤 식으로든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거야. 우리는 그런 결말을 바꾸는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내, 내가 그딴 말을 믿을 것 같아!”
“글쎄.”
김진철이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
“아마 네놈이 더 잘 알겠지. 지태완과 연결된 사람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말이야.”
“이런 씨…….”
“우리에게 협력해. 그러면 어떻게든 네 신변은 우리 쪽에서 보호해주마. 원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게 해줄 수도 있고.”
이명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렇게 우리는 이명훈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얻어낸 정보는 상상 이상이었다.
“지태완과 황 실장이란 놈이 20년 전부터 연결되었다니.”
지태완이 20대였던 시절, 음지에 활동하던 황 실장이 그의 눈에 띄어 영입되었다고 한다.
이후 지태완의 심복으로 활약한 그는, 온갖 지저분한 일들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 대가로 많은 부를 손에 넣었고.
그러다가 3년 전에 명천파를 만들었다.
영신그룹의 후원 아래 명천파는 대한민국의 음지 세력들을 통합하고, 일부를 양지로 끌어올려 활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온 기업이 ‘태륭’.
“태륭기업은 유통 회사야. 지태완이 본부장이었던 시절에 태륭기업과 MOU를 추진했고, 이후 지분 투자를 통해 자회사로 끌어들였지.”
“태륭에서 무언가를 했나요?”
“원래 유통 사업은 영신식품이 함께했었지. 그런데 태륭이 유통을 가져갔어. 영신식품은 그저 먹거리나 만드는 기업으로 전락했고.”
“모든 게 지태완의 계략이었군요.”
“그런 셈이지. 유통에서 나오는 수익이 결코 적지 않거든.”
김진철의 설명에 나는 생각보다 이 일의 뿌리가 깊다고 느꼈다.
명천파는 이미 조직폭력배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박종수 이사의 사망도 연관되어 있었다니.”
박종수를 사망하게 만든 이들도 명천파의 무리였다고 한다.
그 현장에는 이명훈도 있었고.
그것뿐만이 아니다.
더 충격적인 진실이 있었다.
정보를 토해내던 이명훈이 나에게 진실을 말했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강남 한복판에서 술에 취한 재벌가 도련님이 스포츠카를 몰다가 그대로 가로수에 충돌했다는 사고 말이야.”
“……뭐?”
“그거 누가 했을까?”
“……!”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말도 안 되는 그림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날 사고를 낸 도련님이 마신 술에 누군가 미리 약을 집어넣고, 그렇게 인사불성이 된 도련님을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에 집어넣고 시동을 걸었던 사람이 과연 누구였을까?”
“이런 씨!”
나는 이명훈의 멱살을 잡았다.
그는 입가에 피를 줄줄 흘리며 낄낄 웃어댔다.
“그거 전부 다~ 황 실장이 한 짓이야! 그럼 황 실장은 누구 명령을 받았을까? 혼자 했을까?”
퍽!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날아갔다.
고개가 돌아간 이명훈이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런 그가 얄미워서 한 대 더 칠뻔한 걸, 김진철이 막아섰다.
“감정을 보이지 마라.”
“후우.”
“이놈이 하는 말을 모두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렇죠.”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은 것 같다. 이제 그 황 실장이란 놈을 잡아야겠지.”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여기서 분풀이할 때가 아니다.
나는 가볍게 호흡을 고른 뒤, 이명훈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황 실장,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 *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 당장 황 실장을 붙잡기는 어려웠다.
황 실장은 늘 수행원들을 데리고 다녔고, 매번 이동 경로를 최대한 노출하지 않고 행동했다.
어찌어찌 알고 간다고 해도, 우리만으로 조폭들을 뚫고 황 실장을 잡는 것은 어렵다.
“경찰하고 협조가 되어야 해.”
“그렇겠죠. 그런데 우리를 도와줄 경찰이 있을까요?”
일전에 경찰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겪었던 나다.
누가 어느 편인지도 알 수 없기에 경찰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그건 걱정 마라. 내가 해결해 볼테니.”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런 일은 예전부터 내가 전문으로 해왔으니까.”
위험해 보였지만 김진철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명훈은 어떻게 하죠?”
“일단 우리가 데리고 있어야지. 혹시나 그놈들이 이명훈을 데려가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프니까.”
“어쩔 수 없군요.”
“이명훈을 데리고 있을 장소는 내가 알아보마.”
“부탁드리죠.”
그렇게 나는 다시 업무에 복귀했다.
“대표님! 저희 팀이 이겼습니다. 혹시 경기 보셨나요?”
“이겼나요?”
“네! 아, 경기 못 보셨나 보군요.”
“일이 좀 있어서요.”
내가 없는 사이 고양 유나이티드가 후반기 첫 번째 경기를 치렀다.
