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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129화 (129/272)

129화

“최근 지태완 회장이 조폭의 뒤를 봐준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박종찬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그쪽 세계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미팅하다가 그쪽 세계에 계신 분과 만나게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쪽 세계 사람과 만날 수가 있을까?

궁금한 부분이 있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박종찬의 말에 더 관심이 갔으니까.

“그분의 말로는 근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규모를 확장한 조직이 있다더군요. 근데 그 조직 뒤에는 영신그룹의 관계자가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고요.”

“뒤를 봐주는 그 관계자가 저희 형이라는 겁니까?”

“그렇죠. 그쪽에서 주장한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조폭과 연계된 대기업 회장.

종종 있던 일이다.

하지만 지태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회장이 된 이후, 흔히 ‘사이다’ 발언을 하며 대중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조폭과 연계되었단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가 꿈꾸던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이 정보가 진짜 사실이라면 후폭풍이 거셀 겁니다.”

“그렇겠죠. 그런데 이 정보를 저에게 알려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칼리드 왕자가 지태완과 관련된 정보는 가급적이면 대표님과 공유하라고 부탁했으니까요.”

참으로 고마운 왕자님이시다.

“혹시 제가 그분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라면…… 그분?”

“네, 그분이요.”

“흐음. 저도 한 번만 만났던 분이라 연락처는 있지만…… 다시 만나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부탁드리죠.”

“연락은 해보겠습니다.”

박종찬과 대화한 후 며칠이 지나서 다시 연락이 왔다.

“대표님. 그분이 대표님을 만나고 싶다고 의사를 표했습니다.”

“오, 정말입니까?”

“네. 내일 오후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가능합니다.”

“그럼 내일 오후 5시에 역삼동에서 보자고 하십니다.”

“네.”

다음 날, 나는 박종찬이 알려준 역삼동의 빌딩으로 향했다.

“괜찮을까요?”

“설마 큰일이야 있겠어? 혹시나 한참이 지나도 내가 내려오지 않으면 경찰에 바로 신고하고.”

“알겠어요.”

“아, 저긴가 보다.”

빌딩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차에서 내린 나는 건물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어떤 정장을 입은 남자가 문지기처럼 서 있었다.

험상궂은 얼굴로 서 있던 그는 나를 보더니 눈썹을 꿈틀거렸다.

“혹시 지태훈 대표님이십니까?”

“네? 아, 넵. 맞습니다.”

“형님, 아니, 대표님께서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5층으로 올라가시죠.”

“네.”

왠지 잘못 온 것 같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하지만 나는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렸다.

그러자 커다란 삼면이 통유리 창으로 이루어진 방이 나왔다.

1층에 있던 남자처럼 정장을 입은 덩치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덩치들 틈에 있는 나이 든 남자가 입에 시가를 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쪽이 지태훈 대표?”

“맞습니다.”

“반갑구만. 나는 유창수라고 하는데.”

유창수라 소개한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그러자 맞잡은 손에서 강한 악력이 느껴졌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네. 아그들아, 너희들은 잠깐 나가 있어라. 나는 여기 계신 대표님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말이다.”

“예, 형님!”

“어허! 대표님이라고 불러야지! 몇 번을 얘기해! 대표! 대표!”

“앗! 죄송합니다! 형, 아니, 대표님!”

덩치들이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나와 유창수만 남았다.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상석에 앉은 유창수가 다리를 꼬고 시가를 피우며 말했다.

“어따, 얼굴도 멋쟁이시고, 이런 곳에 혈혈단신으로 올 정도로 깡도 있고. 대단한 양반이여.”

유창수는 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집에 가고 싶다. 진심으로.

설마 내가 조폭의 소굴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게 내 잘못이다.

김진철 이사라도 데려올걸!

망나니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련이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어떻게든 태연하게 이 상황을 견뎌냈다.

“그건 그렇고 영신그룹의 신임 회장의 동생이라면서?”

이 양반은 초면에 반말을 아주 쫙쫙 내뱉는다.

후, 안 되겠다.

“맞는데?”

“어쭈?”

“뭐?”

나는 그냥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마치 그 옛날 아무것도 모르던 망나니 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유창수는 그런 나를 보고 어이없어하더니 곧 크게 웃어 재꼈다.

“이야~ 지 대표 재미있구만. 뭐, 마음에 들었어. 그래, 영신그룹의 망나니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나에 대해서 알아?”

“알지. 잘 알지. 개과천선했다는 망나니를 모를 수가 있나.”

이 새끼 이거 다 알면서 모르는 척했던 거네.

“됐고, 궁금한 게 있어서 왔어.”

“뭐, 그 잘나신 회장님이 우리 세계하고 연관된 이야기가 궁금해서 온 거겠지?”

“맞아.”

“큭큭.”

유창수가 웃음을 흘렸다가 곧 사나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아주 영신그룹 때문에 미쳐 버리겄어. 아주.”

“…….”

“어느 날 갑자기 명천파라는 개 잡것들이 들어오면서 아주 그냥 우리가 하는 일마다 방해를 하더라고.”

“명천파?”

“그래, 그 황보석! 그 망할 새끼가 대가리로 있는 곳!”

명천파를 이끄는 황보석.

그는 몇 년 전에 명천파라는 조직을 만들고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한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으로 타조직에 유능한 인원들을 스카웃하고, 그렇게 모인 인력으로 다양한 음지 사업들을 벌였다.

그렇게 급속 성장한 명천파는 현재 조폭들 사이에서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세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 대가리가 속칭 ‘황 실장’이라고 불리는데, 그 새끼 뒤에 영신그룹이 있다는 거야.”

“어째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거지?”

“우선 자금력 자체가 말이 안 되고, 무엇보다 경찰에 붙잡혀도 금방 풀려놔. 무혐의로 말이지. 이건 정재계와 연결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거든.”

“그렇다고 해도 영신그룹이 얽혔다고 판단할 수 없는데? 다른 세력과 연결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나도 처음에 영신그룹하고 얽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거든. 근데 말이야. 내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을 하나 겪었거든.”

“흥미로운 일?”

유창수는 시가를 내려놓고 품속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러고는 담배를 새로 하나 꺼내 피우면서 말했다.

“후우~ 우연히 그 황보석 밑에서 일하던 놈을 내가 자주 가던 단골 바서 보게 됐거든. 그때 그놈이 여자하고 얘기하더라고.”

-황 실장이 이번에 태조건설 아들을 건드리라고 했어. 이번에도 지태훈하고 연관된 거겠지.

“뭐라고!?”

나는 유창수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유창수는 그런 내 반응을 보고 눈을 빛내더니 곧 낄낄 웃었다.

그러더니 곧 굳은 얼굴로 말했다.

“태조건설 장남이 축구선수에서 은퇴하게 됐다며? 그게 왜 그렇게 됐을까?”

“…….”

“아이고, 궁금해서 뒷조사를 해보니까 이게 영신건설하고 태조건설이 중동에서 뭔 사업을 크게 벌이려고 했었네? 근데 그게 누구 귀에 들어가 버렸지 뭐야.”

정말로, 이번 태조건설 장남이 당한 일의 배후에는 지태완이 있었다.

“지금 이 얘기에 거짓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너는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아이구, 무서워라.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뭐, 믿고 안 믿고는 그쪽 자유여.”

유창수가 거짓말하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

“이명훈.”

“뭐?”

“명천파에 대가리의 왼팔 이름이다. 이명훈이란 놈 찾아가서 진실을 알아내 보던가.”

“…….”

“그 새끼 종종 강남에 테이저라는 바에 나타나거든. 그럼 알아서 잘해보라고.”

문득 나는 유창수에게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까지 나에게 정보를 주는 이유가 뭐지?”