강원을 만난 고양은 2:0 승리를 거두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이 경기에서 장현우 대신 선발 출전한 오세진이 이적 첫 골을 신고했다.
팀에 합류하고 치른 첫 경기부터 오세진은 자연스럽게 팀에 녹아내리며 자신의 진가를 모두 보여줬다.
70분쯤에 장현우와 교체될 때까지 대활약을 펼쳤던 그는 경기가 끝나고 MVP로 선정되었다.
고양 유나이티드에 새로운 공격 옵션이 추가된 것이다.
“출발이 좋으니 기분이 좋군요.”
내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직원들도 산뜻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공시는 어떻게 됐습니까?”
“안 그래도 오전에 공시 발표했습니다.”
“한번 보죠.”
유지원 경영지원부장이 내게 경영 공시 자료를 인쇄한 종이를 가져왔다.
프로축구연맹에서 매년 발표하는 각 구단별 경영 공시가 있다.
K리그 출범 30주년인 2013년에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K리그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구단별 경영 공시였다.
발표되는 시기의 마지막 시즌 때 구단별로 사용된 운영비가 모두 공개된다.
이 경영 공시를 통해 구단별로 얼마나 투명하게 경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우리가 K리그2 1위군요.”
지난 시즌까진 우리가 K리그2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경영 공시는 K리그2 소속으로 발표되었다.
“지난번에 대략적인 추정이었다면, 이번에 발표된 것은 확정 공시입니다.”
평균 운영비 330억.
K리그2 역대 최다 운영비였다.
그중 연봉 총액은 82억 6,671만 원.
함께 승격했던 제주 유나이티드가 운영비로 100억을 사용했던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자체 수입이 87억이군요.”
“이 정도 수입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닙니다. K리그2 역대 최다 수입인데다 K리그1 자체 수입 1위 전북과 울산이 150억 수준인 것을 생각한다면 상당한 금액입니다.”
“이 수입 금액에는 작년 월드컵 효과도 있었겠죠?”
“그렇죠. 월드컵 이후 박형우와 장현우 선수가 만든 신드롬도 포함되었죠.”
“올해 수입은 어느 정도죠?”
“77억입니다. 이 상태로 가면 작년보다 수입이 더 늘어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건 다행이지만, 우리가 쏟는 금액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해요.”
고작 일이백억 수준에서 만족할 수 없다.
우리가 당장 유럽의 유명 구단들처럼 수천억씩 벌 수는 없어도, 계속해서 수입이 증가할 방법들을 만들어내야 했다.
영신그룹이 아닌 ㈜TH투자회사로 넘어간 이상, 여기도 수입이 나와줘야 했다.
그때 마케팅팀의 부장 천지원이 손을 들고 말했다.
“대표님. 시즌티켓과 티켓 객단가를 전체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흐음.”
“현재 일반석의 경우 청소년은 10,000원, 성인은 12,000원으로 받고 있고 프리미엄 좌석은 구분 없이 20,000에서 30,000원 수준으로 받고 있습니다.”
“지금 객단가도 리그 내 상위 수준 아닌가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향후 저희가 팬들에게 제공할 서비스의 수준도 생각해야 합니다. 팬들은 분명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맞춰 값을 지불 해줄 겁니다.”
객단가는 함부로 올릴 수 없다.
구단의 내부 사정과 시장 규모 등을 모두 파악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단일 입장권에 대한 객단가를 올려야 시즌티켓 가격도 올릴 수 있습니다.”
시즌티켓.
자주 경기장을 찾아오는 홈팬들을 위해 만들어진 티켓이다.
시즌티켓 이용자들에게는 다양한 부가서비스들이 제공되는데, 팬들은 기호에 맞춰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현재 시즌티켓 가격은 기본 홈 15경기에 상·하위 스플릿 경기에 따른 추가 홈경기. 그리고 FA컵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에 따른 추가 홈경기까지 포함해서 기본 단가를 책정하고 거기에 추가 서비스 비용을 더해서 정해지죠.”
“그렇죠.”
“저희는 시즌티켓의 종류는 하나뿐입니다. 가격은 청소년과 성인으로 나눠서 15만 원과 20만 원으로 나눠지죠.”
“흐음.”
“향후 대표님께서 구단을 이끌어가실 때 원활한 자금운영을 위해서라도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는 조금 고민에 휩싸였다.
확실히 티켓 가격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K리그2 소속이어서 티켓값은 기본만 책정해도 문제없었다.
하지만 K리그1은 다르다.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이제야 무엇이 부족한지 하나씩 알아가고 있었다.
“좋습니다. 경영팀은 마케팅팀과 논의해서 앞으로 티켓 가격을 어떻게 할지 연구해 보도록 하세요.”
“넵.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