“뭐긴. 말했지만 명천파 그 새끼들 마음에 안 들거든. 이왕이면 그쪽이 처리해 주면 더 좋고 말이야.”

“지랄하네.”

“후후.”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를 못 느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는데, 뒤에서 유창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또 보자고~”

* * *

강남, 테이저.

“그러니까,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 이명훈인가 뭔가가 온다고?”

“네.”

“그래서 그 말을 철썩 믿고 3일 동안 다른 일은 팽개치고 여기 죽돌이로 있었다?”

“그건…….”

“어처구니가 없구만.”

김진철은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혀를 찼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한 마음으로 다른 일을 제쳐두고 이명훈의 뒤를 쫓는 일에만 집중했다.

김진철은 업무 관련 일로 나를 찾아왔다가,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직접 찾아온 것이다.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나?”

“네?”

“후. 됐다. 어쨌든 그 이명훈이란 놈을 잡아 족치면 된다는 거지?”

“어, 음. 잡기만 해야죠?”

나와 김진철은 테이저에서 술을 먹는 척하면서 기다렸다.

“오빠~ 또 왔네~ 오, 이번에는 손님하고 왔네?”

“어, 음.”

테이저에서 일하는 여급이 3일 동안 죽돌이로 있던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그런 나를 김진철이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너.”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내가 왜 변명해야 하는 거지?

조금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았다.

그때였다.

“오빠~ 왜 이제 왔어~ 기다렸는데!”

나에게 인사하던 여급이 어떤 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격하게 반응했다.

그 남자도 여급을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일 좀 하다가 늦었지.”

“그래도 와주니까 좋다. 늘 먹던 걸로?”

“어. 하나 가져와 봐.”

“알았어~”

껄렁하게 생긴 남자가 자연스럽게 닷지에 앉았다.

우리는 그 남자를 쓱 보다가 이내 신경을 끄려고 했다. 그런데…….

“명훈 오빠, 여기 글렌피딕!”

여급의 말에 나와 김진철 모두 귀를 쫑긋했다.

“오빠, 나도 한 잔 줄 거지?”

“안 주고 싶어도 그냥 마실 거 잖아.”

“아이, 오빠도. 참.”

남자가 여급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런 그를 보던 내가 김진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왠지 저 사람이 이명훈인 거 같은데요?”

“잠깐 있어 봐.”

“네?”

자리에서 일어난 김진철이 뚜벅뚜벅 남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술을 마시다가 다가오는 김진철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뭐야?”

“네가 이명훈이냐?”

“뭐?”

“네가 이명훈이 맞냐고.”

싸늘하게 묻는 김진철의 행동에 남자는 어이없어했다.

“하, 이 새끼, 뭐냐? 그래, 내가 이명훈인데 뭐?”

“명천파?”

“그래, 새끼야. 내가 명천파 이명훈인데? 뭐, 딴 조직에서 보냈…… 커헉!”

콰아앙!

“꺄아아악!”

순식간에 벌어졌다.

김진철이 이명훈을 그 자리에서 엎어치기 하며 바닥에 꽂아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급이 비명을 질렀고, 이명훈은 꺽꺽대며 고통스러워했다.

김진철은 그런 이명훈의 가슴팍을 발로 밟은 다음 나에게 말했다.

“이명훈 잡았다.”

나는 그만 정신을 놓을 뻔했다.

* * *

이명훈이 천천히 의식을 되찾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어떤 남자가 갑자기 자신에게 이명훈이냐며 물었다가 그대로 엎어치기 당해서 기절했다.

“이런 XX!”

욕설하며 눈을 뜨고 일어나려는데, 몸이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당황스러워했다.

“뭐, 뭐야!?”

자세히 보니 몸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 낯선 공간에서 의자에 몸이 묶여 있는 그가 당황해하는 사이, 그런 그에게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일어났냐?”

그 남자는 바로 김진철 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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